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비의 노래' 2악장 아다지오......
가을하면 브람스요 브람스 하면 가을이 아니던가....
산(山)을 전국민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라 한국 그리고 한국인들...
인산인해를 이루며 오르고 또 오르는 산들 그중에서도 유명산들은
행여나 너무나도 많은 발길들 때문에 아프다고 신음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라고요.....산(山)은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고요.....
산(山)! 그대도 쉬고 쉽지않을까?
나는 내 마음속에 산(山)을 오르려네
산(山)! 그대 걱정마시게나....
오솔길도 내 영혼 깊은 곳에 있는 나만의 오솔길을 묵묵히 산책하려네.....
님의 사진첩에서
날씨도 다시 더워졌고 근무가 끝나고 퇴근 후 밤을 꼬박 새워가며 숙제를 맞추고
그대로 등교를 하니 실내에 틀어 놓은 에어컨은 왜 그리도 시원하다 못해 추운지
냉방병에 걸리기에 딱 알맞다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나도 피곤하다 보니 강의내용이
귓전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오늘 따라 지루하기는 왜 그리도 지루한지 그리고 마시고 먹은 것이 무엇이 있다고
아침식사도 거르고 수업을 듣는데 소피를 보기를 모두들 몇 번이라며 여기 저기서
볼멘소리들이다. 간신히 수업을 맞추고 돌아오는 길 햇살이 눈부시지만 그 조차도
피곤함 일뿐 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열 일을 제쳐놓고 피곤해 잠을 청하려 하니 프라임 스테익으로 점심을
먹고 자라며 한사코 안 된다며 작은 조카 아들이 연락을 하였다. 그 아이 두 살 때
아이의 아빠는 암으로 일찍이 나이 40대 초반에 아이들을 잘 길러 달라며 말을 하고
우리 곁을 떠나 간지도 20년 세월도 넘었고 아이는 자라서 청년이 되어 우리 세대에서
내자신도 작은 키는 아닌데 이제는 아이를 올려다 보아야 할 만큼 키가 크다.
II. Adagio
아이구야……………………
간밤을 꼬박 새웠더니 이제는 20대 청춘도 아니고 몸이 피곤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대로 만사를 제치고 침대에 침몰하고 말았다.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이번에는
또 뭐………………저녁식사를 하잖다. 김치찌개 두부전골…………큰조카 아들이
퇴근을 하여서는 오늘에 있었던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동생보다도 한국말을
더 못하는 아이 겨우 몇 마디를 하는 아이 차라리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이 빠르고
서로가 편하다. 녀석의 사촌 형은 이미 딸을 낳아 3세가 나와서 유치원을 다닌다.
1세, 1.5세, 2세 그리고 3세로 이루어진 가족이란 이름이다. 1세가 97세부터
66세까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작은 아이는 2세지만 한글을 읽을 줄을 알고
곧잘 말도 잘한다. 뜻은 몰라도 읽을 줄은 안다. 그 아이의 나머지 사촌들은 겨우
인사 정도만 하지만 그 중에서도 작은 아이가 가장 한국말을 잘한다.
잠이 보약이라고 누가 말을 했던가?
우유 한 잔도 못 마시고 급히 달려간 학교 이번 가을은 시간과 숨바꼭질을 하는 형상이다.
시간은 쉬지 않고 뒤에 쫓아오고 나는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고 산도 바다도 거리도
그 어느 것도 생각을 할 여백이 없다. 시간이 나면 피곤해 잠을 자고 쉬는 것이
최선책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조수미가 공연을 하러 우리 지방의 명문대 음악당에
11월 초에 온다고 연일 광고다. 전과 같으면 가겠지만 그 조차도 지금은 사치다.
정경화 그녀의 불 같은 열정 가득한 연주회에 다녀 온지가 몇 해인지 기억도 힘들다.
다만 출퇴근시간에 고정된 FM 91.5 클래식 래디오 방송이 유일한 위로요 안식이다.
클래식 이외에 다른 음악은 거의 듣지를 않는 사람이다.
어쩌다 흘러간 감미로운 올디를 듣는 것이 유일한 외도다.
오늘은 가을을 읊어주는 모국어와 영어권의 노래들을 가을에 들어서 처음으로
들어 보았다. 가을이란 감회가 가슴에 다가오기에 충분하였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특별한 사람이 몇 있다. 바람에 나뭇잎만 흔들려도 수 천리 밖에서 전화를 하는
사람 가을에 물들어 가을이 되어버리고 마는 그런 사람 그와 함께 한 잔의 싸구려
커피를 한잔 앞에 놓고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던 창밖에 내리는
노랑 낙엽이 나뒹구는 그 도시 그 거리에 있는 커피 샵 창가가 그립다.
문득 그리움이 쌓이면 전화를 걸어와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서로가
배고팠던 이지와 지성이란 한 영역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의 여백을 영혼
깊은 곳에 새겨 가면서 함께 세월과 인생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리운 사람…
붓을 놓은 지도 많은 시간이 흘러 벗으로부터 다시 붓을 잡으라고 2개월 전에
이메일이 왔다. 당분간은 붓을 잡을 수가 없씀이 안타깝다는 답변으로 대신하고
말았다, 그녀 자신은 물론 그녀의 옆 지기도 지금은 건강문제로 힘든 시간
다행이 한 고비를 넘겼다는 들릴락 말락 한 소식이 바람결에 전해져 왔다,.
인생에 열정이 없다면 얼마나 삶이 무미건조한가………
그리고 따듯한 감성 그 인간적인 사랑의 향기를 영혼 깊은 가슴 골에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또한 얼마나 슬픈 일인가………누군가를 사랑할 줄도 모르고
좋아할 줄도 모르고 배려할 줄도 모르고 주는 우정도 사랑도 정도 받을 줄
모르고 살아간다면 인생이 얼마나 메마르고 삭막하며 슬픈 일인가…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주는 사랑도 정도 우정도 받을 줄을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때론 문화자체가 감성적인 표현을
억제하는 교육으로 일관하거나 도식화 하여서 일정한 틀에 가두어 놓는 경우다.
즉 고정관념이란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넣는 짜집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 가정과 환경에서 자라나 따듯한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
줄 줄도 모르고 받을 줄도 모르는 경우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주는 정도 사랑도 우정도 받을 줄 모르는 어리석은 바보는 세상에 많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경험한 바로는 그들은 쓸쓸히
그 누구의 축복이나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없이 처절하게 허무하게 죽어간다.
존재의 의미도 찾지 못하고 가슴과 영혼 깊은 곳에 참된 삶의 진실인 참된
위로가 되는 정, 사랑, 우정도 없이 남루한 육신이란 옷을 남기고 떠난다.
그런가 하면 사랑과 우정도 진실되고 참되게 받아보고 경험한 자만이 다시
그런 사랑과 정 그리고 우정을 누군가에게 줄줄 알며 나눌 줄 안다는 아주
간단한 이치다. 사람은 늙어도 생활습관이나 가치관이나 시각은 자기가 배우고
듣고 보고 경험한 것들과 가정환경과 사회적인 문화배경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은 다름아닌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진솔하고 진실되게 건네주는 우정과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지혜도
살아가노라면 정신적이며 영적인 삶의 가치를 위하여서 필요하다.
그런 진실된 삶의 가치의 발견 없이 그저 살다가 어느 날 떠나는
죽음이란 생의 완성은 너무나도 허무하다. 사랑하라 그리고 두려워 마라
참된 우정과 사랑은 주는 자의 몫이며 배려다. 참된 우정과 사랑의
가치발견은 각자의 몫이라면 받아드리느냐 아니냐 역시 또한 상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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