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내리고 나니 일기가 변하여서 춥기로 말하면 한기가 뼈 속까지
파고들 만큼 기온이 뚝 떨어져 춥다. 출근하니 남들은 춥다고 긴 소매
옷을 입고 다니는 데 반팔을 입고 근무를 하니 모두들 인사가 춥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바깥에서는 찬바람이 불어 윙윙거리고 겨울비가 내렸으니
근거리 산정에는 하얀 눈을 꼬깔 모자처럼 쓰고 있을 것이 뻔한 일이다.
아니고서야 이렇게 뼈 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느낄 수가 없다.
하루의 일과를 맞추고 귀가하자마자 한잔의 따듯한 커피를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넬라 향 가득한 커피를 내려서 첫 한 모금을 마시니 그 맛이란
그윽하다 못해 추위를 녹여주며 약방의 감초처럼 누군가의 사색의 공간에서
들어보는 옛추억으로 가득 한 곡 Johnny Dorelli의 L’immensita(눈물속에 피는 꽃)은
더욱이 아름답다 못해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절실함 앞에 사람을 세우고
만다. 그러나 존경하는 어른이 당하신 애통한 마음과 깊은 상실감이 동반되는
슬픔을 생각하니 Johnny Dorelli의 L’immensita는 더 절실한 느낌으로 다가오다
못해 뜨거운 눈물과 아픔을 신음처럼 토해내게 하고 만다.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지와 지성과 우정과 사랑을 절실한
감성으로 함께 하여본 사람은 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그 슬픔과 아픔과 상처와 고통과 상실감과 허무한 마음과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애통한 일인지 이해 이전에 폐부 깊숙이 아픔을 함께 느끼게 된다.
겨울비는 다시 내리고 가슴 한켠을 스쳐 지나가는 쓸쓸함과 정신적으로
함께 나누는 슬픔과 애통한 마음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일단은
주변의 사랑하는 모든 인연들을 다시 뒤돌아 보고 깊은 사색에 머문다.
신종훌루 독감주사를 직장에서 실시하겠다고 맞던지 아니 하던지 서류에
싸인을 하여 달라는 공고문이 나가자 한결 같이 전 직원들이 안 맞겠다고
마치 싸인 이라도 하면 당장 소문에 나도는 부작용이라도 와서 사람이
하루 아침에 치명상을 당하고 병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야말로 난리
법석을 피우며 작은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일반독감주사를 맞고서
여태까지 부작용으로 고생한 경험이 전무한 본인은 신종훌루 독감 주사를
맞겠다고 서류에 싸인을 하고 맞았다. 아직까지도 직장 내에서 신종훌루
독감주사를 맞은 유일한 단 한 명의 직원이 되어서 온 한 주를 그야말로
어떠냐고 묻는 질문에 시달려야 하였다.
“어떻긴 어때 네가 보다 싶이 멀쩡하게 이렇게 살아 있잖아.
그뿐인 줄 아냐….칵테일 한 잔하고 적포도주 한 잔을 마시고도 아무렇지도
않더라……괜시리 호들갑을 좀 그만들 떨어라. 정작 육안으로 그 균이
보이지도 않는 신종훌루에 걸리면 그때는 어떻게 할거니? 물론 주의는
요하겠지만 부작용으로 뒷걸음질까지 친다는 괴소문은 지나치게 과장된
이야기에 불과해 그렇게 겁들이 많아서 어떻게 사니…………”
이렇게 한 주가 지나가는 동안 주말이 다가오니 “금요일 작업이 끝난 후에
S의 집에서 작은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그리 알고 올 것” 이렇게
이메일이 날아왔다. 비는 철철 오고 있어 잠자리에 들어 있는 데 왼 전화가
오고 있지 않은가. 오랜만에 동생 같은 친구 S로 부터 전화가 왔다. 전에
크리스마스 이전에 올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만나 그리움의 회포를 풀자고
그의 전화에 약속한 날이 된 것이다. 얼마 후 그가 와서 차에 타란다.
비가 내리는 도로는 비에 젖어 차들이 모두 서행이다. 만나면 우리가 늘
즐기던 감자탕을 오늘만은 옆으로 밀어놓고 불경기에 장사도 잘 안 되는
요즘 철판구이 집으로 향하자고 한다, 늘 채식만을 하던 일상에서
오늘 하루만은 벗어나 오랜만에 그리운 사람을 만나 겨울비가 내리는 날
잔잔한 담소를 나누고 돌아와 그의 손에 한 달이나 지나 잘 숙성된 포기
김치 한 병을 마음 담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차에 실어주고 오랜만에
이발소에 들려 이발을 하고 부지런히 간 스튜디오 세상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시간 S는 또 다른 작품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의 열정은
대단한 추진력과 박진감으로 가득하여 참 많은 작품을 그동안 맞추었다.
겨울 비에 촉촉히 젖은 도로 위에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은 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 같이 작업을 하는 몇 사람이 모이니
왁자지껄하고 S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모두들 팔을 걷어 부치고
부엌으로 들어가 멕시코 음식인 타코 소스를 준비하는 동안 그동안
완전히 화랑으로 변신한 S의 집안에 걸리고 바닥에 놓인 수많은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각기 다른 서로의 취향에 따라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작품 앞에서 탄성을 지르고 평을 하고 드디어 파티는
시작되었다.
그 소리도 아름다운 크리스털 잔에 프랑스 보르도산 적포도주를
한 잔씩 따라서 건배를 하고 있는 동안 활기차고 걷기 벗은
S의 딸은 주문한 스시를 찾아 갖고 문을 열고 들어와 늘 그렇듯이
명랑한 음성으로 인사를 한다. 아 그런데 이게 왼 일 치즈에 자극적인
약간 매콤한 것이 가미되어 있어 매운 음식에 맥을 추지 못하는
위를 뒤흔들어 속이 아려오는 것이었다.
좀 시간이 흐르니 B가 흑맥주를 마시자고 제안을 한다. 네델란드
맥주 하이네켄 맛에 일격을 가하고 영국산 뉴 캐슬을 마시기 시작하고
집주인 S의 얼굴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 한 잔에 홍당무가 되고
J의 얼굴은 하얗게 되고 지나온 1년을 뒤돌아 보며 모두들
서부 예찬으로 대화가 흐르면서 세상 어느 곳을 다녀보아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도시만큼 기후가 좋은 곳이 없다고 다들
한 마디씩을 한다. 그래 우리는 영원한 서부인 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그 의견에 한 표를 더하였다.
따듯하고 정감이 넘치고 마음자락 넉넉한 파티를 끝내고 모두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부리나케 집주인 힘들지 않게 접시를
닦고 정리하고 주차장에 내려가니 모두들 허그로 인사를 하잖다.
길을 나서니 여전히 겨울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돌아와 밀려오는
피로감에 잠자리에 침몰하고 일어나니 여전히 세차게 겨울 비는
낙숫물을 떨구며 내리고 있고 방안에 공기는 기온이 내려가
다시 차가운 한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달도 중순을 향하고 있고 크리스마스
카드는 보내달라고 손짓을 하는 동안 멀리서 그리운 이의 음성이
지구반대편에서 수화기를 타고 날아와 안온하게 늘 변함없는
한결 같은 모습으로 다가와 가슴을 채워준다. 진솔한 삶이란
이런 한결 같은 상대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마음일 것이다.
진솔한 벗 하나가 상징하는 존재가치의 의미는 인생에서
가늠하기 조차 때로는 불가능하다. 나의 또 다른 하나의 존재
그 사랑하는 절대성을 갖고 있는 누군가를 잃는 다는 것
그것은 필연일지라도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큰 슬픔과 아픔이다.
그 막연한 그리움을 안겨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인생에 없다면 그 인생은 허무하고 실패한 것은 아닐까?
'붓꽃 독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꽃독백 - 나눔과 배려의 계절 앞에서 (0) | 2009.12.24 |
---|---|
붓꽃독백 - 꾸준함이 아름답다 (0) | 2009.12.19 |
붓꽃독백 - 인간의 조건 (0) | 2009.12.05 |
붓꽃독백 - 아름다운 여백 (0) | 2009.12.01 |
붓꽃독백 - 상처받은 영혼을 그리워하며 (0) | 2009.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