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oir - The Piazza of San Marco, Venice
간밤은 어찌나 피곤한지 만사를 제쳐놓고 그대로 침대에 침몰하고 말았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눈을 뜨고 보니 창틈으로 보이는 바깥에 가을 아침
햇살이 눈이 부시다.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떠나고 있다.
문득 한잔의 신선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일단 정신은 차려야 하겠기에 세면과 더불어 면도를 하고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내리는 동안 컴퓨러를 열어보니 여기저기에 그리움이 안개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늘 온라인에서 하루에 한번씩은 만나 소식을 주고받는
이웃들이 있다. 성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 그러나 엄연한
이웃으로 상존하고 있다. 잠시라도 안보이면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고
그리워 안절부절하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에서 감지된다.
하는 일도없이 왜 요즘은 그리도 시간에 쫓기는지 모르겠다.
주인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은 쌓여만 가고 가을이라고 제대로
독서다운 독서도 해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하고 예전 같으면 매주
캐나다 서부에 사시는 우리 아버지 파파하고 주고 받던 편지도 요즘은
겨우 일년에 한 두번이나 잘해야 세번 그것도 대단한 작심을 하지않고는
불가능하여진 일이다. 전전주 홍콩으로 겨울을 나시러 떠나시면서
내년 1월에 돌아오시겠다고 늘 어디를 가시면 자상하시게 이 아들에게
연락을 하시고 떠나시던대로 손수 편지를 보내주셨다. 문득 이제
만 81세가 되신 아버지 파파가 해일처럼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아침이다.
아버지 나를 나아주시지 않으셨지만 사랑으로 일생동안 감싸주시고
인도하여주시며 인생의 구비 구비마다 손잡아주시던 우리 아버지 파파
이제 세월이 가면 내 어찌 이 애련한 마음으로 와 닿는 내 인생의 영원한
사랑의 지표요 화신이신 아버지 파파를 보내드려야할지 년전 부활절에
올라가 아버지와 주고받던 이야기들이 바람처럼 영혼 깊은 골짜기를
스쳐간다. 다만 모국어로 아버지 하고 목이 터지게 불러 볼수 없는
이방인이신 나의 아버지 이시지만 오로지 단 한분 이세상에서 나를
믿어주시고 바라보아주시고 안타까울 때는 포근히 사랑이란 이불로
덮어주시며 위로하여주시고 때론 모국어를 상실하려할 때에 가차없이
꾸짓고 혼을 내주시던 아버지가 너무나도 그리운 이 아침이다.
학부에서 공부하며 외로움에 몸서리를 치고 있을 때쯤이면 손수 타자를
치셔서 표지를 만들고 엄선된 클래식 음악을 카셋에 녹음하여서 보내주시고
하시던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곡중에 가장 아끼는 곡은 아마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전공하시려고 하였던 첼로 연주로 듣는 20세기를 장식한 불운의 명연주자
영국출신의 유대계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의 연주로 듣는 <재클린의
눈물Les Larmes du Jacqueline과 하늘의 두 영혼Deux ames au ciel,
Op.25> 그리고 박종호의 “황홀한 여행”의 표지 사진 이태리의 어느 항구는
이 주말 아침을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그리움을 안겨주는 귀한 사이버의 인연들 비록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만은 늘 시공간을 초월하여서 이지와 지성으로 함께 할 수 있으니
충분하며 모든 것을 감사하며 이 조차도 작은 그러나 깊이 있는 축복으로
생각하고 싶다. 양보다는 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고 싶다
세월의 강물이 깊이 흐를수록 더욱 더 깊이 있게 느끼는 것은 진정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수 있는 좋은 인생의 진실한 의미의 벗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말로하는 세상의 친구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이지와 지성
그리고 살아가는 일상의 삶의 애잔함 조차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존할 수 있는 덕이 함께 하는 관계가 필요하다.
스쳐가는 바람한점에 흔들리는 나뭇잎 위에서 조차도 그리움을 느끼게
하여줄 수 있는 그런 애잔한 인연, 뜬금없이 어떤 음악을 듣다가 음악이
상대를 생각나게 하여서 그립다며 머나먼 곳에서 전화를 걸어오는 멋스런
영혼, 보도 위에 나뒹구는 노랑 은행잎을 바라보고 그리움에 가슴에
허전함으로 못다한 그리움에 글을 보내는 향기나는 순수의 영혼 이 얼마나
가슴시리고 찬란한 생의 찬가인가…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높은
정신적인 내면의 가치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감싸주고 위로하여주는
가을날의 찬가가 아닐까…..
그리우면 그립다고 서슴없이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대상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가식없이 서슴없이 말을 하여도 부담이 가지않는 순수한 영혼의 교류와 찬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을날의 찬가인가 안보이면 궁금하고 그립고 허전함으로
기다리는 아름다운 순수 그래서 세상은 아름답고 살아볼만한 것이 아닐까…
때로는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면서 이 넓고 넓은 사이버에서 또는 세속의
세상이란 넓은 바다에서……
작은 시냇물이 흘러가 강물이 흐르고 강물이 흘러가 바다를 이루는 것이라면
아름다운 인연 또한 그런 긴 세월의 여정가운데 가꾸어가면서 이루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아무 것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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