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독백 – 콧물이 강물이 되던 날

붓꽃 에스프리 2008. 4. 19. 19:27

 

 항구, 1972 - 오지호 

 

세계적인 현상인 이상기온의 영향인지 올해는 봄이 오는지도 느끼기도 전에

어느 날 갑자기 소설제목처럼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여름이 한 사흘 정도

찾아왔다가 슬며시 수그러들어 사라져버리는가 싶더니 이게 왼 일 목 감기

그 이상으로 인후가 건조하고 땅기는 느낌으로 아프고 도무지 어떻게

설명을 할 길이 없던 지난 사흘간 그것도 잠시 자고 일어나니 목 감기 같은

증상은 사라지고 재채기와 콧물이 온종일 홍수를 이루고 골이 찌근거려

두러 눕고 싶어진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직면할 때가 인생의 연륜인 세월이 쌓이면서

많아진다. 때론 직장동료 부모님들의 죽음 앞에 서서 인생을 뒤돌아보게도 된다.

테레사의 어머니가 몇 일전 복합증세로 돌아가셨다. 옷장에 걸린 어머니의 옷들을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하던 그녀를 잊을 수가 없다.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며

위로하던 시간들 위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는 그녀나 나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는 다는 것은 영원한 이별을 의미한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 막다른 골목 절망 앞에서 가슴이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 어데

있겠는가 가슴이 그럴 때 무너지지 않는 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닐까…

죽음 그 너머의 영원은 어떤 것인지 그 누가 알 수 있으며 또한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부여한 선조들과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과 벗들과 사랑하는

이웃들 그 모든 인연들을 그 영원의 세계에서 다시 재회할 수 있는지 없는지

또한 어찌 알 수 있단 말 인가. 영원은 어떤 모습이며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

 

우리의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

우리가 생각할 수 있고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며

그 모든 생각과 사색을 가능케 하는 영적인 움직임과 그 능력을 움직이는

존재의 힘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벼르고 벼른 날 밀린 잠을 자고 일어나 외출을 하였다.

휴무하는 날은 의외로 밀린 일들이 많아 하여야 할 일들이 많은 날 불현듯이

평상시 정을 주고받는 아버지 같으신 분의 사무실을 찾아 갔다. 비서인 마리아가

뭐하고 어디 숨었다가 이제 오느냐고 농담을 건넨다. 선생님이 사무실에서 나오시더니

따라 마시던 커피를 빼앗아 버리시며 새로 내려줄 테니 마시지 말라고 하신다.

늘 소탈하시고 격식에 억매이지 않으시며 언제나 열심히 일상을 정직하게 살아가시며

누굴 속이고 터무니없는 대가를 바라신다거나 하시지 않는 착한 어른 그야말로

짠돌이로 세간에 평판이 나신 분이지만 결코 또한 그렇지 않으신 분이다.

 

남들이 허세든 아니든 명품을 걸치고 비싼 자동차를 몰고 다닐 때도 한국산 현대

자동차 그 중에서도 소형차를 몰고 다니시며 늘 검소하게 사시는 분 사무실 문을

닫고 나서시면서 저녁이나 같이 하고 들어가자고 하신다. 아들 하나에 딸을 둘

두셨다가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리신 과거 위에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남은

인생도 열심히 늘 성실하게 살아가시는 모습 위에 안보면 보고 싶은 분이다.

 

아마도 정일 것이다. 오랫동안 휴가를 갔다 오면 반가움에 힘차게 안아주시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마음의 부담이 전혀 없으신 어른과 함께한 저녁식사자리

하루 종일 일을 하셨으니 저녁때인데 시장하시지 않겠나 싶고 그분이나 나나

서양에서 오래 산 탓일까 도무지 매운 음식을 드시지를 못하시니 한국식당에서

매운 한국 음식을 주문할 수는 없어 맵지 않은 복어 요리를 시키고 말았다.

 

식탐도 많지 않으신 분 나이가 드시니 이젠 술을 한잔이라도 하면 다음날

아침이 힘겨워 안 드신단다. 그러더니 한 잔 마시지 않겠냐고 하신다.

물론 답은 노우였다. 어쩌다 포도주 한 두 잔을 마시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 왜 괴로워하여야 할까를 생각하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냥 정담

나누고 잠시 함께한 시간으로 충분하다 싶었다. 식사가 끝나가니 뒤를 돌아다

보신다. 웨이츠레스를 부르시려는 눈치이시다. 잠시 실례………."오늘은 제가

저녁 대접하는 거로 할게요." ", 너 왜이러니….." "왜 이러긴요. 저에게 늘

대디 같으신 분이시잖아요.." 계산을 맞추고 보내드리고 석양이 지는 방향으로

차를 몰아 매달 들리는 한국어 서점을 찾아 갔다.

 

한석호 시인의 작품이 실려 출간되는 <젊은시 2008>을 주문하기 위하여서도

갔지만 주문한 계간문학지들이 도착하였나 알아보기 위하여서 들렸다. 클래식

음악과 미술사 서적들이 있는 서가 앞을 서성이다가 불현듯이 저자 한젬마가 쓴

한젬마의 한반도 미술창고 뒤지기 1 "화가의 집을 찾아서' 2 '그 산을

넘고 싶다'를 주문하기 위하여서 물으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현재 재고로

있단다. 그 순간 얼마나 반갑던지 달려가 책장을 열어보며 원하는 화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나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물론 기대에 미치는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 화단의 중요 인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읽어보고

싶었다. 그뿐이랴 빈센트 밴 고흐 서간문 40편이 번역된 서적과 이태리 밀라노

대학교의 미술사 교수인 파올라 라펠리가 <밴 고흐 미술관>과 이주헌의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 불행하게도 이 책에는 세계 미술관의 대표적인

러시아의 Hermitage Museum이 실려있지 않았다>

 

영혼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이 소중한 책들을 만나는 기쁨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캐나다에 계신 우리 파파의 생신이

다가와 생일카드를 보내드리기 위하여서 사 갖고 집에 돌아온 후에 밴 고흐의

서간문을 영어로 번역된 것을 온라인으로 들어가 한글판과 비교하여보니

한글판은 의역된 부분이 많아 영어로 번역된 내용에 담긴 일단의 내용들과는

달리 내용이 조금 다르거나 중요한 내용이 결여된 부분도 발견되었다.

 

현재 알려진 밴 고흐의 편지만 874편이란 것을 생각하면 한글로 번역되어

공전의 대히트를 치고 있는 도서출판 <예담>이 신성림의 번역으로 출간한

40편의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너무나도 빈약하기 이를 데가 없다 싶었고

결론은 영어로 번역된 원전에 가장 가까운 빈센트 밴 고흐의 서간문을 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불행한 천재적인 화가의 예술관과

생애를 조명하는 편린인 서간문은 누구나 한번쯤 읽어 볼만하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명화의 원화를 보는 것만큼 커다란 감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화보에서 보는 작품과 실제로 화가의 손길과 영혼이 담긴 작품을

눈 앞에서 바라보는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다. 카메라가 절대로 잡아낼 수

없는 색감과 질감들 그리고 생생한 감동은 때론 전율케 한다. 더욱이 밴 고흐의

화폭 위에 그 두꺼운 제소와 물감들로 이루어진 화폭의 생동감은 한 인간을

얼음처럼 얼어붙어 꼼짝도 못하게 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아니고서야 뭐하러

돈 버리고 수억 만리 네델란드 앰스털담까지 날아가거나 쉬카고나 그의 그림이

소장되어있는 지구촌 곳 곳의 미술관을 찾아간단 말인 가. 예술은 위대하다.

 

영웅호걸의 이름이 역사에 오르내린다면 문학인이나 예술가 또한 문화사에

영원히 그 족적을 남기고 인류에 그 이지와 지성의 향기를 더 하여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명품이나 부호의 부는 있다가도 사라질 수가 있다면

인류의 문화유산은 수세기를 넘어서 그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또 남긴다.

한국 화단 수채화의 대부 화가 배동신1943년 신인미술가의 등용문인 일본

자유미술창작가 협회 전에 초상이라는 작품을 출품해 입선의 영예를 안았을

함께 동경에서 유학하던 화가 이중섭이나, 미술교육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하였던 박수근, 양달석, 이쾌대, 양수아등 모두가 공통적으로 모진 가난과

싸우며 온몸으로 예술의 혼을 불사르며 오로지 한길을 따라 한국근대미술사에

빛나는 작품들을 창작할 수 있었다. 물감 살 돈도 없었던 화가 양달석 어찌

필부들의 시각으로 그들의 예술혼을 공감할 수 있으며 이해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배부른 돼지는 결코 문학과 예술의 정수를 간파할 수 없으며

창작을 할 수가 없다.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뇌 없는 문학과 예술은

모두가 허상에 불과하다.

 

  명동 성당 내부

 

그런 의미에서 신앙, 인간들이 가장 피 터지게 싸우는 종교나 신앙생활의

생활화 역시 그 획을 달리하고 있지 않다. 휴무의 마지막 날인 오늘 하루

밀린 가사들을 돌보다가 적포도주 한 잔에 슈베르트의 무언가를 들으면서

디지털 신문을 뒤적이니 일생을 진정 희생과 봉사로 빛과 소금으로 불우하고

가난한 소외계층의 이웃들을 위하여서 세상에 회자되지 않고 오로지 수도사

아닌 수도자처럼 영등포에서 인술을 베풀다가 오랜 암 투병 끝에 그 귀한

삶을 마감한 선우 경식이란 살아있는 성자 같은 위대하고 고귀한 한 영혼을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분의 해맑고 고운 모습이란 들꽃 보다 도

아름다웠고 잔잔한 파문에 고귀한 정신과 실천적인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간접 경험하면서 마치 스승을 잃은 슬픔 같은 감정이 밀려와 눈시울이

뜨거웠다. 아니 그분의 숭고한 영혼이 절절하게 그리웠다라고 하는 것이

솔직한 자신의 감정이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형교회의 목회자나 불교종단의 수도자들의 명품 차 승차에 관한 불미스러운

이야기들을 언론매개체에서 대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시대에 자신의

모든 부귀와 영화의 길을 홀연히 버리고 일생을 수도자처럼 살다간 한

고귀한 영혼의 죽음 앞에 옷깃을 저미게 된다.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영혼들이 있다면 이런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누군 수백억 수천억의 부호의

인생이나 명품인생이나 강남이나 맨해튼이나 베벌리 힐즈의 인생을 논한다면

그리고 추종한다면 세상의 이치란 반대로 인생의 가장 변방에서 살아가는 인간애의

고귀한 희생과 정신을 경외하는 영혼들도 수없이 많다. 그러기에 세상은 때론

감동이며 살아 볼만하고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생도 있다.

어제 오후였다. 평소에 부담 없이 지내시는 김선생님 사무실을 찾아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함께 시간을 하고 있는 동안 잠시 창 밖을 내다보니 건너편 건물에서 어느

한국인이 검은 양복바지에 검은 티셔츠를 말끔히 입고는 손에 음료수 캔을 들고

나오더니 차도 바로 가장 자리 보도 위에 내려 놓기에 잠시 몸을 푸느라고 그러는

줄 알았다. 아니 그런데 이게 왼 일 이층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니 그 깡통은

빈 깡통으로 길거리 차도로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중년의 사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건물 내에 있는 쓰레기통은 어쩌고 멀쩡하게 차려 입은 사내가

양심의 가책 하나 없이 거리에 자신이 마시다 만 음료수 깡통을 버린 것이다.

잠시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한 마디를 하기를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저 인간이 멀쩡하게 생겨 갖고서는 제가 마신 음료수 깡통을 저기다 버리는

거예요” 어이가 없으시다는 듯이 껄껄 웃고 마신다.

 

식료품점 슈퍼에서는 10대 말이나 막 20대 초반에 들어서거나 한 한국계 아이가

배기 바지가 그야말로 벗겨지다 싶이 하여서 응뎅이 밑으로 흘러 내려가니

한 손으로 치켜 올리며 한 손에는 소주를 자그마치 두 병이나 들고 있고

모자는 뒤로 돌려쓰고 때는 얼굴에 줄줄 흐르고 머리는 샤워를 몇 일이나 하지

않았는지 엉망진창이고 얼굴은 검게 그을러 완전히 행려병자 홈리스와

다를 바가 없었다. 순간 저 아이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을 까 싶었다.

갱 사건이나 마약내지는 기타 범죄에 연루되어 수감되어 있는 한국계 청소년

수감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장탄식을 하는 분을 보았다.

 

반면에 한국인의 이름을 드높이는 뛰어난 인재들이나 세계수준의 디자이너나

예술가들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기도 하며 말로 천국을 고성방가하고

감언이설로 가난하거나 영혼이 가난한 신도들을 세뇌하여 자신의 영욕을 채우는

신앙인들이나 목회자나 다른 종교계의 지도자들이나 수도자들도 수 없는 험한

세상에 우리 같은 필부가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오늘도 이름도 없이

자신을 불태워 고귀한 봉사와 행동하는 양심과 지성으로 살아가는 위대한

영혼들이나 이웃들로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사회 곳곳에서

지구촌 구석 구석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도 절대로 자신에 관한

것을 지나치게 회자시키지 말라며 마지막까지 성경말씀대로 절대 겸손으로 우리

곁을 떠나간 한 고귀한 영혼 일명 “노숙자의 슈바이처” 영등포 요셉 병원 원장으로

일생을 봉사하셨던 선우 경식 선생님 같은 분도 계시다 

 

 

 노숙자의 슈바이처 고 선우 경식 선생님

 

희생적인 봉사 생활과 인술을 베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독신으로 지내시다

떠나가신 선우 경식 선생님 영전에 마음의 장미 꽃다발을 바치고 싶다.

비록 일생 동안 그분도 나도 서로 만나 본일이 없다 하여도 그분이 남긴

고귀한 희생과 이웃사랑의 정신과 봉사생활은 몸을 불살라 사랑을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누고 간 맑고 순결한 한 영혼 위에 깊은 애도와 경의를 표한다.

아름다운 꽃 보다 더 아름다운 영혼 그분을 그리워하는 밤이다.

 

어찌나 앨러지가 몇 일 동안 심한지 콧물이 강물을 이루고 얼마나 코를 풀었던지

코가 헐기 직전으로 그만한다 싶다. 계절병으로 일주일 내지는 길게는 한 달을

고통을 당하는 매년 어느날 갑자기 여름날 처럼 덥더니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춥다. 감기와 앨러지 환자가 속출하는 계절이다.

 

남은 두어 시간 밴 고흐와 마더 테레사에 관한 독서를 하며 잔잔히 이 깊고

깊은 하얀 밤 슈베르트 음악에 기대어서 적포도주 한 잔을 음미하고 싶다.

세상이 다 고요한 이 적만한 시간이 가장 평안하고 평화롭고 행복하다.

독서를 통하여서 지성들을 만나고 그들의 양식 있는 영혼의 고뇌와 이지를

만나는 시간만큼은 더없이 영혼의 양식으로 소중하다. 잘 것 다자고 입을 것

다 입고 먹을 것 다 먹고 언제 투철히 자신의 인생을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흘러가는 시간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생과

일상이나 삶의 여백 또한 우리 스스로 만들고 가꾸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