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난의 시간을 어찌 표현이 가능할까............
인생에서 이토록 참담한 시간이 있을까 싶다.
이 세상의 어떤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하다. 다만 묵묵히 인고하며 담대하게 운명과 정면으로
대면하고 살아가며 이 시련과 역경과 고난을 돌파하는 것 이외 달리 뾰죽한 방법이 없다.
주의 마지막 출근을 하려니 작은 아이로 부터 위급하다고 소식이 왔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직장에 결근을 통고하고 달려가고 말았다.
소진되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임종의 시간이 좀더 있어야 한 상태였지만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놀래 미리 연락을 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병상에 누운 당사자가 가장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장 윗분 이셨다. 주일이니 연락을 하여도 연락이 닿지를 않아 나머지 가족들을
모두 전 각지에서 불러 모을 수밖에는 없었다. 모두들 달려왔다. 보스턴에서 공부를 하였던
애기 아빠인 T가 제일 먼저 도착하고 병상으로 가 앤티와 인사를 나누고 오후가 지나고 또
한참 지나서야 병상에 환자가 그토록 간절하게 보고싶어하던 칠순을 넘긴 윗분이 오셨다.
베풀어준 모든 사랑에 고맙다고 병상에 환자는 눈물을 쏫으면서 고백하고 있었다.
제일 윗분은 병상에 환자에게 때론 못다해준 배려와 사랑에 용서를 빈다고 뜨거운 눈물을
쏫으시며 내가 해준 것이 무엇이 있냐며 다 네가 열심히 살아서 이루어 놓은 삶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면서 병상 가까이 앉아 환자와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축복기도를 바쳤다. 저녁 늦게 두 아이들의 아빠인 L이 도착하여 앤티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쏫고 있었다. 어린시절 앤티가 돌아가신 할머니와 더불어 모두 돌본
아이들 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40줄에 들어가고 있다. 그러니 나도 늙어간다 싶다.
와중에 손전화가 울려 받아보니 전혀 보지도 못한 왼 낯선 번호 헬로우 하니 나다 하신다.
받아 보니 6월달 손녀 딸 스탠훠드 대학교 졸업식에 오시려다 못오시고 추수감사절 정도에
가마 하시던 골프 선수 W의 외할아버지로 막역한 사이인 어른께서 사정상 11월에 못가고
내년 봄철 3 - 4월 정도에 가도록 해보마 하시며 안부를 물으셨다. 이 기막힌 사연을 어찌
다 전달할 수 있으랴 싶었다. "형, 모든 것이 정리가 되면 동생이 전화 할테니 그런줄
아세요"하고는 그리움의 수화기를 서로 내려 놓았다.
환자 병상에서 밤을 꼬박 새우면서 생각하여도 내 칭구 진경산수 J 만큼이나 신의나 배려나
모든 것에 있어서 섬세하기 그지 없으시고 참 착하신 어른이 아니실 수가 없다고 수많은
세월을 함께 흘러 오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함께 생사고락을 하면서 함께 아파하고
나누는 사람들 물질과 돈으로 환산이 안 되는 고귀한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귀한 영혼들 이다.
극한의 고난 가운데서도 위로와 사랑이 되어주는 귀한 영혼의 향기 어찌 필설로 다 하겠는가?
힘들 때마다 태평양을 건너 꼭 국제전화로 한번도 빠짐없이 위로를 건네는 영혼의 동지
참 진실한 인생의 지기인 내 칭구 진경산수 J의 메모 저녁에 전화를 하겠다는 소식에
잠시 환자 병상에서 집으로 돌아와 통화를 하고 짐을 싸들고 어둔밤 다시 병상으로 돌아와
두 아이들도 요 몇일 무척이나 피곤한데 자라고 하고 병상 옆에서 밤을 새우고 직장을
쉬고 학교를 쉬겠다는 아이들 다 등 떠다 밀어 보내고 조용히 나는 홀로 병상을 지켜가며
진통제를 투여하며 환자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고통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램이다.7 개월이란 긴 고통과 극한의 시간들 환자도 아이들도 참 많이 힘들었던
시간이다. 이제 그 종착점을 향하여 우리 모두 함께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말고 묵묵히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자고 자신과
두 아이들에게 다짐하였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강인하게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인생이란 것을 누가 감히
이것이다 라고 딱 잘라서 정의 할 수 있으랴 싶다.
오후가 되어서 아이들이 돌아 온 후 직장에 병가 신청 3주를 제출하고 돌아 왔다.
대체할 직원이 맞땅하지 않아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뒤로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돌아와 아이들 저녁식사를 시키고 준비하는 동안 임종을 기다리는 당사자가 건강할 때
사놓은 묘자리 명예 이전을 하는 수속을 밟으면서 아이들이 하나는 엄마 것으로 하지만
하나는 엉클 것으로 하자면서 엉클이 죽으면 엄마 옆에 묻히고 싶으냐고 묻는다. 예들아
나중에 엄마 장례식 끝나고 우리 상의하자 하고는 말았다. 왜 이렇게 눈물이 쏫아지는 지
참아야 하였다. 아이들이 힘들어 할까 보아 울지도 못한다. 큰 아이가 묻는다 엉클 나 울게
되면 울어도 돼........
예스,
울고 싶을 때 우는 것은 정상이란다.
참으면 오히려 병이 된단다.
슬퍼서 우는 것이 왜 잘못이니 심리학적으로도 슬플 때 우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란다.
걱정하지마 울고 싶으면 울어........
아.......... 글쌔........................
엉클 눈물이 다 말라서 눈물이 안나올지도 몰라 한다.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에 강조를 하였다.
절망 가운데서도 욥처럼 우리는 강해져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어야 마땅하다고
큰 아이에게 영어로 말을 해주었다. 영어가 아이들의 모국어 이기에 말이다. 그리고 이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가 배운 쓸프고 쓴 경험들을 우리는 이 다음에 우리 같이 불행을 당하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사랑과 힘이 되어 주어야 마땅하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성숙한 모습이 되는
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임종 시간이 아주 가까워 오고 있씀을 경험으로 느끼고 있다.
내 사랑하는 또 한사람의 임종을 기다리며 병상에서 이글을 띠운다.
지금 이 고난의 애통하고 슬픈 순간을 표현할 길은 이 세상 언어에는 진정 없다.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가셨던 길이 이런 것이 었을까?
하나님,
우리 하나님.............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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