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화씨 90도 한국이나 캐나다의 섭씨 32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여름날이다. 오늘로서 휴가는
마지막 날을 보내고 내일부터 직장으로 복귀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근무를 해야 되는 날이다.
그리고 곧 다음 주면 8월이 시작된다. 8월만 다 가면 한국은 시원해지는 9월이 되겠지만 우리는
이제 시작이다. 한국은 7,8월이 더위라면 우리는 늦게 시작하고 늦게 여름이 끝난다.
어저께는 몇 개월 만에 은퇴 노인들이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로 윗분들을 몇 개월 만에 뵈러 갔다.
철저하게 통제된 담이 쌓여 있고 통하는 문은 정문 하나라 일반인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공동체다.
하여 방문자로서 허가를 받아야 방문이 허락된다. 또한 거주자의 이름들 밑에 방문자 이름이
등록되어 있어야 하고 거주자의 허락이 떨어져야 하루 나절 위에 같은 주차 허가서와 방문이 허락된다.
한국을 다녀오신 이야기부터 우리 선조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았었고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2시간 정도 대화가 오고 갔다. 윗분들에게는 이번 한국 방문이 그분들 생애에
마지막이라고 하셨다. 윗분 대화의 주제는 신앙 생활과 성경 통독에 대하여 자손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하고 정신적인 유산으로 신앙을 남겨줘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윗분의 여성 형제들 가족들 중 첫째분은 곧 90이 되시는 데 재산이 백만장자인 재산을 갖고 있고
둘째 집은 어려서부터 욕심이 많고 악착같아 최고 명문대를 나오셨고 그 집식구들은 모두 박사들이라고
하며 그런 자부심으로 사는 데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시며 우리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공동체와 사회에 부를 환원하고 나누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인생은 한번 태어나 죽더라도 값어치 있는
삶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아주 보수적인 분이시다.
오래전 당신들의 재산을 팔아 명문대에 기부하셔서 지역의 최대 일간지에 기사화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당신들이 다니시는 신앙공동체 선교회에 또 다른 억대 재산을 기부하셨다고 한다.
나와는 다른 성장과정을 거쳐오신 분들 이기에 이야기를 경청해 드리는 것이 최선으로 생각한다. 골프를
왜 안 배운다고 하는지 아쉽다고 하셨다. 나는 결코 부르조아적인 골프는 배우지 않기로 어려서 부터
작심을 한 사람이라 배울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하나같이 주변이 부유한 분들이다. 아마도 물질로는 내가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일 것이다. 윗분들
자녀들 가운데 아들은 미국 최대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다 지금은 아마존에서 근무하는 데 연봉이
주식배당과 더불어 수십만불이 된다고 하시면서 다 신앙가운데 기도로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그 많은
돈 벌어 쌓아 놓지말고 어느 정 도 되면 사회에 기부하라고 하셨다고 하신다.
딸네는 사위가 스탠포드 나와 첨단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데 가족이 매달 하와이로 두 쌍둥이 딸들을
데리고 스트레스 풀겸 다녀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사위를 만나면 언제인가는 성경을 매일 매일
읽으라고 할것이라고 하셔서 다 셩격이 다르고 하기에 스스로 느껴야 하는 것이지 강요는 하지 마시라고
좋게 말씀드렸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에게 손을 벌일 일은 내 남은 인생에 결코 없다고 생각한다. 은퇴 후 삶도 이미
다 준비 해놓고 있는 상태이기에 떼부자로는 살지는 못해도 편안한 삶 정도는 충분히 누릴 수 있고
친구들이나 주변에 아는 사람들 만나면 점심이나 저녁 대접 같은 것 제대로 해줄 수 있는 정도는
충분히 된다. 그렇다고 내가 벤츠나 테슬라를 타고 다니고 싶은 그런 사람도 아니다.
나란 사람은 본래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없는 사람이며 그것이 내 인생의 목적도 목표도 아니었다.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인생의 모토였었다. 이제는 그 여정을 맞출 시간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윗분이 하신 말씀이 오래 여운으로 남는다. 주변에 아는
분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고 귀가 잘 안 들리거나 눈이 잘 안 보이거나 해서 상대방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 한은 점점 만나기가 힘들고 주변이 작아져 저절로 외롭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 점은 우리 모두가 늙어가면서 감당해야 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외로움과 고독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새로운 이슈가 아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생에서 힘들고
수없는 시련과 정신적인 아픔과 상처를 받고 살아왔기에 그 어느 하나 새롭지 않은 편이다. 그러시면서
한국인 친구가 있느냐고 물으신다. 멀리 다른 도시에 한 사람 살고 근처에 한 명 있지만 안 만난 지도
몇 개월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 한국에는 어릴 적 친구라도 연락하고 사는 사람이 있냐고 하시기에
세명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 나니 1.5세라 한국적인 한국인을 만난다 해도 서로가 대화도 통하지 않고 서로 성장한 문화배경과
가치관이 많이 달라 그도 힘들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왜 몇 개월 만에 만나 뵈오니 한국말이 잘 안되는지
몇 번을 한국어를 더듬어야 했다. 결국 답답해 영어와 한국어를 짬뽕해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은 더 이상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발달한 모든 것들이 첨단이었지만
3주가 되니 집이 그리워 돌아오고 싶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윗분과 나만 하여도 또 다른 성장 배경을 갖고 있어 간극이 엄히 존재한다. 대화를 맞추고 우리가 근처
식당에 도착하였을 때는 점심시간이 넘어서였다. 그래도 어찌나 손님이 많은지 북적거렸다. 이 더운
여름에 냉면을 먹고 싶었다. 윗분들은 한국어로 나는 영어로 주문을 했다.
일상에서 직장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아 자판기를 이렇게 두드려도 막상 사람을 만나면 한국어를
상황에 따라서 유창하게 하다가도 역으로 생각이 막혀 못하게 될 때가 있다. 두 문화를 어려서 겪어서
그런 것 같다.
윗분들은 물냉면과 런치 스페이셜 해서 세 가지 음식을 고를 수가 있는 일명 런치 박스를 주문하셨다.
그 메뉴는 불고기 닭고기 갈비 그리고 김치찌개가 있었다.웨이츠레스에게 회 냉면을 주문하면서 갈비를
하나 더해달라고 하니 런치 스페셜로 함께 나오는 갈비와 LA 갈비가 있는 데 무엇을 주문하겠냐고 해서
런치 스페셜로 해달라고 했다. 그러고 생각하니 항상 이 집을 가면 빼놓을 수 없는 해물파전을 추가
해달로고 했다. 반찬이 8가지였다. 윗분들은 보리밥 두 개를 시키셨다.
해물파전이 바삭바삭해서 너무 기름지지 않고 뜨거워 맛이 났다. 회 냉면은 소식을 하는 나에게는 너무
양이 많았다. 식사를 맞추고도 남아 나중에는 싸서 들고 돌아왔다. 그런데 계산서를 받고 보니 전에는
없던 팁 가이드라고 요즘 온라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항목이 계산서에 프린트되어 나와 있었다. 순간
기분이 묘했다. 늘 팁은 나의 경우 알아서 최소한 20불은 주고 나오는 사람이지만 막상 문자화된 것을
보니 기분이 좀 그랬다.
음식에 관해서 나눈 이야기가 있었는데 한국은 하나같이 음식에 미원과 설탕이 들어가 있어서 그 점이
좋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예전의 수타 짜장면이 그리워 간신히 하나 찾아가 보니 진짜 수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죽을 늘어트려 준비해놓고 가장 자리만 조금 수타로 만드는 것처럼 하고 끝이었다며 인천
차이나타운 그 어느 곳에도 예전의 짜장면은 없었다고 하시면서 한국 음식이든 중국음식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먹는 것이 더 입맛에 맞는다고 하셨다.
여기 미국 서는 MSG/미원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여 식당들은 자기네는
미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써 부친 곳도 있다. 나 역시 미원은 평생 사용하지 않는다. 백 설탕도 없다.
흑설탕 봉지 하나 한국산 있는 것도 냉장고 속에서 잠자고 있다.
한국은 식재료가 풍부하고 한국 음식 자체가 수도 없는 가짓수를 갖고 있어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의 한국 방문 목적 가운데 하나가 다양한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지만 내가 먹어서는 안되는 한국 음식들도 많고 소식을 하는 사람이라 가면 생각에
머물고 만다. 길거리 지나가면서 떡볶이나 어묵, 이 단어가 잠시 생각이 안 나 잠시 유튜브를 뒤져 발견했다.
이런 음식을 길거리에서 사 먹는 것이 익숙지 않아 나는 아직까지도 한국을 방문하며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한국을 여행하게 되면 특별히 중심가 호텔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로 몽고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많아 안에서만큼은 영어를 사용해야 되고 그러나 밖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하셨다. 돌아오는
데 얼마나 덥던지 그리고 달아오른 운전대가 너무 뜨거워서 손을 대지도 못해 잠시 문을 다 열고 식혀야 했다.
오늘 아침 유튜브에서 <40년 단골도 일주일에 두 번 가게 만드는 육회비빔밥, 70년 전통 유지의 비결은?!|
KBS 20200828>을 시청했다. 가끔 보면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를 보게 되면 돼지고기도 소고기도 날로
먹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저께도 윗분들이 염소탕을 먹으러 가겠냐고 해서 기겁을 하고 말았다. 양고기를
서양식으로 요리한 것은 먹어도 염소탕은 평생에 딱 한 번 먹어보곤 두 번 다시 먹지 않는다. 멍게도 그 바다
냄새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년에 한국을 방문하면 딱 한 번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음식은 간장 계장이다.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할 때 다른 분들은 그 맛에 어쩔 줄을 모르면서 그 맛에 취해 먹을 때 나는 딱 하나 먹고는 손을 놓고
말았다. 역으로 매운 소스로 무친 양념게장은 의외로 맛나게 먹는다.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있느냐고 어저께 윗분들이 물으셨다. 나는 특별히 남들처럼 좋아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어릴 적에 먹어본 청국장 불고기 갈비야 누구나 다 좋아하는 공통 음식이고 돼지고기는
건강상의 이유로 먹으면 안 되는 입장이다. 특히 한국인 모두가 사랑하는 삼겹살과 제육볶음이다.
음식 다큐를 보니 이북에서 피난을 나와 제일 먼저 족발집을 시작한 장충동에 뚱뚱이 할머니 족발집은
믿기 힘들게 서울 한복판에 작은 굴이 있었다. 그 굴안에 새우젓과 씨간장 같은 것을 할머니가 보관하고
계셨다. 그 흉측 하게 생긴 족발을 역으로 놀랍게도 먹는 나 자신이다. 어느 날 맛을 한번 보고 오우 마이 갓
이거 뭐야 한 적이 있다. 막걸리 한 잔에 족발 금상첨화다.
24시간 숙성된 어느 불티나는 맛집의 가성비 높은 4000원짜리 칼국수다.
그리운 한국 음식 중에 하나가 있다면 어려서 먹었던 가마솥에 시래기 넣고 된장과 갖은 양념 넣고 펄펄
끓인 순댓국, 추운 겨울날 두부 넣고 김치 넣고 끓인 청국장, 호박 고지기 나물, 도라지 무침, 코다리 무 조림 등
기억도 다 못하는 토속적인 음식들이다. 이 모든 수백수천 가지의 한국 음식들을 누군가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다.
프랑스 음식, 중국음식, 이태리 음식 일본 음식들이 유명하다면 한국 음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중에서 한국 음식이 가장 건강에 유익한 음식들이 가장 많다고 생각한다. 산이 많은 나라이다 보니 나물과
채소류의 반찬이 많은 것이 우리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날이 더워 오후에는 오늘은 에어컨을 켜고 있다. 여름 한철 사용료는 지난해 기준으로 한 달에 200불 정도가
넘어간다. 하여 가난한 이들은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을 켜고 살 생각을 못한다. 올해는 8월, 9월, 10월 전기
사용료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다. 진짜 더위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온 세상이 불바다처럼 더운 날은
온도가 화씨 100도 섭씨 37도 내륙 지방의 경우 40도가 넘어간다.
그리고 어저께 윗분들이 하신 말씀 여름에는 한국 날씨는 무덥고 습하니 방문하지 말고 봄이나 가을에 가라고
하시기에 나는 항상 가을에 방문한다고 말씀드렸다 한번은 봄에 갔는데 별로였다. 집으로 돌아와 작심을 하고
거제도 건너 칠천도에 사시는 형님과 안양에 계신 형님 모두에게 안부전화를 드렸다. 두 분 모두 팔순을
넘기셔서 세상없어도 내년에는 찾아가 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휴가 마지막 날인 오늘은 이제 샤워하고 세탁을 맞추고 부엌에 들어가 이 더운 날 가스 켜놓고 요리하기는
무리고 오이 무침이나 할까 싶다. 파스타나 스파게티 요리하기도 싫고 상추와 깻잎으로 돼지불고기나 아니면
불고기를 요리해 쌈을 사 억을 까도 싶고 마음 가는 대로 일단 세탁 후 할 것이다.방문길에 며칠전 만든
도토리묵을 반을 갖다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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