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몸이 아파서 약을 복용하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기온이 뚝 떨어져 영상 8도 우리 지방 기후로는 몹시나 추운 날씨다.
영상 4도 내지 8도 아니 10도만 되어도 우리에게는 아주 추운 날씨로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다닌다. 목도리에 겨울 잠바에 코트에 그런가 하면 비웃기라도 하듯이
아무러지도 않게 반팔을 입고 다니는 감 무쌍하고 혈기가 왕성한 청춘도 있다.
아프면 누구나 하고 힘들고 쓸쓸하고 서럽고 외롭다,
그런가 하면 그런 생각조차 못하고 그냥 그대로 누워서 가만이 무념무상으로 잠을 자고
쉬는 순간도 있다. 이부자리 하나 더 덥고 자지않으면 한기에 잠을 자기란 고통이다.
더운 여름도 못견딜 일이지만 겨울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여름이 제일 싫은 계절이다.
가을 → 겨울 → 봄 → 여름 순으로 계절의 변화를 선호한다.
봄은 꽃가루와 각종 앨러지로 별로 호감을 갖을 수 없는 계절이기도 하다.
겨울은 추우면 차라리 옷이라도 하나 더 껴입고 살면 되지만 여름은 더위에 구제불능이다.
더욱이 냉방시스템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 여름내내 선풍기 조차 채 스무번도 켜지 않고
이번 여름을 지나온 것 같다. 겨울이라고 매일 히러를 켜고 사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건조하고 지나치게 더운 것 또한 실내공기가 탁해 한기만 가시면 끝으로 끄고 이부자리
하나 더 덥고 포근하게 잠을 이루면 될 일이다.
이런 때는 따듯한 취킨 숩이나 클램 챠유더 숩이 가장 먹고 싶다.
아니면 따듯한 한국식 국이다. 오늘만은 처음으로 커피를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
복통이 가라앉고 나서야 저녁나절 많이도 아닌 딱 한공기의 밥에다 배추 된장
소고기국을 먹고 속을 달래고 한밤 일어나 다시 달려가 내가 돌보아야 할 일을 맞추고
귀가해 달이고 달여진 무우국을 끓여서 속을 달래고 나니 하루의 고통이 가라앉아
평안을 찾는 듯한 느낌이다. 오랜만에 적포도주 한잔을 음미하니 차분해진다.
쇼팽의 낙턴을 윤디 리가 연주해주는 것을 듣다가 문득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듣고 싶어 유튜브에 들어가 만난 것이 성시경이란 가수가 불러주는 차분한
곡들 이었다. 평소도 차분하고 조용하고 청결한 그런 생활환경을 선호하는 편이라
들뜨거나 잠시라도 손을 놓고 집에라도 있으면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하거나 무료함에
못견디어 밖으로 나아가 누군가를 만나고 어디든지 가서 시간을 보내고 아니면 어딘가로
또 떠나야 하고 그런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도 20대 때 이야기다.
사람이 어떻게 늘 밖으로 나돌아 다니면서 살 수 있으며 쾌락 추구만 하면서 살 수
있나 싶다. 사람이란 각자 생활습관과 철학이나 시각이나 자란 환경이 다 다르니
살아가는 모습도 천차만별에 천층만층 구만층이란 생각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정적인 사람이라 주로 차분히 시간이 나면 독서와 클래식 음악 즐기고
여름철 같으면 야외 음악회에 가고 시간이 허락하던 때 같으면 특정한 공간에서 같이
이젤 위에 캔버스 놓고 붓질하며 서로 작품 평하면서 와인이나 맥주 한잔 정도 나누며
가끔은 모여서 한상 가득차려놓고 조촐한 파티를 하고 결속을 다지며 조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여행이야 주변에 어려운 큰일들이 있기 전 같으면 매년 한달씩 휴가를 신청하여
먼 나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 조차도 여건상 허락이 안된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일 나의 도움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기에 당분간은 모두 잊고 묵묵히 살아가야 하는 삶이다.
오페라 공연도 미술관도 먼나라 문명을 만나는 일도 당분간은 여건상 잊고 살아야 할 일이다.
늘 곁에는 오페라나 클래식과 순수 미술이나 사상가들 책 몇 권 정도나 시집 몇 권과 꼭 늘
곁에 두고 듣고 싶은 클래식 CD 서운하지 않을 정도는 두고 살아가는 소박하고 청결한
정리된 생활이면 되었다 싶다. 또한 내가 즐기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있는 아주 소박한
공간으로 만족하기에 무엇인가를 찾아서 밖으로 나돌아 다닐 이유는 더 더욱이 없다.
컴퓨러도 데스크 탑 하나와 랩탑 하나면 충분하여 내가 원하는 정보나 소식은 다 접할 수
있기에 충분하다.
누구처럼 몇만불 몇억짜리 골프장 회원권도 나에게는 필요가 없는 일이다.
모두들 다 골프를 치는 세상 골프라도 못하면 사람구실이라도 못하는 것처럼 착각들
하고 사는 세상 애당초 그런 부르조아적인 스포츠에는 관심을 안두기로 작정하고
산지 몇십년이다. 꼭 하다 못해 작은 벤츠라도 안타고 다니면 뭐가 안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것들이 내 인생의 가치관과 철학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기에 나는 필요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밥을 굶고 사는 사람도 아니며 누구에게 구차한 소리를 하고 산적도 없고
누구한테 단 일전도 평생동안에 빌린적도 없으며 누구를 사기치거나 감언이설로
등을 치고 부를 축적한 일도 없으며 남의 것을 탐한 일도 없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렇다고 남의 것을 공짜로 탐한 적도 없으며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만큼 배려를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사랑을 베풀줄도 아는 사람이지만 아무에게나 지조없이
헤프게 정을 주고 사랑을 나누고 하는 사람은 더 더욱이 아니다. 공과 사는 분명하다.
근무시간에는 내가 맡은 바 책임한도내에서 그리고 허락되는 범주에서 배려를 한다면
아닌 것은 아니며 원리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우리 미국사회란 곳이 그런 곳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신용이 보석 보다 더 소중한
사회이다. 신용을 쌓기는 힘들고 어려워도 잃기는 쉽다. 이제는 일을 벌일 시기는
아니며 하나 하나 주변을 정리하여 가면서 살아야 할 때가 되어가고 있다.
신용이라면 우리 미전국 상위 2%에 들어가는 최상위급 신용을 신용조회 기관으로
부터 인정받고 있다.
이제는 죽음의 준비도 서서히 생각을 하여야 하고 죽은 후에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모든 조치와 준비를 해놓아야 마땅하단 생각이다. 죽으면서 돈이
없으면 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와 짐이 너무 크다. 그래서 사전에
건강하여서 죽음의 준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정과 사랑에도 공과 사의 구분과
그에 상응하는 나눔과 배려의 깊이 이외에 절제도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늙어가면서 삶에 대한 절제도 필요하며 평소에 하던 일에 대한 미련없는 포기도
할줄 알아야 하며 외롭고 고독한 삶의 일장일단도 받아드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하루라도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지 않으면 죽는 줄 아는 성격도 늙어 병들면 거기가
종착역이라면 그때 가서 만나는 인생에 대한 회의와 허무를 맞부닥치기 보다는
미리 나이에 걸맞는 절제를 배우고 받아드리는 지혜를 몸에 익히는 것도 삶과
늙음을 겸허히 받아드리는 하나의 지혜로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듯이 인생을 바라보며 즐기는 관점이나
가치의 기준도 천층만층 구만층이다. 나같은 사람은 밖으로 나돌아 다닐 이유가
전혀 없다. 내가 인생을 즐기는 데 필요한 내적인 모든 즐거움이 되는 기본적인
것이 작은 공간 집안에 다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을 다 헤집고 다닌다고 나 같은
사람이 대만족하고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찾을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가치관은 그런데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권의 법정 스님의 잠언집
한권의 이해인 수녀님의 맑고 고운 시집과 수필집
한권의 슈바이처 박사의 명저 <생의 외경>
몇 권의 빈센트 밴 고흐의 영문 서간문 전집
한권의 독일의 시성 휠덜린의 시집
마티스, 모네, 빈센트 밴 고흐등의 작품집으로
바흐부터 라흐마니노프 까지
루빈스타인부터 브렌델과 호로위츠부터 윤디 리와 랭랭과 유자 왕의 연주까지
닥터 지바고의 작품부터 괴테의 이태리 기행문까지 충분하다. 아주 충분하다.
그리고 가끔 음미하는 한잔의 적포도주로 분위기 쇄신이나 즐기는 데 충분라다
나는 알콜홀 중독자도 아니며 그렇다고 줄담배나 술을 마시며 일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더 더욱이 아니다.
외롭고 힘든 사람들 손한번 따듯하게 잡아주거나 흩어진 머리카락 한번 뒤로
재켜주고 따듯한 말 한마디 나누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한번 진심어린
마음으로 관심을 표명하거나 안아주고..................
두 다리도 없는 그 할아버지가 갖고 있는 전재산은 단팥빵 하나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가 꼭 빼놓지 않고 지켜가는 불문율 하나는 그 단팥빵을
매주 같은 사람에게 건네주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 유일한 낙이며 속정과
자신의 우직한 사랑을 표현하는 길이다. 참된 인간의 정과 사랑은 단팥빵
하나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그 단팥빵 하나를 건네주지 않으면 못견디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사람이 누구뇨........................
롯데나 삼성가나 강남 사람들이나 우리 미국의 부호들이 두 다리 모두 없는
할아버지의 단팥빵 하나의 진정한 인간적인 사랑 그 의미를 알까?
자리에 누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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