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New York 비행기는 떠나고

붓꽃 에스프리 2007. 10. 8. 18:37

 

 

 

도착 다음날 어제 일요일 새벽녘 갑자기 왼쪽 아래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을

하여서 가라앉지를 않아 일어나 의자에 앉아 죽어라고 고통에 신음을 하며

진땀을 흘리면서 사투를 벌리다 한참이 지나서야 가라앉기 시작하여서 잠을

다시 청할 수가 있었다.

 

창 밖은 안개로 시야가 흐릿하고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정경에 허탈해 하고

있을 때쯤 전화가 왔다. 다름 아닌 큰 조카 아들 아이가 제 동생이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서 늦게 오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 후 작은 아이가 도착하였노라고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잠시 후 6척 장신이 아이가 가방 하나와 양복을 들고

들어와 그대로 침대에 두러 눕는다. 얼마나 피곤하랴 수업이 끝나자마자 밤

비행기로 서부에서 동부까지 날아 왔으니 잠시 후 다른 조카 아들이 차를

빌려서 공항에서 오는 길인데 데리러 갈 테니 일찍 신랑이 묵고 있는 뉴욕

교외 도시 Roslyn이란 곳으로 가잖다.

 

용감 무쌍하게 운전하는 아이 겁도 없다 싶었다.

모험심 강한 아이 아버지가 일찍 35세에 요절하고 외롭게 성장한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홀로 호주로 여행을 다녀온 배짱도 좋은 아이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인들이 이민을 가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 후 아이는 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입학예비고사를 수학부문에서 만점을 받고 뉴잉글랜드의

명문 Y대에 입학이 되었지만 도저히 형편으로는 갈 수가 없어 짜장면

한 그릇을 중국집에서 사 먹이면서 학비가 저렴하고 고교우등졸업자를

대학원 과정인 의과대학으로 직행하는 대학교로 가라고 설득시켜 명문의대인

그 학교를 졸업 후 작은 시골 중소도시에서 가난한 이웃들을 진료하면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 얼굴도 기억을 할 수 없는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는 얼마나 강하게 홀로 자기 길을 걸어 갔는 지를 모른다.

 

도착한 작은 아이 말이 엉클하고 위에 제 사촌 제임스 하고 성격이 똑 같아

절대로 타인에게 신세를 지거나 피해를 주려 하지 않는다며 한 마디를 한다.

남의 동네 와서 제가 뭐 몇 년이라도 살던 사람처럼 동서남북으로 휘젓고

가다 길을 잃기를 십여 번 전화통화로 길을 물어보기를 몇 번 천신만고 끝에

아담한 고풍스러운 작은 호텔 Roslyn Claremont Hotel에 도착하였다.

 

우아한 실내의 호텔 얼마 후 리무진이 도착해 신랑과 둘러리들을 싣고

떠나고 우리 일행은 아이의 운전으로 쫓아 가 식장인 작고 아담한

성당에 도착하였다. 사돈들이 이태리계이니 당연지사 캐톨릭이고

신랑측도 같은 캐톨릭이니 신부님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신랑 부모가 입장을 하고 얼마 있으니 조카며느리가 될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를 데리고 입장을 하는 동안 건너편 앞자리에 앉은

신부의 언니가 눈물을 훔친다. 신부인 딸을 사위가 되는 신랑에게

건네주고 신부의 아버지가 자리에 착석을 하여서는 안경 너머로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아니 그런데 왜 나도 눈물이 나던지 천장을

잠시 쳐다보고 심 호홉을 하고 앉았더 일어서기를 몇 번 식이

끝났다. 결혼식 동안 신부의 사촌 언니가 아베마리아를 불러주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낭독하고 파이프 올갠 연주 속에 미사가 봉헌되고

다혈질인 각기 다른 동양과 서양 두 가정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가족사를 새로 쓰는 날 이었다.

 

서양에서 태어나 서양에서 성장한 신랑과 신부 식이 끝나고 일행은

다시 리셉션이 열리는 Roslyn Claremont Hotel로 모두 향해 떠나고

우리 일행도 같이 떠났다. 내일 아침 떠나야 하는 관계로 일찍 숙소인

호텔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조카 아들 아이 특별한 날 그럴 수는 없어

두 시간 정도를 기다린 후 모두 초대된 손님들과 함께 지하실 연회장으로

내려가 칵테일 파리를 시작으로 하여 모두들 포도주내지는 바드카

위스키등으로 주문을 하여 마시면서 인사를 나누고 하는 가운데

사돈인 신부의 어머니가 우리 일행 있는 데로 다가오며 우리 딸

잘 돌보아 달라며 웃고 지나가니 아버지가 다가와 가족을 일부

소개하는 동안 애퍼타이저가 시작되고 파리는 계속 진행되었다.

 

애퍼타이저만 하여도 배가 부른데 이런 메인 코스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지 얼마 후 모두들 건너편으로 옮겨가니 음악이 흐르고

신랑 신부와 둘러리가 소개되고 첫 테이프를 새로운 가정을 시작하는

신랑 신부의 무도로 시작이 되고 곧 신부와 신랑 부모들이 훌러에 나가

춤을 추기 시작하고 끝나자 초대된 모든 손님들이 하나 둘씩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동안 음식은 주문을 시작하고 와인은 글라스에

부어지고 초대된 그 많은 손님들은 모두가 이태리계 백인들 일색이었다.

뉴욕이 어디던가 이태리계가 꽉 잡고 있는 도시가 아니던가 대선 후보로

나온 쥴리아니도 그렇고 초대된 한국인 손님 사돈들도 다들 영어세대이니

겨우 몇 사람만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정도였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그만큼 미국이란 사회에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미국인이 되고 만 것이다. 이 땅에서 자라고 태어나고 생활하고 뼈를

묻어야 하는 사람들 코메리컨들 참 많은 생각이 오고 가는 시간이었다.

 

파리가 진행되고 초대된 사돈 측의 백인 손님들과 훌러에서 춤을 춘

사람은 신랑 신부와 부모들 그리고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붓꽃뿐

적포도주 캐버넷을 잔에 부어주는 대로 얼마나 마시고 초대된 사돈 측

백인 손님들과 함께 춤을 추었는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시간도 알 수 없는 시간에 일어나 눈을 떠보니 이건 조카들이 있는

방이었나 정신이 퍼뜩 들어 카운터 부탁해 택시를 부르고 타는 동안 조카

아이가 달려와 양복을 건네준다. 맙소사 우리 동네 한국인 택시 운전사나

이 동네 뉴욕 백인 택시 운전사나 파렴치하기는 똑 같다.

 

취중인데도 20 - 30마일을 달려온 운전사는 팁을 언져 달란다.

참 어이가 없어서 팁을 주고 안 주고는 손님 마음이지 제 마음인가 싶었다.

미련 없이 팁과 택시비를 지불 후 호텔 카운터에서 음료수를 한 병 사서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어 얼마나 되었을 까 시간을

보니 이를 어찌하여야 할지 비행기 출발시간이 목전에 다가왔다. 그대로

샤워를 하고 호텔 셔를 버스로 공항을 나가니 비행기는 이미 떠났다.

 

아직도 취기는 남아 있고 아 힘듬이여……..

대기자 명단으로 기다리는 데 25불을 지불하여야 한다고 남자 직원이 말을 한다..

어쩌랴 선택권이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그러마 하고 기다리는 동안

급히 신용카드로 장거리 전화를 쉬카고로 연결하여 형에게 늦을 것 같다고

말을 하니 동생이 온다고 집수리를 하다가 오른쪽 팔을 다쳤단다. 아니 동생이

갈 때마다 집을 수리하다 꼭 사고를 치고 마는 형 미안하기도 하고 대기자

명단에 오늘따라 왜 그리도 많은지 의자에 기대어 아직도 취기가 남아 속이

약간은 안 좋은 상태에서 승객이 다 탑승 후 오늘은 어느 누구도 대기자로

갈 수가 없다며 돌아가라고 한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다른 대기자 명단의 신혼여행가는 신부는 자기 가방이

혼자 다음 목적지로 가버렸다고 난리가 났다. 중국계인 머리가 허연 아저씨

직원이 날카롭고 예리한 말투로 이야기를 나눈다. 언성이 높아 진다. 문제는

대기자란 초록색 딱지를 부치지 않았다고 신부가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그대로 싣고 갔다며 목적지 하와이 호놀룰루에 가서 찾으라고 방법을 일러준다.

신부는 울고 난리가 났고 부모들은 위로하고 그런데 이를 어쩌나 나의 짐이

안 나오니 이것도 당황할 일이 아니던 가. 잠시 후 아 맙소사 구세주 같은

작은 가방이 나왔다.

 

결국 다시 공중전화로 상대방 부담 무료전화로 비행사에 전화를 하고 오늘

어떤 방법으로든 뉴욕을 떠날 수 있느냐 하니 자그마치 1800불 거의 180만원

돈을 내란다. 얼마나 어이가 없어 한숨이 나오던지 잠시 후 겨우 상냥한

백인 여성직원의 도움으로 운 좋게 내일 아침 같은 시간에 날아갈 수 있다는

통보를 받고 나니 일단 먼저 산 티켓은 몽땅 자동 취소가 되어 새로 구입하는

방식으로 재 발행 하여야 한다며 수수료를 115불을 더 내란다. 150불이 아니니

불행 중 다행 다시 티켓을 다 조정하고 일단 공항 내 Air Tram으로 묵었던

호텔로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고 하니 곧 버스가 가니 그런 줄 알란다.

숙소로 돌아오니 구면이라고 상냥한 인도계 미국인 여성직원이 파격적인

값인 109불에 같은 방에서 묵으란다, 그녀가 전화를 받는 동안 189불을

내야 한다고 다른 손님에게 말을 한다. 그뿐이랴 서비스로 물을 마시라며

무료로 호텔 이름이 박힌 것을 준다. 자기가 생각하여도 비행기를 놓친

꼬락서니에 측은지심이 발동하였나 보다.

 

일단 방으로 올라와 장거리 전화선을 열어 달라고 하고 비행사로 스케쥴을

랩탑 컴퓨터로 볼 수 있게 확인번호를 달래서 확인 후 다시 쉬카고로

전화를 걸어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형에게 오늘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떠날 방법이 없다고 내일 가게 되어서 형의 일정과 일상에 차질을 빚어서

대단히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말을 건넨 후 뉴욕에서 버어지니어로 직접

날아갈 수도 있지만 여기까지 와서 형에게 들려가지 않으면 자신이 용서가

안 되어서 안되어 내일이라도 가니 그런 줄 알라하고 다시 버어지니어로

전화를 하니 영국계 백인인 회갑도 한참 넘은 형은 한 수 더 떠서

……일생을 함께 걸어가는 인생의 진실한 벗이나 형이라면 그 정도는

이해를 하여주어야 옳은 것 아니니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고 의도치

않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고 하니 알았다. 모레 같은 시간에 너를

데릴러가마 기다릴께 한다.

 

일단 침대로 들어가 쉬며 불현듯이 듣고 싶은 음악이 있어 다운로드를

하여 헨델의 라르고를 소프라노 안드레아스 숄과 밀바의 음성으로 들으니

어찌나 감미롭고 평안하던지 아니 디카는 하고 순간 생각이 나 뒤져보니

카메라 집에 잘 들어 있다. 취중에도 옷은 물론 어떤 것도 제자리에 두고

자는 습관이 있어서 변함없이 그랬다. 단 넥타이를 조카들 호텔방에다

풀어 놓고 오고 말았다. 어쩌랴 이미 벌어진 일을 결국 300불짜리 적포도주

한 병을 마신 격이 되고 말았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놓치고 마는 실수를

저질러 비싼 교훈을 얻은 이번의 뉴욕의 여정이었다.

 

두 신랑 신부 서로 행복한 인생과 가정을 이루어 검은 머리 갈색 머리

팥 뿌리가 되도록 살기를 마음으로 빌어주는 마음이다. 형님이 어찌나

그 많은 손님 앞에서 어제 따라서 한국말과 영어로 인사말을 잘 하시던지

흐뭇하다고나 할까 아름다웠다.

 

일주일간의 아주 짧은 휴가를 맞추고 직장으로 돌아가면 이 웃지 못할

헤프닝의 에피소드를 어찌 다 나눌지 붓꽃이 파리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일생 동안 단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가족들의 후문은 어찌 나눌지

멋드러지게 한 번 어울리고 노는 것도 인생에서 필요하지 않을 까?

가족의 귀한 자리에 후회 없는 여정 이었씀으로 감사하다.

어느덧 하얀 밤을 넘어 글을 쓰다 보이 세수하고 공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한 시간 후 공항으로 미리 나가 오늘은 쉬카고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내일은 버어지니어 오지 산골로 떠나 이제 겨우 조금

단풍이 들어갈까 싶다는 데 사진을 찍어 올리리라…………

 

모두들 평안하시고 행복한 일상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