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 독백

붓꽃 독백 - 오늘 하루

붓꽃 에스프리 2019. 3. 13. 15:18




아침에는 일어나 세단원을 공부하고 시험보고 11시반 집을 나섰다.

오늘 하루 일상 가운데 오래전 함께 근무했던 한국인 벗들을 만나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던 날이다.

독일서온 K와 E 와 제넷을 만났다. 독일서온 E는 심장병을 앓고 있어 참 힘든 시간을 보낸 지난 세월이다.

그리고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그닥지 행복한 생활을 못하고 아들 둘 낳아 기르고 하는 동안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독일서온 K 역시 늦게 나이든 남편과 결혼해 아들 하나 낳고 살았지만 그렇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고 

지금은 9 년전 남편을 잃고 홀로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들 하나는

미국서 태어나 아빠와 엄마의 정을 많이 받지 못하고 살아 반항기를 보내고 멀리 샌프란씨스코에서

주정부 교도소에서 교도관 생활을 하고 있다. 


독일서온 E는 간밤부터 속이 아프다 하고 나는 아침에 먹은 감자 샐러드가 속이 부대껴 점심식사를 

거르기로 하고 제넷과 독일서온 K 두 사람은 은대구조림을 주문해 두 사람이 나눠 식사를 하는 동안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몇년만에 늘어 놓았다. 독일서온 E는 은퇴하면 집에서 그많은 시간을

어떻케 혼자 보내야 하며 노후의 제한된 수입으로 또한 어떻케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면 때론 불안에

우울증에 빠져 지금은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는 것이 누구에게라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란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동안 전화를 보니 어제 다녀온 약국에서 전화가 왔던 것을

몰랐다. 대상포진 예방주사가 도착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만남을 끝내고 찾아가니 그렇다고 한다.

서류를 내어 주고 작성하라고 하더니 기다리라고 한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가만이 보니

저 구석에 앉아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있는 필립핀계 두 남자들 역시 예방주사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두 사람이 차례로 접종하고 나오니 들어오라고 한다.


먼저 2월달에 접종한 폐렴예방주사와 같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니 주사를 놓아주는 필립핀계

남자 약사가 자기도 접종했는데 폐렴때는 무척 아퍼 며칠 고생했는데 대상포진 예방주사는 괜찮았다며

괜찮을 거라며 위로를 한다. 거의 칠십이 되어가는 그나 내나 우리 모두 늙어 이제 이런 예방주사를

접종해야 한다고 내가 말을 건네고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 2차 접종은 언제 하냐고 하니 6개월 후라며

우리가 전화를 하니 걱정을 말라고 한다.


접종을 하고 건너편 반스 미국 마켓에 들려 바케트 빵과 아스파라거스를 사들고 돌아오며 우체국에

들려 공부한 답안지 부치고 귀가해 방문 다 열어제치고 환기를 시키고 냉장고 정리하고 비로소

바케트 빵으로 요기를 하고 나니 집이 제일 편하다 싶었다. 하루를 이렇케 보냈다.



아침은 샐러드 하나로 끝


갑자기 바케트 빵으로 식사를 어제 오늘 하였다.

가끔 미치도록 한국 사람들이 김치 고추장이 먹고 싶듯이

우리도 미치도록 빵종류의 식사를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우체국 다녀 오는 길목에서


바나나 아보카도 달콤한 고추와 바케트로 한끼 뚝딱




방금 바람 쏘일겸 이밤 10시반에 걸어서 가는 거리에 마켓에 가 미나리, 쪽파, 배, 홍고추, 생강과

고등어 2 마리와 목이버섯을 사들고 추워 후두를 뒤집어 쓰고 다녀왔다. 왜............나박김치를 

담그려고 한다 그리고 고등어 무조림 만들고 내일은 5일간 쉬고 직장으로 돌아가 내리 4일 근무

해주고 퇴근해 그 저녁 먼저 직장에 하루 근무해주기로 했다.


한달 넘게 먼저 직장에 근무시간을 주지 않고 쉬었다.

인사과에서 두번이나 편지가 날아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매년 교육받아야 하는 연방정부법 사생활

보호에 관한 교육을 받을 기간이 넘었는데 4월 1일 오후 3시까지 맞추지 않으면 현직에 관심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처리 하겠다고....맞춘지가 몇일인데 이런 헷소리를 하나 싶었다. 어제 아침결에

주치의 만난후 약방에 가서 처방전 주고 약을 기다리고 있는 데 전화가 왔다. 근무해달라는 것이다.

하여 총책임자 한테 오늘이나 내일 들린다고 말을 전해달라 하고 끊었다.


볼일 모두 보고 그대로 달려갔다. 총책임자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농담을 하며 왼일로

오셨죠 한다. 사무실로 같이 올라갔다. 왜 소식이 없었냐고 묻기에 아빠의 부재와 죽음이 너무나도 

힘들고 우울에 빠져 일을 하고 싶지 않아 근무날자를 줄수가 없었다고 하니 그러니까 일을 더 해야 

잊어버린다고 한마디 한다. 그런데 규정상 사생활보호법 교육을 제날자에 맞추지 않았기에 

세말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며 경고라고 하며 두번째는 인사과로 넘어가고 퇴출이라고 한다.


하여 퇴출시키고 싶으면 시켜 언제든지 나 오란데는 널렸으니까 그렇케 인사과에 이야기 해줘

나 겁안나 그런것 어차피 너희들이 주는 보수는 내본직장 연방정부에 비교하면 형편없으니까.

돈이나 좀 올려달라고 해 하니 나도 안올려주는 데 어떻케 한다. 그리고 4월달 근무 못해줘.

왜? 나 한국을 가야 하거든 우리 서울 아버지가 얼츠하이머 초기에 계셔서 가서 잠시라도

같이 있다 와야 하거든. 그후에 돌아와 년말 까지는 정상으로 근무해줄께 걱정마 내가 건강

하다면 그러나 이제 무리는 하고 싶지 않아. 그래 시간이 더 허락되면 언제고 연락줘 라고 

부탁을 하는 것을 뒤로 하고 나왔다.


오늘도 다 나이가 들어가는 벗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돌아가신 아빠 말씀이 하나도

틀린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늙어도 공부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다들

자기분야에서 짱짱한 사람들 이지만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 그들에게는 기회의 한계가

있고 활동범위의 영역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자신의 발전을 위해

아직도 내분야의 공부를 하며 직장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고 여기 저기서 

아직도 오라고 하는 데가 많으니 그 또한 내 나이 또래들에 비교하여 감사하게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그렇케 생각하며 오늘도 내분야 전공서적을 읽고 다시 새로운 것을 익히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800 페이지도 넘는 전공서적을 다시 익히고 있다. 창문이 흔들리도록

강풍이 몰아치는 새벽 1시 47분 그러나 한국은 저녁 5시 47분 dinner time이다.


내가 온종일 영어만 하다 유일하게 모국어를 사용하는 이 공간 아니면 모국어를 잊어가지

않을까 싶다. 물건을 사면 한국식료품 마켓 계산대에서 일하는 분이 아보카도에 무슨 영양분이

들어 있느냐고 물어보는 데 영양분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몰라 설명할길이 없다. 모국어로

그런 공부를 해본적이 없어 영어 이외는 설명을 할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