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 배달부 그러나 이제는 테너 김승일 그가 부른 <Nessun Dorma>를 처음 만난
간밤 부터 몇 십번을 온종일 듣고 또 들었는지 모른다. 온전신에 전율을 일으키고도
남는 역경과 시련을 이겨낸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뜨거운 감동이었다.
뜨거운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감동이다.
그 감동을 어찌 필설로 형언이 가능하겠는가?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을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드는 인간 김승일의 투혼은
뜨거운 불꽃과 같은 무한한 인간적인 감동이 함께 한다. 하여 성악가의
대부 김동규 같은 분들이 김승일을 아낌없이 후원하여주고 독창회 기회를
마련하여준 이유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영혼들은 생각보다 많다.
온 영혼으로 불러주는 오페라의 아리아 부터 일반 명곡까지 말이 필요 없었다.
어디를 가나 누가 잘되면 질투와 시기 그리고 깍아 내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인간들은 널려 있다. 한 기사의 댓글을 보면서 어이가 없다 싶었다.
음대 성악과에 인간 김승일 보다 더 노래를 잘부르는 사람이 있다 한들
그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중요한 사실은 누가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를 먼저 따느냐가 아닐까.....
댓글 다는 인간들의 질투와 시기어린 문구를 읽노라면 참 어리석은 인간들 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언제나 못난 인간들이 말이 많고 질투하고 시기한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분발하는 계기로 삼는 다면 그것이 더
올바르고 아름다운 성숙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잘났으면 뭐하나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다면 그리고 그 재능이 빛을 보지 못한다면 한갖 무용지물이
아닐까 싶다. 꼭 못난 것들이 남 잘되면 이유도 근거도 없이 질투하고 시기한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고 노래를 잘부르는 성악도가 넘쳐 나고 그들이
프로가 된다 한들 인간적인 감동이 없다면 그런 성악가들이 부르는
연가나 오페라의 아리아는 듣고 싶지 않다.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인간적인 깊은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세계의 화가 빈센트 밴 고흐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온갖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그가 이루어낸 불후의 예술혼 때문이다.
밴 고흐 보다 스케치를 잘하는 미술학도나 화가는 널렸다. 하지만
밴 고흐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필설로 형언이 안 되는 깊은 감동을
전해줄 수는 없다. 하여 그들은 무명일뿐이며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아마추어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 몰라도 링크 - http://www.youtube.com/watch?v=jPfRbDKWUzE
Nessun Dorma 링크 - http://www.youtube.com/watch?v=L0gKqslal_Q
테너 김승일의 네순 도르마는 형언하기 어려운 온전신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깊은 감동이 담겨져 있다. 이틀동안 몇 십번을 반복하여서 듣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물망초부터 오 솔레 미오 까지 어느 하나 감동이 아닌 것이 없다.
그저 풍부한 성량과 천부적인 성악적인 재능에 놀라울 뿐 이다.
언젠가 CD가 나왔으면 좋겠다.
꼭 구입해서 듣고 싶다.
고아 소년 최성봉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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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16:00
경기도문화의 전당에서 테너 김승일의 '내 생애 첫번째 무대 '공연이 열렸습니다.
티켓 발매 초기에 1600석이 매진되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았던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날 관객의 특징은 전국 각지에서 골고루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부산, 울산, 대구, 창원, 등 멀리에서 찾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 야식집 배달부 김승일 신드롬 □
아직 아무도 '김승일 신드롬'이라고 이름 붙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날 김승일의 '내 생애 첫번째 공연' 현장에서
'김승일 신드롬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그 진원지 핵심이 2,808명 회원들의 김승일 팬클럽 회원들입니다.
전국에서 200여명의 회원들이 조직적으로 단체관람을 신청했습니다.
▲유정아 아나운서. 김승일의 감정을 가라 앉히려는 섬세한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팬들의 열기와는 달리 현장은 차분하고 조촐한 분위기 그리고 오붓한 공연이었습니다.
눈살을 찌푸리지 않아서 좋았던 것은 단체나 유명인의 과시용 화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가대 친구들과 삼일상업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이 보낸 두개의 화환이외에는. 자연 공연
전에 자리를 빛내주신 분들을 소개하는 번잡함이 없어서 좋았습니다.한 점의 군더더기도
없이 곧바로 공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야식집배달부가 아닌 테너 김승일이라고 불러 주세요
뒤집어 말하면, 한 방송의 예능프로에서 야기된 '야식집 배달부 김승일'의 반향을,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를 짚어보는 계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큰 일 한다는 사람들은 뻑하면 무슨 거창한 복지를 내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날 공연을
보기위해 멀리에서 달려 온 소박한 시민들의 마음 만큼도 울림이 없습니다.
▲ 기도하는 마음으로
배고픈 학생들도 먹여 주고 배고프지 않은 학생들도 다 먹여 주자는 마당에 이 사회는 재능이
특출한 이 청년을 10 여년이나 막노동자로, 야식배달부로 방치하였습니다. 참으로 이 사회가
미안한 마음을 가질만도 한데 제2, 제3의 김승일을 염려하는 성찰하는 분위기는 그리 깊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출장에서 새벽에 귀국한 김문수 도지사가 참석한 것은 그나마 경기도에서 만이라도
구조적인 대비책이 나오지 않을까 위안을 삼아 봅니다.
▲ 김동규 교수는 첫 무대의 김승일에게 온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는데, 김승일에게도 그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김승일의 '내 생애 첫번째 무대'>를 준비한 경기도문화의전당 조재현 이사장은 무슨
아픔이 있었을까?
아픔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남의 아픔에 가슴 절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김승일의
목소리를 접하고 조재현 이사장은 '그의 미래가 불안하여' 야식집으로 달려 갔고
방송국을 찾았습니다.
▲공연 후의 기념 촬영
내일의 무지개 빛 복지보다도 당장의 이런 작은 발품이 우리를 더 감동 시킵니다.
이번 공연이 더욱 의미있는 것은 재능기부의 형태로 많은 분들이 무대에 섰습니다.
유정아 아나운서, 가수 적우, 뮤지컬 배우 임혜영, 바리톤 김동규 교수, 유형길 오케스트라
지휘자 등이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주인공 같은 김승일의 앞 날에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에
발벗고 나섰습니다.
50여명의 오케스트라와 김동규 교수 같은 최고의 성악가가 출연하였음에도 전 좌석
만원이라는 착한 가격은 이런 아름다운 마음들의 재능기부로 가능하였습니다.
▲ 시작전 팬클럽 회원들이 김승일을 에워싸고
첫 곡을 부르기 전 김승일은 한동안 몸을 돌리고 울먹였습니다.
그렇찮아도 목구멍이 뻑뻑하고 뜨겁던 참에 모두들 눈시울 적시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라고는 하지만 체계적인 교육의 기회가 없었던 신출 앞에서,
열창하는 김동규 교수의 마음 씀씀이도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김승일은 무대에 서기 전에 이미 예술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 때문 만이 아닙니다. 팍팍했던 그이 지난 삶에도 의지를 굽히지
않은 그 불굴의 마음씨를 더 사랑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전국의 팬들은 선뜻 김승일을 뒤로하고 떠나지를 못했습니다. 연령대는
사 오십대가 주류입니다. 모두 누나, 큰형님뻘입니다. 현재로서는 이들이 김승일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공연이 끝나고도 팬들은 쉽사리 발길 돌리지 못했습니다
공연 전 김문수 지사가 탄식을 했습니다.
'김승일 같은 인재가 숨어 있다니 이 사회가 참으로 깊습니다.
이런 재능있는 학생에게 10년씩이나 야식 배달을 시킨 이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뭐 했나?'
조재현 이사장의 대답은 궁색합니다.
'학교에서 교수들도 몰랐지요..'
김문수 지사:
'교수가 제자를 모르면 누가 아는가? 야식집 사장님은 아는데... 야식집 사장님이
교수보다 낫구먼! 야식집이 매산동이면 도청 바로 밑인데 야식집 사장님이 도지사보다
낫구먼! 도지사로서 미안하고 책임을 느낍니다...이 사회의 구조에 문제가 있어요.'
▲공연 팜플랫을 들고 '김승일 같은 숨은 재능이 있다니 참으로 이 사회가 깊습니다'
조재현 이사장:
'지방에서도 많이 오고 입장권이 매진 되어 전국적으로 문의 전화가 쇄도했습니다.'
김문수 지사:
'그렇다면 전국 순회 공연도 준비해 보시지요. 그리고 이런 인재들을 발굴해서 앞 길을
열어주는 문제도 깊이 있게 살펴 봐야 겠습니다.'
이런 대화들을 가능하게 한 것이 김승일 신드롬의 영향입니다.
주위에 제2. 제3의 김승일이 있는지를 살피고 뒷받침하는 일이 앞으로 경기도에서
펼쳐집니다.
경기도문화의전당 '내 생애 첫번째' 공연은 제2, 제3의 김승일 같은 재능을 가진
숨은 인재들을 발굴하는 무대로 그 기획 의도가 참신하고 감동적입니다.
계속 사업인 '내 생애 첫번째 공연'에서 더 많은 감동이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쓰다듬어 주고 손잡아 주고...
경주 최부잣집의 가훈 중에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식에 굶주리는 것보다 더 절망적인 것이 배움에 대한 굶주림입니다. 때를 놓치면 다시
채우기 어려운 것이 배움입니다.
박하원 기자( ichfrei@invil.org ) )/게시일 201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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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배달부 김승일, 스타킹 출연 후...
세계적인 성악가 폴 포츠와 협연 등 활동...5일 서울 독창회
![]() |
▲ SBS 스타킹에 야식배달부로 일하다가 다시 노래를 시작한 김승일 ©뉴스파워 |
어머니의 투병과 죽음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일을 다하며 살다가 야식집
사장의 제보로 2010년 12월 4일 스타킹에 출연해 유명 성악가로부터 "이런 목소리는 처음
들어본다."는 찬사를 받으며 다시 노래 인생을 시작한 김승일.
세계적인 성악가 폴 포츠와 함께 무대에 서는 등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희망의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는 그를 만난 그의 아픔과 눈물과 희망을 들어봤다.
김승일 곁에는 부산동서대학원 교수이자
가족치유전문가인 변영인 교수가 어머니처럼
든든한 멘토가 되어 그를 돕고 있다. 김승일은 오는 11월 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독창회를
가진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스타킹에 출연해 말 그대로 스타가
되었는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올해 12월 4일이면 스타킹 처음 나온 지 1년이 되는군요.
작년에는 배달하고 있던 동네
평범한 청년 이었는데 1년 만에 정말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의 독려와 응원으로 노래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희망을 많이 얻을 수 있었구요.
우선 스타킹 출연후 조영남씨한테 콘서트 무대에 같이 서달라는 제의를
해주셔서 세종문화
회관에 무대에 서게 되었구요. 4월에는 탤런트 조재현씨가 제 생에 최초의 콘서트를 열어
주셨구요. 수원 문화의 전당 개관이래 매진 역사는 처음이라더군요. 거의 2천석 가까이
되는 좌석이 단 3일만에 매진되었죠. 정말로 놀랐고, 감사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저
스스로도 정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어서 폴포츠와 전국 순회 연주도 하였고, 제헌절에 국회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일까지
하게 되었죠.
정말 사람 인생이 이렇게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10월 1일 부산에서 독창회를 시작으로 11월
5일은 서울 삼성동에서 독창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유튜브를 통해 제 영상을 보신 미국 현지에 계신분이
초청 예정이어서 미국에도 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일들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못 마친 학업을 마치려고
학교(한양대) 앞으로 이사 했습니다.
|
한국 최고의 성악가 중 한 분으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들었는데요.
성악은 언제부터
했는지요?
성악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입시를 4~5개월 앞둔 6~7월경에 본격적으로 레슨을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예술고나 예술중 정도는 나와야
들어갈수있는 한양대학교에 합격했어요. 당시 한 학년에 35명 정원이었는데
재수하지
않고 현역으로 들어간 사람은 단 10~20퍼센트에 불과했어요.
거의 재수를 안 하고는 들어갈 수없는 학교인데 단 몇 개월 공부하고,
단번에 재수도 안 하고 합격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죠.
그런데 어머니의 투병과
사별로 학업을 중단했다면서요?
네, 그렇게 한양대학교를 들어갔지만 학비가 워낙 비싼 음악대학이라
가족들이
생각도 않고, 준비도 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학비를 마련하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님이 쓰러지셨어요. 정말 건강하시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시는 분이셨는데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는 장면을 제 눈으로 보았어요.
그 때 노래는 사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근데 차츰차츰 회복되면서 다행히 조금씩 좋아지셨죠. 그래서 마음을 정리도
할 겸 군대도 다녀오고, 학교생활도 다시 시작했는데 다시 쓰러지셨어요. 제가
노래하려고 이렇게까지 가족을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았죠. 그래서 고민은 정말
오랜 시간 했지만 결정은 단번에 했어요. 자퇴를 결심하고, 단번에 학교를
그만 두었지요.
학업을 중단한 후에는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했어요. 돈 버는 일이라면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택배, 노점상, 부동산 사무실, 음료 도매,
야식 배달, 네비게이션 영업 등등 전전하면서 일을 했어요. 네비게이션 영업을
할 때는 배우 하지원의 아버지가 하시는 장소에서 일을 했어요.
학업을 중단하고 정말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일을 했군요.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보면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사회생활 시작하고는 택배를 하면서 큰 사고도 두 번 났고요.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빚이 3천만원 넘게 되는 일도 겪었습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그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일을 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빚만 늘어갔죠. 정말 자살할 결심을 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스스로 이겨내자고 수없이 다짐하기를 반복하면서
극복했어요.
그 와중에
도저히 이 상황을 벗어 날수 없을 현실에 놓였을 때 제가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상황으로 되돌려 놓는 어떤 힘을 두번 정도 느꼈습니다. 신기한
일이었어요.
신용불량자 밖에 될 수 없고, 자칫하면 빌린 돈 때문에 감방이라도 갈 수 있을
시점이었는데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었죠.
그 때 ‘하나님이 계시구나’ 라는 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령의
역사죠. 그리고 나선 돈이 생기면 거의 사용하지 않고 지독하게 모았어요. 나중에는
수천 만 원이 모아졌어요. 그렇지만 그것도 친구가 창고를 짓는다고 해서 빌려줬는데
모두 날린 적도 있어요. 정말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연속이었어요.
|
5. 어머니의 사별로 학업을 중단했고, 돈을 벌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을 했는데
그런 가 가운데서도 어려움이 많았군요. 오토바이를 타고 야식 배달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면서요?
야식집은 밤에 배달을 하니까 노래하기
좋았습니다. 어떤 때는 배달하면서 노래하다가
신호대기 중에 혼자서 노래를 하니까 사람들이 전부 쳐다보더라구요. 그래서 부끄러워서
신호도 바뀌기 전에 얼른 도망가기도 했지요. 노래는 제가 힘들고 고되고, 괴롭고,
슬프고 또 기쁠 때 항상 위로가 되어 주었고고, 가족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주었어요.
야식을 배달하는 중에 스타킹에 출연했지요?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어요?
정말 다시는 노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생각도 안 했어요. 야식집 사장님과
7년간
같이 지내면서도 예전에 노래를 했다고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죠.
그런데 우연히 핸드폰에 심심해서 녹음한 제 노래를 보여줬는데,
사장님이 스타킹에
신청하시겠다고 해서, 스타킹이란 곳이 신청한다고 모두 되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죠. 그렇다고 될지언정
나갈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얘기하고, 2주 후쯤에 스타킹 작가에게 연락이 왔어요. 스타킹
작가인데 녹음해서 보내달라고요. 10년 전, 절대로 노래를 안 하겠다고 학교까지
단번에 나왔던 상황에서 처음에는 출연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이상하게 가슴에 한이 있던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는
이상하게 놓치고 싶지 않았지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스타킹의 문을
두드렸죠.
스타킹에서 뜨거운 갈채와 찬사를 받으면서 다시 노래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분은 누구였어요?
물론 어머님이죠. 무척 기뻐하셨을 텐 데….
어려웠던 시절을 지내면서 얻은 인생의 교훈은 무엇인가요?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죠. 변화의 동물이란 말인데, 집에도 오토바이 사진을
붙여놓았어요. 초심을 잃지 말고, 꾸준히 성실히 하다보면 무슨 일이든, 어떤 날이
되든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머니와의 사별로 다니던 교회까지 그만 두게 되었다면서요?
그만큼 고통이 컸다는
것인데요.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나가면 성가대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보면
다시 노래하고 싶어질까 봐서 다시는 안 나가겠다고 다짐을 했었죠. 지금은 다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김 선생에게 어머니와 같은 멘토가 변영인 교수님(동서대학교 선교대학원)있다면서요?
변 교수님과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변 교수님이 가족치유 전문가라서 김 선생의 많은
상처를 자연스럽게 싸매 주고 있을 것 같은데요.
교수님은 부산에 연주 갔다가 우연히
식사하는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따뜻하고,
좋으신 분이시다 생각했죠. 저를 잘 이해해주실거 같았구요. 많은 격려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변영인 교수님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분이어서 더 잘
돌봐주시겠지요.
교수님의 겪었던 어려움은 듣고만 있어도 눈물이 한바가지 나올정도로 힘든 시간을 이겨내신
인간 승리자이시죠. 시동생 시누이 8명을 시집장가 보내고, 슬하에 자식 넷을 두시고, 40에
공부를 시작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시고 교수까지 되셨으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시죠.
제가 스타킹을 통해 연예계 분야에서 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시기와 질투 그리고, 시련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와중에 변영인 교수님이 항상
신경써 주시고, 자신의 일보다 제 일을 더 힘써주시는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저에게 노래는 희망입니다. 어렵고 꿈을 이루지 못한 분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는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된다고 하더라구요. 간절히 원하고,
간절히 바란다면
희망은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부산에 이어 서울에서 독창회를
연다고요?
부산에서는 10월 1일에 했어요. 서울에서는 11월 5일 삼성동 올림푸스 홀에서 독창회를
갖게 되었어요.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은 무엇인가요? 학업을 다시
시작한다고요?
1차적인 목표는 음반을 내는 것이고요. 동시에 희망대장정을 하고 싶습니다. 걷는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요. 예를 들어 심장병어린이 돕기 등의 음악회를 1만석에서 3만석
정도 되는 잠실체육관 같은 곳에서 연주회를 하고 싶습니다. 전국을 순회 하면서
할 수 만 있다면 더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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