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막 하려는 시간에 필립핀에서 온 제니나가 묻는다.
생일이 이달은 틀림없는데 언제이지………
흐흐흐………..예야 그것은 특급비밀이란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특히 사생활 범주에 속하는 것을 내 인생에 특별한
기념비적인 사람이 아닌 사람과 나누는 것을 절대금기사항으로 생각한단다.
그래 직장에서 그 누구도 몰라 내 생일이 언제인지 나는 말이야 학부에서
공부할 때 학교 친구들이 열어준 생일파티 이외에는 평생에 생일이라고
특별히 해본 적이 없어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란다.
나이를 한살이라도 더 먹어봐 그 생일이란 것이 어떤 느낌인지…..
나 자신에게 각인시키고 싶지 않아 내가 현재 얼마나 더 인생의 어느 정점에
와있고 또한 늙어가고 있는지를 말이야.
어차피 인생이란 출생이 있으면 늙음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이니까.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그러나 한가지 이것은 있어 다른 사람들은 다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어
그러나 이 세상에서 딱 한 사람 우리 파파가 생일 축하카드를 보내주시지
않는 다면 나는 가장 힘들고 마음이 아플 거야……우리 파파는 일생 동안
단 한번도 나의 생일을 잊어버린 적이 없으시거든 생일카드를 아들에게
보내주실 때면 꼭 저녁 한끼 성찬을 하라고 더도 들도 아닌 딱 40불이나
50불을 넣어서 보내주시지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로서 끝을 맺으시고
그리고 죠지 형이라고 백인이신 분이 계셔 그 형제 분들만이 유일하게
나의 생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분들이지.
내가 학부에서 공부를 할 때 우리 파파는 많은 클래식 카셋 테이프를
녹음하여서 손수 제목과 내용들을 타자로 쳐서 외롭지 말라고 보내주셨어
그리고 많은 교양서적들을 나에게 주시곤 하셨지 차이콥스키 브람스
베토벤 멘델손등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는 그 당시 우리 파파가 다 나에게
들려주신 곡들이지. 그리고 파파는 늘 매달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셨고
나 또한 파파에게 한 달에 두 번씩 편지를 보내드리곤 하였지. 지금도
나는 파파가 나에게 일생 동안 보내주신 편지와 모든 카드는 다 상자에
보관하고 있어 하나도 빠짐없이 소중한 내인생의 편린들이지…..
P,
우리 남편도 그렇게 연애편지들 우리 둘 사이에 오고 간 모든 것을
보관하고 있어.
P,
아……………………..이를 어쩌지 괜히 눈물이 나네……..
예야 울긴 왜 우니…..
그런데 너 절대로 절대로 이것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돼 알았지.
직장에서 그 누구도 몰라 나의 생일을 절대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을 원하지 않아. 생일은 특별한 날이라기 보다 나에게는 그저
내가 이 세상에 생명을 부여 받고 태어난 날이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떠벌릴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더욱이 이 나이에는….
조용히 지나고 싶어. 네가 그렇게 기억하고 싶어하니 너의 축복만은
감사하게 받아들일게. 우리 파파와 나는 생일은 늘 조용히 조촐하게
지내는 사람이란다.
잠시 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오르려니 이를 어쩌나 갑자기
내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이 아니던 가. 아 그리운 우리 파파….
세상에 그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고 마음 한 켠 내어주지 않아도
늘 오늘날까지 내 인생에 좌표가 되어주신 인생의 대 스승이자
아버지 이시며 나의 영원 불변한 이지와 지성에 빛나시는 사랑이신
한국인이 아니신 우리 파파 나의 영혼을 보살펴 주시고 감싸주시며
절대적인 아가페 사랑을 조건 없이 일생 동안 부어주신 분이란 생각이
스쳐가니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찰트의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V 622중에서 아다지오의 애잔함이
이런 그리움일 것이다. 파파가 안 계셨다면 그 험난한 인생의 고난과
시련과 역경을 어찌 헤쳐왔을까 싶다. 외롭고 힘들 때면 파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였고 파파의 편지 하나만으로도 어떤 역경과 고독도
해쳐갈 수 있었다. 아버지 파파는 늘 나와 함께 시공간을 초월하여서
항상 내 곁에 변함없는 상록수로 사랑의 보금자리로 그렇게 계셨었고
현재도 함께 계시며 미래에도 영원히 파파가 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내가 존귀한 하나님 곁으로 가는 그날까지 함께 하실 것이다.
어떤 역경과 시련에서도 나는 절대로 좌절할 수가 없었다.
설령 그 현실자체가 절망이요 좌절이란 진실 앞에서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가슴과 영혼과 절대 겸손과 지성을 갖추고 계신
파파를 생각하면 그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여서도 나는 다시 일어나
처절한 고독과 아픔과 상처와 외로움 앞에서도 당당히 일어서서 홀로서기를
하여야 옳았고 걸어가야 하였다. 그것이 아버지 파파가 나에게 가르쳐주신
인생이기에………….
인생은 도전이며 투쟁이다.
하루에도 수 없는 넋이 나간 사람들이나 도덕과 윤리의식 조차도 없는
파렴치한들을 연령에 고하를 막론하고 세상 가운데서 원하든 아니든
공동체 안에서 조우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또한 눈물겹도록 영혼이 맑고
아름다운 참다운 분들을 조우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늙음과 죽음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아주 가까운 우리 곁에 늘 함께하고 있다.
빈센트 밴 고흐 그는 일생 동안 오늘날 가치로 단돈 미화 1000불 내지는
1050불 정도 되는 400 프랑에 판 단 하나의 작품 1888년에 그린 작품으로
현재는 러시아의 푸쉬킨 미술관에 소장된 “아를르 근교에 붉은 포도밭/
Red Vineyards near Arles”을 남긴 그 당시에 쓰라린 가난과 정신병과 갖은
고통으로 그는 비운의 일생을 살다간 화폭과는 무관한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 값은 오늘날 재테크의 미술시장에서 천문학적인 천정부지의
값이 아니던 가. 얼마 전 올해에 그리스에서 밴 고흐의 스케치 북 진품이 출판업을
하던 사람에 의하여서 발견되었다 하여 지금 확인 중에 있다 한다.
그리스 미술전문가들은 진품으로 판명을 내렸지만 네델란드 앰스텔담
빈센트 밴 고흐 미술관측에서는 외국의 반 고흐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정밀 검사에 들어갔다 하며 가격은 미화 400만불 정도가 되리라 판단을
하지만 소장자가 팔 의향이 없다고 한다.
프랑스의 낭만파의 대표적인 화가 유진 들라크루와 역시 나폴레옹 3세때
고관대작의 혼외정사로 출생하여 일생을 숨죽이고 음울하고 어두운 생애를
살아가야 하였던 화가이다. 그 당시 사회의 조류로는 도저히 입 밖에도
꺼낼 수 없는 그의 출신성분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생부에 대한 비밀
그러나 고관대작의 서출이란 사회적 신분으로 하여금 그래도 그는
루이 필립 왕정과 나폴레옹 3세의 보호아래 정규 미술교육을 받았고
르네상스의 화가 루벤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반 고흐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화가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들라크루와
이다. 들라크루와의 <피에타>와 반 고흐의 <피에타>는 색감만 다를뿐
구도 면에서 거의 유사하다. 다음으로 반 고흐의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화가는 <만종>의 밀레란 것은 논할 여지가 없다.
Vincent van Gogh - Pietà (after Delacroix), 1889
Van Gogh Museum, Amsterdam, Nederland
이 글을 쓰다 말고 갑자기 20세기 오페라의 전설 마리아 칼라스(캘러스)의
생애와 예술에 관한 인터뷰 내용의 DVD를 디 스테파노등 많은 세계 오페라계의
주요인물들과 한 내용을 보고 있노라니 쉽게 한 시간이 흘러갔다. 가장 마지막에
비록 그녀의 예술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무지한 돈 많은 억만장자 오나시스
였지만 그의 죽음 이후 그녀는 빠리의 고급 아파트에서 마지막 생애를 고독과
외로움 속에 53세란 아주 젊은 나이로 1977년 9월 불행하게도 요절하였다.
사후 급히 그녀의 언니만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을 한 후
그녀의 모국 그리스 에게 해에 그녀의 재는 뿌려져 영원히 우주의 원초적인
영원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영원으로 돌아간 에게 해의 빛 바랜듯한 물결을
바라보노라니 순간 나의 심장은 정지된 상태와 다름이 없었고 숨소리는 멈추었다.
그녀는 끝내 어머니와 화해를 하지 못하고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다.
참으로 한 인간으로서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늘 상류사회의 생활을 동경하던 그녀는 오페라 가수로서의 성공으로 진입하여
세기적인 부호 오나시스와 서로가 자수성가란 공통점 위에 결혼을 하게 되며
상류서회 진입 후에는 무식하고 배움이 별로 없던 돈 많은 부호와의 결혼으로
대신 그도 그녀도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게 되고 두 사람 모두 세계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싶어하는 공통점 위에 살아가지만 마지막에
오페라계의 디바는 불행하게도 그녀의 오페라 곡 중에 하나인 토스카의 대사처럼
사랑과 음악을 위하여서 살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이란 아픔 위에 한 생애를 마감하고 만다.
휴무 날 김용택의 <시가 내게로 왔다> 1권을 손에 들고 읽으면서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색의 숲을 거닐며 남미하고도 와인으로 그 명성이
자자한 시인 파불로 네루다의 나라 칠레가 배출한 20세기의 뛰어난
한 생애를 마감하고 떠난 피아니스크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연주로
쇼팽의 낙턴에 기대어 보고 마리아 앤더슨의 음성으로 슈만의 연가
아래서 봄은 아직도 좀 멀었지만 춘몽도 꾸어보고 작지만 이 짧은
생애에 가난한 영혼의 양식을 위하여서 꽤 괜찮은 행복이요 작은
축복이 아닐지…………………행복과 불행의 그림자는 늘 우리 곁에 있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짧은 인생을 매일 먹고 마시고 배설하며 허무하게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뭔가 진지하고 뜻있고 진솔하게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 까. 다만 뜻있게 란 의미는 각자 개 개인의 인생관과 가치관과
시각에 좌우되는 것이다. 무엇을 목적으로 무엇을 위하여서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아닐까 싶다.
돈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에게는 돈은 신이라면
돈이 목적이 아닌 사람에게는 돈은 한낱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과 도구 일뿐이다. 역으로 사회봉사와 다른 어떤 이상을
위하여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각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인생의 목적이 될 것이다.
때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순간 순간 허무에 빠트리며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끝 모르는 깊은 부정과 고뇌에 빠트리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어진 하루 하루 그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는 생활이 필요하다. 때론 존재 자체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삶도 있을 것이다. 집 없이 거리에 이 추운 겨울 방치된 인생들을
생각하여도 존재 자체가 얼마나 큰 고통인가. 살았다고 산 것이
아닌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늘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사하는 생활과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 보다 몇 곱절은 더 물질의 축복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면 반대로 몇 곱절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이웃들도
있다. 그럼으로 우리가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이 있고 누울 따듯한
잠자리와 진정 영혼이 맑고 고운 아름다운 이웃들이 있씀에 감사할
일이다. 행복은 우리 영혼의 깊은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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