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는 퇴근하자마자 샤워부터 먼저 하고 가볍게 아침 요기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후 5시 부터 밤 9시 까지 있게 되는 미스터 로자노의 죽음 앞에 Viewing/뷰잉이 있는 날이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인만큼 한국과는 또 다른 장례문화를 우리 미국사람들은 갖고 있다.
장례식은 작고한 사람이 안치되어 있는 관을 앞에 놓고 대부분 장지내에 있는 교회에서 거행된다.
그리고 그후 참석한 사람들이 일렬로 운전을 하며 긴행렬을 이루며 매장지에 도착하면 또 다른
간단한 식을 올리고 관위에 돌아가며 장미를 관위에 바치고 그리고 관을 내려 놓게 되는 세멘트로 된
관을 보관하는 곧에 내리고 공기나 물이 관이 안치되는 곳에 안들어가게 뚜껑을 놓을 곳을 검은 타르
같은 것으로 뺑뺑 부르고 뚜껑을 덮고 가족들과 친지들이 흙을 한삽씩 헌토후에 비로소 장지의 직원들이
흙을 그 위에 덮는다. 그리고 몇달이 지나사야 비석이나 주석으로 된 판을 그위에 안치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식전에 주변의 친지들이나 가족들에게 장의사 냉동실에 안치된 시신을 방부제 처리하여
평소에 작고한 분이 즐겨 입던 옷을 살아 생전의 모습 그대로 입히고 깨끗하게 얼굴과 손 모두 화장을
하여서 곱고 아름답게 하여서 가족들이 선택한 아륻다운 관에 안치 시켜놓고 장례식을 거행하기전에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보여주고 함께 슬픔을 나누며 가신 분을 추억하는 시간이 있다. 이것이 아마도
한국의 장례문화와 우리 서양의 장례문화의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때도 예배를 모두 같이
드린다. 교통지옥을 지나 다행이 목적지인 앤젤리노 장의사에 잘 도착하였다.
내 평생 전문직에서 처음 있는 일로 윤리강령을 넘어서 로자노씨의 딸의 간곡한 요청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테레사가 기다리고 있다. 멕시코에서 노동자로 넘어온 부모밑에서 75년전 우리가 사는 근교 도시
콜튼이란 곳에서 태어나 목수로 살다 우리 미국 육군에 입대하여 독일에서 근무했었던 로자노씨는
꽤나 험난한 인생을 살았었나 보다. 그의 딸 테레사가 같이 들어가자며 성심교회에서 나온 분과
뷰잉 서비스 절차를 상의하는 동안에 있었던 대한 질문 사항 가운데 결혼 여부와 자녀들에 대하여
묻는 조항이 있는 데 테레사가 답을 하는 것을 들어보니 지금 4년째 살던 캐롤리나가 네번째 여인이고
그렇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현재 57세의 아들 한명과 테레사가 전부란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아들이란 인간이 이복동생인 테레사에게 아버지가 전권을 맡기고 죽었고 그후 장례식에
사용할 비용을 충분히 망자가 준비해놓고 남겨놓고 간것을 비용을 최소한으로 드리고 남은 돈을
나누어 달라고 죽은 첫날밤부터 까탈을 부리고 시신도 뷰잉이나 장례식 절차없이 그대로 장지로
갖다 화장하는데 300불이면 된다고 그렇케 하자고 조르고 많은 말을 했었다.
그런 것을 테레사가 죽어도 그렇케는 못하고 남들처럼 자기 아버지도 제대로 뷰잉도 하고 장례식도
제대로 치루고 하여 보내드리겠노라고 하였다. 그말을 듣던 로자노 씨가 세상을 떠나버린 첫날
어안이 벙벙했고 인간의 탈을 쓰고 그돈 몇백불 몇천불에 평소에는 병상에 얼굴도 안내밀던
아들이란 놈이 저럴수가 있나 싶었다.
그밤 나는 근무를 하면서 그런 아들 놈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애를 느끼고 슬펐는지 모른다.
테레사에게 길거리에 버려진 짐승도 아닌데 몇푼 안되는 장례비용 네 아버지가 남겨 놓은 것 못
갈거 먹어서 제아버지를 그대로 시체 안치소에서 화장터로 끌고가 태워버리자는 거냐고 그게 말이
되냐고 했다. 이복 오빠가 그런 다는 것에 테레사도 밤새도록 분함을 참지 못하고 슬픔에 텍스트를
보내고 또 보내와 하소연을 하기에 네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라 가라고 했었다.
그런 그 개만도 못한놈이 로자노씨의 딸 테레사와 약속한대로 뷰잉을 참석차 가니 왼쪽 앞줄에
앉아 있었다. 제 생모가 누군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아버지 로자노씨를 닮은 데라곤 없었다.
아마도 제 엄마를 닮은 얼굴인가 싶었다. 제 아버지 로자노씨는 키도 크고 건장하고 인물도
톡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생긴 얼굴도 아닌데 아들놈이란 얼굴은 성질 고약하게 생겼고
속알지도 없고 까탈스럽고 까칠하게 생긴 용모의 그저 그런 중간키 정도 되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뒤에 앉은 나에게 다가와 자기가 로자노의 아들이라면서 자기 아버지가 무슨
병으로 사망했는지 이야기 해줄수 있냐고 물어왔다. 단칼에 그것은 연방정부 사생활 보호법에
저촉되어서 절대 말해줄수 없다고 말을 했다. 알고 싶으면 해당부서에 서류를 정식으로 제출하여
요청하여야 한다고 응답을 하니 알았다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착한 딸 테레사가 하는 말이
장례비용 지불후 남은 돈을 나눠 주니 돈을 받고는 아버지 돈을 남겨주어 고마워요 하더라며
그 인간이 그런 인간이야 하기에 어이도 없고 기도 차고 해서 아예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저 묵묵히 테레사 옆에 앉아 주는 것으로 모든 것을 대신하고 미사를 맞추고 초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너무나도 피곤해 그저 쓰러져 자고 일어나니 한밤 결국 밤을 또 새우고 말았다.
밤새도록 차이콥스키 2019년 국제경연대회 수상자들의 공연을 시청하고 내 전문분야의 공부를
조금 하다 새벽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온종일 자고 일어나니 저녁 옆집에
한국사람들이 사는데 얼마나 시끄럽고 애들 데리고 난리굿을 치는지 창문을 열고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피곤해 그 조차도 그러려니 하면서 잠속에서 헤매며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다.
얼마나 피곤하던지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들어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을 하고 머리를 다시 빗고
간신히 잠을 깨우고 나니 초저녁 6시 "Copying Beethoven/카핑 베토벤"을 시청하기로 작심을
하고 피곤한데도 끝내 맞추고 말았다. 언제 시간이 있을 때 다시 두번째 시청할것이다.
다음은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또 다른 베토벤 영화를 보려고 계획을 세웠다.
돌아가신 아빠처럼 나도 클래식과 일생을 함께 살아온 클래식 애호가 이다 보니 클래식 음악
작곡가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영화는 빠짐없이 챙겨보고 싶다. 어떤 삶을 그들이 살아왔는지
깊이 있게 알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일단의 돈과 물질은 필요불가결한 것이지만 인생의 전체 의미가
결코 될수 없다는 것을 나는 수없는 죽음을 목격하고 살아오면서 생각하는 바다. 그리고 그돈이
얼마나 우리 인간의 인간성을 타락시키고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수준까지 내려가게
하는 지도 수없이 목격했다. 돈 앞에서는 돌부처 같아야만 한다면 역으로 돈 앞에서는 이성을
잃는 사람들이 수도 없다. 하여 돈 때문에 살인을 하고 형제간에 의를 끊코 부모 재산을 빼았고
부모를 외국에다 버리고 길거리로 내모는 일도 종종 신문지상에 회자되는 일이다.
무엇이 죽기 마지막 직전 몇일 전까지 그토록 로자노 씨가 딸에게 나를 보고 싶다고 하면서
찾아 오라고 했는지는 나도 알수가 없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해 몇번을 내가 그의 병실을
방문한적이 있었다. 나만 보면 그것으로 충분해 늘 미소를 짓던 로자노씨를 아마도 나는
오랫동안 두고 두고 기억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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