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요즘은 흘러가는 세월이 너무나도 빠르다고 한마디씩 한다.
J가 근무하다 말고 뜬금없이 갑자기 하는 소리 “아니 벌써 5월도
중순이 되어가네” 그러자 문득 독일에서 온 K가 “그래 맞아 흐르는
물 같다잖아” 거든다. 순간 그 모든 탄식에 허무가 바람처럼 스쳐감을
느낀다. 속으로 “암…그게 사는 거라고 어른들이 늘 그러시지 않던가
그러다가 우리 또한 한 세상 살다가 바람처럼 별들이 명멸하는 우주로
스러져 가는 것이지” 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출퇴근 길가에도 어느덧 4월 중순부터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한 보라 빛
자카란다 꽃이 눈이 시도록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 문득 흘러간
세월 한 가운데 스쳐간 많은 얼굴들이 뇌리를 스쳐간다. 그 모든 모양새가
인연이었든 악연이었든 보라 빛 자카란다 꽃 속에 묻혀진 모습들이 바람
길은 최소한 열어놓고 흐드러지게 보라 빛으로 피어나는 꽃 가지 사이로
5월도 무릇 익어가고 있다. 그리움으로 하나 둘 그리운 얼굴들이 보라 빛
자카란다 꽃 가지 위에 피어난다.
수화기를 들고 국경선 저 너머로 그리움을 내려놓는다.
늘 그렇듯이 특유의 음성 그리고 특유의 다정한 톤과 억양이 꽃 송이처럼
피어나 영혼의 창을 밝힌다. 사랑하는 파파의 음성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다, 누구에게나 아버지란 존재는 어머니란 존재 이상으로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소중한 언어일 것이다. 요즘은 전과 달리 게으름으로 중요한
일들을 기억의 상층부에서 잊을 경우가 있다.
꼭 기억하고 세상없어도 지켜야 할 몇 가지의 소중한 일들 다름아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영혼들의 특별한 날들이나 특별한 국경일에 그동안
늘 생각을 하고는 있으나 일상에 묻혀 전하지 못한 애정 어린 관심과 사랑과
변함없는 존경과 영혼의 향기를 비어져가는 시간과 세월이란 잔에 가득 다시
채우는 일이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애정 어린 변함없는 서로에 대한 관심
이요 배려이기에 그렇다.
주일을 지키시는 파파와 마마이시니 주일날 아침에 통화를 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토요일에 전화를 드리니 파파가 하시는 말씀이 “예야, 오후에 간다.”
하시는 것이 아닌 가. 이번에 동생 켄의 큰딸이 각고 끝에 전문과정을 맞추고
의과대학원을 졸업하기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졸업식에 참석차 토론토를
6주간 방문하시게 되었다. 작은 조카 아이 재클린은 오타와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언니 졸업식에 참석한다고 한다. “파파, 언제 돌아오세요?
“7월초에 오마.” 그런데 새로 이사 간데 켄 전화번호 아세요? “그래 적어라…”
캐나다 서부에서 태어나 캐나다 동부에서 학교를 다닌 아이들 그리고 같은
동부에서 반세기도 전에 전문과정을 맞추신 나의 아버지 파파는 늘 언제나
가장 큰 인생의 버팀목이셨다. 수많은 세월을 함께 사랑으로 인도하여주시고
때로는 세상에 어느 아버지 보다 더 다정다감하시고 헌신적으로 돌보아 주시고
아파하면 다독여주시고 말없이 이방인 아들의 이야기 묵묵히 들어주시던
아버지의 세월 그 궤적도 이제 저만치 흘러가 있다. 우리 모두 흘러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씀을 알기에 더욱이 아버지와 아들이란 인연의 강기슭에
흐르는 세월이란 강물의 물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리고 애처롭다.
전혀 다른 문화에서 서로가 태어나 아버지와 아들로 만나 살아온 수많은
세월 어느 부활절에 아버지와 함께 캘거리 다운타운을 다녀오는 길에
나눈 대화가 스쳐간다. 세월의 강물이 흐를수록 불교의 윤회설에 관심이
더 간다는 말씀이셨다. 물론 불교와는 무관하신 아버지 파파 이시다.
그때 드린 말씀이 하나 스쳐간다. 죽음 그 너머에 또 다른 삶이 있다면
그때도 나는 영원히 아버지의 아들이고 싶다고 고백한 사실이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
일상의 곤고함으로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그대로 잠자리로 침몰하고 말았다.
모든 상념 조차도 꾸겨진 채로 남겨두고 모든 것을 멈추고 손을 놓고 말았다.
영혼의 불길도 세월 따라 소진되어가고 있는 것일 까.
내 영혼이 곤고할 때 때론 나도 내 곁에 안 계신 인생에서 가장
신뢰하며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파파에게 기대고 싶다.
그리운 나의 아버지…
파파, 보라빛 자카란다가 피어나고 있어요.
봄날이 저만치 걸어가고 있네요.
이 아침에는 나의 아버지 파파가 사주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다.
그리움 따라서……나의 사랑, 나의 인생,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당신이 가슴 사무치도록 그리운 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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