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구야,
오늘만은 이렇게 부르고 싶다.
어제는 날씨도 꾸물거리고 근무하면서도 마음이 축 처지는 느낌을 감당하기 힘든 하루였다.
문득 살고 싶지 않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살아가노라면 앞 뒤 이유도 없이 이런 날이 있는 가 하면
이유가 있어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이 누군들 없으랴.
퇴근하고 보니 우리 선생님 한분도 그러신 날이었다.
너무나도 피곤해 칭구의 대문 문고리를 잡고도 그대로 모든 것을 옆으로 밀어 내고
잠자리에 들고 말았다. 그저 조용히 있고 싶을 뿐이다. 하여 전과 같이 블로그 방문도
자주하고 싶지 않고 글을 남기는 데도 힘겨워 눈팅이나 하고 그저 묵묵히 발길을
돌리고 마는 요즘이다.
지난 10월 이후 긴 무기력감에서 나는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여 블로그에 때론 글이고 뭐고 몇 개씩 올리는 이유의 하나다. 뭐 기운이 나서
하는 일은 아니다. 블로그를 닫아 버리고 싶은 생각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다.
블로그를 열어놓고 있다는 자체가 때론 감당하기 힘든 일이 될 때도 있다.
내 앞에 놓여 있는 가장 가까운 현실로 다가와 있는 일을 처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집중이 안 될 때가 많기도 하다. 하여 그대로 쌔려 박고 닫아 버리고 싶을 때가
수도 없다. 이 갈등 이 어려움 생각하고 있노라면 아득하다. 모든 정신적인
구속에서 자유롭고 싶다. 그리고 남은 일에 오로지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종결을 지어야 앞날을 다시 계획할 수 있씀은 자명하다.
우리의 육신도 서서히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문득 생각지도 못한 강영우 박사님의 부음 소식을 듣게 된 간밤이다.
그런가 하면 뫼닮 선생님이 중국 여행중에 계단이 8000개나 되는 곳에서 굴러
떨어져 위급한 상황에 처하셨던 이야기를 글을 통하여서 듣게 된 시간이다.
극과 극이라고 하여야 맞는 사연들 이었다.
무엇을 위하여서 우리는 살아 왔고
무엇을 위하여서 우리는 남은 날들을 살아야 하며
왜 사람들은 방황아닌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일까?
너무나도 피곤해 그대로 잠자리에 들어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하기 싫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일어나 밀빵과 치즈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말았다.
저녁 5시 어김없이 나는 문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다.
거리는 생전 처음보는 저녁안개가 낀 것 처럼 시야가 뿌여 모두들 헤드 라이트를
켜고 운전들을 하고 있었다. 고요히 쇼팽의 곡들을 위로 삼아 기대어 운전을
하며 길을 나섰다. 어김없이 2시간을 보내고 돌아와야 하는 나의 시간 묵묵히
그것이 삶이려니 하고 그런 마음으로 돌아왔다.
강영우 박사님의 일생에 대한 글들을 일일이 읽어 보았다.
아주 오래전에 그분의 전기를 읽은 날들이 새록 새록 기억이 난다.
세상의 천덕꾸러기에서 이 지구촌 맹인들의 모임인 로터리 클럽회원으로
맹인교수로 백악관 자문위원으로 한 연상의 여인의 일생을 통한 헌신적인
사랑 위에 자신의 소명을 다 하시고 영면하신 너무나도 위대하신 어른이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미국 한국교민 사회에서 손에 꼽힐만한 업적을 남긴
부부이시다. 참 거룩한 그분의 삶을 재조명 하면서 미국이란 사회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교육시킨 청교도 정신 가운데 하나는 다름 아닌 나눔의 정신이다.
즉 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과 사랑과 배려에서 얻은 부와 명성은 다시 사회로
우리들의 후손들을 위하여서 재환원 하여야 한다는 위대한 정신이다.
바로 그런 것을 몸소 실천하고 살아가는 분들이 바로 곁에도 몇 분이나
계신 축복을 나는 받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임을 다시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내 선조들과 인생의 선임자들이 주변에서 근면검소하게 살아가면서 보여준 것이
그런 것들 이란 사실에 조용히 힘든 시간 가운데서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에게는 그런 이야기들이 헷소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되고 참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성찰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아 그래 그래 맞아 바로 그것이 위대한 선진국의 일등국가를 만든 거야.
나눔의 정신 기부문화의 올바른 자리 잡음 그리고 투명한 운영시스템
이 모든 것이 이 사회를 지탱하는 저력임을 자각시켜주는 것이다.
한국처럼 기부금 조차도 투명하게 운영하여 기부자의 소망대로 운영되는 것이
아닌 누군가 눈먼 돈으로 생각하고 착복하는 사회 하여 기부문화가 자리를
잡을 수 없는 여건과 사회분위기와 정치사회의 만연한 부정부패와 부당한
법질서와 사법부의 법집행의 부당함 이다.그리고 아직도 먼 사회복지 시설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감시 체제등 아고라에 오늘 올라온 한 대학생 자원봉사가 바라본
복지시설에 대한 글을 읽고 경악을 하고 만 오늘 이었다.
선진사회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감시체제의 부족과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글을 읽으면서 도무지 저 사회와 나라는 법집행은
다 어떻게 하고 행정은 어떻게 하기에 저런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유린이
당연한 것처럼 자행되고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배웠다는 행정가나 전문인력이나
감시기관은 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교육을 시키기에 하는 생각이 앞섰다.
선진국에서는 환자는 왕이다.
환자 권리가 인권에서 누구 보다 앞선다.
인권유린이 감지 되는 경우 가차없이 처벌되는 것은 물론하고 해당기관이나 시설은
문을 닫는다. 인권유린은 어느 위치나 정황이나 입장에서도 자동으로 보고 하게
조직이 되어 있는 것이 선진국이다. 자동으로 보고하게 되어 있는 인권유린이
은폐되어 발견되는 경우 그에 해당하는 법의 심판은 준엄하다.
이래서 선진국이다. 이런 것에 관 하여서 논하자면 몇 날 몇 일을 두고 글을 써도
모자란다. 몇 달이면 몰라도 다 일일이 설명이 불가능하다.
칭구야,
우리도 영면하신 강영우 박사님처럼 고귀한 모습으로 의연하게 우리의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오늘 혼자서 한 하루였다오.....
그대와 나 우리도 강영우 박사님처럼 담담히 초연하게 우리의 죽음을 맞이하고
초연하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죽음의 순간 조차도 감사하며 죽을 수 있는 남은
날들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어제 오늘 우울한 날에 하고
싶은 말이라오.
술 퍼마신다고 될 일은 아니란 생각이오....
다만 한 두달이라도 조용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오.
묵묵히 아주 고요히 그리고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하고 싶고
내 남은 일에 처절한 고독과 싸우면서 집중하고 싶다오.
모든 인연들을 향하여 그리움이 차오르면 글을 쓸것이오........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정기적으로 끝장 까지 올릴 것이고
귀한 인연들에게 보낼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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