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독백 - 사랑하는 딸아 단 한 순간도 나는 너를 잊은 적이 없다

붓꽃 에스프리 2010. 6. 26. 19:56

 

새상에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많다.

따듯한 가슴과 손길로서 위로받고 따듯한 시선을 영혼에 담고 싶어하는 소외된 이웃들과

외롭고 병들고 고독이란 죽음에 이르는 병마로 이 순간도 진저리치며 살아가는 영혼들은

이 지구촌 구석 구석에 많다.

 

또한 숭고한 인간애 한 송이 영혼의 꽃으로 피워내는 고귀한 영혼들은 어딘가에서

오늘도 가슴시린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숭고한 인간애 앞에는 국경과 인종이 없다.

오우 마이 파파!

 

 

전쟁의 상흔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 간지 오늘로서 어언 60년이 되었다.

바로 오늘이 6.25날 이. 휴무인 저녁나절 여러 가지 일들에 시달리는

일상으로 피곤해 마음은 꼼짝도 하기 싫지만 가야만 하는 여느 때처럼

저녁나절 다녀와 밀린 일들을 하고 있다가 문득 카우치에 잠시 앉게 되었다.

 

생전 시청하지도 않는 홀로 잠들어 있는 티비를 잠시 켜보니  한국어

방송이 나와 보니 MBC 에서 무엇인가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고아들 이야기를 내레이션 하는 동안 이제는 육순과 칠순을

넘겼을 남녀 초로의 노인들이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며 어느 곳인가에서

서성이며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곳이 수원의 어느 장소였다.

 

앙카라 보육원이란 한국전에 참전한 터어키 군인들이 세운 고아들을 위한

시설에서 전쟁 통에 자란 고아들이 어른이 되어서 형제회란 이름으로 아직도

명맥을 이어가며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MBC 6.25특집 타큐멘터리 팀과

함께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아일라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였다.

 

보육원 시절의 터어키 군인이었던 아버지 슐레이만 비르빌레이씨와 딸 아일라

 

 

전쟁 통에 이북에서 넘어와 고아가 되어 거리에 버려진 정도

소녀를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터어키 군인으로 참전한 꽃다운

20 초반의 병사 슐레이만 비르빌레이의 눈에 띄어 군부대 안으로 소녀를

데리고 같이 전쟁 통에 함께 1 반을 지내는 동안 사람은 정이 들어

아버지와 딸의 자리를 지켜가며 고아인 한국 소녀에게 터어키에서 귀히

불려지는 여자 이름 아일라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동안 정이든 사람 사이에 헤어져야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터어키 병사 슐레이만은 그녀를 데리고 귀국하려고 갖은 방법을 강구하지만

길이 없어 한국인 양딸 아일라를 두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지난 60 동안 전쟁 통에 만난 자신의 사랑하는 한국인 양딸 아일라를

순간도 기억의 상층부에서 잊지 않고 매일 기도 가운데 한국에 두고

한국인 아일라를 살아있는 동안에 찾고 만나게 하여달라고 간절히

지난 60 동안 기도하며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고 인터뷰에서 타큐멘터리

팀에게 지난날을 회상하며 아일라에 대한 상념으로 눈물로서 사무친

못다한 그리움을 토로한다.

 

또한 다큐멘터리 팀은1970년도 까지 있었던 앙카라 보육원 시설의

기록을 찾아 나서지만 그동안에 있었던 화재로 일부 자료가 소실되어

아일라에 대한 기록이 없어 막다른 골목에 부딪친다. 가운데 앙카라

보육원에서 당시 함께 지넀던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서 가운데

원생의 누님과 아일라가 최근 전까지 연락을 주고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며 그녀가 보육원에서 나가 번째로 얻은 이름 김은자란

사실을 밝혀내고 그녀가 인천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미 아일라는 가정을 이루어 남편을 잃고 자식들이 결혼을 하여 손자

손녀까지 두고 살아가는 할머니가 되어 있씀을 알게 되고 그녀를 방문한다.

아일라에게 터어키 군으로 참전하였던 슐레이만 할아버지가 아일라를

찾아 달라고 타큐멘터리 팀에게 건네 주었던 사진 사본을 보여준다.

순간 아일라는 타큐멘터리 팀에게 이게 나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토로한다.

아버지는 갖은 방법을 하여서 자신을 데리고 터어키로 데리고 갈려고

하였었고 하다못해 상자 속에라도 넣고 갈려고 하였다가 결국 길이 없어

자신을 뒤에 두고 귀국하셨고 자신은 이산가족 찾기를 번이나

나가 아버지를 찾아 달라고 하였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어 헛탕을 치고

말았노라고 취재팀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지난 60 동안 그토록

목메어 찾았던 터어키인 양부에 대한 못다한 그리움으로 흐느껴 울고

만다. 순간에서 또한 한국인이 아니신 우리 아버지 파파의 모습이

오우버랩 되어 흐느껴 울고 말았다. 사무치는 못다한 그리움을 알고도

남기에 아일라의 아픔과 못다한 세월 가운데서 꿈에도 잊지 못한

그녀의 아버지 슐레이만 비르빌레이 순간 너무나도 사무치게 그리운

 우리  파파와 함께 하였었던 주마등처럼 스쳐간 수많은 세월의 흔적이

그리움으로 다가와 다시 울고 말았다.

 

사랑은 이토록 사무치는 그리움이며 위대한 것이란 생각이 드는 순간의

절실한 감정이었다, 벽안의 60 세월을 두고 터어키와 한국 양쪽에서

서로를 못내 꿈에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다시 만날 날을 위하여 간절한

소망으로 신에게 기도로서 간구하였던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 앞에 어찌

우리가 민족의 상존 한국전쟁 6.25 동란을 잊을 수가 있단 인가.

 

딸을 찾았다는 소식이 터어키에 있는 양부 슐레이만 비르빌레이씨에

전하여지고 한국동란 6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 초청 팀에 합류하여

양부 슐레이만 비르빌레이씨와 양모가 함께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한국 땅을 60 만에 찾아 발을 내딛는다. 취재팀이 만나면 어떻게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다고 말을 한다.

 

시점에서 나라면 또한 무슨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싶었다.

아버지 내외분은 한국에 도착하고 여기 저기 참전용사 초청행사에

참여하고 드디어 만난 날이 다가온다. 전날 아버지 내외분도 딸도

서로에게 지난 60 세월을 담을 선물 준비로 바쁘다.

 

아버지는 60년전 앙카라 보육원에서  아일라에게 먹였었던 추억의

터어키 과자 로쿰과 명절이면 터어키에서도 자식들에게 선물로 준다는

돈을 달러로 준비한 것과 터어키를 기억하게 하는 기념품 접시와 다양한 것을

준비하고 딸은 아버지에게 드릴 산뜻한 와이셔츠와 넥타이와 홍삼등을

준비하고 드디어 설레이는 가슴으로 밤잠을 이루고 만남의 장소

아름다운 어느 공원으로 장성한 아들과 손자 손녀와 함께 타큐멘터리

팀과 함께 등장하는 양부와 양모를 만나러 간다. 아버지가 먼저 멀리서

오는 아일라를 바라보면서 저기 오는 사람이 아일라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

60년만에 재회한 아버지슐레이만 비르빌레이씨와  딸 아일라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던 아일라 이었으며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던 아버지였던가. 딸은 장성한 아들과 손주들이 보는 앞에서

양부를 부둥켜안고 그리웠던 아버지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흐느껴

울며 통곡하고 만다. 아버지 또한 할말을 잊고 뜨거운 그리움의 눈물을

하염없이 말도 없이 그리운 딸을 품에 안고 흘린다. 그리움은 강물이 되어

영혼의 가슴에 흐르는 동안 옆에 서있던 양모를 딸은 안아드리며

서로 반가움의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는 죽은 전우들이 묻혀 있는 부산 유엔군묘지를 찾아가 사무치게

그리웠던 전우의 묘비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동판 비문에

뜨거운 키쓰를 하고 반복하여 하며 지난 날을 잠시나마 회고한다.

 

아일라와 양부모님은 민속촌부터 여기저기를 잠시나마 함께 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훌쩍 2주가 지나고 떠나기 전에 아버지와

가족들과 양부모님과 딸은 함께 사진을 찍어 앞으로의 다가올 다른

그리움을 준비한다. 드디어 귀국 길에 오르고 아버지와 딸은 공항에서

잠시 시간을 함께 하는 동안 딸은 양모의 팔다리를 주물러드리고

출구로 나가는 아버지는 못내 뒤를 돌아보지를 못한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 내외분과 딸 아일라의 가족사진

 

 

그리고 귀국 2개월이 때쯤 아버지는 한국에서 딸로부터 편지를

받아본다. 취재팀 앞에서 통역관이 딸이 못다한 그리움을 담아 한글로

써서 보낸 편지 내용을 마침 아버지의 자손들이 함께 모이는 날인 그날

자리에 모인 자손들 앞에서 통역하며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자손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딸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감사의 말과 더불어 아버지가 없었다면

자신의 인생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을 하며 딸이 그리울 때면 바로

옆에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고 사진을 보시라고 하며 언젠가

터어키를 방문하여 아버지를 찾아가겠노라고 자신의 손자 손녀와 약속을

합니다. 전쟁 통에 가족을 잃고 고아로 자란 아일라와 아버지 슐레이만

비르빌레이씨의 숭고한 인간애는 반세기가 넘었어도 빛이 하나도 바래지

않았고 견고한 반석과도 같았다.

 

민족상존의 비극 앞에 아일라는 가족들 모두를 잃었다면 번째로 많은

군인 15000명을 파견하였었고 거의 700 여명의 희생자를 터어키 군인으로

한국동란에 참전하였던 아버지 슐레이만 비르빌레이 씨에게는 잊지 못할

상흔의 흔적 그러나 송이 붉은 장미 같은 아름다운 인간애를 꽃피웠던

우방인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오늘과 같이 비인간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한 시대에 민족상존으로 전사해

동작동 국립묘지 경찰 묘역에 안장되어 있으신 분의 외삼촌과

수많은 우방국들의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 앞에 겸허히 고개를 숙인다.

다시는 우리 역사에 이런 슬픈 역사의 재발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전쟁 통에 피어난 숭고한 가슴 절절한 터어키 용사 슐레이만 비르빌레이

할아버지와 그분의 한국인 아일라씨의 남은 인생에 진정한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고개 숙여 내려놓는다. 아일라씨의 아버지 슐레이만

비르빌레이 씨를 생각하노라니 우리 파파가 못내 가슴 사무치게 그립다.

그리고 말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려 소식이 없는 영혼이 간절히

그립다. 살아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죽은 것인가 알고 싶다. 오늘도 전화벨은

울리는 무엇 때문에 주변사람들에게 소식이 없는 것일까.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무슨 변고인가……생사여부라도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