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타운에 나갔다 와서

붓꽃 에스프리 2023. 11. 5. 03:53

그저께부터 아니 몇 주 전부터 벼르고 벼른 일이 있었다. 20년인지 30년을 넘게 이발을

해주던 과거 한국 명동에서 머리 손질을 하시던 분이 70중반으로 결국 2개월 전 현역에서

은퇴를 하였다. 그 후 새로 이발소를 전 주인으로부터 맡아 하는 새로운 주인이 된 50대의

여성 이발사가 지난달 귀 양옆을 짝짝으로 잘라놓은 것을 귀가 후 발견하고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니 너무 화가 났었다. 팁까지 주고 온 사람이 잘한다더니 귀 양옆 머리 높낮이를

1층 3층처럼 왼쪽 오른쪽을 잘라 놓았다. 그래 다시 안 가면 되지 하고 말았다.

그 후 고민거리가 생겼다. 어떻게 내 마음에 드는 이발소를 발견하느냐 이었다.

집에서 백 미터 거리의 한국인이 하는 미용실에서 은퇴한 내 이발사가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선택의 여지가 없어 갔더니 머리를 마음에 안 들게 이상하게

잘라놓아 그길로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그리고 2-3년이 흘렀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늘 가던 이발소 주인이 바뀌고

새로 온 주인이 머리를 제대로 깍지 못하면 그것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모를 일이다. 어떻게 이발소를 찾을까 한 달 내내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출근길에 늘 보던 아주 후미진 작은 공간에 미용실인지 이발소인지 모르는 정말

작은 공간에 영업을 시작하고 광고판을 이발 10불 얼마 있더니 20불을 붙여놓은

집이 생각났다.

그런 그렇고 일단 몇 개월 귀찮아 가지 않은 우리 지방에서 대표적인 유명한 건강

식품 약들을 파는 GNC를 가서 Fish oil과 매그네시움을 구입차 운동 겸 걸어가자

그리고 일단 이발을 모험 차 먼저 하고 다음은 내가 필요한 것을 GNC에서 사갖고

걸어서 집에 돌아오자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보니 웬 한글로 된

미용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문은 열었는데 출입구가 잠겨 있었다.

할 수 없지 하고 나는 출근 때 늘 보던 후미진 곳에 있는 아주 작은 곳에 발을

내딛고 남자 이발도 하냐고 물으니 한다며 안에서 스페인어권 남자가 이발을

하면서 들어와 잠시 않아 있으라고 한다. 앞에 백인 손님 이발이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백인 손님이 이발을 맞추고 나서 자리에 앉으니 어떻게 이발을 해주면

되겠냐고 해서 보편적인 이발을 해달라고 했다.

그의 가위 손놀림 이발기계 사용 일단은 마음에 들었다. 이발비는 나 같은 시니어는

15불 일반은 25불이라고 한다. 그럼 나는 시니어 칠십인데 15불 주면 되느냐고

물어보니 그렇단다. 이발을 맞추고 나는 먼저 집에서 지불하던 20불을 주었다.

15불 더하니 팁 5불 도합 20불을 주니 고맙다고 말을 한다. 정오부터 저녁 5시

까지 일주일 내내 이발을 하고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그는 정신과

환자들 요양원에서 그 또한 일주일 내내 일을 한다고 한다.

왜 그렇게 일을 하느냐고 하니 자기는 가난하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해야만 된다고

하는 데 마음이 짠했다. 나에게 팁 5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에게는 웃어넘길 수

있는 돈이 아니란 것을 나 또한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해보았기에 알고도 남는다. 하여

아낌없이 이발비 15불이지만 20불을 주었다. 기뿐 마음으로 옆에 있는 가계 GNC

들려 필요한 건강식품 구입하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발을 하고 필요한 건강식품을 구입후 차를 몰고 타운에 나갔다. 보험이 허락하는

올해 검안을 하고 새로운 안경을 맞추는 것이 오늘 내가 계획한 일이었다. 검안을

하니 지난해와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안경테는 일단은 일제는 원하지 않으니

이태리나 덴마크 안경테를 택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먼저 안경테와 같은 구치 안경테로

결정을 했다.

400불이 넘는 안경테 보험이 300불은 해주니 나머지 $86불만 지불하면 된다고 했다.

더하니 눈부시지 않게 하는 것 하여 도합 $140을 지불했다. 3주 후 찾으러 오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 배추 하나, 동치미 무 두 개 묶음, 방울 양배추 브러슬 스프라우트

하고 중국 채소 청경채 박초이를 사갖고 돌아왔다. 요즘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현재 체중 160 파운드 73킬로에서 150 파운드 즉 68킬로로 줄여야 하고 지금도

저염 음식을 먹고 살지만 더 저염 하게 즉 거의 담백하게 먹고살아야 하고 가벼운 운동도

해야 되고 모든 것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일상이다. 요즘은 대부분 빵을 먹고 사는

입장이다. 아침은 항상 빵을 먹고 살고 한식은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사는 현실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맛나다 싶은 음식들 그리고 맛깔스러운 한식 역시 건강을 위해 내가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철저하게 절제해야 되는 음식이 거의 다이기에

먹고 살 음식의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자판기를 두드리는 사이에 한국에서 돌아가신

아빠 헨리의 막내딸 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건축을 공부한 남편을 만나  아들 하나

낳고 살다 건축 붐이 일어날 때 잘 나갔었다.

그러다 건축 붐이 사그라들면서 남편의 건축설계 사업이 힘들게 되었고 암으로 남편이

2년전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동안을 힘들게 살아야만 한 그녀와 아들의 입장 이었다.

그런 그녀가 내년 다시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들이 미국에

직장이 되어 내년 봄쯤 오게 될 것 같고 같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 오려고 계획 중이라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상담을 하려고 전화를 해왔다.

남편 사망하고 모아놓은 재산도 다 날리고 모아놓은 돈 없으니 이런 경우 한국이

더 살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해보았자 몇십만 원일 텐데 쪽방에서

살지 않는 한 사는 것이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가 있겠지만 미국의 경우 아예 없으면 의료보험은 100% 무료고

정부 보조금 매달 800불 이상을 준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저소득층 아파트나 노인들 경우 노인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 300불도

채 안 되는 월세를 내고 살게 된다. 전기 가스 요금 거의 무료다. 하다못해 인터넷 사용료도

반값이다. 오빠 언니 남동생 모두 살고 있는 미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한국에는

먼 친척들만 있는 입장인 누이다. 그 또한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없는 세상 외로운 삶이라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형제자매들이 다 살고 있는 곳에서 같이 모여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

싶다. 4개월 후면 만 칠십하나가 될 것이라고 하이 오빠 언제 그렇게 되었냐고

몇 번을 뇌까린다. 가는 세월을 누가 막으랴 했다. 지금도 근무할 정도니 얼마나

좋으냐고 해서 지금 상태로는 몇 년 더 근무할 수 있지만 예측불허의 인생 그리고

최근에 한국에서 미국에서 동갑내기들이 사망했다는 소식들을 듣다 보니 이제는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고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에 미련 없이

은퇴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때론 너무나도 허무한 인생길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산자의 몫이다.

출근길에 올라야 할 시간 곧 서머타임도 11월 초에 끝나고 여름도 가고 가을이

깊어져가고 기온이 내려가고 있다. 열심히 사흘 근무해 주고 또 나흘 쉬다 보면

11월이 된다. 벌써 10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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