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의 근무를 맞추고 돌아오는 길 병상에서 주무시고 계신 노모님을 방문하여 이부자리 잘 덮어드리고
다시 한번 그 여위어 가시는 모습을 천갈래 만갈래로 찟어지는 아픔을 느끼면서 바라보며 어머님의 볼에
내볼을 살짝 대어드리고 우리 애기 잘 주무시라 하니 응 하신다. 그 와중에도 어서 집에 가서 쉬라고
하신다.
발길을 돌려 텅빈 도로를 혼자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길 한치 앞이 안보이는 찰라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싶었다. 피곤해 샤워를 하고 침대에 침몰하고 말았다. 아침결인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뭔 또 위급상황이 발생하였나 하면서 수화기를 들어보니 소셜 워커인데 환자분이 자녀들이 몇인지
알려 달라고 한다. 음성을 듣더니 자는 데 깨웠나 보군요 하기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하고 대체
왜 환자분이 자녀가 몇인지 그 정보가 왜 필요하며 무엇에 사용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사무적으로
서류를 꾸미는 데 필요하다며 우물쭈물 얼버무리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되기에 당신에게 말을 해줄 수 없습니다 하니
다음은 연락처로 모바일 전화번호를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환자에 대하여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알고 있는 상태이고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일이니 정 접촉할 필요가 있으면 지금 건 이 집전화로 전화를 하던지 직장으로
전화를 하라고 하고는 어떤 개인적인 정보나 사생활에 연계된 것을 당신에게 전해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을 하니 그러면 어쩔 수 없지요 하며 잠을 깨운 무뢰한 전화는 끝났다.
모바일 전화 즉 콩글리쉬로 말하는 핸드폰 전화번호는 아주 특별히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아닌 한은
사생활 침해를 시도 때도 없이 당할 소지가 높아 나의 경우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하다 못해
직장에 비상연락망에도 등재를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 나란 사람이다. 헌데 하물며 상업적인
장소에 어떻게 모바일 전화번호를 건네줄 수 있을 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모바일 전화도 갖고 다녀도 나란 사람은 거의 99% 사용을 할일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조카 아들 아이들이 비상시 연락할 길이 없다고 길길이 뛰며 즈네들 전화플랜에서 하나 갖다 주고
들고 다니라고 강요하여 할 수 없이 들고 다니는 사람이며 남들이 다 보는 텔레비젼도 시청 조차도
하지 않는 시대에 역행하는 그런 사람이다. 현대 첨단기기 한없이 편리하고 좋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런 기기에 종속되어 노예가 되어 다 큰 어른이 된 20도 넘고 30도 된 아이가 어디를 같이 가도
텍스트 메세지 주고 받느라고 정신이 없다. 하도 눈에 거슬려 뭐라고 한 마디 하면 서운하다고
한마디 대꾸를 한다. 직장이고 어디고 요즘 사람들은 텍스트 보내고 하느라고 이 첨단기기에
모든 정신을 빼았기고 살아간다.
나란 사람은 이런 첨단기기로 부터 자유롭고 싶은 사람이다.
뭐 내가 삼성이나 애플 같은 회사의 직원도 아니요 사업가도 아닌데 뭐 그렇게 할 말이 많고
바쁘게 처리 할 일이 많다고 운전을 해가면서 남들 뒤에서 운전하고 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손전화로 대화 하느라고 남의 운전 방해하고 직장에서 근무시간에는 엄히 금지된 통화를
해야 하며 집에 와서 열어보면 되는 이메일을 아이폰으로 보느라고 때론 근무태만을 하고
잠시 쉬는 시간에도 그놈의 아이폰을 만지작 거리는 작태들 하며 그야말로 가관치도 않다.
하여 나란 사람은 아예 근처도 안 가는 사람이다.
정 필요하면 집에 와서 컴퓨러를 열면 되는 일이요 이메일 검색하면 되는 일이고 통화는
미리 미리 집에서 출근전에 하던지 퇴근후 하면 될 일이란 생각이다.
모든 것은 습관과 버릇이란 생각이 먼저 앞선다.
첨단기기가 좋은 점도 많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아날로그 방식이 더 인간적이다.
여하튼 이른 아침 한바탕 전화로 방해를 받은 후 피곤해 다시 잠을 더 자고 일어나
한잔의 카피를 내려 마시고 책을 보다가 시간이 되어 다시 집을 나섰다. 어김없이
5시만 되면 치아가 부실한 노모님을 위한 죽을 만들어 노모님 곁으로 달려가 저녁봉양
해드리고 손발 다 닦아 드리고 세수 시켜드리고 손 발톱 정기적으로 깍아 드리고
머리 빗겨드리고 같이 시간을 함께 하고 이부자리 덮어드리고 잠을 주무시면 발길 돌려
돌아오면 어둠이 늘 내린다.
일주일 7일 한달 30일 일년내내 직장과 노모님 돌보아 드리는 일이 내 모든 지난 6년간의
세월이었다. 6년전 우리 미국 독립기념일날 7월 4일 단 10cm 높이 마루와 마루 사이에서
낙상으로 골절을 당하시고 그 길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하게 되셨다.
그 세월동안의 일어난 일들은 말과 글로 표현이 불가능한시간들 이다.
때론 새벽 2시 3시에도 달려가야 하였다면 새벽 5시 6시에 감염으로 열이 올라 달려가야
하였고 밤을 곁에서 지새우고 정신줄을 어느 순간부터 놓으시게 되어 겪어야 하였던
수많은 고통의 시간들 삶으로 당해보지 않은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리 백천만번을
세세히 글로 말로 표현한들 그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하기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단언한다.
이번에도 방광계통에 감염으로 식욕을 잃으시고 식음을 전폐하시고 곡기를 끊으시고
생과 사의 갈림길 저 나락 밑에서 죽음을 기다리시는 시간이었다. 곡기를 끊으신지
사흘 오늘이 나흘이 되는 날 보통 사람들 같으면 거의 탈진상태에 들어가기 시작하여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될 시기인데 이게 왼일 눈망울이 더욱 더 초롱 초롱해지시고
나 안죽는 다고 말씀을 하신다. 탈수가 심하여 입술도 말라 살짝 벗겨지고 어투도
어눌하신데 한사코 안잡수신다고 하신다.
입맛을 촉진하는 촉진제 호르몬제도 아주 작은 병 하나에 몇십만원 짜리가 되는 약인데
하루에 아침 저녁 두번 투여 되는 10cc 그 조차 겨우 억지로 드시고 애기 달래듯이 달래
우유와 이유식과 물을 드리니 오늘은 드시고 배가 불러 더는 물도 못마신다고 하신다.
따듯한 물을 받아 손을 닦아 드리며 너무나도 연노하셔서 피해의식으로 무의식 중에
손을 잡으면 아들이나 손주고 일하는 사람이고 누구고 자주 할퀴시기에 예방차원에서
손톱을 깍아드리고 세면을 해드리고 가만히안식을 하시는 동안 손을 잡아드리고 있다
침대 머리를 내려 눕혀드리고 이부자리덮어 드리고 재워드리고 돌아오니또 하루가 다 갔다.
그저 아들만 보시면 예쁘지 하시면서 얼굴을 쓰다듬는 것이 하시는 일이요 손등에
키쓰를 하시고 때론 잡아 당겨 얼굴을 대어 달라고 하신다. 옆에 계신 할머니 보고
' 할머니, 돌아 가실분이 아니신 것 같아요. 다른 분들 같으면 벌써 탈진해 혼수상태에
빠져 죽기 직전의 상태가 될텐데 사흘을 곡기를 끊으시고도 이렇게 오히려 눈이
샛별처럼 초롱 초롱하시니 돌아가실 분이 아닌 것 같아요." 하니 그렇다고 하신다.
돌아오는 길" 하나님, 당신의 뜻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인가요?" 하고 돌아왔다.
1년 5개월 후면 우리 미국식으로 만 100세가 되신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 이시다.
온전한 사랑과 정직하고 올바른 인생을 가르쳐 주신 사랑의 어머님 이시다.
맘..........나의 온전한 사랑이시다.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나 놀고 싶은 것 다 놀고는 절대로 부모를 절대로
공경할 수 없다. 또한 배우자나 사랑하는 사람의 병상을 절대로 지킬 수 없다.
진정하고 참된 사랑은 조건없는 온전한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즉 나를 버릴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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