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세월의 강물

붓꽃 에스프리 2019. 4. 9. 00:45





이틀간 휴무하는 동안 한일이란 온종일 자고 자고 또 자고 하는 일 이었다.

이튼날 어저께서야 한국에서 큰딸네집에 다니러 온 친구부부를 찾아갔다. 

어린시절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에 가장 친한 내가 기억하는 단 한명의 어린시절 친구다.

이제 세월이 흘러 친구도 대머리가 되었고 67세의 나이에 손자 손녀가 몇명이 되었다.

친구는 다행이 자식들을 잘 양육시켜 다들 자기 앞길을 잘 닦아 안정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작은 사위는 우리 미국 동부 뉴저지 주립대학교의 약리학 정교수에 사위들이 한결 같이 착하고

똑똑해 장인 장모한테도 잘하니 다행이다 생각한다.


친구의 딸들도 착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정도에 어긋나는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다.

2년만에 사위가 비행기표를 보내줘 딸네집에 왔다 한다. 그만큼 딸도 남편에게 잘하고 시부모님

한테 잘하지만 다 서로에 대한 복으로 생각한다. 친구가 말을 하기를 이번에 가면 아무개좀 같이

만나고 와 한다. 그러면서 사진들을 보여주는 데 불행하게도 나는 단한사람도 얼굴을 알아볼수가

없었다. 왜 모르냐고 그래도 약간은 모습이 남아 있을 텐데 하는 친구 그런데 어쩌랴 진짜로 나는

단한사람의 얼굴도 알아볼수 없는 것을 말이다.


내 기억속에 담겨져 있는 어린시절의 친구가 말하는 같은 반의 친구들 모습과 이제 반세기도 

넘어 60 중반의 얼굴이 된 친구들의 얼굴과는 사뭇 달라 그 어느 누구도 알아볼수가 없었다.

내가 일생을 함께 걸어온 친구 이외는 그 누구도 알아 볼수가 없었다. 그네들과 연락을 주고

받고 살아온 일도 없고 그토록 애틋한 우정을 나눈 일이 없었기에 더욱이 그렇다. 그리고

수많은 세월을 나란 사람은 전혀 문화와 언어가 다른 나라와 사회에서 성장하고 교육받고

어른이 되고 늙어가고 있어서 어떤 정서적인 연결고리가 없어서 더 더욱이 그런지 모르겠다.


내가 모국어를 잊지 않고 지금 이렇케 할수 있씀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매일 눈만 뜨면 영어만 하고 살고 영어로 하루를 마감하고 제스춰도 스킨쉽도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니 모든 것이 낯설다. 친구가 전화번호를 주면서 한국가면 아무개는 네가 만나는

사람이니 그 친구하고 같이 만나보란다. 그런데 만나면 뭐라고 이야기를 하지 그랬다.


그리고 요리 솜씨 한번 뛰어난 친구 부인이 해주는 저녁식사 가볍게 딸네 부부와 함께 

하고 집으로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 친구 부인 손에 용돈을 600불을 쥐켜주었더니 펄펄 뛴다.

그러지말고 받으라고 해서 간신히 받게 했다. 은퇴하면 그때는 주고 싶어도 지금처럼 수입이

되지 않아 주기 힘드니 능력 있을때 주는 작은 선물 용돈 아무말 없이 받으라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경비 다 대어 너희 부부하고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마음에서 울어나와 주는 것이니 절대 부담 갖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했다. 그랬더니 친구

부인이 한국돈 남은 것 있다며 가서 쓰라면서 5만원권 두장을 주어 화장품 향수 쎄트와

감사히 받고 돌아와 준 친구번호를 입력하니 카톡에 그의 이름이 떴다. 도무지 뭐라 할말이

없어 결국 인사 조차도 못보내고 닫고 잠자리에 들었다. 친구는 언제나 젊어서 내가 그토록

즐겨 쓰던 버릇이 있어 올때면 남성용 컬론 향수를 꼭 사다 준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돌아와 잠을 자다 균형이 깨져 잠을 이룰수 없어 새벽 3시가 넘어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유튜브에서 한국 정부기관 코이코에서 저개발 국가에 파견되어 새마을운동을 지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데 친구로 부터 일찍이도 잘도착했냐며 카톡이 왔다.

바로 만나 보라는 친구의 정장 차림의 상의 사진을 보내왔다. 한국에 오면 자기를 꼭

만나고 가란다며 너를 위해 사진을 보내왔다며 보내왔다. 자세히 눈가를 보니 어렴풋이

어린시절 그의 모습이 느껴지는 듯 하였지만 여전히 거리에서 만나면 전혀 모르는

사람일뿐 그를 알아볼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을 가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처럼 모국방문을 위해 가는 것도 아니며 관광목적으로

가는 것도 아니며 단순히 4분의 아버지 가운데 유일하게 이제 생존해 계신 어린시절

은사님 이전에 아버지를 잠시라도 함께 해드리려고 가는 것이 처음도 마지막도 이유다.

기억력이 쇠퇴해지는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가 주변사람들을 알아보실때 하루라도 더 

그 곁을 사랑으로 지켜드림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맺어진 귀한 인생의 축복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부자의 연을 어찌 잊으며 그리고 간과하랴.


적어도 나란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여정과 가치관으로는 그렇케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

생각하며 그것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참된 인간관계의 진정한 인연의 가치며 서로에 대한 

존재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귀히 여기고 생각하며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가

가져야 할 인생의 덕목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