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독백 - 나눔과 배려의 계절 앞에서

붓꽃 에스프리 2009. 12. 24. 07:07

 

 

 

 

퇴근길 주차장을 나서니 보도가 겨울 비에 젖어 있었다.

텅빈 거리에 가로등만 지키고 서있을 뿐 그 고요가 참으로

편안하였고 안식이 되었다. 텅빈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흐르는 곡은 FM 91.5 클래식 래디오 방송에서 보내주는 곡으로

마침 모리스 라벨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하루의 일과에서 오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한 순간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적막과 어둠이 내린 텅 빈 거리의

고요가 참으로 편안하여서 좋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코앞

퇴근하고 채 옷을 벗기도 전에 누군가 문을 살짝 두드리는 소리가

긴가 민가 하게 들려와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여보니 분명히

누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큰 아이였다. 녀석이 세 살 때 아빠는

아이를 맡기고 불치의 병으로 남들 같으면 한참 살 나이에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문을 열어주니 손에 뭔가를 들고 들어오면서 즐거운 휴가철 하며

영어로 인사를 건넨다. 뭔가 하고 보니 이런 이제는 성인이 된

녀석이 보해 소주에서 나온 복분자 술과 돼지 삼겹살을 사 들고

와서 같이 오랜만에 시간을 함께 하잖다. 한국도 아닌 서양에서

태어난 아이가 한국말도 겨우 몇 마디 하는 정도인데 난데없는

한국산 과일 주를 들고 와서 의외다 싶었다.

 

일단 한잔을 따라주고 받고 축배를 하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러시아계 백인 친구 앨렉스와 필립핀계 친구 마크는

복분자 술이나 소주를 마시면서 맛이 별로라고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보드카를 마시는 입이 어찌

소주 맛이나 복분자 술 맛을 알까 싶었다.

 

겨우 한 두 잔에 홍당무가 되는 아이는 떠나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니 이게 왼 일 창문이 뒤흔들리고 커튼이 살짝 창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가 볼일이 있어

잠시 들리면서 간밤에 조금 맛본 복분자 술에 두통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응수를 하니 보드카나 위스키를

마시면 뒤끝이 깨끗한데 과일 주나 샴페인이나 와인을 마시면

약간의 두통을 느낀다고 언급한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리 직장에 들어온 J가 군대를 간다고

지원을 하여 다음달 새해 벽두에 멀리 중부지방으로 떠나게

되어 떠나기 전에 만나서 점심을 같이 하자고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M 하고 2주전부터 약속을 휴무 날에 잡고 있었다.

잠결에 전화를 받으니 M으로부터 12시에 만나자고 한다.

그러마 하고 생각하니 주차장이 없는 곳이었다. 이를 어쩌나

싶어 걸어서 가기로 작심을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바람을 뚫고 만나자고 약속한 목적지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도착하니 이게 왼 일 식당은 닫혀 있고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들이 없는 것이었다. 순간 난감함에 아니 어찌 이런

일이 싶어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식당은

3시에 영업을 시작한단다. 어이가 없어 하며 기다리고 있어도

사람은 나타나지를 않았다. 이런 돌풍을 뚫고 어찌 집을 다시

걸어가나 싶은 것이 다리가 아파왔다.

 

갈 때는 바람을 등지고 갔었지만 올 때는 바람을 향하여 걷다

보니 어찌나 힘이 들던지 겨우 집에 도착하니 전화벨이 울리는

것이 아닌가. 전화를 받아보니 군인을 가는 J 였다. 순간 야단치고

싶은 생각을 일단 접어두고 꼼짝 말라 하고 이번에는 차를 운전하고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일식이 먹고 싶다 하였으니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예의이니 일단 깔끔하고 정갈한

곳으로 정하고 방향을 바꿔 도착하니 아직도 점심시간 런취 스페셜을

각자 주문하고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 하였다.

 

소식을 하는 사람이니 J 에게 생선회를 건네주고 그동안 함께 하였던

시간을 뒤돌아 보면서 긍정과 부정을 함께 내려놓고 대화를 주고 받고

떠나 보내는 동안도 세찬 겨울바람은 온 도시를 뒤흔들고 있었다.

 

밤이 깊고 깊어 우리 미국 국내에서만 사용하는 이메일을 열어보니

낯선 이메일이 하나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이메일을 받아 본지가

거의 2년이 되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유년의 친구 J로부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카드는 보내지 못하여 미안하다면서 캐나다에서

유학중인 큰딸이 우리 지방에 사는 배우자를 만나서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박싱 데이 26일에 고향인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동부지역 뉴저지에 사는 작은 딸은 내년에 외손자를 해산할 예정이고

사랑하는 어머니는 지난 여름 8월에 보내드리고 큰 고통 없이

일주일 만에 병석에서 돌아가셨고 자신은 아직도 여전히 인생에서

두 번째로 옮겨간 직장근무를 이 불경기에 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모국을 떠난 후 모국을 돌아가 처음 다시 그를 만났을 때 우리는

언어 문제로 서로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여야 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피곤하지만 그에게 회신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모국을 떠난 후 단 한 순간도 잊어 본적이 없는 그의 모습이며 우정이다.

그의 사진은 늘 나를 지키고 있었고 변한 것은 우리의 모습 일뿐 마음은

단 한치도 변한 것이 없다.

 

그가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면 그의 둘도 없는 인생의 지기인 본인은

수십 년을 서양문화에서 성장하고 교육받고 직장생활하며 살아가고

있고 인식의 가치와 시각의 기저인 문화와 사회배경을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 이외는 변한 것이 없으며 한국인의 정체성은 모국을 영원히 떠난

그 순간에서 멈춰 있다면 한 사람은 한국인으로 다른 한 사람은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현실의 정체성과 일상언어로 그가 모국어 한국말을 한다면

역으로 다른 한 사람은 일상언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이외는

단 한치도 변한 것이 없다.

 

인간적인 신뢰와 우정과 사랑은 늘 상록수처럼 서로가 살아가는

사회환경을 달리하고 지리적으로 수억 만리에 떨어져 산다 하여도

변함이 없다. 어찌 서로가 서로를 잊겠는가 형제나 다름없었던 서로의

우정을 깊이 있게 생각할 때 그리고 젊으셨던 우리들의 부모님들과

혈육들도 세월의 성상 앞에 이제는 유명을 달리 할만큼의 세월이

흘렀으며 우리 또한 그 세월만큼의 무게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며 다만 애잔한 그리움만이 서성일 뿐이다.

 

각자 서로가 다른 인생길을 걸어가지만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신의와 우정과 인격적인 존중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한 치의

오차나 변함없이 묵묵히 잔잔히 그리고 애잔하게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흐르고 있고 이제 이 한해도 몇 일 남지 않았으며 문득

오늘날 까지 사랑과 배려로 인생을 인도하여주신 나의 영원한

인생의 스승이시자 영웅이신 나의 이방인 아버지 파파가 가슴에

사무치도록 그립다.

 

* 방문자 여러분들의 즐거운 성탄절을 기원합니다.

  붓꽃은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합니다. 사랑과 관심과 배려를 필요로 하는 영혼들 곁에서...

  행복한 여러분들의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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