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태양은 어김없이 다시 떠올랐다.
천년전에도 지금도 같은 태양이 떠오르고 지고 햇살이 드리우고 그러나 허무한
인생은 그렇지 않다. 출생을 하고 인생의 완성 죽음에 이르러 지는 해처럼 떠나가면
그것이 종착역이다.
천국과 지옥
극락과 극락이 아닌 것 간밤 멀리서 왔다 모두가 떠나간 자리에는 다시 태양이
떠올라 따사로운 햇살이 드리웠다.우리는 다시 일어나 작은 조카 아들을 데리고
장의사를 먼저 갔다. 그리고 화장을 하여 갖고 있는 묘자리에 함을 안치 하는 데
필요한 절차를 상의하고 집으로 돌아와 작은 아이의 제안으로 큰 아이 그리고
작은 아이와 미래를 약속한 조카 며느리가 될 D와 바람을 쏘일겸 함께 먼 외출을
하였다. 그동안 우리 모두 겪어온 시련의 시간이 이제 멈춰진 상태에서 모두들
작은 여백이 필요 하였다.
그 하나로 우리는 시외곽 지대에 있는 상해 스타일로 요리를 하는 중국식당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좀더 구체적으로 장례절차를 상의 하기 위하여서
고인의 친구 남동생분 댁을 찾아 갔다. 아주 먼 곳 이었다. 모든 상의를 끝내고
그길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지쳐 있었다.
돌아와 쉬었다가 큰 아이가 잠시 외출을 한 사이에 작은 아이와 우리들이 앞으로
어떻게 집안을 정리하고 살아갈지를 상의하는 동안 작은 아이가 하는 말이
더 이상은 안 된다며 엉클의 남은 인생은 자기들 하고 살아야 마땅하다며
어른이 된 고아들이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한다.
그 순간 작은 아이의 오랜 참 진실한 친구 제임스가 왔다. 아버지는 이태리계
백인에 엄마는 태국 사람으로 독일과 한국에서 군인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부인은 유대계인 그야말로 무지개색 같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배경을
갖고 살아가는 강인하고 착한 사람이 맥주와 포도주를 백팩에 가득 채워 갖고
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작은 아이가 하룻밤 자고 가라면서 친구
제임스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 갔다.
집에 다녀 오마 하고 길을 나서 얼마를 왔을까 모바일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받아 보니 큰 아이였다. 어디 있느냐며 엉클 밤길에 왔다 갔다 하지말고
자고 내려오라고 한마디를 하였다. 알았다 하고는 돌아와 요즘 이 아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궁금하실 서울에 계신 어린시절 은사님 이셨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드리니 안타까워 긴 한숨을 내쉬신다.
주변이 정리되면 비행기표를 보내드릴테니 잠시 한 주라도 아버지가 간절히
보고 싶으니 다녀 가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아니면 내년 봄이나 가을에
아버지에게 가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무 때고 나오라고 하셨다.
먼 여정을 가는 것도 이제는 아이들과 상의 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가능한
일이다. 엄마를 잃어 버린 아이들 에게 걱정을 시키는 일은 하지 않고
살아가야 마땅하단 생각이다.
작은 아이가 하는 말이 인생이 너무나도 짧아 아귀다툼 하고 살일이 아니며
즐기며 살아야 한단다. 단 한번만 살다 죽는 것이기에 그렇타고 말을 한다.
아이들도 나도 2개월 사이에 벌어진 이 엄청난 비극 앞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 살아가야 한다고
아이도 나도 생각을 하며 자기 체면을 걸고 살아간다. 매일 매일을........
아이들과 외출하여 고속도로를 달려 가는 동안 창가에 스치는 수 많은
정경속에 인생에서 가장 슬픈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하염없이 솟구치고
가슴과 눈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참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해일 같이 밀려오는 그리움을 어찌 할까 싶다. 그러니 아이들이야
오죽하랴.....
아............... 이 가혹한 시련과 잔인한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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