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즉흥환상곡 앞에서 안부를 전하며

붓꽃 에스프리 2012. 8. 8. 07:50

 

20세기와 21세기를 장식한 또는 장식하는 피아노의 거장들의 연주로 들어보는

피아노의 시인 후레데릭 쇼팽의 <즉흥환상곡> 모음집......

 

내 생활 공간에서 산소와 같은 클래식이 사라진지 이미 2주가 되어간다.

현재도 다를 바가 없다. 선율이 선율로 더 이상은 내 귓가에 들려오지 않는다.

출퇴근시간 즐겨 듣던 모든 선율도 지금은 정적속에 잠들어 있다.

 

지금은 조용히 있고 싶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시간이다.

이런 내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칭구가 있어 그것으로 충분히 위로 받는다.

단 하나의 진실로 인생의 행복과 위로와 삶의 용기는 충분하다.

 

지난 몇일전은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

몸살이 나고 말았다.

그래도 아플 수도 없으니 어쩌랴 뭐에 쓰려니 뭐도 없다고

그나마 있던 해열제도 주고 난 후라 내가 정작 아플 때는 사용할 단 한정도 없어

오한에도 옷을 주어 입고 드럭 스토어를 다녀와야 하였었다. 그밤 나는 죽도록

아파 누워서 밤새도록 나락을 헤매고 있었다. 그래도 이래서는 아니 되겠다 싶어

이를 악물고 일어나 국이라도 팔팔 끓여서 먹고 약을 두 번이나 그밤 복용하고

다음날 나는 겨우 출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이겨내고 말았다.

조용히 침묵속에 살아가고 있다.

직장과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의 삶들이 있고 그리고 죽을 수는 없으니 또 살아가야 한다.

어저께 첫 휴무날 이제 나이 약관 20세의 수줍음을 타는 애띤 미소년 같은 체조 볼트에서

가난과 역경을 이기고 인간승리를 일궈낸 양학선이란 선수의 이야기를 읽고 나는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쏟아는지 모른다.

 

꽃보다 아름다운 영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나간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가슴에 스쳐가는 순간이기도 하였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뜨거운 눈물을 더 쏟았는지 모른다.

 

부모를 탓하고 환경을 탓하며 되바라지고 못된 것들이 얼마나 많으며 위도 아래도

없이 막가파로 사는 젊은 이들이 생각 이외로 많은 이 시대에 얼마나 뜨거운 감동인가...

순박하게 생긴 용모의 아버지와 어머니 비닐하우스 움막에서 살면서도 올곧게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남의 것은 모두 똥이라고 가르치며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아들을

가르쳤다는 아버지와 어머니 얼마나 훌륭한 부모인가 싶었다.

 

요즘 싸가지 없는 부모들이나 학부형이 세상천지에 널린 시대에 고등학교 시절 가난과

시련에 절망하고 학교 체조부에서 도주한 그를 찾아 나섰던 은사님을 찾아가 죽이든

살리든 선생님이 알아서 하시라고 말을 하였었다는 양학선의 어머니가 아름답다.

 

교사의 뺨을 때리고 멱살을 잡고 내동댕이치는 부모들도 흔한 세상에서

이런 부모가 있기에 대한민국을 빛내는 한 젊음이 있다는 사실 앞에

아 아직도 세상은 살아볼만 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반백인 내 칭구의 깊고 사려 깊은 우정과 사랑을 생각하면서

나는 가슴이 복받쳐 달빛이 고요한 한밤에 문을 열고 밖으로 어제는

뛰쳐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정처없이 걸어서 마켓을 갔다.

막걸리 한병을 사들고 돌아와 마시고 말았다.

 

시련 가운데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 바로 너 대한의 아들 양학선 이었다.

너의 엄마가 노동일을 하면서도 너를 생각하고 즐겨 불렀다는 노라조의 <형>

나도 들었던 밤이었다. 보통 나는 ABBA의 곡 <The Winnner Takes It All>이나

잔 휠드의 <낙턴>을 내가 힘들 때 듣곤 하였다.

 

그저께 무궁화 꽃편지가 도착하였다.

 

<문득 선생님의 깊고 은은한 정이 그리워 소식 올립니다.

수일 전에 소나기가 지나고 나서 찍은 싱그러운 무궁화꽃을 함께 전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에게는 자판기를 마구 두드릴만한 마음의 여백이 충분치 않아

회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이밤 정도에 생각을 해볼까 싶다.

뭐라고 시작을 하고 뭐라고 끝을 맺을 수 있을지 싶어서다.

 

지난 2주는 선율이 선율로 내 귀에 다가오지 않아 절대 침묵 가운데서 입도 굳게

다물고 살아 입안이 헤질정도였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당한 두 한국인들의

행패에 어이가 없어 할말도 잃기도 하였었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이나 되엇을까

싶은 딸 같은 정도의 나이의 되바라진 여자 아이가 남의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고도

미안하다는 말 보다는 너무나도 시건방지고 기가찬 행동에 경찰을 부르고 말았다.

 

미니 스커트에 월세로 빌린 차인지 사치 좋아하고 남에게 보여주기 좋아 하는

전형적인 한국 사람들 가운데 한사람과 다를 바 없는 머리속에 든것이라곤 똥밖에 없을

아주 불량한 태도의 허접쓰레기 같은 아이를 만난는가 하면 이제 칠순이 된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저지른 일로 애꿎은 사람을 찾아와 직장에서 난리를 피우고 말았다.

 

하도 기가 막혀서 대꾸를 하지 않고 말았다. 참 비겁한 한국인들을 많이 만난다.

영어하는 백인들이나 다른 사람들 한테는 당당하게 할말을 다 못하고 주눅이 들어

살면서 제 나라 사람을 만나면 그 한풀이를 앞뒤 가리지도 않고 해버린다. 이런 때는

우리 같이 한평생을 영어하는 나라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하도 기가막혀

입을 다물고 만다. 말대꾸를 할 가치 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정신없이 그동안을 보냈던지 냉장고 서랍에 큰 무우가 썪어서 버렸다.

만사가 귀찮다고 생각되는 요즘이다.

그저 조용히 있고 싶을 뿐이다.

시간나면 잠으로 하루를 다 보내고 만다.

그래도 피곤하다.

 

그립다.

사랑하는 영혼들이.....

 

일단 살아 있다는 소식을 한편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무더위 잘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운 우리 선생님...........

곧 아오모리로 돌아가실 해피님......

그리고 블로그 벗님들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Chopin's impromptu No. 4 Opus 66 Fantaisie Impromptu in C sharp minor

interpreted by the excellent Chilean pianist Claudio Arrau

 

 

 
Verbier Festival, 2004 in Switzerland, Evgeny Kiss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