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 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 누구라도 살아간다는 존재 앞에
원인 모르는 쓸쓸함과 고독과 깊어지는 외로움과 허무와 허망함에 깊이
침잠하는 시간이 있다. 꼭 철학자나 문학가나 예술가나 수도자만이 느끼는
그런 에스프리가 아닌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동물이면 누구나 막론하고
인생의 골목길에서 언제든지 예고 없이 만날 수 있는 동행이 바로 때로는
깊어가는 고독과 쓸쓸함이다.
여름날 창 밖의 눈부신 햇살 그 갈피에서도,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
어슴프레 꾸벅이며 졸고 있는 어둔 골목길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
애절하게 그리운 사랑하는 사람의 한 줄의 글과 불현듯이 수화기 저 너머
음성이 평소와는 달리 젖은 목소리라며 걱정과 염려하는 마음으로
깊어가는 밤 대륙 끝에서 끝으로 걸려오는 우람차고 다정한 목소리에서도
영혼의 물결 위에 충분히 파문은 일어난다.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한 곳으로 불현듯이 여행을 떠나고 싶은 날
듣고 싶은 음악이라면 그 중에 한 곡은 단연 쇼팽의 야상곡/낙턴
Nocturne in E-flat major, Op. 9-2 이 될 것 같다. 행복은 그 자체만으로도
찾아오는 순간 누구나 할 것 없이 기분이 상승됨은 물론이며 충만한
느낌으로 가슴이 벅차 오른다. 허나 외로움과 쓸쓸함과 고독이 깊어지면
인간은 대부분 다들 당황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방황을 하게 된다.
그것을 극복하고 견뎌내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이 나이 들어 중 장년기에 들어가면 더욱이 60을 넘어가면 그때는
얼만큼 배웠고 무엇을 하였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의 향기를
인격적으로 영혼 깊은 곳에 담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
60을 넘어 중반을 넘어가면 배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모두 사는
모습에 평준화를 이루게 된다. 명문대 대학교수 하던 사람도 기고만장 가는
권력가 부호도 명 테너도 늙고 병듬에는 불가항력이다. 치매나 중풍
같은 병을 앓고 싶어 앓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병석에서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암이나 기타 다른 불치의 병으로 죽고 싶어 죽는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는가? 그 누구도 없다. 그럼으로 때로는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안개 속 오리무중과 같은 미로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그러나 많은 경우 부자가 되어 살만하면 그 행복도 잠시 행복이란
것을 송두리째 한 순간에 안아가는 불의에 의한 사고나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주변에는 생각 이외로 많다. 나이 60도 채 안되어서
멀쩡한 사람이 치매로 자신을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식도 못 알아보는 경우 또한 많다. 가장 슬픈 일이다.
다음으로 돈을 치 쌓아 놓게 되었을 때는 대부분 그 부를 나 자신
보다는 자식들이 누리게 되고 나란 존재는 이미 늙고 쇠잔하여
먼 여행조차도 벅차 열정이고 뭐고 다 뒷전으로 물러나고 안이함에
안주하고 만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여가선용 또한 지혜롭게 하여
하고 싶은 취미생활과 여행도 할 일이다.
지난 이틀 동안은 슬라브 문학이 태동한 구 소련의 레닌그라드
러시아 제국의 200년 도읍지였던 상트 페테부르크를 찾아 갔다.
그곳에는 세계문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의 보고 허미티지
박물관이 있다. 런던에 위치한 겨울이면 군밤 파는 길거리 행상들이
서성이는 대영박물관과 빠리 루브르 박물관은 공통적으로 식민지
시대의 약탈 품으로 채워진 약탈의 보고라면 러시아 제국 왕족들이나
귀족들이 수집한 미술 작품들과 문화재로 채워진 허미티지 미술관은
역사적으로 그 격을 달리하고 있다.
피터 대제가 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 강원도가 다 들어가고도 남는
크기의 바다 같은 라도가 호수를 발원지로 흐르는 네바 강을 끼고
수 많은 운하로 이루어져 휜랜드 만과 발틱 해로 흘러 들어가는
물길 위에 일찍이 서구유럽의 문화를 받아드려 건축한 계획도시로
일명 북구의 베니스라 불리는 러시아 대제국의 역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200년 도읍지요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구석 구석
양지와 음지의 역사와 생활상을 찾아 나섰다.
중간 중간 곽재구 시인의 산문 <포구기행>과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아들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시를 읽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해 넘어가는 열린 창가에서 듣고 있었다.
간밤은 홀로 사이버를 타고 그리움이 머무는 러시아를 휘돌아 다녔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으로부터 여름궁전의 끝 모르게 펼쳐지는
140개도 넘는 분수대로부터 겨울궁전 에르미타지 미술관 2층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으로 채워진 곳으로 단숨에 올라가 눈부신 작품들을
만나고 내려와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발점 모스크바로 떠난 긴 여정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담수호 한국문학 근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문인 이광수 작품의 무대인 낯익은 바이칼 호수로 돌고 돌아온 마음의
긴 여정이었다.
한번쯤 생애에 누구든 가 볼만한 슬라브 문학의 태동지요 문화유산의
보고인 러시아의 장엄하고 빛나는 과거 속으로 가보았다.
원시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베리아와 아득한 그리움이
서성이는 휜랜드 만으로 이어지는 아스라한 네바 강이 흐르는
북방의 베니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눈부신 과거로의 여정은
여행을 다녀온 누구의 말대로 네바 강물이 오염되어 지저분하다 하여도
러시아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시각으로는 아름다운 곳이란
사실에는 이의가 있을 수가 없다. 건축하는 동안 세 번이나 무너져 내린
기록을 갖고 있는 그 장엄한 성 이삭 사원부터 여름궁전의 눈부시고
찬란한 분수대까지 이방인의 영혼을 그리움으로 적시기에 충분하다.
그리움은 세속으로부터 우리 영혼을 순화시켜주고 정제하여주는
역할을 하는 인생의 촉매라고 생각한다면 그리움이 없는 인생은 또한
얼마나 건조하며 존재 자체가 무미건조하고 때론 기계적이며 비인간적인가?
애절한 그리움을 안겨주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행복한 일이다.
대상이란 것이 절실하고 애절한 영혼 조차도 흔적 없이 하얀 백색으로
승화시키는 참사랑이나 이지와 지성으로 빛나는 향기 나는 영혼이나
대 자연이나 상트 페테르부르크나 바이칼 호수 같은 문화의 태동지라도
좋다. 아니 그렇지 못한 재래시장통의 허름한 국밥 집이라도 좋다.
그리움이 머무는 곳이 따로 정해진 것이 결코 아니며 상당히 주관적이다.
개 개인의 생활양식과 문화인식 더 나아가서 취미나 감성의 색감의
조화와 연계된 인간의 가장 절실한 감성이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어떤 곳보다 많이 가지 않는 오지나 가장 이 지상에서
외롭고 쓸쓸한 남미의 최남단 파타고니아나 2주나 걸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라 중앙아시아를 관통하여 지나가며 전혀 다른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고 생김새 조차도 전혀 다른 이방인들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충격인가?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가슴으로 느끼는
인간의 따듯한 감정 정은 만국의 언어이다. 하찮은 동물도 주인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아는 데 어찌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사랑과 따듯한
마음 정을 모르겠으며 느끼지 못하겠는가?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삶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이 같은
누군가를 만나 함께 손잡고 더불어 따듯한 마음과 배려로 서로 아끼며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 또한 인생의 축복이다. 누구나 다 한 영혼의
창가 테이블 위에 놓인 꽃병에 그리움이란 꽃으로 꽂힐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고하를 막론하고 같은 시각과 가치관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같은 방향을 향하여 앞서거니 뒤 서거니 하며 서로를 이끌어주고
밀어주며 절실하고 애절한 그리움 위에 이지와 지성을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인식의 교류가 있다면 그 보다 더 인생의 충만한 기쁨과
행복 그리고 존재의 가치에 대한 가치부여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종교와 신앙은 또 다른 별개의 문제이며 인식이다.
오늘은 직장에서 어찌나 바쁜지 눈코 뜰 사이도 없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에는 멜랑컬리한 코드가 불현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한 마디씩 말을 건넨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열심히 그저 일만 하고 싶었다.
어찌 내면 깊은 영혼의 기슭에 서성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한
곳으로 떠나고 싶은 영혼의 흐느낌을 이야기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한 곳으로 떠나 완벽한 홀로가 된다는
것은 또한 절대자와 나만의 일대 일의 관계정립 그 대문 앞에 서게 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하루를 마감하고 돌아와 인터넷 연결에 문제가 발생하여 기술협조를
요청하는 부서에 전화를 거니 미스터 X 가 나왔다. 그가 누구인지는 보안상
알 수도 없고 그가 전화를 받는 곳 또한 이 지구촌의 어느 곳인지는 물론
더 더욱이 알 수 없다.
간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아무 것도 모르면서 헛소리를 해대는 여성과는
달리 그는 곧 바로 지시사항을 내렸다. 순간 음성으로 그가 전에 같은 문제에
부딪쳤을 때 단숨에 주저함 없이 기술적인 문제를 보안하여주어 문제를
해결 하여준 미스터 X 임을 알 수가 있었다. 곧바로 문제는 해결되었고
인터넷 연결이 되어 이메일과 기타 필요한 것들을 검색할 수가 있었다.
순간 스파이가 접선이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불현듯이 벗 목로주점의 글 가운데 <백조 호수>가 등장하고 있지 않던가.
그래 이거다 그 길로 <백조 호수>를 찾아 나섰다. 볼쇼이, 키로프, 로열
발레단까지 세계 발레를 주도하는 최 정상급 발레단의 행적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백조 호수> 전곡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적포도주 대신 참 소주를 한잔 벌컥 들이마신다.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늙어가시는 내 인생의 영웅 우리 파파도 나도 이제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타성에 젖어 게으름으로 거의 매주 주고 받던 편지를 쓴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조차도 없다. 파파와 나도 같이 세월 따라
늙어가고 있씀이 틀림없다. 오 마이 파파 소리가 절로 탄식처럼
입안에서 흘러나왔다. 퇴근길 미쎄스 K가 하는 말은 병든 남편과
휴무 날 머무는 것 보단 근무하는 날이 훨씬 마음이 안정이 된단다.
때론 그녀도 그대로 죽고 싶단 생각을 한다기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늙어가고 병들고 사는 것이 별 것 아니고 사느라고 바둥대고
한 세월 뒤에 남는 허무와 허망함을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고백한다.
올해는 언제 휴가를 가느냐고 물어온다.
뭐 상부에서 그녀에게 붓꽃이 10월에 휴가를 한 달간 가니 다음에
가라고 하였다나 사실 올해는 유럽에 그리운 인연 찾아 가야 하는데
애절한 그리움으로 서로 보고 싶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몇 분이 계신
모국으로 먼저 발길을 옮겨야 함이 옳을 듯 하다고 하고 아마도
이번 여정이 당분간은 마지막 모국 행이 될 듯싶다고 말을 건네자
그녀는 속히 알려달라며 떠났다.
술꾼도 아니면서 포도주를 놓아두고 뜬금없이 소주를 마시고
싶은 마음......
이런 날이면 나는 우리 파파가 미치도록 그립다. 한국인이 아니신
우리 파파 그러나 세상 모두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부질없는
인연일지라도 파파 만은 아가페적인 절대사랑과 배려로 아파서
이방인 아들이 눈물을 파파 앞에서 소리 없이 흘릴 때면 가만이
침묵으로 바라보고 계셨고 이제 좀 괜찮으니 그 한 마디로 모든
아픔을 감싸주시던 우리 파파 어느 해인가 나는 파파 곁을 떠나
오면서 이별이 너무나도 서러워 몸져누워 응급실에 실려가기
직전이었던 아주 아득한 세월 저편이 그리운 날이다.
나의 사랑이여 그대가 그리운 밤 입니다.
멀리 그대와 함께 철 지난 한적한 바닷가로 떠나고 싶은
하얀 밤의 국경선을 넘은 눈부신 햇살이 비추이는 아침
묵언으로 그대의 이름을 가슴으로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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