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미술관에 소장된 명기 바이올린 Palacio Real Stradivarius1
몇 일전부터 독백의 제목으로 유행가 가사 같은 <조용히 눈을 감고> 문구가
고추 먹고 맴맴 하듯이 자꾸만 뇌리를 스쳐가다 못하여서 서성이며 회전의자
처럼 돌고 또 돈다. 분위기라도 바쳐주며 마지막 겨울의 애상을 계절 위에
주어 담듯 심심치 않게 비를 연 사흘째 흩뿌려주고 있다. 한 주의 치열한
삶이 끝나고 영혼과 육신의 안식을 위한 황금 같은 이틀간의 휴무시간은
자신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의 여백이다.
첫째 밀린 독서를 통하여서 인도 캘커타 빈민굴에서 희생과 봉사로 일생을
바치고 영면한 인류의 양심인 자애롭고 단아하며 청빈의 상징인 사랑의 선교회
창시자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발걸음 하나 하나를 곁에서 20년 동안 함께 하며
기록한 일본의 유명한 사진작가 오키 모리히로의 저서 < 마더 테레사의 삶
그리고 신념>을 통하여서 사색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면 독일문학의 한 축을
이루는 후레데릭 횔덜린이나 일명 한국의 카프카로 불리우는 나의 문학적
취향의 가치관과 시각에 딱 어울리는 노시인 허만하 선생님의 주옥 같은
시집들과 산문으로 걸어 들어가 그분들의 영혼의 품 안에 간접적으로 안겨
진정한 영혼의 안식과 평안과 행복이란 파랑새 한 마리를 가슴에 안고서
고요히 눈을 감고 장화같이 길쭉한 남미 서부해안의 나라 칠레가 배출한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에 한 사람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연주로
쇼팽의 낙턴에 기대어 마시는 막 내린 신선한 한 잔의 커피 맛이란 그 어느
것과 견줄 수 없는 작지만 진정한 행복이다.
밤이 깊은 시간 꽃잎 위에 봄을 재촉하는 발걸음을 내딛는 빗방울
처마 밑에 낙숫물로 흐르며 그리움의 향기로 고요히 추억 저편 아득한
세월의 뒤안길 유년으로 돌아가 정월대보름 쥐불놀이하던 그 해질녘
꼬마들의 불씨 담은 깡통 돌리기로 검게 그을고 때 국물 흐르던 얼굴들
그 밤이던가 달걀귀신이 나온다며 뜰 돌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모두
광주리에 담아 방안에 숨기고 잠을 자면 눈이 하얗게 쉰다며 부산을
떨며 부름을 깨물어 마당에 던지며 오곡밥을 먹던 시간이란 과거로
타임머쉰을 타고 회귀하는 시간이었다.
문화도 다른 곳에서 세월의 성상을 넘기를 몇 고비 어찌 그런 날들을
기억할 수 있으랴. 문명과 기술의 끊임없는 발달로 단 몇 초안에
넘나드는 대륙과 대륙의 가교 인터넷이란 매개체로 하여금 이제는
기억조차도 안개같이 희미한 한국인이란 정체성으로 살아가던 유년시절은
손길 조차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에서 서성이고 서구문화로 채색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흘러간 세월을 이제는 되짚어본다. 살아온 날들보다
이제는 살아갈 세월이 짧은 것은 틀림없는 진실이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때론 얼마나 우리를 강물처럼 덧없이 흐르는
차가운 세월의 성상 앞에 세워놓고 텅 빈 가슴 골 깊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질곡에서 허함으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지 모른다
때론 직장생활에서나 인터넷 공동체 글방 같은 곳에서 보면 자기 기만에
빠져 세상에는 자기밖에 없는 것처럼이나 자기 위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이나 영원히 살 것처럼 자기당착에 빠져서 자신의 지위나
학식과 학벌이나 재력을 같고 자신은 절대 겸손하다면서도 언어유희나
처신을 어줍잖은 가식과 위선으로 포장하고 남들 앞에서 티 아닌
티를 내거나 자만과 오만에 빠져 가소로운 언행으로 타인에게 은근히
혐오감을 주는 부류들을 보게 된다. 특히 한국사회나 한국인들
공동체에서 가장 심한 것 같다. 도무지 이 부류들은 진정한 의미의
겸손이란 것을 모른다.
알아도 모르는 척이나 있어도 그저 검소하거나 소박한 삶을 모르고
왜 그리도 있는 척을 하늘 끝 가는 줄 모르고 하는지 인식이 있고
차가운 이성과 냉철한 옳고 그름의 상식선 차원의 판단력이나 객관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행동이나 처신을 하는
시건방지고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들이 의외로 많다.
세상에 없는 소시민인 필부들은 근접하기도 어렵거나 불가능하였던
오페라 무대를 주름잡고 한 시대의 역사를 이끌어나갔던 명 테너도
세월이란 성상 앞에서 파파 노인이 되어 그의 젊은 날 녹음한 LP판
포장에 찍힌 그 쪽빛하늘 같은 푸르른 젊고 미남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게 한 인간으로서 그는 질병과 투병하며 죽음의 길로 가고 있다.
그도 따듯하고 자상한 손길과 사랑이 담긴 한 마디의 말에 굶주려
영혼이 배고파하고 있었다. 이것이 인생사요 인간의 진실 중에 하나이다.
영웅호걸도 대부호인 억만장자도 세상의 모든 명예를 온몸에 갖고
사는 명사도 세월의 성상 앞에서는 왕도가 없으며 피할 길도 없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 중 장년에 이르면서 비로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게 된다. 때로는 회갑이 넘어 내일모레면 70줄에 들거나
팔순을 향해 가거나 하는 데도 마음은 청춘이라고 자기가 마치 20
-30대의 젊은이로 착각을 하고 나이나 세월의 연륜에 어울리지 않는
옷 차림새나 부도덕한 행동으로 자신의 이성과 윤리나 도덕을
절제 못하고 타인은 물론 가정과 사회에 해가 되는 비윤리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부끄러움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아가는 초로의
노인들의 탈선을 바라보노라면 마지막 발악으로 바라보게 되며
깊은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어린아이는 어린이 다울 때 어른은 어른 다울 때 비로서 아름답다.
어린아이가 어린이답지 않고 너무나도 영악스러울 때는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끔찍한 일이다. 그 아이가 자라서 이끌어갈 세상이
그려지는 순간 소름이 끼친다. 순수와 인성을 상실하고 살아갈
기회가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순수가 결여된 인간성은 지극히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며 공동사회를 위하여서 덕이 되지를
못한다. 마더 테레사 같은 위대한 인류의 선각자의 사상과는
거리가 먼 성인이 자라서 될 공산이 불을 보듯이 뻔하다.
이웃형제란 말도 모르고 타인을 위한 배려나 사랑을 베풀 줄도
모를 것이며 지극히 극과 극을 달리는 어떤 의미에서든 양극화
현상의 한 요인이 될 것이다.
인간이 나이가 들어 60 고개를 넘어가 칠순을 넘어가는 세월이나
그 이상의 연령대를 넘어가는 일만큼 이 세상에서 지극히 어렵고
처절하고 힘들며 또 처절한 인생의 과정은 없다.
현대문명이 발달하고 의학의 발달로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주변에는 치매나 기타 질병으로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송두리째
잃고 가정과 사회이면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슬픔은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인간의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슬픈 일은 죽은 후에
누군가로부터 애절한 그리움과 애도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손가락질 받거나 사후에도 욕을 먹는 일이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배우고 경험한 만큼의 양식과 지식만큼만
행동하고 처신을 하게 된다. 얼굴을 또한 절대로 속일 수가 없다.
얼굴의 표정 하나 하나 그리고 생김새 하나 하나가 곧 자신이
살아온 역사요 진실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재벌 삼성 같은
곳에서 창업자인 고 이병철씨 같은 분은 그래서 입사 때 관상을
보지 않았나 싶다. 얼굴은 곧 한 인간의 영혼의 창이요 역사라고
오랜 개인적인 경험으로 중년의 나이에 서서 말을 진솔하게 하고
싶다. 절대로 속일 수 없는 것이 바로 얼굴 생김새가 주는 느낌이다.
눈썹 모양 하나 입술 모습 하나 눈꼬리 하나 전체적인 얼굴의
생김새 하나가 전해주는 말없는 말들을 무시할 수 없다.
어찌 자신이 어떻게 늙어 갈 것인지를 예측 가능하겠는가…….
치매 걸리고 싶어 걸리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병석에 누워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에 때론 무거운
운명의 짐이 되고 싶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 어느 누구도 없다고 생각한다.
운명이란 때론 예측불허요 자기의지와는 무관하게 전개되기도 한다.
출생의 축복이 있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생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죽음 조차도 축복이 필요하다. 고통 없이 깨끗하고 단아하며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운명이 바로 생애 최대의 마지막 축복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병상에서 처절하게 고통과 번민으로 고뇌하며
처절한 생애 순간 순간을 살아가며 그런 운명과 이 시간에도 마주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지옥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역으로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영혼이 맑고 고운 아름다운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며 법질서를 유지하고 올바른 윤리의식과 도덕관으로
이끌어 나가는 사회와 국가와 평화가 공존하는 사회 서로를
따듯한 시선과 가슴으로 배려하며 바라볼 수 있는 우화의 강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천국이라면 지옥은 이와는 반대 입장의 설정이다.
진정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며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자신의
이상과 가치관과 시각과 윤리관과 도덕관이나 인생의 취미나
그 무엇인가를 함께 표피적이며 가식적인 겉치레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영혼의 동반자로서 지극히 순수한 인간적인 사랑과 우정을
아무런 조건 없이 아가페적인 시각으로 나눌 수 있는 인연이란
우화의 강을 함께 흐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존재의
가치가 있으며 살아갈 생의 위로와 용기와 사랑이 충분히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생각에 따라서 영혼이 맑고 고운 사람은 꽃 보다
도 아름답다고 노랫말로 읊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 모두에게 따듯한 시선의 눈길과 말 한 마디와 사랑이란
영혼의 종합비타민이 진정한 의미로서 존재 그 실존의 가치와
행복을 위하여서 필요하다. 또한 인간은 진정으로 겸손할 때에
아름답다.
쇼팽 - 첼로 소나타 Chopin Cello Sonata Op.65
Mstislav Rostropovich, Violoncello
Martha Argerich, Piano
1 악장- Allegro mode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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