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 독백

붓꽃 독백 - 초가을밤에 <위대한 약속>

붓꽃 에스프리 2017. 9. 18. 19:29




리아 킴 - 위대한 약속



오랜만에 혈육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허리는 한 열흘간 뻐근하고 불편해 간신히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던 조카 딸

아이의 쌍둥이 자매들 3번째 생일 이라고 초대장을 보내왔다. RSVP 답장을 보냈다. 오랜만에 만나니 하루가 다르게 손주들이 자라 모두가 다 눈부시다. 손녀딸 첼시는 벌써 국민학교 4학년 아주 큰 아이가 되었다. 손자 녀석 루커스도 얼마나 컷는지 아빠 엄마와 함께 와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지난 4월에 암으로 할머니를 잃어버리고 이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만이 그 아이들에게 남아 있다.

마취과 의사인 제 아빠는 시간이 널널하고 가능하니 약사인 제 엄마도 같이 왔고 여성암 외과전문의인

제 큰아버지와 치과의사인 제 큰엄마와 사촌들만 늘 바빠 오지를 못하고 모두 다 참석을 하였다.


모두 모이면 아이들이 몇명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우리가 이제 어른자리에 앉아 있고 아이들의 부모들도 모두 40대 50대 초반이라 세월의

흐름이 얼마나 무상한지 느끼게 한다. 그 아이들의 조부모님들 즉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세상을

떠나시고 이제 우리가 그 자리에 서있다. 제일 위에 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제 만나면 우리가 몇번을

더 만나겠냐며 살아 있을때 자주만나며 살자고 하신다.


오늘 생일을 맞이한 앨렉스와 멜리의 외할아버지가 되시는 위에 어른의 말씀이다.

그러마 하였다 그리고 10월에 찾아 뵙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동안 쉬지도 않고 일하고 그 어려운

공부하고 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허리가 아프겠냐고 하신다. 무사히

학업을 맞추었고 곧 학위만 이수 받으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마취과를 하는 조카 아들이 하는 말이

이제는 가는 연방정부 기관에서 근무하다 엉클 은퇴하라며 제일 좋은 곳이니 자기가 사는 근처에도

지부가 있으니 오라하여 그 먼데로 어떻케 이사를 가냐고 하고 말았다.


조카 사위인 오늘 생일을 맞이한 앨렉스와 멜리의 아빠 좐은 스탠훠드 대학교 공과대학 출신이다.

하여 6.25 동란후 곧바로 중학교때 미국 군인의 양자로 건너와 우리 미국의 명문 퍼듀 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학을 공부하고 첨단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그런 조카 사위는 한국어 인사말 이외는 한국어를 전혀 못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인들이 전혀

없는 백인들 속에서만 자라 한국말을 구사하지 못해 그것이 늘 안타까워 며느리인 조카딸 아이에게

네남편 한국말을 가르치라고 시부모님들이 말씀을 하시지만 그게 그렇케 쉽지 않다.


조카딸 아이는 미국에서 출생하였지만 돌아가신 어머니 맘 그 아이의 친할머니가 기른적도 있어

보수적인 제아빠 윗분의 가르침이 있어서 한국어를 썩잘하는 편이다. 시집 가서는 더는 공부한

그 아까운 약학을 사용하지 못하고 쌍둥이 딸 기르느라고 정신이 없다고 제 아빠 엄마인 윗분들이

전해준다. 그리고 중소기업을 경영하시던 부호인 제 시부모님들이 일하는 것을 반대하고 애만

기르고 살라 하시고 하여 내니 애보는 사람을 두고도 그 큰 대저택에서 살면서 살림하는 것만도

벅차다고 한다. 그 사이에 사위의 첨단 회사가 잘되어 고용자만 20명에서 50명으로 늘었다고

윗분이 칭찬을 하신다. 늘 소박한 차림으로 다니니 누가 부호의 아들이요 중소기업 운영자인줄

알겠는가 싶다. 취미가 귀한 자동차를 수집하는 일이고 오토바이 수집하는 일이다.


수재였던 조카딸 아이는 하바드 대학을 나와 하바드에서 의학을 공부한 수재부터 세상의

모든 수재 신랑 후보들을 소개해도 싫다고 하여 제부모인 윗분들 걱정을 말도 못하게 시켜

남동생인 조카 아들이 먼저 가정을 이루고 어느날 노처녀가 노총각을 제 이모부의 소개로

만나 6개월 데이트 끝에 30대말에 40대 초반의 남편을 만나 골인하여 지금은 얼마나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지 모른다. 하여 다 인연이 따로 있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결코 우등을

놓친적이 없는 아이로 어려서 부터 돌아가신 제 할머니와 고모가 끔찍히도 사랑하던 아이요

내가 끔찍하게도 사랑하던 조카딸 이었다.


결혼하자마자 제남편을 말린 것이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 말라는 것이었다. 40을

넘은 애 엄마 인데도 옛모습 그대로인 조카딸 아이 그저 우리만 늙어보이고 늙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와 며느리 아이를 데리고 가서 모두 윗어른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같이 좋은 시간을 갖고 돌아왔다.


앨렉스와 멜리 세번째 생일 대미장식은 단연 마술사의 마술 이었다. 아이들 생일이다 보니

마술사를 초대하였다. 필립핀 계통의 사람인데 아이들 보다 생일에 참석한 어른들이 더

넋을 잃고 즐겼다. 집에 도착하니 아이 부부가 중국산으로 두꺼운 스테인레스로 된

깊은 겉절이나 샐러드나 잡채 같은 것 무치기 가장 좋은 용기 3개가 한세트인 것을

코스코에서 사갖고 왔다.


그리고 옷을 내밀면서 다 새로 세탁한 것이고 새것이라며 내민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제 장인 옷 이라고 말을 한다. 며느리 아이가 내가 뭐라고 할까봐 그러는지 새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제 친정 엄마가 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고 한다. 우리 미국사람들의

관습에서는 상관하지 않는 일이며 망자가 사용하던 것을 기념으로 추억으로 사랑으로

기억하며 사용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너의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이 옷들을 귀히 입겠노라고

며느리에게 말을 하고 저녁나들이로 아빠 헨리 저녁 봉양하러 가면서 위에 걸치고 나갔다

돌아왔다.


살아생전에 사돈을 만나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며느리 아이가 아이와 데이트를

하고 있을때 아이는 60대 중반의 아빠를 암으로 잃었다. 그 와중에서도 며느리 아이는

이를 악물고 공부해 국가고사를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 세월이 벌써 5년이 되었다.

며느리 아이의 아버지가 살았더라면 얼마나 사위를 끔찍하게도 사랑했을지 알고도

남는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늙어가니 몸이 신호를 보내온다. 다들 무릎 수술에

허리 수술에 그렇다. 갑자기 지난 열흘동안 나역시 허리가 뻐근해 고생하고 있다.

내일은 침을 맞으러 친구 사무실에 가려고 한다. 사론 파스를 덕지 덕지 허리에 붙이고

이제 늙는구나 싶다. 아직은 복용하는 약이란 없지만 가는 세월 앞에 장사가 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