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s - Creation of the World(천지창조),1841 - Ivan Aivazovsky (이반 아이바조프스키)
눈을 떠보니 장미의 계절 5월이다 싶더니 눈을 감았다가 다시 한번 눈을 떴을 때는 6월이다 싶었다. 아 그런데 벌써 중순의 문턱에 서있다.
가는 시간과 계절과 순간들이 모두가 일장춘몽 같고 뭔가 독한 약에 취하여서 비몽사몽을 지끈거리는 머리와 함께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요즘 가슴 한켠 뻥뚤린 황량함과 때론 허무란 존재 의미의 상실 앞에 선 느낌이다.
누군가 영혼 한 가운데 그 절실한 감성과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부담감 없이 거리낌없이 숨김없이 나누며 남은 날들의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고 논할 수 있는 진실한 들꽃 같이 순수한 대상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처럼 희망사항으로 가슴에 와 닿는 때가 없는 것 같다.
어느 날은 퇴근하여 보면 어둠 속에서 자동응답기의 빨간 불이 홀로 반짝인다. 불현듯이 푸른 하늘을 보고 음악을 듣다가 생각나서 그리움에 전화를 한다는 메시지가 순간 흘러나온다. 그런 인연이 그리운 날 부재중이란 음성 메시지가 나온다. 같은 모습으로 메시지를 남겨 논다.
평범한 일상을 격의 없이 서로 함께 하거나 이지와 지성의 그 깊은 영혼의 오솔길을 소박하고 단아한 마음으로 함께 산책할 수 있는 그런 절실한 그리움의 대상이 그립다.
사람이 산다는 것 별거 아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세월의 연륜에 따라서 육신이 쇠약하여지고 정신도 희미하여져 가는 것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고 때론 깊은 무저갱 같은 허무에 빠트리는 일은 없다. 더욱이 자신이 가슴으로 사랑하는 혈육과 인연들이 늙고 병들거나 쇠잔하여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때론 죽음으로 떠나 보내는 것만큼 우리를 진정 슬프게 하는 것은 없다. 그 아픔과 슬픔은 생각에 따라서는 날이 예리하고 시퍼런 칼로 가슴을 도려내는 그 이상의 아픔이 될 수도 있다.
인터넷 사이버 시대에 넘쳐나는 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 보다 해체된 가족과 혈연과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장벽을 사이에 두고 살아간다. 이웃도 모르고 과거와 같은 인정이나 長幼有序(장유유서)나 朋友有信(붕우유신)이 구시대의 유물이 된지 오래다.
삼강오륜(三綱五倫) 삼강(三綱)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오륜(五倫)에는 다음 다섯 가지가 있다.
사이버 게시판을 보아도 온갖 요설과 잡설이나 흑백논리와 인민재판과 다를 바 없는 언어의 난무와 선동과 인신공격으로 가득 차있다. 어느 사회고 이 부분에서 예외가 될 수가 없다. 한국어 권이든 영어권이든 기타 언어권이든 온갖 언어의 잡동사니와 욕설로 가득하다. 따듯한 인정이나 서로에 대한 인격존중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조금만 서로 시각과 의견이 달라도 순간적으로 철천지원수 견원지간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 아니면 원수다. 단결과 단합 보다는 분열이 앞선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점을 존중하고 타협점을 찾기보다는 흑백논리가 앞서 객관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우리가 요즘 시대와 시대상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사실은 어린이가 어린이답지 않고 너무나도 영악하고 발칙하다 역으로 어른이 어른답지 않고 철부지가 너무나도 많아 할말 안 할말을 가릴 줄을 모르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시대가 변하였다. 억압과 억지논리로 자식교육이나 아랫사람을 수직적으로 가르치고 대하던 때는 이미 과거다. 이제 우리는 세대의 경계선을 넘어 서로가 수평관계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내자식도 내가 마음대로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서로에 대한 인격존중과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며 중용을 지키는 온건하며 유화적인 사고의 개념과 시각이 필요한 시대에 서있지 않나 싶다. 잘난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진정 시대의 양심과 도덕과 인성의 거울이 될 수 있는 스승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한 시대에 서있다.
모두가 장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한다. 밑에서 충실한 견인차 역할을 하는 낮은 마음과 자세를 갖고 살아가는 시대의 양심을 찾기가 어렵다. 폭력과 어거지 막가파 식의 논리가 무성한 시대 객관적인 가치의 판단능력이나 기준의 잣대 보다는 목청이 높은 사람이 집단 히스테리 내지는 편집증 환자처럼 선동과 인기영합의 시대적인 물타기를 하는 것을 먼저 우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점에서는 소이 말하는 평범한 범부나 자칭 지성인들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언론매체 또한 선정적이고 선동적이다.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상실하여 가고 있은 지 오래다. 디지털 신문을 들춰도 모두가 섹스에 관한 광고로 넘쳐나며 부끄러움을 모르고 버젓이 10대 청소년들이 피임약을 사러 약국 문을 서슴없이 넘나드는 시대에 있으며 십대 미혼모가 증가일로에 있다
Aleksandr Pushkin by Vasily Tropinin 화가 트로피닌이 그린 알랙산더 푸쉬킨 초상화
문득 이런 날 떠오른 것이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의 명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읽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가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어 그의 모습을 찾아 나섰다. 얼마나 그 시대에 그는 유명한 문호였으며 명사였는지 러시아의 많은 화가들이 그의 초상화를 작품으로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The portrait of Ivan Aivazovsky, 1847, by Aleksey Tyranov (화가 알렉세이 티라노포가 그린 푸쉬킨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그린 화가 이반 아이바조프스키)
그중에 대표적인 화가는 Ivan Konstantinovich Aivazovsky (1817–1900)란 크리미아 반도에서 태어난 인류 초기 기독교도들 가운데 한 민족인 가난한 아르메니아인을 부모로 태어난 천재적인 해양풍경화 화가였다.
특히 그는 살아생전에 6000점이 넘는 대단한 작품들 특히 바다 정경으로 그의 작품 50%를 넘게 그린 독보적인 러시아를 대표하던 화가로서 인상파가 태동하기 이전 프랑스 낭만파 화가 들라크루와는 그를 지엄하다 칭하였다면 영국의 낭만파 풍경화가 터너는 그를 천재라고 그의 예술성을 예찬하였다.
Pushkin's Farewell to the Sea, 1887 (바다에게 이별을 고하는 푸쉬킨)
Pushkin by the Cliffs of Gurzuf in the Crimea, 1880 (크리마아 구르주후 절벽 옆에 푸쉬킨)
Pushkin and Countess Raevskaya by the Sea near Gurzuf and Partenit, 1886 크리미아 구르주후와 파르테니트 근처 바닷가에서 푸쉬킨과 라에프스카야 백작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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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Museum, Mykolaiv.(바닷가에 푸쉬킨)
이 화가는 아마도 푸쉬킨과 긴밀한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라고 짐작하게
할 수 있을 만큼의 푸쉬킨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죽기 전에
미국을 방문하여 나이애거러 폭포를 구경하고 작품으로 남기기도 하였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까지 한 18세기와 19세기 초반을 풍미한
위대한 해양풍경화 화가 이었다.
Niagara Falls, 1893 (미국을 방문후 그린 이반 아이바조프스키의
나이애거러 폭포)
Athens, the Acropolis, 1883 (아테네의 아클로포리스)
인생은 간절한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고 그리워하며 늘 끊임없이 마음에
담고 서로를 생각하며 배려하고 사랑하고 삶을 나누며 살아가도 턱없이
짧다면 짧다. 서로 다른 모습 그 자체가 인간의 실존이며 진실이다.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 같을 수 없다.
한 귀한 인연 되시는 분이 얼마 전에 이런 귀한 말을 마음 담아 건네 주셨다.
“인간
전 개인적으로 인간보다는 사람을 좋아한답니다
인간은 왠지 좀 약삭빠르고 간교하며 세속적인 느낌이 들고
사람은 왠지 정이 가고 좀 어리숙해 보이면서도
마음 따뜻한 그런 느낌이 들기에
사람이란 말을 더 좋아한답니다
간사하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남을 현혹하지 않는
그저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렇게 순리를 좇아 살고 싶고
또 그렇게 살렵니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이런 분이 아직도 교단에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다.
인생은 짧다 그러나 예술은 길다.
먼저 그대가 가슴을 열고 진실된 마음으로 조건 없는
따듯한 가슴으로 사랑을 베풀지 않는 한 또한 진실된
사랑과 우정도 살아가는 동안 그대 앞에 찾아 오지 않는다.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이며 야누스적인 동물이며 상대적이다.
다만 삶의 연륜과 교육과 환경과 지혜로서 중용을 지키며
자제하며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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