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mbrandt - The Philosopher in Meditation
렘브란트 - 명상중인 철학자
올해처럼 가을을 가을답게 미쳐 피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뜻하지 않은 이상기온으로 시달리는 해도 또한 드문 것 같다..
어제와 그저께는 스페인이 배출한 두 명의 클래식 기타 계의 거장 Andreas Segovia와 Joaquin Rodrigo 중에서 로드리고가 작곡한 곡 중에서 기타 연주곡 "Concierto de Aranjuez"와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나보는 짧은 시간을 가졌다.
인류문명이 모든 것을 첨단제품의 발명으로 상업화로 우리 일상에 더 없는 편리함을 제공하였다면 우리는 지금 그들 첨단이기에 종속되어서 그 제품들의 하수요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극단의 표현으로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한 예로 우리는 이렇게 통신으로 지구촌을 일일생활권은 물론 단 클릭 한번으로 연결되어서 한편에서는 눈부신 햇살이 아침을 열어줄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깊은 밤으로 침몰하는 시간의 여백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날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솔잎향기 그윽한 숲 속 같은 고요가 흐르는 사색을 때로는 할 줄 아는 사람일지 모르겠다. 몇 일전 초로의 올해 나이 만 62세 되신 분으로 어느 날 정기진단을 하는 중에 악성 종양으로 급히 수술을 받으신 분을 찾아뵙게 되었다.
동안에 해맑은 소년 같은 얼굴을 하신 그분은 아랫배에 불한당처럼 찾아오는 통증으로 진통제를 일정한 간격의 시간을 두고서 복용하고 계셨다. 허연 서리가 머리카락 위에 내려서 그 세월의 중후함을 느끼게 하는 정갈함으로 아주 예민한 분이다.
그를 바라보는 순간 스쳐 가는 상념은 가는 어느 글방 60대에 계신 분들도 저런 중후한 허연 서리가 조금은 내린 세월의 모습으로 서 계실까 하는 망상이었다. 불면에 시달리는 그분이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클래식 음악이란 사실을 발견하고 John Field의 차분하고도 정갈한 음색의 톤으로 들려주는 야상곡 Nocturnes을 시디로 구워서 다음 날 다시 외롭고 絶對 絶命의 고뇌어린 순간 앞에 서있는 그분을 다시 찾아갔다.
눈을 감고 고요하게 두러누워 있는 그분의 이불 밖으로 나온 큰 발가락을 검지로 살짝 건드리니 화들짝 놀라 눈을 뜨면서 미소로 맞이하는 것이었다. 순간 구운 시디를 시디 플레이어에 넣고는 플레이를 누르는 순간 그분 곁으로 퍼져나가는 제 1악장의 시작부분의 청아한 피아노 건반의 울림 그 하나에 그분은 바로 이것이라면서 고뇌 어린 얼굴에 순간 맑고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얼마나 기쁘고 다행이다 싶었는지 잠시 차분한 대화를 나눈후 그 童顔의 미소년 같은 초연한 모습을 뒤로하고 큰 사랑은 못되어 드려도 작은 사랑과 위로는 되어 드리겠노라 하고 다시 찾을 것을 약속하고 그분 곁을 떠나왔다.
가장 우리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삶과 죽음이란 숙명 앞에서 가능하면 주어진 우리 인생 그 지상의 여정을 마지막으로 뒤로하고 떠나기에 앞서서 내면적으로 자기 정리를 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과 알파요 오메가도 주변인물과 일상에 대한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의 여백과 그들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바라보고 사랑으로 인식하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만이 아마도 우리는 죽음 앞에서 조금은 덜 초조하고 두렵고 고뇌하는 아픔에서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그 처절함을 초연함으로 더 나아가서 평안으로 맞이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것이었다. 이 말 끝에 그 분이 던진 한 마디는 "그래 이제는 정리하고 있어.." 이었다.
만감이 스쳐가는 동안 초로의 그분을 만나고 뒤돌아 서서 오면서 그분이 젊은 날에 철학을 공부하셨던 분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맑은 미소년 같은 童顔의 모습 안에 흐르는 초연함이 차라리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깊은 내면의 슬프다기 보다는 차라리 깊은 고뇌의 아픔을 느끼게 하였다. 미국 땅에 배우자와 자녀들만이 유일한 혈육인 외로운 분 그분은 눈부신 가을 햇살이 밝히는 창 밖을 응시하고 계셨다.
돌아와서 불현듯이 실존주의 철학을 정립하고 이끌어낸 20세기 지구촌의 지성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와 맹인으로서 역경을 딛고 일어서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의 명곡들을 작곡한 스페인의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의 음악과 글들을 뒤져 기고 있었다.
가곡 보리밭을 들으면서 잠시 그 곡을 작곡한 분의 아드님과 나누었던
지난날의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정녕 그리운 날들의 추억이 오우버랩 되고
있었다. 한국이 내노라하는 기업체에 중견이던 그와 일기처럼 매일
아니 일주일에 시간이 나는 날이면 대화하듯이 나누던 소중한 글들은
문어체로서 지금도 한 권의 책으로 곁에 남아 있지만 혈액문제로 고통을
당하던 그가 어느 날 홀연히 곁을 떠나간 그 깊은 그리움이 스쳐간 자리에는
이제는 그는 없다.
스페인의 작곡가 로드리고는 그 어머니가 티프테리아에 걸린 후 로드리고를 갖게 되어서 그는 출생하면서 장님이 되는 불행함의 출발이었지만 그 당시 스페인 지성들의 메카인 파리로 건너가 그는 음악을 더 공부하고 터어키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빅토리아와의 만남으로 작곡에 몰두하고 불후의 명작 "아랑후에즈의 기타 콘체르토"를 남기고 그는 스페인 국왕의 작위까지 받는 영예를 받았다. 그는 후처의 소생이자 10형제의 막내로 태어나서 불후의 기타 곡의 작곡가가 안드레아스 세고비아와 더불어서 되었다.
사르트르는 어떤가 아인슈타인만큼이나 그도 인기가 없었다. 그 자신이 금세기의 지성의 한 사람이었다면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그 상처로 아주 힘겹고 처절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가 금세기 휴머니즘의 아버지인 앨버트 슈바이처 아프리카 정글의 성자의 조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의 외할버지가 슈바이처 박사의 삼촌이었고 그 외할아버지 샤를 슈바이처는 명문 소르본 대학교의 독어 교수였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윈 사르트르는 사팔뜨기에 키도 작고 외모적으로 지지리도 못난 소년이었던 그는 주변으로부터 왕따를 당하였다. 그의 보수적인 외할아버지 샤를 슈바이처는 그를 엄히 집안에서 교육을 시키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적으로 친구가 없었던 사르르트르는 외롭고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독서와 글을 쓰게되고 그의 명저이자 자서전인〈말 Les Mots〉(1963)은 창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구토는 그를 한 단계 성숙시켜준 작품이요 실존주의 불후의 명저 "존재와 무"는 그가 전쟁포로로서 창작한 글이기도 하다.
때로는 뛰어난 업적을 인류에게 남긴 인물들은 아주 불우하고 힘겨운 인생의 여정을 걸어오기도 하였다. 샹송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에디트 삐아프도 창녀의 딸이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불후의 명곡들을 수많은 지구촌의 인류에게 추억으로 아름답게 남겨주고 있지 않은 가... 밴 고흐는 어떤가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었다. 살아 생전에 그의 작품은 제대로 빛도 보지를 못하는 불행함으로 그는 가난과 정신병으로 비참한 한 인간의 삶을 걸어가고 마감하였지만 20세기 인상파 화단에 불후의 명작들을 남겨서 오늘도 우리들의 영혼에 불을 지르고 열정과 인생의 미학적인 시각의 기교와 즐거움을 남겨주고 있지 않던가.
사르트르만큼 20세기 지구촌에 지성을 남겨준 선각자가 있을 까... 그의 아저씨 슈바이처 박사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면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거부한 행동하는 양심 앙드레 말로나 앨버트 까뮤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행동하는 철학가요 문학가요 정치운동을 하던 지성이었다. 그는 1980년 4.19날 파리에서 폐암으로 서거한 후에 그 유명한 파리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고 그의 평생의 동지인 시몬 드 보봐르 역시 그의 곁에 안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평생 한 집에서 부부로서 살지는 않았다.
잘 배우고 잘 먹고 좋은 집과 환경에서 살아가는 축복도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면 우리가 먹고 자고 배설하고 일하고 자식 낳고 기르고 일하고 돈벌고 살아가는 단순반복이 필요하다면 그 이상으로 때로는 자신이 살아온 일생과 삶을 반추하여보는 사색 또한 인간다운 삶과 죽음이란 명제와 숙명 앞에서 늘 살아가는 우리에게 내면의 성찰과 자아발견의 하나로서 필요한 충족을 위한 조건이다.
사색이 없는 단순 반복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의 충족을 위한 일상이 얼마나 허무하고 처절한가......누구 나가 그렇게 살다가 출생과 배움과 직장과 결혼과 가정이란 울타리를 일궈 나아가는 만큼의 삶의 펼침이라면 다른 영장류와 다른 구별을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명징한 사색 또한 우리에게 때로는 필요하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아만족이란 충족을 발견하고 편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회귀의 여로에서 생을 완성하는 순간을 맞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파요 오메가는 진솔한 인간적인 깊고 그윽한 향기 가득한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진솔한 배려하는 사랑이리라.. 그 진솔한 인간적인 사랑이 죽음 앞에 우리를 덜 두렵고 초조하고 평온하게 맞이하게 하는 작은 묘약이리라......그리움을 잔잔히
안겨주는 영혼이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