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이별을 준비하면서

붓꽃 에스프리 2012. 11. 13. 19:02

 

 

 

 

그가 살았다면 지금쯤 내 나이가 되었던지 아니면 넘었을 것이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주인공은 고아였다 그리고 그의 파란 만장한 이야기

만큼이나 그는 불행하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난 속에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다.

 

문득 나는 왜 이 주인공이 생각날까…………………

이 가을의 초입에 떠나 보내드린 사랑하는 내 인생의 전부였던 어머님 이전에

맘 영어권에서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성장하고 교육받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으로서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어휘 엄마 또는 어머니다.

 

인생과 삶을 감히 누가 이것이다 라고 단언 할 수 있으랴....감히 감히 말이다.

공수래 공수거 인생은 그대로 빈 껍질 아무 것도 아니라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당사자가 고백하는 고백이다. 맘 즉 어머님을 9 12일에 보내드리고

나는 또 다른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내 인생에 이런 일은 이번으로서

두 번째다. 학부 때 나는 사랑하는 내 가족을 한 해에 두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 보내야 하였던 처절한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그 충격으로 오른쪽 다리를

거의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절름발이가 되다 싶이한 일이 있었다. 그 후유증에

지금도 가끔은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와 똑 같은 인생의 시련의 과정을 지금 두 번째 다시 걸어가고 있다.

이 초가을 보내드린 어머님 다음으로 나에게는 어머니와 다름없는 또 하나의

사랑을 이제 떠나 보내야 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 과연 하나님은 계실까 싶은

이 시련 앞에서 나는 욥을 생각하고 피눈물을 삼키고 삼키고 있다.

 

휴무 첫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내 하나의 사랑과 남은 두 아이들을 데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하여 정부 기록 보관서에  보관된 유언장의 사본을

다시 환자와 같이 점검하고 모든 재산에 관한 내용물과 장례 절차에 관한 모든 것을

상의하는 시간을 갖고 고통 속에 있는 당사자를 돌보고 아무 말도 없이 이별을 준비하는

당사자의 손을 잡고 온종일 침상 곁에 앉아서 지켜보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큰 아이가 직장에서 퇴근하여 돌아왔다.

사랑하는 엄마 옆에 앉아 있는 큰 아이는 의료계에 종사하지 않으니 엄마가 밥을

더 잘 먹고 하면 나아 질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엄마가 이제는

떠나가야 함을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가 다 커 성인이 된 30 세가 되어가는

아이가 닭 똥 같은 눈물을 뚝 뚝 흘려 내 가슴에 안아주며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K,

너무 슬퍼하지마 그리고 울지 말고 눈물 보이지마 엄마를 생각하고 알았지

네 옆에는 내가 있잖니 우린 엄마를 가장 편하게 보내주어야 해 그러니까 울지마.

엄마가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 지금은 우리의 바램이고 소원이니까 울지마.

내가 너희들 옆에서 지켜주고 남은 인생도 같이 살고 결혼 시키고 다 할 것이니까.

 

그런데 엄마를 볼 수 없잖아……………불 수 없게 되잖아 하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아이는 흘리고 있었다. 피눈물을 억지로 참고 삼키면서 내 가슴에

아이를 품어 주었다.

 

K,

울지마 나도 할머니가 보고 싶은 날 볼 수가 없잖니 이제는 돌아 가셨으니까.

인생은 누구든 태어나면 죽는 것이란다. 다만 아빠는 너희들이 3 4살 때

돌아 가셨다면 이제 엄마가 불행하게도 보통사람들 보다 10년 정도는 일찍

너희들 결혼도 못 시키고 일찍 불행한 병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지 나도

언젠가는 죽는 것이고 너희들도 인간이기에 먼 훗날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기르고 하다 어느 날 또 떠나는 것이란다.

 

작은 아이가 직장에서 돌아왔다.

우리 오늘 저녁을 뭐로 하지………………결국 우린 상의 끝에 우리 동네서

제일 유명한 피자 집에서 특별한 피자를 주문하고 큰 아이가 먼 길을 운전하고

한 시간이 걸려 다녀와 같이 저녁으로 식사를 하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병상

가까이 앉아서 손을 잡고 있으니 평안함에 환자는 눈을 감고 안식을 하게

되었다. 얼마 후 병상에서 피골이 상접한 환자는 내 얼굴에 일생에서 처음으로

볼에 키쓰를 우리 서양식으로 하면서 사랑하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큰 아이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엉클 나 직장 그만두고 엄마 곁에 있을까 하였다.

안돼 요즘 같이 불경기에 그만두면 안돼 엄마도 나도 원하지 않아. 엄마를

위하여서는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하고 우리들의 모든 일상을 포기하고 매달려야

하고 직장 끝나면 모두 무조건 집으로 돌아와야 해 알았지.......

 

예스................

한국말이라곤 겨우 몇 마디 하는 미국 태생의 아이와는 영어로 대화를

할 수 밖에는 없다. 다행이 작은 아이는 한국말을 잘하고 읽을 줄 까지

알지만 모두 영어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 영어가 모국어다.

 

돌아가신 어머님에게 늘 해드렸던 저녁 5시 시간 때의 식사 봉양과 손발

닦아 드리고 머리 빗겨드리고 늘 돌보아 드리면서 해드렸던 우리 서양 사람들

인사인 키쓰를 나 또한 난생처음 병상에 환자에게 해주면서 그저 마음의

평안만을 찾기를 바라니 다른 걱정은 하지 말라고 부탁에 부탁을 하였다.

 

아이들 데리고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결혼 다 시켜 행복하게 살도록 할 테니

나를 믿고 그저 마음의 평안만을 찾으라고 신신당부에 당부를 하고 또 하였다.

뒤뜰에서 자라는 호박이 얼마나 큰지 아이들 머리 만하다. 말려 놓은 호박이며

고추도 만져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준비를 하고 있는 환자를 생각하며

피눈물을 삼키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비록 우리가 이런 불행을 맞이하고 생을 마감한다 하여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은 버리지 말아 달라고 당부를 하였다.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재산세 내야 할 서류 뭉치가 가득한 빨간 큰 가방 하얀 가방 하나씩 들고

돌아오는 길 오이와 국순당 막걸리와 하이네켄 맥주를 사들고 돌아왔다.

작은 아이도 나도 맨 정신으로는 살기가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이라 아이도

나도 맥주를 한두 병을 매일 마시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는 실정이다.

언제나 우리 두 사람 모두 맥주를 마시지 않고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랑하는 혈육을 1년에 두 사람이나 떠나 보내야 하는 이 가혹한 시련 앞에서

어떤 할말도 없다. 다만 침묵뿐 그리고 앞으로 다가오게 될 운명의 장례는

우리 서양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우리 직계 가족들만이 모여서 조용히

치를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 서양 사람들은 많은 경우 타인이 알게 되는 것을

극히 바라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 이라면 안면만 있어도 동네 방네 부고를

돌리지만 우리 서양사람들은 그런 것을 극히 터부로 생각한다.

 

더 무엇을 말을 할 수 있을 까 싶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을까 싶다.

 

작은 아이는 강인하고 독한 면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 배우 같다고

하는 꽃미남의 육척 장신이라면  큰 아이는 욱 하여도 여린 감성을 소유한

평상시 참 착하고 강인하여 돈 벌어다 엄마 홀로 고생 많이 하였다면서

몇 천 만원 짜리 엄마 다이어몬드 반지를 사다 안기고 하던 아이다.

 

이 두 아이들을 데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 이를 악물고 살아가야

하는 가혹하고 가혹한 현실 앞에 나는 지금 서있다. 어찌 이 슬픔과 고뇌와

애통함을 다 필설로 형언하랴 싶다. 이를 악물고 때론 하늘과 천장을

바라보며 피눈물을 삼킬 뿐이다.

 

생을 보통 사람들의 평균 보다 조금 일찍 마감하여야 하는 환자가 가장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이다. 아빠를 34살에 여의고 이제 엄마 마저

여의고 살아가야 하는 청춘들이 애처로울 뿐이다. 이 시점에서 나란 존재의

슬픔과 애통함과 고독을 생각함은 사치다.

 

진정 사치라고 생각한다.

작은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등 뒤에 대고 한마디 한다.

우린 강해져야 하고 강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암 그렇고 말고 우리가 누구니 산전수전 공중전 수중전 까지 겪고도

굳굳이 살아온 사람들 인데 우리가 쓰러지면 안 되다 말다.

그래 이를 악물고 살자…………

 

나 이 다음에 죽으면 엄마의 바램처럼 나도 화장해줘........

살아가면서 언제 묘지를 찾아 오겠니.....

왜 너희들에게 신경을 쓰게 하고 부담을 주어야 하니...

 

나는 언제나 너희들을 사랑하고 너희들 옆에 서 있을 것이고 지켜 줄 거야

절대로 너희들을 버리지 않아 그러니 걱정 하지 말라고 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