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초 여름밤의 에스프리

붓꽃 에스프리 2023. 7. 19. 14:45
 

 

지금은 새벽 3시 5분 이 곡은 우리가 청소년기를 기억하게 하는 노래다. 칠순의 늙은이가 10대 때

노래를 듣고 있다. 이 곡이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란 프로를 유튜브에서 시청하면서 반세기도

넘는 공백이 된 한국이란 사회의 문화와 삶을 만나는 시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한국어가 유창하다면 유창하게 하면서도 전차가 서대문 마포 동대문과

을지로 4 가를 종착역 돈암동에서 다니던 시절 그리고 백열등이 찬란하게 벚꽃을 비추던 봄날

창경원 앞을 지나가던 날만을 기억하는 것이 전부인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회상하게 만드는 프로 였다.

나는 한국인의 모습을 백 프로 갖고 있는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늙은 노인이 되어서도 지울 수가 없다.

이럴 때면 중국계 캐나다인이셨던 우리 파파 후레드가 사무치게 그립다. 언제나 한국인을 만나면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을 하라고 때론 불호령을 내리셨던 아버지가 목놓아 울고 싶도록 그립다. 올해 3차 휴가를

시작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되어간다. 앞으로 11일이 남아 있다. 그리고 2개월 후 가을날 나는 다시 올해 4차

휴가 2주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새해 첫 주가 올해의 마지막 5차 휴가가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은퇴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자판기 두드리고 멈춘 것이 어저께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 온종일 타이레놀 복용하고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자니 낯 최고 온도 32도까지 올라가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저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누워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창문을 열어 놓으니 찬바람이 들어와 견딜만하다 싶어 이렇게 밤 8시 42분이 되어서 다시

자판기를 두드린다.

녹두전을 부치려고 사 온 간 돼지고기 그리고 순 간 잊어먹어 생각이 안 나는 그 이름 월남 쌀국수에 넣어 먹는

녹두 콩나물이라고 묘사를 해야 될까 싶다. 이렇게 기억이 막혀 한국어 어휘를 모를 때는 나 자신도 답답하다

못해 포기하고 만다. 늙어가니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보면 무엇인지 아는 데 한국어 어휘를 모르는 것들이

많아진다. 어저께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독일 편을 보는 데 친구들이 인천 공항에서 서로 이별을 하며

독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가사와 멜로디는 아는 데 생각이 나지 않는 제목 결국 구글링

하니 <더 터틀즈>의 곡으로 <해피 투게더>였다.

The Turtles - Happy Together - 1967

이곡을 듣노라니 목이 메어오는 느낌이다. 리드 싱어 하워드 케일랜도 보컬리스트 마크 볼만도 올해 나이

만 76세다.  이제는 늙어 젊은 날 20대 같은 미성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2006년 공연을 보면서 느끼게 된다.

그럼 가는 세월을 그 누군들 막을 수 있으랴 싶다.

더위 속에 침대에 누워 있는 데 악몽을 꾸다 몇 번을 일어났는지 모른다. 꿈에 혈압 씨스톨리 위에 가

200이 넘어가 근무 중에 쓰러져 동료들이 와서 응급처리를 하고 약을 갖다 먹이고 난리가 났었다. 하여

일어나 타이레놀 500밀리그램 한정 복용하고 다시 누워 있다 보니 밤  8시가 넘어가 창문을 열어 놓으니

시원한 공기가 들어와 살 것만 같았다. 어지럽고 골이 지끈거려 오늘 밤 직장에 돌아가 딸처럼 생각하는

리아를 만나러 가려고 하던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해가 지고 나서야 두통이 완화되었다. 생각하니 온종일

굶고 잠만 자고 있었다.

하여 어저께 아침나절 일주일 만에 정신 차리고 부엌에 들어가 시금치 세척하고 데쳐 삼배 주머니에 넣고

물을 꼬옥 짠 후 지퍼락에 넣어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 그리고 마카로니 모양으로 생긴 에그 누들을 삶아

파스타 스파게티 소스와 파메잔 치즈 뿌려 간단히 오래전에 담가 놓은 총각김치를 꺼내 맛을 보니 얼마나

맛나던지 백김치도 맛나게 맛이 들고 막김치도 맛이 들고 오랜만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만나는 한국의 음식문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 즐겨보는 것들로 탈북민들 채널 <중고차는 유미 카>와 <강은정 TV>는 즐겨 보는

프로다. 국제가정도 미국에 두 가정, 프랑스 여성과 결혼한 한국 가정, 프랑스 남성과 결혼한 프랑스 브레타뉴에

사는 가정, 한국 순천 어느 산골에 사는 중년부부, 그리고 특별히 <한국인의 밥상>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한국기행>은 보고 또 보고를 반복하는 프로들이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 <삼총사> 2023년작 영화 포스터

 

이 영화가 지난 5월 프랑스에서 개봉되었다. 불행하게도 12월이나 되어야 북미에서 개봉된다고 한다.

자그마치 이 제목으로 제작된 영화는 1948년 부터 시작해 2023년 현재까지 다섯 편에다 변형된

이름으로 제작된 영화만도 세 편이다. 만화 영화 또한 세 편이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흑백 혼혈의

자손 이었다.

나는 그를 공부하면서 오늘 그가 흑백 혼혈임을 그의 사진을 보는 순간 아니 머리가 왜 더부룩이지

흑인인가 하고 영문을 읽어보니 생각이 맞았다 전형적인 흑인들의 곱슬머리 그것을 처음으로 의식하게

되었고 알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토마스 알렉상드르 뒤마 장군은 나폴레옹 시대를 함께한 프랑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흑인 장성이었다. 러시아어로 올라온 것은 있어도 영어 자막이 없어 내용을 알 수가 없어 무용지물 반년은

더 기다려야 정식으로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을 영상미에 담은 <삼총사>를 온전히 감상 할 수 있을 것 같다.

알렉상드르 뒤마 할아버지는 오늘날의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 하고도 나라 전체가 현재 깡패 집단들이

통솔하는 비극적인 과거 프랑스 식민지 아이티에서 근무하던 프랑스 장군이었다. 그런 그는 노예의 후손인

여성과 결혼을 하여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버지를 낳았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문학에 한 획을 그

은 알렉상드르 뒤마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도시 Villers-Cotterêts 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프랑스 왕 후렌시스가 1539년 정식으로 라틴어를 모든 공공 문서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프랑스어로 작성하라는 칙령에 서명을 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흑백 혼혈로 많은

인종차별을 극복 해야만 했었다. 그리고 그는 고향에 묻혔다. 흑백 혼혈이란 이유만으로도 그는 1758년

부터 시작해 32년 걸려 건축한 프랑스 국립묘지 석조 건물 파리의 팡테온에 안치될 수가 없었다.

                                        알렉상드르 뒤마

18세기에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다 사후 그가 출생한 200주년이 되는 해 2002년이 되어서야 자크 시락 대통령에 의해 고향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립묘지 파리의 팡테온에 화장되어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

 곁에 함께 다시 안치될 수 있었고 프랑스 국가의 제대로 된 그의 명성에 맞는 대우를 받게 되었다.

뒤마의 아버지 쪽 혈통은 본래 프랑스 백인이었고 어머니 쪽 혈통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이티의 아프리카

노예의 자손이었다, 부계가 귀족 가문임에도 그는 흑백 혼혈이란 이유만으로도 그 당시에 차별을 겪어야

했고 극복해야만 했었다. 그는 배우 Ida Ferrier와 결혼하였고 두 사람 사이게 자식은 없었다.

그러나 뒤마는 여성편력이 심해 40여 명의 여성과의 관계를 맺었다고 하며 알려지지 않은 사생아만 이 여성들

사이에 네 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의 증손자 Alexandrea Lippmann은 프랑스의 펜싱 에페

국가대표 선수로 올림픽에 여러 번 출전한 메달 리스트로 1960년 78세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는 유대인의

혈통을 갖고 있어서 국제 유대인 체육인 명예의 전당에도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선수였었다.

               뒤마가 마지막으로 생애를 맞춘 프랑스 북부 모르망디에 있는 도시 Dieppe

 

뒤마는 나이 약관 68세로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해안가 도시 Dieppe에서 영면했다. 그가 쓴 명작

몽테크리스토 백작부터 영화로 몇 번이나 만들어진 <삼총사>는 그의 불후의 작품으로 그는 프랑스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작가들인 볼테르, 위고와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대문호다.

                                        김민재 왈 바이언은 모든 축구 선수의 꿈입니다.

"진짜 빨리 오피셜 내놔 나 이러다 죽어!!!!"

이 댓글에 나는 배꼽 빠져 죽는 줄 알았다. 이 글에 올라온 댓글들

"오피셜 나왔어요 유니폼 입은 거"

"님 죽음?"

자다 말고 소피를 보려다 그동안 목놓아 기다리는 굿뉴스 김민재 선수의 공식적인 이적 뉴스가

독일 뮌헨에서 올라왔나 하고 보니 이게 뭐야 올라온 것이었다, 잠도 다 깨어버리고 반나절도 모자라

거의 열 시간을 김민재 공식 이적 뉴스를 찾아 읽어보고 인터뷰를 듣고 있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벅차오른다. 얼마 전에는 이강인 선수가 프랑스의 최강팀 파리의 PSG로 이적을 하고 영국

EPL에서 활동하는 손흥민과 더불어 한국 축구의 영광이 아닐 수가 없다.

                                               우리는 그를 민재라고 부를 것입니다.

  

 

김민재가 소속된 독일의 명문 축구팀 뮌헨의 바이언 팀은 명차 아우디가 구단주다.

 

독일 명문 뮌헨의 바이언 축구팀이 김민재 선수를 다른 팀에 빼앗길까 보아 미리 특급 대우를 해서 의료팀을

파견해 세브란스 병원에서 신체검사한 영상을 공식이적 발표 후 유튜부애 올려놓았다. 그 의료팀이 서울로

들어오면서 찍은 영상에 엉뚱하게도 돈까스 클럽 트럭 사전이 찍혀서 또 무료 광고로 저 회사는 좋겠다고들

한마디씩 했다.

다음은 위에 영상물이 찍혀 올려져서 다들 의아해하면서 축구선수 신체 감사 의료진이 독일서 오는 길에

거기서 왜 저 노래방이 나오고 마사지 만화 가계가 찍혀 나오냐며 다들 배꼽을 잡았다. 오늘은 다들 잠을

설치고 밤들을 새우다시피 하여 출근하여 고생들 하겠다고 다들 또 한마디씩 했다. 나야 휴가니 아무 때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면 되지만 오늘도 왜 이렇게 더운지 오후 3시 40분 현재 기온이 섭씨 30도다.

아예 선풍기 켜놓고 요즘 너무 더워 실내서 위에는 벗고 산다.

밤마다 샤워해야 되고 에어컨 가동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죽을 맛이다. 사계절에서 가장 싫은 계절이다.

하여 한국 방문도 거의 다 가을이거나 어쩌다 한번 봄에 했었다. 견딜 수 없는 무더위와 열기 겨울에도

직장에서 에어컨 팡팡 돌아가 다른 직원들 얼어 죽는다고 할 때도 나는 반팔로 근무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저녁이나 되어야 창문 다 열어젖히고 환기 시켜 방을 식히게 될 것이다. 진짜 여름 더위가 오려면 아직도

멀었는 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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