붓꽃 독백

붓꽃 독백 - 인연 그리고 우정

붓꽃 에스프리 2017. 6. 11. 01:54





첫 수습 한주가 너무 힘들었다.

너무나도 많은 정보들이 숨을 막히게 했다.

새로 직장을 옮길때마다 겪어야 하는 이 숨막히는 순간들 넘어야 할 산이다.

그리고 선택이 아닌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럴때면 숨막힐것 같은 순간에 숨통을 열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쇼팽 작품들이 전달해주는 영혼 깊이 다가오는 울림들이다.


어저께 주말은 멀리 다른 도시로 새직장에서 사용하는 컴퓨러 프로그램을 교육받으러 갔었다.

전 전 전 직장에서 만난 우정의 친구들 가운데 백인 사만타/쌤의 생일이 다가와 미리 체리가 챙겨준다며

가지말고 저녁 같이 하고 올라 가라고 하도 졸라 뿌리칠수 없어 그러마 했다.




인생에 둘도 없는 나의 친구들

40대 중년의 체리는 어려서 4 살때 필립핀에서 왔다.


그리고 이제 20대말의 쌤/사만타는 독일계로 미쉬건에서 왔다.

먼저 먼저 먼저 직장에서 둘도 없는 삼총사 였었다.


쌤은 지금 자기 부서에서 총책임자가 되었다.


처음에 썜이 처음 왔을 때는 먼저 근무한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참 텃세를 많이 하던 때였다. 그때 쌤이 유일한 백인 이었다.


그래 신참내기인 체리와 나 인데도 먼저 우리가 다가 가서 쌤을

우리 품에 안아주고 일을 가르쳐 주고 남들이 텃세 하면 같이 대들어

싸워주고 보호해주고 하였었다.


결국 우리는 오랜 세월을 두고 변하지 않는

인생의 진정 참 진실한 친구가 되어 이제는 함께

인생을 항해하고 있다.


다들 한 성격하는 사람들이라 누군가 잘난척하고

꼴 갖잖게 굴고 정의가 아니다 싶으면

그 꼴 못보는 사람들로 다까 세우고 만다.


다 착한 사람들로 겸손하고 생활력 강한 사람들이다,




빨간 립스틱의 함박 웃음을 짓는 파멜라/팸도 성격 한가닥 한다.

하나 같이 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로 자기 분야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이다.

술값은 내가 미리 다 내어주고 돌아왔다.



체리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들 가운데 오랜 친구인 미쉘, 요양원 총책임자인 클레어와

같이 근무하는 파멜라 애칭 팸을 불럿다. 그리고 막판에 매니가 오고..........


가자고 하는 데가 가까운 곳인줄 알았다 일단 체리의 집에서 어린 두딸들과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하여 있으니 남편 윌리가 왔다. 하루 근무하고 나니 피곤한 것은 당연한 일 자기는

집에 있겠단다. 하여 조르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하고는 클레어와 체리를 태우고 주인공

사만타 집으로 가서 픽업하고 고속도로를 진입하니 한국에 있는 단 한명의 어린시절 친구

J의 딸내 부부가 사는 동네가 아니던가.


이렇게나 먼곳이야..........

유명한 곳으로 주로 손님은 비한국인들로 고기구이집 바베큐 레스토랑 이었다.

불행하게도 술을 오랜만에 마시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좋아 하는 과일 향내나는

소주가 없고 플레인 소주 참이슬 후레쉬밖에 없었다. 다들 독하고 맛이 그렇다고

마시고는 그 씁쓰름한 맛에 고기로 대신 하였다.


딸 같은 나이 어린 친구들 내지는 중년의 여성 친구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비빔밥

맛나는 집에서 엄마 손맛으로 만든 김치, 갈비, 불고기와 맛껄스러운 반찬들 이었다.

다들 한국음식 매니아들다. 백인 친구 사만타도 미쉬건 중소 도시에서 멀고도 먼

서부 우리 지방 캘리훠니어로 이사를 온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다양한

민족들의 음식을 즐길줄 알고 이제는 즐겨한다.


그 먼 사만타 고향에서는 있어야 겨우 중국집 한집이 동양 레스토랑 이었다고 한다.

사만타도 김치는 물론 갈비등 한국 음식을 즐겨한다.  체리가 다시 자기 직장 동료

매니를 불러서 매니가 온단다. 얼마후 매니가 왔다. 자그마한 필립핀 사람이었다.


한국으로 말하면 큰 호프집 같은 곳으로 2차를 가잖다.

Gerry's Grill/제리스 그릴 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곳으로 발디딜 틈이 없이 젊은 청춘들로

가득한 곳으로 라이브 밴드가 롹을 연주하기도 하는 곳으로 시간이 흐르니 귀청이 찟어질듯이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서로의 이야기를 알아 들을 수도 없었다.


정말 정말 오랫만에 가져보는 이런 시간이었다.

연주가 그동안 쌓인 모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고도 남았다.

훌러가 있었다면 다 끌고 나가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 고마워 팁을 놓아 주었다.


그 와중에 주변을 보니 하나 같이 다 영어로 쏼라 대는 사람들뿐 이었다.

그래 얼굴은 다 각기 다른 인종들인데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맞아 그래

나는 속으로 독백을 하고 있었다. 나 조차도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지금 이 순간에

처음 만난 클레어 하고 서로 휠이 꽂혀 죽이 맞아 영어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하지

않나 싶었다.


클레어 하고 바라보는 시각이나 삶에 대한 사고가 참 같다며 체리가 말을 했었다.

클레어를 만나면 네가 무척 좋아 할거야 꼭 너같아 모든 것이 분명해 그리고 칼이고 하여

지금은 연봉 거의 20만불 2억을 받아 아주 대단한 사람이야. 만나봐 하더니 사람을

만나보니 첫 인상이 참 차분하고 명료했다.


클레어가 한번 경영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한번 요양원 총책임자 자리에 가고 싶지 않느냐고 생각 있으면 다 수습시켜주고 할테니

해보라고 제안을 해왔다. 연봉 18 만불 내지는 19만불 주겠으니 같은 회사에서 근무

해보자고 했다. 생각없고 많은 곳에서 나를 오라고 이메일이 오는 것을 거절했다고 했다.

한국에도 자기가 아는 회사에서 경영하는 요양원이 하나 설립되어 있다고 한다.


그 많은 책임을 지고 싶지 않고 한달에 한국돈으로 천만원이 넘는 보수를 준다지만

생각없다고 잘라 말을 했다. 그러면 시간이 나면 와서 나를 좀 이틀이고 사흘이고 도와

줄수 없느냐고 했다. 그것도 너무 멀어 생각해보아야 하고 네 회사에서 현재 내가 받는

보수를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글쌔 경영 이라니 내가 그럴 능력이 있을까 했다.


아직은 남들이 부러워 하는 유명한 직장에서 더 경험을 쌓고 싶고 그리고 은퇴

할 때쯤에 그런 곳에서 한번 일을 할지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하기야 지금도

같이 공부하는 우리반에도 시저라고 재활쎈터에 총책임자가 있다.


미쉘은 먼곳에 살아 동쪽 방향으로 떠났고 나는 체리와 사만타 쌤과 클레어를 태우고

체리 집에 내려주고 텅빈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새벽 3시가 가까워 집에 도착햇다.

잘 도착했다고 체리에게 텍스트 메세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쉬카고에서 한국에서 우리 동네서 세분 모두 친형님 같은 분들로 부터

카톡이 날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못챙겨드린 아빠 오늘은 따듯한 우거지 갈비탕과
돼지 불고기 해서 들고가 봉양 해드리고 돌아와 공부를 해야만 한다.


클레어를 만난 것은 참 기쁨 이었다.

다들 하나 같이 고생하고 큰 사람들이라서 강하고 강해 누가 썅하면 같이 썅하고 되받아 치고

디디고 일어설줄아는 생명력 강한 사람들이다. 너그러울 때는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들이다.






이 김치가 5년 묵은 김치라고 한다.

유튜브에서 한국 기행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5년 묵은 김치에 직접 손으로 두 부부가 만든 두부로

싸서 입안에 넣으면서 그렇케 맛나다고 한다.


맛이 안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았다.

얼마나 옛스럽고 소박하며 우아한 상차림인가 싶어 침이 절로 넘어 갔다.

아주 착한 부부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