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하면 가치관도 변하게 되어 있다.
뭐든지 모국의 일탈한 요즘 청소년들이나 젊은 세대가 잘못하면 영어권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일은 잘되면 모두가 내가 한 것이고 못 하면 다 사돈 탓인 격이란 생각이다.
뭐든지 잘못된 것은 서양 탓이고 미국 탓이다.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사회학적으로 구조적인 문제와 교육행정과 좌파정권이 그동안 새로 지향한 교육방향과
교육현장의 비일비재한 비리들과 무너지는 교단과 가정폭력과 패륜등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면 서구 탓과 미국 탓만을 할 수 없다라고 말을 하고 싶다.
좌파정권을 이끌어 간 사람들 그들 대부분도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들에 그들 자녀 또한
미국 태생과 미국시민으로 현재도 살고 있지 않던가? 그러면서 앞에서는 반미에 친북을
하고 막상 북한으로 가라면 월북이라도 할 것 처럼 하면서도 막상 실행하려면 하지도
못하는 화상들이요 이율배반적인 하나 하나가 역겨운 모습이 아니던가?
우파란 작자들의 정경유착과 각종 권력의 비리와 부패상 또한 좌파 정권과 무엇이 다른가?
근본 원인은 하나로 정의 할 수가 없다. 분명한 사실은 시대가 변하고 첨단 산업화가 되니
노동의 구조와 가치관 모두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민중은 우매하지 않다.
그와 더불어서 가족구성원간에 가치관도 극과 극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나 구세대들은 이런 가치관의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갈등하고
허망함에 허무의 끝을 잡고 또 다시 갈등에 갈등을 한다.
누가 버릇없는 자식들을 키웠는가?
누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윤리를
가르치지 않았는가?
바로 당신들이다.
남의 탓이 아니다.
가령 한 작은 예를 들자.
미국이다.
식당에서 여행중에 백인 아이가 잠시 짜증을 부리고 자리에서 내려 갔다 올라 갔다
하였다. 그 순간 그 아이의 부모는 그 아이를 잡아 앉치고는 설명을 하며 사람들이 있지만
작은 소리로 야단을 쳤다, 그야말로 뚝이었다.
바베큐를 전문으로 하는 어느 돗대기 시장 같은 한국식당 이었다.
아주 젊은 흑인 여성 둘이 아주 어린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뭔가 불편해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얼른 데리고 나가 잠시라도 달래는 것이 아니라 남이야 어떻든
관심도 없고 그 야말로 식당이 떠내려 갈 정도였다. 결국에는 그 아이 엄마 일행은 먹고는
일찍 자리를 뜨고 말았다. 백인과 흑인의 차이는 이런데서도 보이지 않게 난다.
스페인어 권의 교육수준이 낮은 가정의 아이들도 공공장소에서 난장판을 이루기는 흑인들과
별반 차이가 없으며 한국 아이들도 별 차이가 없다. 식료품 가계 마켓에서 뛰어 다니고 하여도
내버려 두는 젊은 엄마 아빠들도 널렸다. 신사복 입은 60이 넘었을 그런 사람들이나 잘 차려
입은 여성들이 마켓에서 과일같은 것 맛 본다면서 포도송이 따먹고 사탕 까먹고 비일비재 하다.
내것이 아닌 남의 것에 대한 존중이란 것을 모르는 작태들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이런 부모들이 자식을 어떻게 가르치고 양육할지는 안보아도 비데오다.
그러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자식이나 손주 앞에서는 근엄한 척은 다 하지 않을까?
시대가 변하였으니 한 사람이 벌어서 먹던 시대는 지나갔다.
많은 경우 현대사회에서 미국이나 구라파와 같이 이제는 한국에서도 부부가 일을 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목에 열쇠를 찬 아동도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헌데 어른들의
의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구시대적인 가치관에 연연하고 끝에 가서는 허망함과 좌절에 빠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포자기 하게 된다.
과연 몇 명의 부모가 딸에게 시집을 가서 시부모를 잘 모시고 살아가라고 요즘 세상에
집안에서 가르치며 요리와 각종 살림하는 것을 예전처럼 가르칠까 싶다. 가르치기
보단 내가 어떻게 기른 귀한 딸인데 내딸 손에 물을 묻혀 아니면 야 시덥지 않게 하면
다 때려치고 돌아와 행여나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모른다. 모두가 오로지 나 나밖에는 모르는 시대의식이다.
요즘 하는 말들을 보면 그렇다.
딸 갖고 있는 사람은 대우를 받고 산다는 둥 하면서 이런 현실에서 과연 올바른 가정이
고부간이나 사위와 처가집 사이에 설정될까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참을 성이
없다. 그리고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기 보단 그저 오로지 내 자식
과 나뿐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가서 교사 멱살 잡고 따구 때리고 폭력을 행사하고
내 자식을 감히 네가 누군데 하는 막다른 골목에 서게 되는 현실 앞에 서있다.
전과 같이 스승 사자에 사부님은 부모와 같은 존재이니 처신을 똑바로 하라고 가르치는
시대는 고리타분 하다며 내팽개치고 막 대하는 시대이다 보니 봇물 터지듯이 여기 저기서
연일 문제 교사와 교수에 문제 학생들로 가득하다. 성추행범이된 고려대학교 의대생이란
놈들이 버젓이 아직도 학교에서 피해자와 함께 시험을 보고 더 나아가서 한다 하는 법률회사의
변호사를 고용하고 그야말로 가관도 아니다.
성추행범이 의사가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며 그런 놈들이 의사가 될 수 있는
사회에 무슨 기대와 희망이 있겠는가 묻고 싶다.
미국사회라면 가차없고 그대로 퇴학에 교도소 행이다.
IMF 총재가 누구던가?
감히...........
그 거물도 잡아다가 영창에 집어 넣는 나라가 아니던가?
세계적인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를 보라 그도 미성년 성추행범으로 아직도 도망자가
아니던가. 아동 성추행은 미국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범법의 하나다.
그러나 한국을 보라 버젓이 이놈 저놈 나이 어린아이들 강간하고 추행하고 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자랑인양 남성미의 근간인양 권력을 잡은 놈들이나 부호놈들이나
연예계 한다 하는 놈들이나 정치하는 놈들이나 목사란 놈이나 중놈이나 성추행으로
장식하지 않는가. 목사란 놈이 남의 여자와 관계하다 창문 밖 에어컨에 매달리다
떨어져 죽지를 않나 하다 하다 못해 꽃 다운 나이에 영화배우도 성추행 당하고 자살로
생애를 마감하는 나라와 사회구조에서 남탓과 툭하면 남의 나라 탓을 할일이 아니다.
서구문화를 잘못 받아드린 사람들이 누구인가?
미국인도 구라파인도 아닌 바로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과 지도층이 아니던가?
바로 그런 비리를 용납하는 사회와 사회구성원들의 탓이다.
그런 놈들을 권력에 앉쳐 놓은 잘못된 선거와 행정관료들의 비리와 도덕과 윤리의
상실이 부수적으로 장기적으로 가져다 주는 문제가 아니던가?
못된 자식들도 세상에는 많지만 역으로 감동이 되는 자식들도 세상에는 공존한다.
이 부분에서는 동서양에 차이가 없다.
늙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어 살게 되면서 효도란 이름으로 희생을 요구가 아닌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직장을 나가고 자식을 기르고 살아야
한다면 병들어 몸을 쓸 수 없고 내가 남의 병수발을 받아가면서 사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 설 때 전문적인 요양원의 보살핌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고 생각한다. 시대는 변했다. 그럼으로 우리의 가치관도
변화를 맞이 하여야 마땅하다면 받아드리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우리는 때론 선택의
여지없이받아 드려야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여야 옳다.
내가 내 집이란 이름 아래서 살아가는 것은 내 육신이 멀쩡하고 내 정신이 멀쩡하고
내가 움직일 수 있고 내 스스로 나를 돌 볼 수 있을 때까지가 한계다. 받아드리기
힘든 사실이요 진실이라면 그러나 엄연한 진실이며 냉철한 현실이다. 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다.
자식들과 주변사람들과 남에게 짐이 되어 사는 인생이란 결코 현대 사회에서 서로를
위하여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시대는 변하였다 고로 우리의 의식과 가치관도 변화를
받아드리고 적응하여 가며 살아야 마땅하다.
효도란 의미도 시대에 걸맞게 업그레이드 되어야 하고 재정립 되어야 마땅하다.
슬퍼하지마라 누구나가 걸어가는 인생길이란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다.
그것이 생애 완성이며 종교인들이 설파하는 또 다른 차원의 시작이다.
그래도 굳굳이 사는 날 까지 오롯이 당차게 살아야 한다.
오늘 하루도 인생이란 정원에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자.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에 인색하지 말지어다.
아직도 철없는 철이 지난 보라빛 자카란다 꽃은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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