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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 독백

붓꽃독백 - 슈바빙에 흐르는 칸딘스키 에스프리

붓꽃 에스프리 2009. 4. 6. 06:46

 

 

 An early period work Munich-Schwabing 

 with the Church of St. Ursula (Kandinsky 1908)

 

 

봄이 오는지 아니면 가는지 혼돈스럽기 짝이 없는 요즘의 이상기온이다.

하루는 우리의 인식 속에 각인된 전형적인 따듯하고 나른한 봄날 이었다.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어제는 날씨가 옅은 회색 빛의 흐린

날씨에 약간은 음산한 시야의 경계선이 멜랑컬리 하기 그지없었다.

 

문득 우체통을 여니 이번 주 주간 타임지의 표지에 동남아시아 수마트라

섬에 살고 있는 호랑이 사진이 실려있는 것이 아닌 가. 왼 일 인가 하고

대강 훌터 보니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에 따르는 지구상의 열 개의

동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특별기사였다. 그리고 다음은 큼지막하게

<Korea After Kim> 김정일에 관한 이야기로 그가 현직에서 물러나도

큰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는 머리글이다.

 

자연환경 파괴와 지구온난화 이상기온의 대표적인 피해지역 중에  

하나가 동남부 아프리카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아마존지역, 알래스카

동북부지역, 중앙아프리카 콩고, 북동부 인도 벵갈 지역과 태국과

월남의 국경지역이 현재 지구상에서 특정 동물들의 멸종위기에 접한

가장 위험한 지역이란다. 그리고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 중에 하나로

팬더도 그 중에 하나에 속한다. 가난한 후진국 지역주민들의 무차별적인

개간과 화전을 이루어 농경지를 늘려 가거나 기업들의 벌채와 벌목에

따른 결과가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산업화로 인한 자동차 행렬은 길어지고 대기오염은 그 도를 넘어

남극의 오존층에 크나큰 구멍을 뚫어놓고 그 여파로 인한 이상기온은

전 지구촌을 매년 강타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아시아의 아랄 해는

물이 말라버려 바다가 사막이 된지가 몇 십 년이고 지구촌이 중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넘치는 산업쓰레기와 공해로 지구는 병들어

가고 있다. 광산에서는 독극성 중금속의 사용으로 인하여 주변지역의

지하수와 식수원의 오염문제로 심각한 환경공해에 지역주민들이

시달리고 있다.

 

North Korea's satellite did not make it to orbit,

the 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 says.

 

CNN 방송게시판은 이렇게 뉴스를 내보내고 온통 세상이 현기증 나게

어지럽다. 장땡은 귀 틀어 막고 눈감고 듣도 보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치란 것이 어디 그런가 말이다. 

 

문득 20세기의 총아 화가 칸딘스키와 전혜린의 뮨헨의 슈바벵이 뇌리에

스쳐간다. 한국인들에게는 전혜린이 지성세계에 없었다면 슈바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면 세계인들에게 화가 칸딘스키가 없었다면 슈바벵은

지금처럼 알려져 있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뉴욕에 소호가 있다면

뮨헨에는 슈바벵이 있고 런던에 웨스트 엔드가 있다면 뉴욕에는

브로드웨이가 있다.

 

뮨헨의 북부지역에 위치한 예술가들의 집합 처였던 이곳에서 1866

12 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생하고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서

러시아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지와 다름없는 오데사로 이사를 하고

성장한 칸딘스키는 여행을 좋아하던 부모를 따라서 이태리의 유명도시를

돌게 되고 그 영향은 후일 그가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모교인

모스크바 대학교의 법학교수로 재임을 하다가 예술가로 변신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895년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회에서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에 감동을 받은 칸딘스키는 화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1910년 그는 그의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상징하는 추상을 시작하게

되며 뮨헨에서 정식으로 미술공부를 한 후 바이마르에 있는 바우하우스

예술학교의 교수로 활동하게 되며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자 모국인 러시아로

돌아가 미술관 단체를 조직하고 수장으로서 러시아 혁명을 거쳐가며

예술단체를 이끌어 가게 되며 독일로 다시 건너가 1928년에 독일 국적을

취득하게 되며 1929년과 1930년에 빠리에서 그의 작품전시회를 하게 되며

1939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194412 13일 프랑스 Neuilly-sur-Seine에서

20세기의 위대한 한 예술가이자 추상화의 대부나 다름없는 그의 생애를

마감하였다.

 

전혜린과 같이 수학을 한 그의 동기들이나 주변인물들이 그녀를 어떻게

평가하든 한 지성인의 족적은 역사가 판단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혜린만큼 한국 知性史에 불꽃 같은 삶의 열정과 족적을 남기고 간

사람이 있을 까? 슈바벵 그 먼 이국 중세의 숲이 우거졌던 세계의 지성

보헤미언들을 끌어 모았던 곳이 새삼스럽게 이 음산한 봄날 영혼을 촉촉히

칸딘스키의 예술혼과 더불어 적시고 스쳐간다. 오후의 창밖에는 햇살이

눈부시다. 살아 있기에 아직도 생은 찬란하며 대지를 호홉 할 수 있고

문학과 예술과 지성을 탐미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인생의 존재 그 자체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한번쯤 치열하게

살아 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