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가을비 내린후

붓꽃 에스프리 2021. 10. 27. 08:45

                                       월든 호수의 가을

 

 

오늘은 친구 사무실로 놀러 가려고 작정한 날이다.

그런데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그저 졸리고 앉아 있기도 힘들고 아무 데도

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다리지 않게 오늘은 집에서 머물겠노라고

친구에게 텍스트를 보내 주었다. 그리고 그 길로 문 다 닫고 아침식사도

거르고 잠자리에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어딘지 모르는 곳에 가서 강의를 들으려고 교실이라고 하는 곳에

가서 앉아 있었다. 좀 있으니 한 명 두 명씩 학생들이 들어와 교실을 채우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한 학생에게 대체 이반이 무슨 강의를 듣는 반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내가 듣지 않아도 될 강의면 그냥

내가 사는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작심하고 질문을 하는 동안 보니 세상에 감쪽

같이 내 옆에 있던 내 새 신발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순간 당황해 주의를 살펴보아도 찾을 길이 없었다.

뒷문으로 나가니 헌물건 파는 곳 같은 곳이 있었다. 하나 주운 것이라고는

짝짝인 슬리퍼뿐 이걸 어쩐다냐 맨발로 기차를 타고 그 먼 기숙사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러던 차 나는 또 어딘가를 갔다. 그런데 이를 어쩐다냐 하필 몇층 높이의

건물에 매달려서 제일 밑에 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도 없었다. 떨어지면 크게

다칠 높이 간신히 발을 옮기고 손을 옮겨 잡은 건물 뒤편을 보니 발을 디딜 곳도

없었다. 저 높이를 내가 뛰어 내려야 하나 하는 그 아찔한 순간에 꿈을 깨고 말았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오늘은 그냥 집에 있자 했다.

오후 부엌의 창가에는 눈부신 햇살이 비춰 마음조차 밝아지고 정녕 따스하다.

비 오고 난 후라 하늘도 높고 파랗다. 완연한 가을 같은 느낌이다. 간밤은 어린 시절

두 친구들에게 한국으로 카톡을 보냈다. 친구의 두 동생들이 문득 보고 싶었다.

큰 동생은 호리호리하고 공부를 잘해 서울사대부고를 들어갔던 것으로 내가

기억한다. 막내 동생은 늘 엄마 치마폭을 떠나지 못하고 그런 그들도 이제는

60이 다 넘은 할아버지가 되어 있어 늙은이라며 친구가 소식을 전해왔다.

그 당시 누나는 연예를 해 온 집안을 뒤집어 놓는 일대 사건을 일으켰었다.

그 누나가 아마 고등학교인지 다닐 때였나 그렇고 동그란 얼굴이었다.

보고 싶으니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온 것을 보니 내 기억 속에 있던

누나의 모습은 온대 간대 없고 동생들 또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길거리서

만나면 전혀 못 알아보게 그렇게 변했다. 중학교 다니던 막내도 손자가 있고

그 동생들을 못 만난 세월이 50년도 넘었다. 말이 50년이지 그 아득한

세월을 어찌 헤아리랴 싶다.

늙어가니 옛사람들이 보고 싶고 그립다.

살아생전에 동생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친구에게 텍스트를 보냈다.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친구와 동생들 2명 하고 같이 한번 만나고 싶다 했다.

친구야 큰딸이 우리 도시 근교에 사니 몇 년마다 보러 오면 만났지만 동생들은

50년도 넘는 세월을 전혀 만나보지 못했다. 그 사이에 중학생이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까지 있는 수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얼마나 세월이 덧없나 싶다.

친구가 간밤 보내온 사진들을 몇 번이고 다시 보고 또 보고 그러고 있다.

고대를 나온 친구에게 텍스트를 보내니 다른 친구 S는 도토리 묵 공장을

차려 10월과 12월 사이가 제일 바빠 정신이 없다며 한말은 "그래 우리의

그나마 좋은 시간 10여 년 남은 거야.. 나는 요즘 쉬고 있고 지난주에 신안,

무안, 해남, 강진 등 남도 쪽에 4박 5일 금년에 처음으로 바람 쐬고 왔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잘보내."

그나마 좋은 시간 10여 년 남은 거야 란 구절을 몇 번을 곱씹어 보았다. 그래

맞아 그러니까 자기 관리 늘 잘하고 살며 건강 유지하고 산다면 그나마 다행이며

축복 이리라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또 세월 속에 묻혀 한 세대를 맞추고 이 세상

소풍을 맞추리라 생각한다. 문득 천상병 시인의 명시 <귀천>이 생각난다.

 

귀천

                            - 천상병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