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밖에는 비가 온다는 전갈이다.
출근길은 바깥 공기가 볼이 시려울 정도로 차가웠다는 것 이외는
비가 올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더니 왼 난데없이 겨울비가 온다는
말인지 나는 몇 번이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질문을 직원들에게
하곤 하였다.
아니나 다를 까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비가와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물기가 보이지 않는가. 현대인의 회색 빛 콘크리트 도시 속의
일상 생활이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주차장을 나서 운전을 하고 거리로 나서니 어둠이 드리운 텅 빈
거리에는 실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순간 한적함이 차라리
휴식 같은 생각이 들었다. CD 플레이어 에서는 박인수와 이수용이
부른 <사랑의 테마>가 흐르고 뒤에 이어져 흐르는 곡은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의 아리아 정결한 여신/Casta Diva으로 끝날 때쯤에는
어느덧 집에 도착하였다.
겨울이라 실내 공기도 차갑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겨울에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사용을 하지 않는 히러를 켜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온도계를 조정하니 개스 불이 올 겨울 처음으로 점화되는
소리가 들린다. 이게 왼 일 짜잔……잠시 후에 봄 여름 가을 동안
쌓인 먼지가 타는 냄새로 화재경보기가 삑삑 울리는 소리에 밤의
정적이 깨진다. 순간 어쩌랴 창문을 다 열어놓고 통풍을 하는 방법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다.
실내공기를 바꾸고 나니 실내온도가 내려가 엄청 추워 샤워 후
옷을 껴입고 목 주위에 스카프를 둘둘 두르고 양말을 신고 나니
안도가 된다. 그래도 창밖에는 겨울비가 하염없이 추적이며 내려
낙숫물 소리도 꽤나 크다. 방안 공기가 차가워 온도계를 조절하고
다시 히러를 점화하니 이번에는 먼지가 다 소각된 후여서 일까
화재경보기가 얌전하게도 잘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동네에 비가 오고 이토록 추우면 도시 외곽 높은 산에는
내일 아침 하얀 눈으로 정상이 고깔모자를 쓰고 있을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하고 몇 일은 겨울답게 추우리라 예상된다.
겨울이 진짜로 왔다는 신호탄이다. 문득 이 어려운 경제위기에
집도 절도 없이 거리에 나앉아 살아가는 홈리스들이나 가난한
노인들과 이웃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파온다.
가난으로 실내가 추워도 난방비도 낼 능력이 되지 못해 이 한
겨울을 추위로 보내야 하는 우리들의 이웃들이 생각 이외로
많다는 것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 일까.
겨울비가 내리고 있는 창밖에는 지금 이 새벽 강한 바람이
몰아친다. 마음 조차도 을씨년스럽고 쓸쓸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제 올 한 해도 보름만 있으면 끝이고 새해가 다가온다.
경기불황으로 사회전반의 모든 사업체들과 자선단체들도
신음하고 있다. 전년도와는 달리 기부금과 기부물자도 전년도에
비하여 감소되었다는 보고가 언론매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감원선풍으로 직장과 집을 잃고 거리로 홈리스
쉘터로 나앉게 생겼다.
안타깝고 우울한 회색 빛의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다.
전과 달리 올해 연말은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많은 소외된
우리들의 이웃들에게도 특별히 더 우울하고 슬픈 연말이다.
죽도록 한 주를 아프고 나서 오랜만에 마셔보는 적포도주 캐버넷
한 잔도 오늘 따라 전과 달리 맛이 없다. 눈을 감고 잠이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이런 때는 골치 아픈 세상사 모두 잠시라도 잊고
보약이다 싶다. 어두운 창밖에는 겨울비가 꽤나 세차게 내리고
동시에 바람도 세차게 불어오고 있다. 마음조차 음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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