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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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 독백

붓꽃 독백 - 아빠를 가슴에 묻고 모국으로 가는 길

붓꽃 에스프리 2018. 10. 8. 09:13




영원한 내인생의 절대 사랑이신 아빠 헨리



새벽 6시반에 일어나니 갈곳이 없다는 사실이 폐부 깊숙이 얼마나 큰 슬픔과 외로움으로

다가 오던지 나는 전율해야만 했다. 아빠 하고 부를 아빠가 안계시다는 사실이 이렇게 막막하다니....


맘과 씨스터 진을 천상으로 보낸지 만 6년만에 오늘 아빠 헨리를 가슴에 묻고 떠나면서 유품을

정리하고 버릴 것 버리고 작은 가방 하나에 입을 검은 바지 검은 티 간단히 짐을 꾸렸다.


전직장에서의 동료이자 여동생 같은 제나씨가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하여 그러자 했다.

우리 타운에서 유명한 보쌈집에서 만나 보쌈과 된장찌게와 해물파전을 주문해서 대접해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 이었다. 위로의 카드안에 거액인 500불을 넣어 뭐라고 했다.

언제나 여동생처럼 그렇게 챙겨주는 그녀는 명문대 출신에 명문대 출신의 남편과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고 그 두 아들은 우리 미국의 최고 명문대학에서 수학하고 박사학위 과정에

있는 재원이다.


매사에 명확하고 칼 같고 배려심 깊고 인간적인 지극히 차분한 성격으로 직장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다. 이번에 그녀를 우리 보스에게 추천하여 인터뷰가 통과 되어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다른 직장으로 가서 근무하고 나는 연방정부 부처로 옮겼던 올해다. 그러나 그녀가

현직장에서 너무나도 고생을 해 집어 치우고 우리 연방정부 부처로 소개해줄테니 이력서 갖고

오라해  인터뷰 받고 통과 되어 얼마나 감사하고 기뿐지 모른다.


그녀의 연봉은 한국돈으로 각종 혜택과 더불어 1억 정도가 될것이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마지막 직장이다.


집을 싹 치우고 버릴것 모두 버리고 정리를 해놓았다.

냉장고 안도 버릴 것 다 버렸다.


2주후 돌아와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6년만에 어머니 맘의 유품을 정리했다.

이제서 내려 놓을 수가 있엇다. 맘이 입으셨던 자켓 두개만 남겼다. 아빠 헨리의 낡은 구두도

버렸다. 아빠의 셔츠만 내가 입고 다니려고 두었다. 우리 풍습은 돌아가신 분이 사용하던 것을

사용하는 것은 가신 분을 기리는 일이며 사랑으로 생각한다. 한국처럼 귀신이 붙었다느니 그런

것은 없다. 죽음은 우리 문화에서는 친근한 것으로 사랑으로 생각한다.


한국을 다녀와 아빠 헨리의 재를 받으면 나의 여정은 맞춤표를 찍고 새로운 출발을 할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절로 눈물이 나는 아빠 헨리의 부재의 무게가 너무나도 커 지금은 감당이 힘들다.




아빠.........................우리 아빠...................헨리........

Daddy, Ich liebe d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