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물망초

붓꽃 에스프리 2013. 2. 19. 20:05

 

 

 

 

돌아가신 어머님과 아버지를 가슴 깊이 생각하면서 이 깊고 깊은 밤  자고 일어나

물망초를 가슴에 담아본다. 이 세상천지에 부모님이 안계신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부모님이 계셨었기에 자식들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2주전 부터 현재 생존해 계신 분 가운데 칠순을 넘기신 제일 위에 분으로 부터

일평생 처음으로 특별 저녁 초대를 받았다. 인생을 일평생 살아오면서 이정표가

되는 이정표에 도달하였다는 의미를 두고 먼저 가신 부모님들과 형제들을 대신하여

특별 초대글을 보내셨기에 예스 하였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특별한 의미를 두고 그날을 기념하고

누구를 초대하고 그런 것을 하며 지내온 사람이 전혀 아니기에 오히려 그런

초대가 어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일생동안 그날을 기억하며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천지개벽을 한다 하여도 내가 이 지구촌 어디에서 산다 하여도 단 한번도

잊지 않고 카드를 보내주시는 분은 단 한분이다.

 

나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시지는 않으셨어도 바로 오늘의 나를 있도록

사랑으로 일생동안 보살펴 주시고 감싸주신 중국계 캐나인이신 나의 양부다.

이미 나는 전 주에 우리 파파로 부터 축하 카드를 받았고 가슴 깊이 아버지

파파의 사랑을 뒤돌아 보며 추억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살아 오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였던 분으로 부터 초대를 받고

보니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서로의 인생관과 철학이 달라 서로가 살아 오면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사람이었다. 서로가 늙어가니 서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손수 운전을 하시고 밑에 세사람을 데리고 항구가

바라다 보이는 곳으로 저녁 초대를 하여 데리고 갔다.

 

포구의 저녁을 함께 하며 등대가 바라다 보이는 피어에서 네 사람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하시면서 무척이나 기뻐 하셨다.

 

참 일생을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시다.

고지식하기 그지 없어 그것이 우리를 때론 가장 힘들게 하였던 부분이다.

그러나 일생동안 미국 정부의 공무원으로 생활 하시면서 자수성가를 한

분으로 은퇴후 자신이 쌓아 올린 부를 어느 명문대학교에 전액을 기부한

분이시다. 한 때 그분의 이야기는 주류 영어 신문에 실린 일은 물론이요

모국의 조선일보에도 기사화 된적이 있었다. 그렇게 일생을 외길로

참되게 살아오신 분이시다.

 

오랜기간을 신앙공동체에서 봉사를 하시고 이제는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

놓으시고 <Early Bird>란 닉을 어느 한분이 만든 마음이 맞는 네분들이

일주일애 두번씩 만나 골프를 치며 손주들 학교에서 데리고 와 공원에서

놀아주고 저녁이면 아들 며느리에게 데려다 주고 하는 일로 소일하시고

주일이면 예뱨에 참석하시고 하시면서 시간을 보내시는 분이다.

 

이런 분이 오늘은 놀랍게도 초대한 저녁 테이블에서 세명의 아래 사람들

에게 와인을 한병 먼저 시키라고 하셨다. 술을 드시지 않는 분이라

속으로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백포도주는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니

적포도주 캐버넷 헤스로 일단 정하고 각자 주문을 오늘은 최고 좋은

것으로 하라고 하셨다. 살아가면서 언제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갖겠느냐고 하셨다.

 

문득 와인잔을 받고 보니 눈시울이 뜨거웠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누나 Jean도 바람처럼 우리 곁을 떠나고

그런 지나간 수개월 윗분 말씀이 나에게 그런 동생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노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제는 너희들도 모두 아픈 기억들을 내려 놓고 남은 인생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오래 오래 살아달라고 하셨다. 다시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 모든 슬픈 기억들을 어떻게 추스릴지 싶었다.

 

외로움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면서 인간의 실존이 외로움이요

고독이라면 그런 생활을 탈피하고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몫이기에

늙어가도 부지런하게 살아야 하고 소일 거리를 스스로 찾아야 하고

먼저 내가 남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고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며

살아갈줄 알 때 사랑은 사랑을 낳는 것이라고 하셨다.

 

골프를 18홀을 치고 나면 출출 하여지기에 골프를 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을 하다 신앙공동체에서 봉사하고 섬김을

하였듯이 이곳에서도 내가 먼저 남을 섬겨야 하겠구나 생각을 하시고

어느날은 자신이 아주 작은 스낵을 사갖고 가서 나머지 세분에게

나눠 주셨다고 하셨다.

 

그 결과 그 다음번은 다른 분이 싱싱한 바나나를 사들고 와서 다른

세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 다음은 다른 사람이 모자를 사서 <Early Bird>란

닉으로 수를 놓는 데 하나에 5불을 주고 만들어 다른 세사람에게 나눠주고

하다 보니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고 그리워 하는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사랑은 먼저 베풀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외로운 노년기를

나누는 마음과 타인을 인격적으로 섬기면서 살아갈 때만이 외롭지 않고

보람된 노년기를 보내는 하나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고 하셨다. 또한

나에게 은혜를 베푼 손길들을 잊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셨다.

 

하여 한번은 업타운에 친구들 만나러 가셔서는 수십년전 유학 당시에

신세를 진 분을 기억하시면서 친구분에게 업타운에서 가장 고급 프랑스

식당을 예약하라고 하시고는 그분을 초대하려고 하니 이분 또한 사리가

명료한 분이셔서 너무나도 큰 부담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하시고

일부러 자리를 피하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럼으로 직접 그분에게 전화를 드리고 일부러 비행기를 타고 가는 데

그럴 수는 없으니 저녁 초대를 기쁨으로 받아 달라고 하시고는 업타운에는

없는 우리 지방에서 만드는 귀한 한국 간식을 귀히 포장을 하고 갖고

가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선물로 건네니 아주 기뻐 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날만은 업타운에서 가장 고급 프랑스 식당인 배이 브리지

밑에 어느 곳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값은 생각하지 말고 주문하라고

하여 기쁨으로 만찬을 맞춘 일이 지난해 있었노라고 하셨다. 하여

은혜를 입은 손길을 잊지 않고 살아 생전에 보답을 하여야 그것이

사람의 도리요 마땅하다고 하셨다.

 

모두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만난 인생의 귀한 지기인 친구분들 이야기다.

자녀들이 모두 자라 이제는 미국에서 내노라 하는 명문대에서 교육을 받고

모두들 의료전문인이 된 아주 성공된 삶을 살아가는 모두 칠순을 넘긴

분들의 인생 이야기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영어로 나를 특별히 기억하여 주시고 저녁 초대를 하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 이외는 어떤 말씀도 윗분에게 드릴 수가 없었다.

 

저녁 초대를 하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 만나 함께 시간을 넷이서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나도 기뻐 흥분이 되었노라고 하셨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 선조들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강복에

더없이 감사하노라고 하시면서 남은 생애는 본래의 신앙공동체로

돌아가 위로받고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또한 말씀을 하셨다.

 

또한 아랫 사람 세명 모두 어느 누구 살아가면서 손을 벌린 일이 없이

모두 자신의 노력으로 당당히 살아 주어서 더없이 감사하고 고맙다고

하셨다. 돌아 가신 어머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두손 두발 갖고

그 어느 누구 물론 하고 또한  형제 사이에도 손을 벌려서는 아니 된다고

평소 가르치셨다고 말씀드렸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존엄한 어머님의

가정교육의 하나 였었다.

 

돌아가신 어머님도 사돈 어른도 늘 일생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배푸시며

살아 오셨던 분들이란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분들의 베푸는 손길이

결국은 자손들에게 축복으로 돌아왔다라고 믿고 생각한다. 전쟁 고아로

미군에게 입양되어 건너와 명문 듀크와 퍼듀에서 학부는 몰론 대학원

과정 까지 맞추시고 자수성가로 백만장자가 되어서도 지극히 검소하고

근면하며 겸손하게 살아가시는 조카 딸의 시부모님이나 모두가 세상을

정도로 올바르고 열심히 배푸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하여 살아온 분들이다.

 

저녁식사를 기쁨과 감사로 함께 맞추고 돌아와 브라더 찰리의 집에

도착하여 갖고 내려간 오랜시간 숙성시킨 김치를 마음의 선물로

가장 윗분 집으로 보냈다. 네 사람중에 갖은 것이 가장 적은 사람인

내가 상대방에게 건네 줄 수 있는 것은 내 마음과 정성이 담긴

아삭 아삭하고 샐러드 같은 김치로 찌게를 만들어 먹기에도 아까운

포기 김치 한병뿐이었다. 친구들이 늘 아주 맛나게 먹는 김치였다.

 

돌아와 나는 그대로 침대에 침몰하고 말았다,

2시간 반을 자고 일어나 이렇게 휴무 첫날 자판기를 두드린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 가 하는 것은 모두가 내 몫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리고 일을 하고 싶은 데 까지 하는 것도 전혀

나뿐 생각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부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아달라고

하셨다. 이제 슬픈 기억을 내려 놓고 또한 행복하게 살라고 하셨다.

 

내일 19일은 부모님 묘지에 헌화를 하고 돌아 올 것이다.

바로 아버지와 어머님의 날이기 때문이다.

먼저 세상을 떠나가신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혈육의 영혼 앞에

물망초의 애련함을 내려 놓는다...........

 

영원히 그 모든 사랑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