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서랍을 열고 <귀향 4>

붓꽃 에스프리 2012. 11. 22. 00:24

 

 

귀향 4부

 

 

다음날 조간신문에는 그동안 많은 해외입양아들의 뿌리 찾기 소식이 간간이
활자화되어서 국내신문지상에 소개되었듯이 사회면에 데이빗과 생모와의
상봉소식이 애잔한 감동의 이야기로 기사화 되여 나왔다. 한국동란이후
얼마나 많은 전쟁고아들과 60년대 보리 고개의 가난 속에 버려진 아동들이
데이빗처럼 해외로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아서 떠나야 하였던가 그리고
70-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미혼모와 외래문화로 인한 성 윤리의 무너짐
속에서 얼마나 많은 미혼모의 자녀들이 버려져서 해외입양이란 길을
선택하여야 하였는가를 생각할 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중에서도
데이빗은 행운아에 속하였다. 양부의 아낌없는 후원과 이해와 배려로 꿈에도
그리던 생모와 누나를 만 날수 있다는 사실만도 그렇다.

 

생모와 누나 옥자의 집에서 첫 밤을 보낸 데이빗은 아침조간신문에 나온
자신의 상봉장면과 인터넷 기사가 실린 것을 보면서 비로소 자신이 꿈에도
그토록 간절히 바랬던 생모 곁에 있다는 현실인식을 할 수가 있었다.
벽안의 양부 역시 이제야 자신의 인생의 수수께끼 하나를 완벽하게 푼
느낌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가 있었다.

 

햇살이 찬란하게 들어오는 거실 문을 열어제치니 마당 한구석에서 머리를
파묻고 오수를 즐기는 누렁이 앞으로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날쌔게
지나가고 있었다. 움직이는 물체를 본 모양이다. 마음을 추스른 일행은
데이빗의 요청으로 죽은 아버지 묘지를 방문하기로 하고 옥자의 안내로
경기도 연천 산자락에 묻혀있는 선영으로 버스를 타고 찾아갔다.

 

데이빗 생모에게는 남편의 노름과 계집질로 가난을 견디다 못해 자식새끼
내동댕이치고 집을 뛰쳐 나아간 후 산전수전을 다 겪고 그 남편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은 후 한 많은 세월 뒤도 안 돌아보고
그 길로 재혼을 한 후 첫 걸음 이였다. 지방도로변에서 잡목이 우거진
산자락을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양지바른 곳에 죽은 남편의 묘지가 있었다.
잡초가 우거지고 봉분의 일부가 무너져 나아간 모습이 쓸쓸하기로 말하면
말을 할 수 없이 처연할 정도였다.

 

옥자가 먼저 묘지 앞에 자리를 펴고 과일과 소주를 잔에 따르고 담배에 불을
부쳐서 갖고 간 접시 위에 놓고 절을 한 후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건만
생모는 그저 주춤거리면서 아직도 못 다한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 야속한 사람아, 우째 그럴 수가 있어....자식새끼 버리고 계집질에
그게 뭐여....뭐라고 할거여.....자식들한테....이 원수 같은 사람아....
당신이 버리고 간 자식이 여기눈이 시퍼렇게 만리타국에서 피눈물
흘리면서 피붙이가 뭔지 그리고 부모가 도대체 뭔지 못내 그리워 이렇게
여기 찾아왔어...엉엉............우째 그럴 수가 있어......
내 가슴에 못박고 가고 자식새끼 피눈물나게 만들어 놓고 가고
뭐라 할껴.....말 좀 해봐.......
엉엉....."

 

데이빗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일생에 처음 보는 아주 생소한 문화체험이 아닐
수가 없었다. 더욱이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 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더 답답한 것은 복지 회에서 보내준 통역을 담당한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없이는 전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죽은 아버지 앞에 선 데이빗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 수 없는
파문과 요동이 격렬하게 일고 있었다.

 

통역의 도움으로 데이빗은 누나 옥자가 시키는 대로 잔에 소주를 붓고
죽은 생부 앞에 잔을 바치고 서구 생활로 뼈가 굵은 구부려지지 않는 허리를
굽혀서 절을 간신히 하는 동안 옥자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데이빗이 절을 하고 일어났을 때서야 생모는 복받치는 슬픔과 아픔에 그토록
평생을 에미로서 그리워하던 핏덩어리를 버리고 자신만이 도망친 지난날에
대한 자책감과 무정한 세월에 속죄하는 마음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 제서야 데이빗을 부둥켜안고 한 맺힌 피눈물을 흘리며 산하가
메아리치도록 통곡을 하며 데이빗의 어릴 때 한국 이름인 강섭을 외쳐
부르며 절규하고 있었다.

 

"강주야, 이 에미가 죽을죄를 졌다. 이 에미를 용서해다오. 너를 복지원에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를 찾아갔을 때는 너는 이미 입양이 된 후였다.
그 날 이후 이 에미는 너를 잊은 적이 없고 너를 백방으로 찾으려고
노력하였단다. 강섭아, 이렇게 이 몹쓸 에미를 찾아주어서 고맙다.
이제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강섭아........이 못난 나뿐 에미를
용서해다오..."

 

'엄마...., 엄마..........저도 이젠 엄마를 이해하고 있어요. 엄마를
원망하지 않아요....사랑해요....엄마.......전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고 엄마라는 말을 불러보고 싶었다고요.........엄마......
엄마......엄마 나는 다른 아이들이 자기 엄마를 찾을 때 나를 낳아준
엄마는 어떤 분인가 궁금하였고 간절히 만나보고 싶었고 불러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만나다니 저도 꿈만 같아요."

 

옆에서 보고 있던 옥자도 양부도 복지원에서 나온 자원봉사자 통역관도 함께
하염없이 곁에서 뜨겁게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서
일행은 함께 생부의 묘지 앞에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서 조심스럽게
녹음이 우거지고 미끄러운 산비탈을 내려와 마을 어귀로 들어서 생모가
거주하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재혼 전에 이미 생모는 솔직하게 데이빗의 의붓아버지가 되는 남편에게
자신의 업보 가득한 과거를 밝히고서야 상처하고 홀로 외로운 세월을
살아가는 지아비를 만나서 재혼을 하였었다. 이렇게 살을 섞고 사는
마누라의 버려졌던 핏덩어리 자식이 성인이 되어서 수억 만리 타국에서
천륜을 못 잊어 찾아온 것 이였다.

 

날이 어둑어둑 하여져서야 데이빗 일행이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출구를 나오니 이미 거리에는 네온 싸인이 화려하게 밝혀지고
저 만치서 사업을 하여서 그래도 여유롭게 사는 편인 의부가 차를 몰고 와서
처음 보는 데이빗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에 흰 서리 가 내린 초로의
따듯한 인상을 갖고 있는 의부는 데이빗 일행을 갖고 온 승용차에 싣고
한정식 집으로 안내하여 저녁을 함께 나누면서 부인인 데이빗 생모에게
운전대는 자신이 잡을 테니 고궁나들이와 한국의 유적지를 함께 돌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면서 일행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첫 상봉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날밤 데이빗과 양부는 호텔로 돌아가고 옥자와 나머지
일행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음날 다시 만나 시내고궁을 방문하기로
약속하였다.

 

각자 자기 숙소로 돌아간 생모와 데이빗이 밤새도록 잠자리를 뒤척이기는
누나인 옥자나 역시 매한가지였다. 서로가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는 꿈만
같은 현실 이였다. 아침이 되어 호텔 방에서 내려다보는 창 밖의 서울은
거대한 선진국과 다름없는 현대화된 도시로 데이빗의 시야에 들어왔다.
조국을 떠난 후 처음 밟아보는 그토록 그리움으로 다가왔던 한국의 거리에
걸어다니는 보행자들의 모습은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이란 사회의
거리풍경과는 달리 모두 같은 피부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피부로 느끼는 순간 이였다.

 

다만 핏덩이로 앵글로 문화에 이식되어서 자라온 자신의 내면에는 한국인
이강섭이 아닌 또 다른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미국인 데이빗 홈즈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모든 거리의 정경들이나 모습들이
걷잡을 수 없는 생소한 느낌 안으로 순간 데이빗은 침몰하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낯선 먼 이방이었다.

 

로비에 있는 후런트 데스크에서 손님이 도착하였다는 인터콤을 통한
연락을 받고 일행은 로비로 나아가 이제는 어제와 같은 감성의 파도에
밀린 눈물범벅의 하루가 아닌 웃는얼굴로 기쁘게 재회하는 아침 이였다.
이미 해가 저만치 중천에 떠서 거리 위에 자리하고 있고 길거리에 오고가는
자동차 행렬은 물론 보행자들도 역시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었다. 일행은
시청을 지나서 영국대사관 옆에 있는 덕수궁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녹음이 우거진 고궁에는 여기저기 손을 마주 잡은 연인들이 눈길을 끌고
있었고 학교에서 단체로 방문 온 햇병아리 유치원생들도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행인들 중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용기 있는 남학생은 데이빗
일행 중 백인인 양부 홈즈 씨를 보고는 영어로 말을 걸어오고 있기도 하였다.


배운 영어문장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욕망에서였다. 데이빗에게는 고궁의
건물 하나 하나가 그저 경이로운 새로운 문화 체험 이였다. 비로소
자신이 태어난 조국의 역사와 문화가 엷게나마 자신의 피부에 와 닿는
순간들 이였다. 고궁의 담 장 너머로 바라보이는 거리의 모습과 보행자들과
시청건물과 호텔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구의 학부 때 교환 학생으로
가서 공부한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산골 버어지니아에서 10대를 보낸 데이빗이 북미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로스앤젤레스에 소재한 USC 대학교로
공부를 하러 갈 때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 이였다. 대학교 입학 첫
학기 같은 반에서 한국계 미국인인 미쉘을 만나고 한국문화원에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배우기까지는 모국 한국과 한국인들은 너무나도 먼 나라요
이방인들 이였다. 그러나 지금 데이빗 자신은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만이 모여 살고 넘쳐흐르는 서울 그 역사의 현장에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있는 순간 이였다.

 

생모와 누나인 옥자 사이에 오고가는 자신의 본능적인 육감 안에 흐르는
말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따스한 감성으로 하여금 어느 사이에
오랫동안 서로가 만나고 지내온 것 같은 그런 친숙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하고 있었다. 일행이 고궁을 나왔을 때는 이미 행인이
숨가쁘게 오고 가는 거리 위에 땅거미가 내리고 저녁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오늘은 양부가 저녁을 대접하기로 하고 호텔식당으로 안내하였다.

 

자리에 앉은 일행은 돌아가면서 오늘에 있었던 일들을 각자 담소하면서
서로가 느낀 바를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그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하였던 따스하고 가슴이 꽉 찬 그런 느낌이 데이빗은 물론
생모와 누나인 옥자 에게도 밀물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양부 홈즈 씨 역시
이제서야 조용한 나라 한국에서 온 자신의 한국인 아들 데이빗의 생의
수수께끼 실타래가 풀렸다는 안도감에 가슴속이 후련하고 탁 놓이는
느낌에 데이빗의 손을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꽉 잡아주고 있었다.


데이빗의 다른 한 손은 생모의 손으로 이미 포근하게 이불처럼 덮여 있었다.

모국의 밤은 어머니 자궁 속 양수에 잠겨서 생명의 신비와 퍼즐을 맞추어
나아가는 것만큼이나 데이빗에게는 따스한 느낌 이였다. 다행인 것은 의부
역시 친 혈육은 없는 사람으로 데이빗을 그렇게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뭐든지 더 해주고 싶고 아껴주고 싶은 모습이 역력하였다. 데이빗은
이것이 바로 아침의 나라 한반도 백두대간에 사는 한국인의 정이요 손님을
대접하는 환대란 것을 로스앤젤레스 문화원에서 배운 문화사와 생활풍습에서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야속한 것이 흐르는 시간이라고 벌써 데이빗 일행이 도착한지도 여러 날이
지나고 떠나야 하는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창밖에 바라다 보이는
하늘은 잔뜩 흐려서 곧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 질 것만 같고 식당 한 켠 무대
위에서는 피아노 건반 앞에 애띤 20대 초반을 겨우 넘을 듯이 보이는 여자가
나나 무스쿠리가 불러서 세인의 귀에 익숙한 "Plaisir D'amour, 사랑의
기쁨"을 약간은 어두운 조명 아래 연주하고 있었다. 순간 옥자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옥자가 갑자기 놀라는 기색과 더불어서 전화를 받으면서
거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오래 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정착해 터전을 잡고 사는 셋째 오빠에게
막내 동생 강섭이를 찾았다는 소식을 옥자가 전한 후 처음으로 오빠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 생모가 전화를 바꾸어서 받고는
통화를 하는 동안에 연신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잠시 후 전화를
데이빗에게 넘겨주었다.

 

"여보세요, 강섭이냐?"
"강섭아, 엄마가 집에 안 계셔서 네가 보챌 때면 너를 업어주던 형이야....
강섭아........강섭아......네가 이렇게 살아 있다니..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구나....나 여기....미국 LA에 살고 있어."
"형,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여기 미국 LA라고........."
"네, 저 거기서 학교 다니고 있어요. 오 맙소사....우린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서로 몰랐군요.......형, 저도 이렇게 모두 잃어버린 가족들을
만나게 되어서너무너무 기쁘고 좋아요...저 내일 미국으로 돌아가요."
"강섭아, 그럼 형이 너를 기다릴 테니......여기 LA를 들려서 가거라."
"형, 비향기 시간을 알아보고 연락 드릴게요."
"그래...그럼 안녕...다시 만나자.."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역사였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을 의부의 제안으로 생모의 집에서 같이 보내기로
하고는 옥자 누나의 네 가족도 의정부에서 모두들 와서 다 모이고 양부
홈즈 씨만 그 날 밤은 호텔에서 여장을 풀기로 하고 다음날 아침에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직접 공항 리무진 버스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어제의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와는 달리 한국에서의 생모와 누나 옥자와 함께
하는 마지막 밤은 축복이라는 별들이 쏟아지듯이 도심지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고 데이빗이 어머니 옆에서 손을 부여잡고 잠을 청하는 창문 밖으로
보름달이 대낮처럼 비추이며 멀리서 깊은 밤 공기를 가르고 기적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데이빗도 생모도 옥자도 모두가 만남의 기쁨을 채 느끼기도 전에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그저 밀려오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
뒤척임에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얼만가 뒤척이다 피곤에 지쳐 잠에
들고 손목시계의 얼람이 울려서 일어났을 때는 밤과는 달리 호텔 창밖에
구름이 끼어 흐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뿌릴 것만 같은 변덕스런
일기변화에 신음하는 아침 이였다. 거실은 부산했고 짐을 꾸리면서
자꾸만 옥자도 생모도 짐 가방에 한 가지라도 떠 꾸겨 넣어서 보내고
싶은 심정에 안타까웠다.

 

호텔에 도착하여 로비에서 양부와 만난 일행은 식당에서 간단하게 양식으로
아침을 나누고는 리무진버스에 몸을 싣고 영종도 공항으로 향하였다.
돌아가는 길은 오던 때와는 달리 데이빗의 마음속에는 안도감과 이제는
자신의 존재와 출생에 대한 모든 수수께끼의 실타래를 풀었다는 성취감에
이별은 슬프지만 기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차 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들이 올 때와는 달리 모두가 낯설지만은 안고 친숙감을 느꼈다.

얼마를 달렸나 어느덧 저만치 차 창 밖으로 어머니 품 같은 탁 트인 바다가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새로 건설된 영종도 국제공항은 LA 공항에
비하여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버스가 공항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서서히
창 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가는 길이 서러웠던 것일까.
데이빗의 가슴에도 이별이란 슬픔의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벌써
공항출구에 서있었다.

 

양부는 감사하다며 의부와 악수를 나눈 다음 문화가 다른 한국이기에 이별의
포옹은 못하고 단지 생모와 옥자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며 체류기간동안에
가족들 모두가 보여준 친절과 배려에 감사하다는 말로서 인사를 대신하였다.
그 사이에 데이빗은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며 생모와 누나인 옥자를
부둥켜안고서 이별의 아픔과 슬픔에 흐느껴 울면서 말을 건넸다.

 

"엄마, 울지마세요. 이제 만났으니 LA가서 형 만나보고 그리고 다시
연락 드리고 내년에 다시 찾아올게요. 아셨죠."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주체못하는 생모와 누나 옥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훔치면서 마지막으로 데이빗의 부둥켜안고서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강섭아, 이거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순간 데이빗은 움칫하며 놀라는 표정 이였다.
"강주야, 이건 네가 막 태어났을 때 가족이 함께 찍었던 가족사진이란다.
가운데 있는 남자가 돌아가신 네 아버지이고 그 옆이 네 죽은 큰형이야..
아버지 옆에가 엄마이고 그 옆이 나야...이 사진 잘 간직하려무나..
사랑해........너는 내 영원한 막내 동생이야..."


강섭의 눈가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아, 그리운 존재들이여 하는 마음이 가슴과 뼈 속 깊이 까지 시리게
파고드는 순간 이였다. 그런 장면을 지금까지 사랑으로 길러온 양부
홈즈 씨 역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 흐느끼는 모녀와 데이빗 역시 어떤 말로도 이별의
슬픔을 달 낼 수가 없었다.

 

"엄마, 제가 내년에 다시 올게요..그리고 어머니 방문 초청을 할게요.
엄마, 이젠 울지 마세요....엄마, 하나님께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게
축복을 하여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 이제 기쁨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엄마, 모든 것 감사 드리고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저 이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앞으로는 다시는 이별 없이 연락하고 살게요..
엄마 울지 마세요."

"강섭야, 아 내 새끼야....이 에미를 용서하려무나...에미는 너를 사랑한다.
그래 우리 다시 만나자.....잘 가라 부디 안부전하고..."

"그래 강섭아, 이 에미도 이젠 너를 만나서 그래도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구나 우리 내년에 다시 만나자. 잘 가고 몸조심하거라."
"누나 잘 있어.....다시 연락할게....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더없이 기쁘고
행복해... 그동안 모든 것 고마워....우리 다시 만나요. 누나도 부디
행복하여야해...알았죠..."

 

"그래, 강섭아, 너도 부디 행복하여야 한다........"

순간 장내 아나운서가 LA가는 비행기 624편 손님은 이제 출발시간
30분전이니 어서 출구로 나아가라고 방송을 내보낸다. 양부와 데이빗이
나아가는 출구 뒤로 저 만치서 생모와 누나 옥자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기내 좌석전호 76번과 77번 창가 쪽으로 좌석배정을 받은 일행 중 데이빗이
창가로 앉았다. 곧 비행기 출구 문이 닫치고 스튜어디스가 기내 중앙통로에
서서 비상시 안전구명조끼 사용에 대한 데몬스트레이션을 하는 동안에
국적 기 대한항공은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혈육과의 이별을 슬퍼라도
하듯이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활주로를 향하여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비행기 유리창 밖 활주로에 내리는 이별의 슬픈 빗줄기처럼 데이빗의
가슴에도 이별의 빗줄기는 내리고 스튜어디스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안전벨트를 매고 이륙을 알리는 비행기 동체가 사뿐히 뜨는 듯한 움직임이
감지되는 순간 데이빗의 시야에 저 멀리 서해와 인천시내가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