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독백 - 첫 커피를 내리는 마음

붓꽃 에스프리 2008. 12. 12. 17:37

뜻하지 않게 죽도록 아프기를 4일 그리고 잔병치레 3일 도합 7일을

아프고 나니 온 세상이 휘청거린다.

 

3일 동안을 물 서너 모금으로 연명하고 나서 오는 전화 조차도 받을 힘이 없어

귀찮고 짜증이 나 제발 전화 좀 하지 마라고 부탁을 할 정도였다. 그저 약을

복용하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철저한 고독 앞에 홀로 서있는 수밖에는 달리

묘수가 없는 시간이었다. 세상이 모두가 검은 색 절망 그 자체였다.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 앞에 서서 자신을 부여잡고 절실한 그리움과 더불어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스쳐지나 가는 낯 설은 이국의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을

동행도 없이 홀로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이제 첫 커피 한 잔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감회가 깊고 생의 나무 가지에 작지만 생기가 스며들어 봄을 위한 연가를

준비하는 긴 동면을 준비하는 느낌이다. 아직도 제 맛을 알 수는 없지만

후각을 스쳐가는 향기로운 한 잔의 커피 향 생의 마지막 잎새는 떨어지지

않았다.

 

간신히 펜을 들어 보름 전에 사온 크리스마스 카드에 가장 싫어하는

인사 치레의 문구가 아닌 진실한 자신의 마음과 가슴을 담아 한 자

한 자 그리듯이 수많은 외롭고 힘든 날에 아버지 자리를 지켜주신

유년의 은사님이시자 내가 모국어로 이 세상에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버지께 모국어 한글로 카드를 쓰는 동안 힘없는 손은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은 오늘의 내가 있기 까지 모든 사랑을 부어주시고 인도하여주신

이제는 늙으신 노인이 되신 이방인이신 우리 아버지 파파 께는 

편지 겸 카드를 흐르는 물처럼 필기체 영문으로 쓰니 힘을 드리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으니 덜 힘이 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부족하기 그지없는 한 영혼을 친혈육 친동생처럼

깊은 배려와 사랑을 부어주신 두 분의 형님들 께는 다시 한글로 그리듯이

써서 우체국으로 향하려는 순간 일주일 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

열어보지 못한 우체통을 열어보니 한 통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반갑게

기다리고 있었다.   

 

매년 12월 첫 주면 도착하는 아버지 파파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언젠가

부터 늦어지기 시작한지도 서너 해가 되어간다. 오늘은 파파의 카드가

아니라 형님의 카드였다. 이제 우리 아버지 파파도 세월의 흐름을

따라 많이 연로하시고 쇠잔하여 가셔서 젊은 날 같은 열정으로 일상을

살아가기가 힘에 부치노라고 지난해 짧게 고백을 하신 글을 받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 모르는 만큼 늙으신 것이다. 역으로 아버지

보다는 젊으신 타인 그러나 결코 서로 타인이 되실 수 없는 형님으로

부터 올해의 첫 크리스마스 카드는 지구반대편에서 바다를 건너

도착하였다.

 

비로소 만 7일만에 처음으로 초겨울 오후의 햇살이 드리우는 문밖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존재의 진실을 확인하는

순간 겨울 이 것만 따스한 훈풍이 얼굴을 스쳐간다. 운전대를 잡으니

왜 그리 조심스러워지는지 감각이 둔해 졋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한 주간 못한 일을 처리하려니 먼저 은행 다음은 진공청소기 부품가계

다음은 서점 다음은 이발소 다음은 컴퓨러 바이러스 방지 소프트웨어를

신년도 것으로 갈아야 하기에 문구점 다 돌고 나니 이미 길 위에 어둠이

내려 희미한 가로등만이 꾸벅이고 있었다.

 

은행을 가도 우체국을 가도 서점을 가도 모두들 왜 그렇게 얼굴이

안 좋고 사람이 맥이 없고 음성이 가라앉았느냐가 인사이다.

전과 같이 큰 소리를 내려고 하여도 아직은 낼 수 없으니 어쩌랴

조금 더 시간이 흘러가고 완전 회복이 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돌아와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방안 공기를 신선한 바깥

공기로 교환시킨 후 두 번째 커피를 내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카치니를 시작으로 슈베르트, 구노의 아베 마리아까지 카운터

테너Vyatcheslav Kagan-Paley의 음성으로 듣노라니 뜨거운

눈물이 양 볼을 타고 내린다. 비로소 회복되어가고 있씀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고 감사의 마음이 저 깊은 곳으로부터 지극히 높으신

그분께 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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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듣기
Vyatcheslav Kagan-Paley (Slava), Counter-Te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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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8)
1. Ave Maria (Giulio Cacc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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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9)
2. Ave Maria (Franz Schu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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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7)
3. Ave Maria (J.S. Bach - Charles Goun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