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독백 - 그리우면 그립다 말하리

붓꽃 에스프리 2009. 2. 16. 07:48

 

봄을 재촉하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흩뿌린 차가운 겨울비가 멈춘 후 바깥 공기는

차갑고 실내온도 또한 낮아 히터를 잠시 켜야 할 정도다. 문득 기억도 못하는

발렌타인 날이라고 호들갑들을 떨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가장 슬픈 날이기도

하다. 님이 떠나 신지 몇 해가 되어가는지 조차 솔직히 알지도 못한다. 님은

그 날 달려간 아침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홉기를 꽂고 계셨었다.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을 한줄기 주루룩 양볼로 흘리시던 사랑하던 내님은 해질녘 석양빛이 창밖

하늘가에 붉게 물들어 오던 시간 나의 마지막 굿바이 키쓰와 함께 그렇게 한 생애를

맞추시고 눈을 감으셨다.

 

발렌타인!

누가 말했던가 사랑을 나누고 표시하는 날이라고 그 순간 내님뿐 아니라 다른

많은 영혼들 또한 호홉을 멈추고 영원의 길로 떠났던 시간과 영원이란 찰라의

순간 문득 스캇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내님 그리고 B 선생님 생각에 코끝이 시려오고 그리움에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립다 아니 간절히 보고 싶다. 죽음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킨다.

 

B 선생님이 떠나 가신지도 어언 몇 해가 되었다.

4월이 오면 그분의 영혼의 창가에서 짧지만 굵은 생의 곡선을 함께 하얀 도화지에

그렸던 그분이 남겨주시고 간 정리와 추억과 사랑과 우정을 나는 John Field

낙턴 위에 다시 실어 보낼 것이다. 그분의 병상에서 늘 함께 듣던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이별 곡이 되어버린 눈부시게 잔잔하고 아름다운 곡 전곡을 한 잔의

향기 나는 커피잔 위에 음미하며 이제는 영원으로 떠나가신 내님과 그분을 봄을

기다리며 회상의 길에서 음미하리라.

 

매일 비가오나 햇살이 눈이 부시나 B 선생님의 병상을 들려 20 -30 분을

잡아드리던 그 야윈 손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이지와 지성의 화두들과

그분의 삶과 죽음을 앞에 놓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던 시간들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라며 비록 나는 죽지만 진실된 사랑을 받고 가노니 행복하며

진정 고맙다고 하시고 눈을 감으신 선생님이 그리운 날이다.

 

부귀공명을 위하여서 인간은 출생하는 순간부터 살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하나의 학벌을 위하여서

그 하나의 권력을 위하여서

그 하나의 지위를 위하여서

그 하나의 명예를 위하여서

그 하나의 부의 축적을 위하여서

 

그러나 어느 인생의 정점에 서게 되면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손에서 모두

놓고 영원의 먼 길을 떠나가야 한다. 사랑하는 모든 인연들은 물론 처자식과

남편과 부모형제 조차도 끈을 놓고 홀연히 그 외로운 혼자만의 길을 누구나

떠나야 한다. 때론 이런 절대 절명의 순간 앞에서 부귀공명 그 모두가 얼마나

허망하고 또 허무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주어진 생의 여건과 각자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살아가야 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이 있다.

 

가난은 부끄러운 일은 아니어도 불편하며 미천한 삶 보다는 질과 양이

균형을 갖춘 삶이 바라보기에 더 아름답고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며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부모님과 가정에서 성장하여 좋은 교육환경에서 최선의

교육을 받는 것 또한 살아가는 인생의 조건을 한 단계 높이 끌어 올리는 데

필요한 충분조건들 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 하여서 각자

개 개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비록 그 모두가 장미 빛의

새옹지마라고 하여도 그렇다.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도전이며

삶이다.

 

크게 생각할 것도 없다.

살아가는 동안 타인에게 해악이 되는 삶을 살지 않도록 노력하고 처신하며

지나친 욕심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진정한 삶의 의미조차도 바라보지 못하고

물질의 뚜쟁이로 전락하는 일은 피하며 지나치게 까다롭고 성질 못된 늙은이가

되지 말 것이며 입에서 나오는 말 모두가 거친 자갈밭 같아 온갖 추하고 더러운

욕설과 언어의 배설을 하지 말 것이며 따듯한 시선과 가슴으로 살아가는

노인이 되어 자신이 살아가는 삶을 각기 선 자리에서 목련 꽃 같이 단아하게

살아만 갈 수 있다면 그리고 누군가의 그리움으로 인생에 남아 따듯하게

마지막 숨결이 휑하니 스쳐갈 때 다가와 두 손으로 아직은 따듯한 체온이

남아 있는 손을 잡아 줄 수 있고 굿바이 키쓰를 해줄 수 있는 정도의 삶을

살아가면 그렇게 후회스런 인생은 아니지 않을 까 싶다.

 

사랑과 배려만이 우리 생애의 남은 희망의 길 일지도 모른다.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에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쁜 숨소리 따라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몰랐다.

저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출처 – 2009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페이지 37 -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