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을 보내며 – 마종기
1. 봄
봄이 뒤뜰에서 잠자는 동안
붉은 입술만 가지고 와서
처음부터 나를 떨게 하던 꽃.
긴 잠 깨어 찬비 맞는 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노여움에
퍽 퍽 소리 내며 땅에 지던 꽃.
떠나지 마라.
그림자만 가득한 큰 눈.
왜 이제야 왔느냐고
늦은 원망도 하지 마라.
덧니를 감춘 열띤 방언은
젖은 향만 여기저기 뿌려대면서
목도리도 외투도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다가오는
봄의 가슴들.
2. 버클리대학 겹동백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모두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서
동백은 고창의 선운사 뒷길, 아니면
부산이나 마산 쪽에서 하나씩 시작해
초순경에 내 방을 올려다보는 눈.
버클리대학 겹동백의 붉은 꽃잎이 되거나
대학 교정을 종일 싸도는 노란 꽃술이 되거나.
언제라도 지도 없이도
나는 간단히 네게 갈 수가 있다.
사십 년 이상 닳도록 넘나든 태평양.
그 거리와 폭음과 시차를 다 돌려주고
안팎을 둘러싸고 있는 정갈한 슬픔과
겹동백의 침묵만 싸들고 돌아가겠다.
완전한 것은 이승에는 없다.
동백, 당신이 내 속에 깊이 있어
내가 겨우 연명할 뿐이다. 그뿐이다.
출처 -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2009년 제 54회 수상작 가운데서 25 - 26 페이지에서
마종기 시인
시인 마종기는 1939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연세대 의대,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도미, 미국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했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그는 『조용한 개선』(1960), 『두번째 겨울』(1965),
『평균율』(공동시집: 1권 1968, 2권 1972), 『변경의 꽃』(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그 나라
하늘빛』(1991), 『이슬의 눈』(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2002) 등의 시집과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2003)을 발표했다.
2006년 미국의 화이트 파인(White Pine) 출판사의 '한국의 목소리' 시리즈로,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을 받아 시선집 『Eyes of Dew』를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없이 봄을 재촉하는 비가 양동이로 퍼붇듣이 내리고 있었다.
한 인연을 떠나 보내고 가슴에서 홀연히 지워야 함이 이리도 힘들 줄이야
첫사랑을 떠나 보내야 하였던 아득한 옛일만큼이나 아픈 일이었다.
나를 보듬어 안고 위로하여준 노래 여울목을 들으면서 매달 가는 책방을 들렸다.
모국에서 도착한 문학사상과 현대문학 수상작이 나를 홀연히 서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때론 수백만이 사는 도시에서 이런 책을 찾는 사람은
유일하게 단 한 사람뿐이라고 매니저인 선은 이야기한다. 책방을 나오려는
순간 베토벤의 서간문이 눈에 띄었다 도저히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베토벤이란 한 세기적인 인류문화사에 금자탑을 쌓아 수많은 영혼들에게
불멸의 영혼의 양식을 남기고 간 그를 좀더 심도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서간문에서 그는 무엇을 주제로 어떤 편지를 썼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 순간 만난 2009년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의 수상작 가운데 수상시인이
된 한국아동문학의 대부와 다름없는 마해송 선생님의 영식으로 일본에서
1939년에 출생하여서 연대의대를 졸업 후 현대문학으로 한국문단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활동하다가 60년대 어두운 시대상황에 등 떠밀리어서 미국으로
떠나야 하였고 현직에서 은퇴한 시인은 이제 한국문단의 시인으로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 유명한 명시 <우화의 강>을 만인들에게 선물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언제나 읽기 쉽고 이해하기가 편하다는 데 다른 시인들의 시와는
차이점이 있지 않나 싶다. 또한 우리 일상과 밀접한 주제들로 따듯하고 깊은
사색과 또한 방사선과 의사였던 만큼의 인생에 대한 깊은 관조가 담긴
시선들로 그의 시들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늘 감동에 젖게 한다. 그의 시는
또한 결코 가볍지 않으며 수사나 언어유희가 없는 진실과 과묵함과 차가운 듯
하면서도 자상하고도 따듯한 영혼의 눈빛과 가슴으로 시어들이 구성되어
있다는데 다른 시인들의 시와 그 격을 달리하고 있고 문향이 진솔하다.
그런 노시인이 문학사상 2월호에 이달의 시인이란 주제 인물로 선정되어
읽기만 하여도 시어 하나 하나가 전달하는 시인의 신령한 영혼의 향기에
가슴이 저릿 저릿한 기쁨과 행복감과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현직에서 은퇴 후 성지내지는 문화유적지를 찾아 나서 남미 칠레에
위치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집으로부터 갈릴리 호수까지 두루 여정에
올라 시인이 보고 느낀 것들을 시어로 엮어낸 문향 깊은 시들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자판기를 두드려 앞으로 소개하고 싶다.
퍼붓는 빗길을 돌아와 그리운 님에게 전화를 오랜만에 하니 그곳은
영하의 엄청나게 추운 날씨라고 한다. 언제나 마음 편하게 시간 관계없이
날짜 관계없이 어떤 제약 없이 부담 없이 서로 소식을 전화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장 편한 영혼의 언덕바지인 님에게 달려갔다. 그 동안의 마음
고생도 다 털어 내놓고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신 취향도 아닌 백포도주와 한 잔의 소주에 취기가 올라
수화기를 내려놓고 어떻게 잠자리에 들었는지 잠을 자다 보니 오른쪽
어깨가 쓰라렸다. 손에 상처가 느껴지는 것이 아닌 가. 결국 마음의
상처 위에 최종적으로 남은 것 또한 육신의 상처 취기에 어깨를 침대
모서리에 부딧쳐 다치고 말았다. 이게 왼 일 얼마를 잤을 까 잠을 깨어보니
새벽 6시가 되었다. 머리가 남은 취기로 깨진다.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한잔의 우유를 마시고 다시 잠자리에 누워 모든 것을 잊고 잠을
청하지만 정신이 멀쩡해 뒹굴다 말고 결국 일어나 자판기를 두드려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도 흘러가서 일까 차갑고 쌀쌀하며 냉정한 느낌들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싫다.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그립고 보고 싶으면
부담감 없이 언제고 격의 없이 달려가 수화기 너머로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봄 향기 같은 따스한 온기의 영혼의 향기가 더 가슴에 감동으로
다가오며 마음이 아프면 아픈 대로 허하면 허한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마음 한 자락 터놓고 흉허물없이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영혼이 그립다.
수화기 너머의 차갑고 냉냉한 마지못해 받는 듯한 느낌들이 이제는
싫다. 살면 몇 백년을 사는 것도 아닌데 따스한 가슴도 모자라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은 데 차갑고 냉정한 듯한 찬바람 휑한 쌀쌀한 영혼의 한기가
수화기 너머에서 감지되는 그런 느낌들 이제는 흘러가는 세월의 성상 앞에
멀리하고 싶다. 영혼의 향기 따듯한 사람들이 그립다. 양지바른 영혼의
따스한 언덕바지래야 수선화 한 송이라도 피어나지 않을 까.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영혼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고통 받고 죽어가고
있고 투병하고 있고 가난과 소외로 버려져 있다는 가까운 우리들의 이웃이나
지구촌 곳곳을 생각한다면 인생이 때론 얼마나 짧고 처절하며 어두운지 모른다.
어두운 곳에는 언제나 빛이 필요하다.
그것이 하나의 작은 향기 나는 영혼의 손길로 빗어진 촛불이든 가슴 따듯한
손길의 진정한 사랑의 혼불이든 어둠을 비추이는 진실 하나 그것은 진솔한
휴머니즘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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