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산다는 것

붓꽃 에스프리 2011. 6. 28. 07:47

 

 

 

 

구조조정에 따른 격무로 일상이 요즘은 앉아만 있어도 왜 이렇게 졸렵고

피곤한지 감당이 안 된다. 이미 E는 새로운 직장에 입사시험을 통과하고

신체검사도 맞추고 곧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어제 자기가 가는 직장으로

오라면서 퇴근길에 말을 흘렸다. 분명한 것은 불경기에도 최선을 다하는

누군가 에게는 살아갈 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퇴근하니 피곤이 밀려온다.

미루고 미루다 소식도 제대로 못 전한지가 몇 달 서울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니 왼 꼬마 손녀가 전화를 동시에 받아 불발 다시 걸어야 하였다.

호주에서 10년 만에 둘째 동생이 한국에서 형제들끼리 모이기로 하고

나온 것이다. 만나고 큰 동생은 중국 근무지로 그저께 돌아가고 둘째는

내일 떠날 예정이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셔서 내일 다시 전화를 동생에게

하겠노라고 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예야 네 동생들이 와서 현충일에 다들 같이 국립묘지에 다녀왔다.’

아버지가 매년 저희들 대신 가신 지도 햇수로 몇 해라 아버지를

그날 생각하고 있었지요.”

 

아버지 뭐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필요하신 것 말씀하시면 보내드릴게요……”

예야 그거나 보내라……’

네 아버지 알아보고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부치고 나서 전화 드릴게요.’

그래 예야 고맙다 너도 잘 있거라.’

, 아버지, 사랑하고요.’

그래 나도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다시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그리운 아우님께 소식을 전하고자

수화기를 들었다. 면면히 함께 흐른 그 세월의 깊이가 얼마던가 목소리만

들어도 반갑고 그리운 사람 뭔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필요 하겠는가?

 

너무나도 피로가 밀려와 더는 감당이 되지를 않아서 그대로 침대에 침몰하고

말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뒤척이는 잠자리가 되었던지 처음으로 악몽에

시달리고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던 밤이었다. 지금도 이렇게 피곤을

느낀다. 이구동성으로 다들 보따리 싸 들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요즘의

심정이라니 할말이 없다. 이 내 몸도 그저 떠나고 싶지만 매년 먼 길을

떠나던 그 길이 멈춰 진지 벌써 만 3년이 되었다. 주변상황이 발목을

잡으니 그리운 아버지와 내 어른을 찾아 뵙고 싶어도 여백이 아직은 없다.

 

졸업을 하였어도 아직도 1년이 더 남아 있는 공부 우리 미국경기도

바닥을 쳐서 모두들 살기 힘들고 좋은 시절 물 건너간지는 오래가 되었다.

앞으로가 더 문제인 현 상황이다. 특별히 은퇴 후 의료문제가 누구를

막론하고 현재 가장 난제다. 그동안 수 없는 악덕의료인들과 관련산업

단체와 관련 상인들이 모두 사기에 사기를 치고 시민들 역시 사회보장

제도를 악용 할 때로 다 하고 난 지금은 더 이상 연방정부에 돈이 없다.

 

중국과 일본에 국채로 지고 있는 빛이 천문학적인 숫자로 우리 자손들이

대대로 갚아야 하는 실정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될지를 모를 정도다.

한국의 사회보장 제도 역시 조만간 그 한계에 부딪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람들이 악용에 악용을 하고 나이롱 환자가 되어 병실에 이름

걸고 나돌아 다니면서 교통사고 상해보험을 등치는 현 실정이 아니던가?

여기나 그곳이나 오십보 백보다. 인간의 양심이란 것이 악으로 가득하며

눈 가리고 아옹이다.

 

교육현장의 현실은 한국의 경우 더 참담하다.

누가 교사를 하겠는가?

 

위 아래도 없고 인격존중이란 말도 상실되고 그저 교사란 돈 받고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라고 의식구조가 나락으로 추락한지 또한 오래다. 도무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나라 미국 아무나 만나면 섹스하고 마약이나 먹고

막말로 개판 오분 전에 후레자식들과 사생아들과 십대 미혼모로 가득한

그런 쓰레기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한국에서 태어난 청소년들이 미국 친척집을 방문하는

경우 그들이 행하는 처신과 언행은 영악하기가 그지없고 순수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다고 한국 교포들이 경험한 사람들 이라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말들 이다. 하여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한국에서

출생한 아이들과 만나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의식구조상 불가능하여

선호하지 않는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하여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분명하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자라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더

더욱이 용납이 되지 않으며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나 업무방해 또는

공교육이나 사교육 현장에서의 용납되지 않는 언행과 처신들은 준엄하게

다스린다.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아동들의 잘못된 행동들은 말없는

말들로 엄격하게 제재한다. 네가 뭔 데는 아니다. 일단은 교양 있는

부모라면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한다. 뛰는 아이는 잡아다 앉쳐 놓고

부모가 준엄히 야단치고 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엄격한 가정에는 통금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에 돌아가야 한다.

아니면 그 다음 몇 일은 부모로부터 외출금지다. 우리는 남녀노소

없이 이름을 부르고 사는 문화다. 그래 누군가도 내 이름을 편히 부른다.

나 또한 누군가의 이름을 편히 부른다. 공적인 부문에서만 미스터, 미스,

미쎄스 누구 누구로 호칭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는 경우 싫어한다.

대개 미스터나 미쎄스는 늙었단 인식으로 많은 경우 인식되어서 노우다.

 

이 사회의 매너와 에티켓은 통상적인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엄격하다. 공권력의 힘은 절대적이어서 물리적인 도전이란 어불성설이다.

교육현장도 엄히 법으로 다스려서 일탈한 문제 학생들은 엄히 다룬다.

교사에게 쌍 시었이 들어가는 말을 하는 것은 곧 징계요 부모소환에

심한 경우 퇴학이다. 등 하교시간에는 교사가 엄히 지키고 서있다.

손 전화사용 또한 특정경우나 지역에서는 금지다. 직장에서도 금지다.

근무시간은 직장의 시간임으로 개인적인 시간은 용납되지 않는다.

 

한국인들 만큼 성질이 급한 민족도 없어 일하기가 힘든 경우 참 많다.

기다리는 것을 못하고 무엇이든지 당장이다. 아니면 막말하는 것은

나이가 든 사람들 경우 보통이다. 다들 한 고집씩 하고 막가파들도

많다. 가장 무서운 것이 무대뽀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

하는 것도 많은 경우 한국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온라인을 보면서 느끼는 소감은 왜 온통 먹는 이야기나 식당 소개로

가득한가 하는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어려운 화두들이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이르면 더 더욱이 그렇다.

다음만 하여도 그렇다. 몽땅 먹는 이야기 맛집 이야기뿐이다. 너무나도

천편일률 적이다.

 

더욱이 이해가 안 되는 일은 미국 교육현장과 사회를 욕을 하면서도

좌파든 우파든 자식은 다수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거나 자리를 잡게

한다는 이율배반이다. 얼마나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는가?

 

서구사회의 좋은 것만 배워가는 한국이었으면 좋겠다.

하여 예의동방지국이 다시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같이 윤리와 도덕과

모든 사회기강이 무너지는 교육현장이나 사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의식구조의 전반적인 쇄신이 필요한 현시점이 아닌가 한다.

 

아니 벌써 저녁시간이 되었다.

커피가 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