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요일은 올봄 내내 그리고 여름의 초입인 지금까지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몇번을
힘들어 눈물을 쏟던 교육과정 현장교육을 맞춘 날이다. 지난 3주는 교육과정 가운데서도
가장 힘든 시간들 이었다. 수료를 성공적으로 하느냐 못하고 미완으로 남느냐의 기로에
서있던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간들 이었다. 밤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의 힘든
시간 이었다.
다나 선생님에게 그동안 전과정 가운데서 두번이나 소환되어 상담을 하여야 했었다.
아주 사소한 작은 실수 하나도 허락이 안 되는 완벽을 기하는 교육과정이라서 더 더욱이
선생님은 공포의 대상 그 자체로 우리를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하게 교육을 시켰었다.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 다나 선생님은 시말서를 써서 상부에 보고 하였고 학교의 최고
책임자 손에 넘어가 완벽을 기하고 과정을 수료하느냐 아니면 미결상태로 더 연장
교육을 받느냐 아니면 그대로 나가느냐 하는 기로에 서게 하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시련을 통하여 나를 거듭나게 하였었다.
너의 실패는 곧 가르치는 나의 실패이기에 너의 능력과 모든 것을 믿고 있으니 완벽하게
교육받은 것을 그대로 남은 2주 과정을 통하여 실행에 옮겨 보여주고 너의 능력을
믿을 수 있는 신뢰를 내개 달라고 담판을 지고 말았던 지난 2주는 지옥을 갔다온
시간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최선을 다 하는 것
이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슴과 사지가 떨리는 그런 가혹한 시간을 교육현장에서 보내며 실수는 용납이 안되는
그런 시간을 보내야 하였었다. 그래도 나는 다나 선생님과 마크 선생님을 미워해본적이
없었다. 매순간 마다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그 가혹한 교육과정은 결국 나를 완벽하게
교육시켜 해당분야로 내보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얼마나 가혹하고 힘든 시간이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매일 주술을 외우듯이 나는 나를 다독여야 하였다. 분명히 남들도 하는 것이면
나 또한 분명히 할 수 있다라고 체면을 걸면서 아버지 헨리의 끝없는 격려를
가슴에 담고 하루 하루를 결국 해내고 말았다. 대학에서 제자들을 양성하셨던
아버지 헨리는 어떻케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격려를 하여야 하는지 잘알고 계셨다.
그리고 학생으로서 어떻케 선생님 앞에서 처세를 하여야 하는지는 물론이다.
This is a tribute for all teachers in the world,
of course, also made thinking on my favorite teachers.
Sometimes they may get us tired with all their exigences and homeworks,
but after all, where would the world be without them?
아침 일찍 일어나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고 고속도로를 질주해 도착하니 아이비가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교육현장 50명 직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건네고 떠날 샌드위치와
베이커리 과자류를 차에서 들고 내려 셔원이 쫓아가 갖고 들어오고 있었다.
어저께 국가고사를 본 셔윈과 니콜은 제외시키고 아이비, 샤민과 함께 우리 세명이 모든 비용을
나눠 부담하였다. 그리고 굿모닝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일들을 모두 11시 까지 처리하고
우리는 마크 선생님과 다나 선생님의 차에 나눠 타고 중동사람이 하는 식당으로 점심 시간을
위하여 갔다. 선생님 두분이서 우리가 오늘은 마지막으로 너희들을 위하여서 점심을 사주겠다며
무엇이든지 마음것 먹으라고 하였다.
이름도 모르는 중동 음식들을 우리는 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피타 빵과 불면 날아 갈 것 같은
쌀로 만든 음식과 케밥이라 부르는 메뉴로 모두들 점심을 맞추고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고
단체 사진을 몇장 찍고 또 찍고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 돌아와 마지막 인사를
정식으로 모두에게 고하고 다들 아쉬움에 허그를 하고 내일 있을 마지막 강의 시험을 위하여
황급히 발길을 돌려 길을 나섰다.
길을 나서기 전에 다나 선생님과 마크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가슴에서 우러 나오는
인사를 하였다. 가혹한 시간을 우리가 너에게 주었다고 다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말이 끝나자 마자 다시 마지막 인사를 하며 그래도 그 모든 것이 나는 감사하였노라고
다나 선생님과 마크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였기에 나는 오늘 이렇게 성공적으로
과정을 맞추고 수료를 하고 과정을 졸업하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도 단 한번 나는
그 가혹함을 서운하게 생각한 적이 없노라고 말을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너를 좋아
한다고 두 선생님들이 말씀 하셨다.
앞으로 어떻게 직장이 되어가는지 알려주고 그리고 소식을 주고 받자고 하셔서 이메일
주소를 달라고 하여서 갖고 니콜의 부모님이 오늘은 우리가 너무 일찍 끝나 채 오지 않아
니콜이 나좀 데려다 달라고 하여 고속도로를 달려가 보니 우리 가족들과 다나 선생님이
사는 동네였다.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돌아오면서 감회가 깊었다.
돌아오자 마자 내일 있을 시험공부를 위하여서 제일 먼저 샤워를 하였다.
샤워를 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중간고사 이후의 작은 시험들을 모두 복습하는 동안
저녁 5시 26분 전화가 난데없이 울려 보니 콜러 아이디에 아버지 헨리의 번호와
이름이 뜨기에 얼른 받아 보니 내일을 오늘로 착각을 하시고 시험보고 왔니 하셨다.
'아버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야요. 지금 샤워하고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 굿 보이... 그래 그래 잘했어......어떻게 오늘은 지냈니?'
소상하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주무시기전에 굿나잇 전화를 드리겠노라고 말씀드리니 오늘은 하지말라 하시며
공부에 집중하라고 하시면서 잘있으라고 하시며 수화기를 내려 놓으셨다.
내일 시험보고 돌아와 전화를 드리겠노라고 말씀드렸다.
문득 어린시절에 나왔던 흑인 명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주인공 이었던 영화
"To Sir With Love"가 다나 선생님과 마크 선생님을 생각하며 떠올랐다.
두 선생님의 혹독한 훈련과 교육을 생각하며 불현듯이 눈물이 솟구쳤다.
남은 인생동안에 내 전문분야에서 근무하며 두 선생님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고마운 다나 선생님과 마크 선생님의 가르침을 늘 기억하며 어느 곳을 가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일을 할 것이다.
<To Sir With Love>
이곡을 다나 선생님과 마크 선생님께 마음 깊이 바친다.
고마우신 우리 선생님들 두분께.............
'붓꽃 독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꽃 독백 - 축배의 노래 (0) | 2013.06.21 |
---|---|
붓꽃 독백 - 역경을 극복하고 최후의 승리를 하기 까지 (0) | 2013.06.21 |
붓꽃 독백 - 파파가 내게 들려주신 것 (0) | 2013.06.19 |
붓꽃 독백 - 청순한 들꽃처럼 (0) | 2013.06.19 |
붓꽃 독백 - 그리움 <비창> (0) | 2013.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