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보라빛 자카란다 꽃의 에스프리

붓꽃 에스프리 2011. 5. 27. 18:22

 

지나온 1년을 뒤돌아 보면서 마지막 학과목 시험을 맞추고 가벼운 마음으로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길을 나서 차를 세워둔 길가로 걸어가는 동안

스쳐가는 바람과 포옹을 하고 있었다.

 

이런 그런데 차 앞뒤 창가는 물론 본넷 위에 긴 교회 종 모양으로 생긴 보라 빛

자카란다 꽃이 낙화되어 소복하게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5월말이면 언제고

우리 고장에 눈이 시리도록 길가 보도를 보라 빛으로 보라 빛 자카란다가

지나온 1년을 이야기 한다. 문득 잔잔한 그리움과 쓸쓸한 감정들이 스쳐간다.

좋아도 싫어도 모두 함께한 시간들 위에 우리는 각자 이별을 준비하여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길을 홀로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 걸어가야만 한다.

희비의 쌍곡선이 교차하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매정하고 싸늘한 세상으로

터벅 터벅 발을 새롭게 내디뎌야 한다. 그 안에서 치열한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을 하여야 하고 주어진 인생길을 다시 당당하게 걸어가야 하며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어둠이 살포시 내린 시간 집으로 돌아와 메일을 여니 이런 들꽃 한 다발을

순수의 우정과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동안의 마냥 소년

같으신 미소로 나를 감동시켰던 님으로부터 도착하여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박하고 단아한 보통사람들 그러나 사람냄새 풀풀 나는 들꽃 향기 같은

분들과 더불어 중년의 인생길 이정표를 함께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걸어

가게 되는 이 축복 위에 만난 곡이 다름 아닌 말러 교향곡 9 4악장이다.

늙어가는 소년들의 마음으로 소꿉장난하듯이 영혼의 숲에서 네 잎 클로버도

서로 찾아 가며 그렇게 오손 도손 있어도 없는 듯이 은둔자처럼 작지만

충만한 알찬 마음으로 서로 달라도 이해하고 배려하고 관용과 사랑 그리고

따듯한 가슴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신은 어찌 이렇게도 공평하신지 하는 마음이다.

늙어가는 인생길 허전하지 말라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아름다운 영혼들을

보내주시니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말이다. 그저께는 오랜만에 멀리 거제도

건너 칠천도 바닷가 집으로 수화기를 드니 늘 그렇듯이 유자차 향기 같은

부산 사투리로 어르신은 그리움을 노래하시며 보고 싶으니 나오라고 하신다.

 

미국 촌뜨기 어르신과 같이 경상도 사투리 억양으로 이야기를 한다.

내년 후반기나 후년 정도 한번 생각해 보겠노라고 말미를 남기고

그리운 목소리 서로 주고 받고 하면서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국민학교 교사로 은퇴하시면서 처음으로 컴퓨러를 배우시고 인연을 찾아

3만리 하시던 와중에 우리는 조우하게 되었고 그리고 주고 받은 이메일이

두꺼운 책으로 엮어도 한 권이 넘는 분량이 되도록 매주 오고 갔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멸치를 한 박스 국제우편으로 보내오시고야 말았다.

 

그리고 은퇴하시고 부산에서 거제도 건너 칠천도 바닷가 앞에 땅을 사시고

집을 짓고 이사를 하셨다. 그리고 가을바다에 나가셔서 갈치를 낚아 올리시고

이웃집들 굴 양식장 도와도 주시고 그러시면서 소일하시고 텃밭에 고추도

심으시고 황토방도 만드시고 그 사이에 자녀들은 모두 출가하였다.

 

세월은 흘러 그동안 두 번이나 찾아 뵙고 돌아왔다.

친 혈육처럼 생각하시고 베풀어 주시는 사랑은 필설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백발이 성성하신 칠순도 훨씬 넘으신 어른께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제는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라 하시더니 형님이라

부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던가. 절대로 안될 일 그럴 수 없다 하시니

펄쩍 뛰신다. 아이구야 얼마나 세월이 또 흘렀을까 이번에는 아예 형님도

싫으니 형이라고 부르라 하신다.

 

가을바다 길을 따라 이 나이 어린 동생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는 백발을

휘날리시며 친구네 집을 가자고 하시는 어른이시다. 보내드린 이메일은

책으로 엮으셔서 책꽂이에 정성 드려 간직하고 계시고 보내드렸던 난필은

나무에 그림을 그리시고 글로 쓰셔서 벽걸이를 만들어 놓으시고 그리움을

달래신다. 참다 참다 못 참으시면 이메일을 보내 사진 찍어서 보내라

하시고 죽기 전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이별이란 없다 하시는

절절한 마음으로 살아가신다.

 

 

 

 

배를 타고 함께 가을 저녁바다에 나가 저녁 찬거리로 갈치를 잡는 동안에도

냇킹 콜이 부른 <Too Young>을 허스키한 미성으로 불러 주시는 그 마음

돌아와 우리는 비릿한 바다 냄새와 더불어 소박한 어촌의 가을 저녁밥을

맛나게 먹으며 함께 걸어온 지난 수많은 세월들 지금은 피를 나눈 혈육 보다

더 가까운 혈육으로 살아가고 있다. 수첩에 넣고 다니라고 보내주신 내외분의

명함판 사진은 이미 세월따라 빛이 바래고 있다.

 

나이 어린 동생을 데리고 거제도 시내로 나가셔서는 난생처음 들어본

돼지국밥을 사주시던 추억들이 아련한 밤이다. 서울에 올라가 아버지께

돼지국밥을 이야기 하니 뭔지 모르신다. 무슨 돼지가 먹는 음식인줄로

생각하시는 표정이시다.

 

맛이 어떻든?

아버지 맛나요.

이 미국 촌 아이가 먹을 정도면 되었잖아요.”

 

그래도 뜨악한 표정을 지으시던 아버지………

 

칠천도를 떠나 오던 날 아침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또 긴 이별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새벽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가을바다를 바라보면서 남기고 온 추억의

편린 하나……………… 

 

 

                   누구에게나 그리움의 항구 하나쯤은 영혼 깊은 곳에 있으리라..

                                        2006년 11월 어느 가을날

 

 

칠천도 물안 마을  

                                               - 붓꽃

 

 

가을이 물안 마을 앞 바다로 너울대며 다가올 때

너를 찾아 나는 바다 건너 수억 만리를 달려왔지

모두 너의 널따란 물 안에서 사철을 열심히 사는 동안

구리 빛으로 그을린 얼굴과 거칠어진 손등

그립다고 소리쳐 울지도 않으니

누가 검게 타들어간 네 속을 헤아릴 수 있겠니

 

이별을 하고 절실한 그리움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본 사람은 안다

잔잔히 침묵 속에 너울대는 가을 바다, 수척한 얼굴에

억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의미를

바람결에 서걱 이는 그리움의 소리 그 먼 수평선까지

너울거리며 다녀오는 동안 침묵 속에 인고하는 네 삶의 역사

 

그래 울고 싶은 만큼의 크기로 울어야 한다.

가을 바다여

물안 마을에서는 얼마나 애달프게 한 영혼이 한 영혼을 만나

그리움을 삭히다가 먼동이 터오는 새벽녘 되어서야

서로가 그리움의 끈을 놓고서 헤어지는지 절실한 감정으로

그리워 해본 사람만은 안다

 

먼 이방의 물안개 피어나는 가을바다가 아니더라도

인생이 얼마나 그리움으로 가득하고 한없이 짧고 얇고

쓸쓸한지를 그럼으로 우리는 얼마나 곱고 순수하게

남은 날도 서로의 날개 밑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를

헤어져본 사람만은 안다.

 

그리움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