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내 마음의 강물은 흐르고

붓꽃 에스프리 2012. 11. 26. 03:56

 

 

 

 

 

밤새 안개가 내려 젖은 집 앞길 일요일 아침이 그저 차분하다.

아무런 생각도 떠 오르지 않는 이 아침 두 아이들은 늦잠을 자고 있다.

전날 브라더 찰리로 부터 추수감사절 후 저녁초대를 받아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육척장신의 어깨가 딱 벌어진 요즘 신체말로 꽃미남인 작은 아이가 운전을 하고 토요일 오후

우리 셋은 먼길을 떠나 목적지 브라더 찰리 집에 도착하였다.

 

영원한 내 사랑 브라더 찰리의 늦동이 막내 조카 아들 잔이 제 두 사촌들과 나를 안내하여

내일 저녁 월요일 7시반에 있을 장례식을 위한 예복을 사러 샤핑 몰을 갔다. 돌아오는 길

교육국에서 저학년을 위하여 근무하며 대학원에서 사회사업학을 공부하는 잔이 저녁을

위하여서 와인 한병을 사들고 돌아가자고 한다. 그렇게 하자고 동의를 하였다. 아이들은

가계로 들어가고 나는 차안에 남아 있기로 하였다.

 

기다리는 동안 차창으로 들어오는 금빛 햇살이 눈이 부시었다.

스쳐가는 수없는 상념들 그리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애절한 가슴저미는 그리움에 울컥한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눈물샘과 목울대의 울렁증 억누르고 또 억눌러도 제어가 되질 않는다.

 

얼마후 아이들이 샤핑을 맞추고 쉬라즈 적포도주 한병을 사들고 돌아왔다. 길을 나서 돌아

오는 길 잡담으로 아이들은 잠시 모든 것을 잊은 듯한 표정이다. 작은 아이를 뻬놓고는

다른 두 아이는 겨우 한국말 몇 마디를 하는 정도다. 작은 아이는 뜻은 잘 몰라도 한글을

읽을 줄은 안다. 어떻게 배웠는지 영어를 모국어로 태어난 아이치고는 썩잘한다.

 

브라더 찰리의 축복 기도로 우리는 정찬을 시작하며 적포도주 잔을 토스하고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터어키, 스터휭, 크랜베리 소스, 샐럿 등등으로 저녁 만찬을 맞추었다.

이 많은 음식을 장만하는 손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팔을 걷어 부치고 이태리계 미국인으로

뉴욕 태생인 조카 며느리도 옆으로 밀치고 내가 부지런히 접시를 닦고 기계에 넣어 세척을 하는

동안 우리는 커휘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브라더 찰리 까지만 한국 세대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을 일구워 온 사람들이다.

옛친구들과 매일 주고 받는 이메일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우리 부터는 영어권 세대여서 한국적인 요소를 찾아 보기란 얼굴이 한국 사람으로 생겼다는 것

정도일 것 같다. 그리고 한글을 이렇게 사용하는 정도란 것 나머지 교육배경과 문화적인 배경은

모두 영어권의 것이란 생각이다. 한국인이 아닌 한국계 미국인들 이란 표현이 정체성을 가장

옳게 표현하는 어휘라고 생각한다. 닉슨 대통령 이후 인생에서 벌써 몇 번이나 대선을 치루었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어 두 아이들과 함께 길을 나서 돌아왔다.

도착하자 마자 작은 아이는 직장 친구의 초대로 잠시 나가고 큰 아이와 나는 텅빈 큰집을

지키고 도착한 이메일을 정리하고 읽는 동안 잠시 한잔의 칵테일로 의자에 앉은 채로

나는 잠이 들었다. 큰 아이는 이미 잠이 들었고 헌데 이게 왼일 진땀이 나면서 구토증이

올라와 순간 나를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빠트렸다.

 

아이를 깨울 수도 없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려니 그 조차도 되지 않는 다.

한참을 찬 바닥에 앉아서 진땀을 흘리고 나니 속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가라 앉았다.

순간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윗층으로 올라가 큰 아이 옆 잠자리에 들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 까 작은 아이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맞추었다.

 

 

 

 

한통의 귀한 윗분의 이메일을 귀가 후 받고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리고 생각을 할 수 없는 여백으로 회신을 즉시 보내 감사드리고

싶었지만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 이 일요일 아침 나는 한글 자판기를 두드린다.

 

세상이든 이 온라인이든 인간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모든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이란 한국말을 나는 늘 생각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역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은 마음으로 인생의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귀한

인연이 있다. 만나 보았든 만나 보지 않았든 마음씀씀이와 배려는 한결 같은 모습이다.

그 한 예가 단도 직입적으로 내 칭구 진경산수 J 다. 단 하나의 진실이다. 그는 친구가

아닌 칭구다. 내 칭구 진경산수가 어느날 부터인가 나를 부르는 칭호가 칭구다.

 

처음에는 나는 아니 이 사람이 사투리를 하나 아니면 잘못 발음을 하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은 그 어느 것도 아닌 그만이 사용하는 단 하나의 진실을 담고

표현하는 귀하고 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칭구란 어휘를 사용하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칭구는 내 인생의 상록수 같은 청지기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한결 같은 사람이다.

 

자기 칭구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외출도 삼가하고 장례식이 끝날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자기 스스로 영혼과 마음을 같이 하면서

근신하고 진경산원 안에서 조용히 숲과 나무들과 산새들과 호홉하며 있는 사람이다.

바로 이 한 사람이 내 인생의 참 진실하고 진실한 청지기다. 독감이라도 들어 누워 있어도

걱정이 되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국제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 바로 칭구다.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나는 너무나도 잘안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단도 직입적인

속된 표현으로 자기 돈 안 아까운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자기를 온전히 희생하고 진실된 마음을 따듯한 손길로 건네주는 화가를 아들로

둔 아버지인 내 칭구 그와 내가 공통으로 흠모하는 것이 있다면 단연 법정 스님의

정신이다. 우리 둘은 그렇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들꽃처럼 순수하고 맑고

고운 정신과 도덕적이며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참된 올바른 양심으로 소박하고 단아하며

따듯하고 때론 정연하며 차가운 이성의 예리함으로 인생을 서로 영혼 깊이 보듬고

살기를 바라는 두 영혼들 이다.

 

이런 사람들....................

사이버든 세상이든 그저 술이나 한잔 같이 걸치면 흥흥거리고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하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 또는 앞도 뒤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사람 나 편하면

그만이고 생각 저편에 함께 한 세월의 강물을 까마득하게 잊고 사는 사람 내가

행복하고 배가 부르고 여유란 것이 느껴질 때 비로소 상대 그 누군가를 생각하는 사람

과연 우리의 짧은 인생에서 얼마나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이런 사람들과 살아갈 수 있을 까 생각할 때 꽝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가식이요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자기 나이값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여야 마땅하다.

인생 40, 50, 60, 70, 80을 넘어가면 그에 걸맞는 성숙된 처신과 예와 도 그리고 언행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한다. 의미없는 인연에 누구든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짧은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와 사랑이 되어 줄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분명하게 우리 모두가 명심하여야 할 일은 내가 할 것 다 하고 즐길 것 다 즐기고

놀 것 다 놀고 마시고 먹는 것 다 마시고 먹고는 자신이 진정 아끼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배려란 이름을 사용할 수가 없으며 진정 아끼고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 

 

참된 우정과 참된 사랑은 온전한 자기 희생이요 나눔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건네 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우정과

사랑이요 관계요 소히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인연이 될 수가 있다. 이것이 붓꽃이

정의하는 참된 진정한 의미의 우정과 사랑이며 배려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년 동안은 너무나도 힘든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세월 이었다.

모든 내 일상을 온전히 희생하고 포기하고 오로지 내 인생의 모든 사랑이셨던

노모님의 손과 발이 되어 드려야 하였던 시간이었다.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꿈이었고

사치였고 상상이었다. 외출, 휴가, 사회생활 모두를 나는 희생하였다.

 

오로지 직장과 집 그리고 매일 저녁 5시만 되면 어김없이 죽이나 저녁을 내손으로 마련하여

노모님을 봉양해 드리고 손과 발이며 대야에 따듯한 물을 받아 닦아 드리고 매일 매일 세수

시켜드리고 손톱 발톱 다 깍아드리고 머리 빗겨 정갈하게 해드리고 잠재워 드리고 열이라도

나서 몸에 이상이 생기면 새벽 2시 3시 그 어떤 시간이라도 달려가고 어찌 그 모든 세월과

벌어졌던 일들을 형언하랴. 그리고 우리 자손들 손을 잡으시고 우리들 앞에서 지난 9월 12일

영면 하셨다. 그것이 끝인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이란 것이 우리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불과 만 2개월 후 또 한사람 우리들 모두의 사랑이 아주 불행한 불치의 병으로 우리들 앞에서

세상을 떠난지 이제 닷새가 되었다. 그동안 뼈속 깊이 까지 고뇌하고 고독하고 외로웠던 시간들

그 아팟던 절대 절명의 시간들 가운데 어떤 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고 어떤 이는 그토록

인연에 대하여 예찬을 하였던 것과는 달리 단 한 차례의 소식도 없이 오로지 내 인생 내 즐거움에

취하여 함흥차사 였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고난과 역경과 시련 가운데 있는 인연을 생각하고

일본 아오모리에서 부터 충남 당진으로 부터 영국으로 부터 하와이로 부터 지속적인 안부

전화와 이메일로 소식과 안부를 전하며 매 순간을 함께 아파하고 함께 같이 눈물을 흘리며

인생의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던 눈물겨운 참된 인연들도 이 사이버에 있었고 그리고 현존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조우한지 단 몇 주 되지 않는 분도 진정성에 있어서 애잔하게 시련의 시간을 함께

하였던 것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애걸하거나 구걸하는 우정과 사랑은 나란 사람은 일생동안

목에 칼이 들어오고 피눈물을 이번처럼 흘려야 하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하고 존엄이 있다면 인격적이어야 마땅하다.

고독하고 외로운 것은 인간의 실존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참된 우정과 사랑이란 서로가 존엄성을 예와 도를 함께 하며 지켜 나갈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가식과 위선이 없는 그 진실한 깊고 깊은 흐르는 영혼의 강물 한결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

 

고독하면 고독한대로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살지언정 참된 인연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과

시간과 말과 언어와 마음을 낭비하거나 말을 섞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나도 짧다.

 

사랑한다는 말 조차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과 무슨 인생과 인연과 우정을 논 하랴.

그야말로 잘못하다 가는 웃기는 짬뽕이 되고 마는 일이다. 사람이 그토록 가벼워서야

어디다 쓰랴 싶다. 가벼운 언어 유희를 나란 사람은 지극히 싫어한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면 책임을 저야 마땅하다. 또한 지키지 못할 말이나 언행은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청지기 내 칭구 진경산수 J 그가 바로 이런 모든 이야기의 대표적인 모범이 되는

사례의 인격체라고 나는 적어도 반세기 이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받은 모든 고등교육과

가정교육과 사회생활의 경험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직간접으로 보고 배운 것을

바탕과 배경으로 생각하고 판단을 한다. 그런 그를 영혼 깊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존중한다. 그가 아직 까지는 내 인생의 단 하나 마지막 진실된 인생의 지기다.

 

상을 당한 칭구를 생각하고 같이 아파하는 의미로 그 넓고 넓은 진경산원 안에서 스스로

외출 조차도 삼가하고 조용히 은둔하고 근신하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뇌하는 영화속의 한 장면 같은 진실을 삶으로 살아가는 그런 인격체의 지고한

우정과 정신세계를 함께 하는 참된 인생의 칭구요 청지기다.

 

아직 까지는 그만한 인격적인 순수와 향기와 숭고한 우정과 사랑의 실천을 행동과 언행으로

나에게 보여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의 단 하나의 진실이다. 하여 우리는 친구가

아닌 칭구가 되는 것이다. 친구는 누구든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칭구는 그렇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위하여 밥을 짓고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고 있으니 큰 아이가

위층에서 내려온다. 뒷집에 사는 세입자가 자동차 차고 자물쇠를 모르고 잠가 놓았고

집 열쇠를 그 안에 두어서 열 수가 없다고 한다. 잠시 자물통을 자르는 것을 사러 갔다

온다며 나갔다. 잠시후 돌아와 들어오기에 물어보니 다 자르고 열어 주었다고 한다.

 

같이 나가 앞 잔디밭과 화단에 장미 나무 가지를 잘라주고 주변의 잡초를 청소하고

뒷밭에 호박이 달리다 죽은 것들을 걷어내고 들어와 큰 아이 친구가 와서 같이 셋이서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작은 아이가 위층에서 내려온다. 브런치 점심에 초대를 받아서

다니던 고등학교 있는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였다며 외출하겠노라고 한다. 잘 다녀

오라고 하였다. 잠시 후 큰 아이도 친구와 외출을 하고 나 홀로 이 큰집을 지키고 있다.

 

 

 

 

하루 아침에 내 모든 인생이 바뀌었다.

가장이 되었고 동시에 아이들의 엉클로 아빠로 엄마로 살아가는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집안에 있는 모든 돈을 갖고 내려 오라 하여 정리하고 큰 아이 구좌에 입금 해주고

나머지는 살림할 돈만 남겨 놓고 모두 정리 하였다. 모든 재산은 공평하게 반반씩 분배되어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몫으로 하였다면 그 모든 법적인 행사와 결정은 나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게끔 살아 생전에 유언장을 작성하여 정부 해당기관에 등록 해놓았다.

 

가장이된 나에게 아이들은 모든 비용과 고지서 내역을 언제고 꼭 나에게 보고 하여야만 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우리가 현명하게 이 고난을 헤쳐나가 성공된 삶을 살아 갈 수 없기에

어떤 일도 동의 없이는 하지 못한다고 못을 박았다. 아이들도 그점만은 꼭 순종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생각하면 기가 막히고 기가 막혀 눈물이 폭포수처럼 쏫아지는 일이다.

 

나는 두 아이가 기대일 수 있는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법적인 후견인 이다.

간밤 진땀이 갑자기 나고 구토증이 날 때 나는 그저 아득했다. 작은 아이는 외출에서

돌아 오지 않고 큰 아이는 윗층에서 잠을 자고 당황스러웠다. 다행이 괜찮았다.

내가 아프면 엄마를 잃은 상태에서 애들이 얼마나 또 기겁을 하고 놀라겠는가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장미도 가꾸고 아침 식사를 함께 한 하루의 시작 환란 가운데 감사하다.

이 고난을 이기고 우리 셋은 우리를 아는 모든 감사한 분들에게 잘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그 모든 분들이 건네 준 모든 위로와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리라 생각한다.

 

세월이 약이 될 것이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열심히 강인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택이 아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내손으로 매도 들고 사랑하며 기른 아이들 이제 머지 않아 가정도 이루어 주어야 하고

또 세월의 강물을 따라 함께 흐르며 살아가야 한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모든

사랑을 부어주어야 할 아이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너희들 옆에서 서 있어 줄 것이라고

수없이 말을 반복해 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을 하였다.

 

하염없는 눈물이 쏫아진다.

 

아 하나님,

우리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실족하지 않게

우리 손을 잡아 주소서. 우리는 한없이 부족하고 미약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