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남국의 가을밤

붓꽃 에스프리 2011. 9. 24. 17:41

 

 

 

 

죽도록 한 주 이상을 아프고 나서 오늘 겨우 숨통을 여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직도 생각이 피곤하게 느껴져 육신에 의욕을 느끼기가 힘들어 책을 들기도

힘들고 보고 읽기도 힘겹게 느껴진다. 그런 저녁 길 차 운전을 하면서 한마디

하니 이제 나이가 먹어가니 그렇다고 옆에서 한 마디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팔청춘도 아닌 중늙은이가 다된 세월 앞에 무슨 변명이 필요하랴

그저 침묵뿐이었다.

 

돌아와 오랜만에 처음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니 맛을 아직도 입맛이 돌아오지

않아 확실히 느낄 수는 없지만 배넬라 향이 혀끝에 느껴져 아 이제 좀 나아지고

있나 하고 혼자 자신에게 반문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간밤 쓴지 단지 짠지

싱거운지도 모르고 평상시 하던 어림짐작으로 버무려 놓은 깍두기를 하얀 밥

한 공기에 맛을 보니 아 이거다 싶은 맛이 조금 느껴져 좀 이제 나아지나

싶었다. 다행이 또한 맛이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고 맛이 깔끔하고 맛났다.

문득 지금 감기를 앓고 계신 벗님 생각에 옆에 사시면 들고가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고 저녁 길 할머니 작은 병 하나 드리고 돌아왔다.

 

냉장고도 정리 되어야 하니 오늘은 소꼬리 곰탕을 끓이기로 하고 세척한 후

끓여 거품과 올라오는 찌꺼기와 기름들 걷어 내고를 반복하고 물 다시 붙고

우유 빛이 나도록 만들어야 하니 밤새도록 고와야 할 일이다. 설렁탕 집에서는

때론 그 색을 내기 위하여서 우유를 붙는 다는 말도 있지만 집에서 그런 색을

만들려면 족히 반나절 이상을 끓여야 가능한 무척이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아니면 흐물 흐물하고 구수하고 뽀얀 우유 빛 곰탕을

기대 할 수가 없다. 이런 일을 하니 이제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아프면 죽을 맛이며 더욱이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그러나 초조하기 보다는 침착하게 생각을 가다듬고 원기회복에 신경 쓰고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면 차분함이 정신을 맑게 하여

우려와는 달리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고 믿는다.

살아가는 데는 어느 정도 수준의 긴장이 필요하다지만 차분함은 더 필요하다.

날뛴다고 되는 일은 없다.

 

아프면 제일 힘든 것이 입맛을 잃어 맛을 모르는 것과 육신도 생각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20대가 다르고 30-40대가

다르고 그 이후가 다르다는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이 드신

노인들이 하는 말들이 허황된 말이 아니요 진리란 사실을 세월이 가면서

우리는 확인해 가며 산다는 진실이다. 가을이 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명시가을날이다. 이 시를 한번이라도

읽지 않고는 가을을 살아왔다고 할 수 없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있는 일이 하나가 있다면 햇수로 4년째 함께 온라인

생활을 하고 계신 진심으로 아끼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뫼닮 선생님의

해외 여정이다. 선생님께서는 벌써 세 해째 가을 여정을 멀리 해외로

내 앞에서 떠나셨다. 참 소중한 추억이 아닐 수가 없다. 늘 당당하시고

담대하시게 낯선 이방지대를 많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시고 그 동안

잘 헤쳐 나가셨고 무탈하시게 귀환 하셨다. 이번에는 칠순의 노구를

이끄시고 멀리 중국의 오지 사천성과 동 티베트 여정을 떠나셨다.

 

돌아 오시려면 아직도 까마득한 5주 정도가 남았다. 예정하시기를 가을이

깊어가는 10월말에 돌아 오시겠다 하시고 먼 길을 떠나셨다. 모든 것에

절제가 분명하신 선생님은 하나를 정하시면 세상없어도 지키시는

어른이시다. 지난 2 -3개월 시험준비로 시간에 쫓기는 것을 아시고는

공부에 훼방이 될까 염려 되셔서 의도적으로 발길을 끊으시고 시험이 끝나고

결과가 긍정적 이었씀을 아시고 그때서야 편지를 보내시고 발길을 주신

그런 분이시다. 하루도 발길을 주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시지 않는

분이 모든 그리움과 보고픔도 깊이 묵묵히 가슴에 묻으시고 그 긴 시간을

참아 내신 것이다.

 

그 마음을 헤아리노라면 그 의미와 깊이를 알기에 가슴이 시려오고

눈물이 소리도 없이 가슴에 맺힌다. 더욱이 요즘 같은 이 험한 세상에서

지고 지순한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영혼의 소통 순결하고 순수한

우정과 사랑을 어찌 필설로 헤아리랴 싶다. 가을날 높고 푸른 하늘이

아니고서야 그 깊이를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가슴으로만이 가능한

소통이 아닐까 한다.

 

지금쯤 사천성 성도를 떠나셔서 그 어느 먼 곳에서 머무시고 계실 그리운

나의 선생님을 추억하는 밤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아리아부터 베르디 비제의

오페라 아리아까지 남모르게 꿰차고 계신 인생의 멋을 아시는 선생님은

가을빛에 물들어 가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험난한 여정에서 돌아 오시면 아직도 마음은 동안의 십대 청소년

같으신 나의 선생님께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을 들려 드리고 싶다.

 

살아 생전에 뵈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대로 서로가 영원히 만나지

않아도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모든 참되고 진실된 시간과 세월 위에

지고 지순한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우정과 사랑을 함께 나누었다는 사실만으로

진정 영혼과 가슴 깊이 감사하게 생각하며 행복하였노라고 말을 할 수 있다.

해맑은 童顔(동안) 선생님의 백 만불짜리 미소가 뇌리에 그림처럼 떠오른다.

아 나의 선생님, 뫼닮!

 

 

 

 

 

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살이 찌도록 마련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따뜻한 날을 베풀어주소서,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해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돋구어 주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집을 짓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외롭게 그러합니다.
잠이 깨어, 책을 읽고, 길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질 때면, 불안스레
가로수 사이를 이리 저리 헤맬 것입니다. 

 

 

 

 

 

 

 

 

 

 

 

 

 

 

'붓꽃 독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꽃 독백 - 그리워라  (0) 2011.10.02
붓꽃 독백 – 꽃은 피고  (0) 2011.09.27
붓꽃 독백 - 병상일지(4)  (0) 2011.09.21
붓꽃 독백 - 병상일지(3)  (0) 2011.09.19
붓꽃 독백 - 병상일지(2)  (0) 2011.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