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그리움이 머무는 오솔길을 산책하며

붓꽃 에스프리 2008. 3. 28. 21:28

 큐비스트 화가 브라크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Georges Braque -  Harbor in Normandy, 1909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꾸벅 꾸벅 졸고 있고 자동차 한 두 대 정도나 겨우 오고 가는

어둠이 짙게 내린 텅 빈 이슥한 밤길을 운전하며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잔 휠드의

낙턴 같은 잔잔한 곡이나 푸치니 Tosca '별은 빛나건만'이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2악장이나 Salvatore Cardillo - Core Ngrato (무정한 마음)

듣고 있을 때만큼 세상이 정적 가운데 조용하고 영혼 저 깊은 곳에 평안을 느끼며

안온함 그 자체의 내면으로 깊이 침몰하여 안기는 포근한 느낌과 동시에 가슴 골과

폐부 깊이 애절하고 절실함으로 가슴 시린 그리움을 느낄 때가 있을까 싶다.

 

그것도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죽음과

더불어 그들의 예술혼과 노래와 함께 성장한 세대라면 더욱더 전후의 피폐함과

그 잔영 위에 처절한 근대화로 가는 길목 보리 고개시절의 가난한 한국사회를

기억하고 추억할 것이다. 그 어두운 시대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세월의 강을 건넌

우리들의 선조들과 아버지 어머니와 60 70을 넘기신 분들의 수호신 같았던

테너 가운데 한 사람이 주세페 디 스테파노 이며 바리톤 휘셔 디스카우와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가장 많이 알려진 오페라계의 스타군단 일 것이다.

 

오늘은 불현듯이 스위스의 산골 마을에 위치한 Lake Brienz/브리엔츠 호수를 찾아

나섰다. 아쉽게도 눈이 푹푹 쌓이고 회색 빛으로 물들어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과

고독을 담고 있는 캔버스에 회화적으로 옮겨 그림이 될만한 정경은 없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융프라우로 가는 길목 인터라켄이 저편으로 보이는

가을날이나 여름날의 정경 사진들은 많아도 겨울의 회색 빛은 없었다.

 

온통 높은 준령으로 둘러 쌓여있어 숨구멍이란 빼꼼이 열려있는 쪽빛 하늘 밖에는

없다 싶고 사방팔방으로 둘러보아도 산과 만년설과 빙하 호수만 시야에 들어오는

나라 스위스 지구온난화 탓인지 갑자기 봄이 온다 싶더니 초여름 같이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캐나다, 스위스와 쉬카고에는 눈이 온다는데 우리동네는

난데없이 초여름 날씨로 연일 진을 빼다 못하여서 사람들이 늘어져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이런 와중에 생전 처음 듣도 보도 못한 기구한 한국 근대사에

묻혀버린 월북화가 한 사람을 조우하게 된 간밤이다. 그의 이름은 발음도 어려운

이쾌대 이다.

 

목로주점 아우님의 글에서 만난 한 화가의 일생과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아니 밤을 새웠다 함이 옳다 하겠다. 그의 작품을 찾아나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닌 끝에 몇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시선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면 들라크루와를 느끼기에 충만한 작품 상황, 첼로연주자,

봉선화와 봄처녀” ……………..

 

 

Georges Braque - Violin and Palette

 

다시 몇 일이 지나서야 다시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다.

서구생활이란 것이 늘 짜여진 엄격한 시간과 일상이 병행되는 삶의 연속이기에

자기 스스로 삶의 여백을 만들지 않고서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찜질 방이나 사우나나 골프장이나 카페 같은 곳으로 시간만

나면 속된 표현으로 계모임, 동창회, 동호회나 그 많은 무슨 모임하며 껀수 만들어

친교라는 이름으로 놀러 다니며 술 마시고 유흥으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음주운전 단속의 엄격함 하며 한국서처럼 퇴근길에 친구나 아는 누군가를 만나서

소주 한잔 나누며 쌓인 회포를 풀고 돌아올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인 환경이 아니며.

쉬는 날이면 한 주 동안 밀린 청소며 세탁이며 시장보기며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며 자녀들이 있으면 그 뒷바라지에 늘 바쁘고 바쁜 일상에 겨우 주말이나

연휴 정도가 되어서야 조금이라도 시간의 여백을 생각하는 생활이다. 시간이 나면

피로에 잠자기 바쁘고 그러다 보면 다시 한 주는 시작되고 그러하기에 서양사회에는

철저하게도 휴가제가 있고 또한 각자의 생활이 소중한 개인주의가 발달되어있지

않은 가 싶다.

 

일년에 한 번씩 갖는 휴가는 일 년 동안의 삶과 다음 해를 위하여서도 참으로

소중한 에너지의 재충전과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마음을 비우고 영혼의 안식과

잠시 바뿐 일상에서 잊기 쉬운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이요 가슴 겹겹이 짙게

쌓아 올려진 그리움을 내려 놓는 그런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에 일년에 부동산 임대세만 20억을 번다는 65세의 사람이 외제 고급승용차를

굴리면서도 세금내기 싫어서 불법 편법을 썼다가 법원에서 패소하였다는 한국어

디지털 신문에 실린 모국의 기사하며 사람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토막을 내어서

암매장을 하였다는 극악무도한 기사하며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사람의 욕심의

끝은 어디까지며 악마의 마음의 끝자락은 어드메인지 삶과 죽음이란 것을 놓고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아파서 두러 눕게 되는 날이면 그 몇 십억이 무슨 의미이며 어떤 깊이 있는 마음의

행복을 우리 인간에게 줄 수 있는지 또한 비싼 고급승용차가 어떤 또 다른 행복을

줄 수 있는지 이런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슬프다. 이런 졸부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평범한 필부들이 범접할 수 없는 유명인이나 예술가들도 죽음 앞에서는 한낮

누군가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따듯한 손길과 등 도닥임과 포옹 같은 진정한 마음의

배려와 스킨쉽을 그 무엇보다 갈구하며 그리워 하는 삶의 진실과 하나님의 종이라

불리우는 목회를 하던 분들도 치매로 늙어 자신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존엄조차도

지킬 수 없는 삶의 진실을 이해한다면 년간 수입 그 몇 십억의 부가 과연 그리

중요할까?

 

더 나아가서 그런 물질만능과 배금주의 사상이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단호히 답은 아니오 이며 결코

또한 될 수가 없다.

 

 

Georges Braque - Musical Instruments

 

가난이 불편하고 힘든 것이라면 그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물질의 축복과

풍요는 편리한 삶의 조건은 될 수 있어도 목적은 결코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때론 그 모든 것을 잊고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허접한

물질의 노예로 전락한 인간들로 세상이 가득하다면 천상병 시인이나 세기의

천재화가 빈센트 밴 고흐 같은 화가나 베토벤 같은 악성이나 후리드리히 횔덜린

같은 독일의 위대한 시인은 세계문화사에 결코 존재 불가능하다.

 

사람은 천 층 만 층 구만 층이다.

돈이 산더미처럼 없어도 나누는 삶을 위하여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와 열정과

지혜와 산지식을 이웃사랑과 사회봉사에 바치거나 자신이 정직하게 벌어 모은

재산을 자신이 남은 인생 먹고 살만큼만 근검절약의 삶을 위하여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환원하고 은퇴한 노후를 정직한 일상과

말이 아닌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인과 일반시민이 있는 가 하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나 월마트 같은 대형 소매점 체인의 창업자

워렌 버�처럼 각종 자선단체를 만들고 운영하는데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억만장자가 있고 한국의 족벌재벌들처럼 편법으로 재산을 자손들에게 상속하고

연 수입이 20억도 넘는 졸부가 세금을 안 내려고 갖은 수법을 동원하다

법원에서 패소하였다는 신문기사 내용하며 인간사회란 그 모습이 천차만별이다.

 

일주일간 먼지 쌓인 집을 청결하게 청소하고 앉아서 내려 마시는 커피 맛이란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잔잔한 기쁨이다. 그 뒤에 바쳐주는 모찰트의

진혼곡이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20세기를 장식한 고인이 된 거장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지휘로 협연한 장한나의 첼로 연주로 듣는

차이콥스키, 생상스, 훠레, 브르흐의 곡들은 더 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그리고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 선생님의 손녀요 황동규 시인의 딸인

항시내의 산문집 <황금물고기>를 읽는 기쁨은 이 각박한 세태와 세상에

영혼의 양식이 아닐 수가 없다.

 

진정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추구하여야 할 삶이 무엇이며 어떤 모양새

이어야 하는 것인가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것은 정직하고 진실되며 참된

내면의 가치발견과 추구하는 데 기초가 되는 일상의 진솔한 삶의 향기가

배어나는 삶의 편린들 하나 하나가 잘 조화된 모자이크 인생이다.

 

때론 냉철한 이성과 예리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면 때론 따듯한 눈빛과

시선과 따듯한 손길과 근면검소하고 부지런하며 때론 적당히 느슨할 줄도

알며 언행 하나 하나에 진정한 겸손과 품위와 소박함이 담겨진 인간적인

순수한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고 인식하는 양식이 겸비된 배려가 병행 가능한

이지와 지성의 향기가 담긴 누군가에게 위로와 사랑이 되며 이 지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작지만 깊이 있으며 진솔한 진실된 삶이 영혼 깊은

곳에 충만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아니고서야 인생은 일장춘몽이요 꽝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기서 신앙은 또 다른 차원이다.

 

Gabriel Fauré : "Messe de Requiem" Op.48


Agnes Mellon, Soprano
Peter Kooy, Baritone
Jean-Philippe Audoli, Violin
La Chapelle Royale Orchestra & Choir
paris Les Petits Chanteurs de Saint-LouisEnsemble Musique Oblique
Philippe Herreweghe, cond.

 


1. Introitus: Requiem aeternam - Kyrie


2. Offertorium: Domine Jesu Christe


3. Sanctus


4. Pie Jesu


5. Agnus Dei


6. Libera me


7. In paradisum


전 악장 이어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