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독백 - 전화벨이 울릴 때

붓꽃 에스프리 2010. 10. 29. 03:22

 

잠결에 전화벨이 울린다.

거래 은행직원 루이스로 부터 쓸데없는 전화가 왔다.

어제 월말 일과의 여파로 피곤해 곤한 잠을 자고 있는데 깨우고만 그의 전화

다시 잠자리에 들려니 그게 쉬운 일인가....

 

문득 원인 모를 불안이 밀려온다.

허기짐을 느낀다.

정신 없이 달려온 한 계절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삶의 현주소...

문득 몇 일전 전화를 주셨던 아버지가 간절히 보고싶고 그립다는 생각으로 다가온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들 가을이 물든 낙엽을 밟으며 오늘은

몇 해전 그랬듯이 그리운 아버지와 함께 가을 숲 속 산길을 걷고 싶다.

 

아 그리움이란 이름이여!

하여 아직도 존재의 확인을 하며

누군가는 인생은 살아볼만하고 아름답다고 찬가를 부르고

또한 누군가는 죽지 못해 산다고 독백을 하며 그런 것이 인생이라고 하겠지...

 

인생이 장미 빛인지 아닌지는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면

또한 인생이란 것을 어떻게 바라보는 가에 달려 있으리

그뿐인가 물질의 노예로 전락한 시대 앞에서

물질을 놓고 또 행복의 수치를 가늠하겠지...

 

삐에로 같은 인생의 허상이여!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영혼이 서성이는 노르망디 Etretat 해안

 

 

상처 - 마 종 기

오래 먼 숲을 헤쳐 온 피곤한
상처들은 모두 신음 소리를 낸다
산다는 것은 책임이라구.
바람이라구. 끝이 안 보이는 여정.
그래. 그래 이제 알아들을 것 같다
갑자기 다가서는 가는 바람의 허리.

같이 있어도 같이 있지 않고
같이 없어도 같이 있는, 알지?
겨울밤 언 강의 어둠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는 숲의 상처들.

그래서 이렇게 환하게 보이는 것인가.
지워 버릴 수 없는 그 해의 뜨거운 손
수분을 다 빼앗긴 눈밭의 시야.
부정의 단단한 껍질이 된 우리 변명은
잠 속에서 밤새 내리는 눈먼 폭설처럼

흐느끼며 피 흘리며 쌓이고 있다.

 

 

상처 5 - 마종기


나이 탓이겠지만 요즈음에는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다.

피가 많이 흐르는 것도 아니고

심하게 다친지도 않은 것 같은데

상처 안에 숨어 있는 작은 세포들은

자꾸 머리를 부딪히며 소리 죽여 운다.


나이 탓이겠지만 남들의 상처도

전보다 쓸데없이 더 잘 보인다.

피부를 숨긴 공포의 빠른 도주도

가슴까지 흔들며 분명하게 보인다.

무자비한 욕망이 표정 죽이고

우리 사이에 집과 공장을 짓는다.


나는 항생제를 먹기 시작했다.

기적의 알약은 커지기만 하고

주위를 날아다니는 공기의 입들이

사는 것은 상처를 받는 것이라고 떠들며

살충제의 바람을 만들어 주위에 뿌린다.

그래도 피나지 않는 마지막 것을

언제나 두 손에 들고 사는 너.

 

 

 

 

 

 



상처 6 - 마종기


집 없는 새가 되라고 했니?
오래 머물 곳 없어야 가벼워지고
가벼워져야 진심에 골몰할 수 있다고.
설레는 피안으로 높이 날아올라
구름이 하는 말도 들을 수 있다고.
이승의 푸른 목마름도 볼 수 있다 했니?

잎 다 날린 춥고 높은 우듬지에서
집 없는 새의 초점 없는 눈이 되어야
우리 사이의 복잡한 넝쿨이 풀어진다 했니?
망각의 틈새에서 적적하고 노쇠한 뼈들이
몇 개쯤의 상처는 아예 손에 들고 살라 하네.
외지고 헐거운 삶의 질곡을 완성한다고.

문을 열면 나를 맞아준 것은
질서없이 도망간 흔한 변명뿐.
수척한 추위에 떨며 나를 안아주었네.

노을이 붉어질수록 깊이 잠기는
저녁 근처의 너는 벌써 새가 되었니?
아프지, 그게 진심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야.
아프지, 그게 오래 서로 부르고 있다는 증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