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붓꽃 독백 - <일상 - 추수감사절 외출>

붓꽃 에스프리 2016. 11. 25. 20:28


밤을 꼬박 새우며 마지막 숙제를 맞춰 제출하고 나니 정신이 몽롱하고 머리가 띵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자려고 누우려니 이러다가는 아무 것도 못하겠다 싶어 일어나 세면을 하고 아빠를 모시고 길을 나섰다.

거의 1년만에 가는 집 길이 막혀 일부 구간은 가면서 서행을 하였다.


가는 중간에 아이로 부터 전화가 왔다.

운전중 가고 있다는 간단한 한마디로 끝냈다.

운전하는 중에 절대로 통화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거의 다가서 고속도로 갈림길에서 고속도로 순찰이 오토바이 운전자를 잡아 티켓을 주고 있었다.

그 사이에 네비게이러가 옆길로 빠지라고 알려주어 우리는 사잇길로 나가 집에 잘 도착하였다.

해가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 강아지 미휘가 짓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왼 낯선 강아지 두마리가 또 난리를 치고 짓어대 보니 한국에서 유학 와서 공부 맞추고

우리 아이들과 사는 아가씨의 강아지 두마리였다. 어려서 유학을 와서 영어가 더 편한 아이로

모국어를 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조기유학파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정착하려고

하는 아가씨가 부엌에서 아이들 요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아이의 수양 이모 내외가 이미 와 있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함께 가족으로 살아와 엄마가 세상을 떠난후 아이들에게는 엄마나 다름

없는 이모가 온 것이다. 이모야 말로 세상 고생 다 하고 그 지나간 세월을 다 말로 못하는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어느 한사람 사연 없는 인생을 살아오지 않은 사람은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 맘의 수양 딸로 씨스터 진의 동생으로 나에게 형제로 누나처럼 수십년 세월을

함께 산 아이의 이모가 오랜만에 온것이다. 타향에서 의지 할데 없어 작고 하신 어머니 맘이

딸로 받아주고 사랑을 내려준 이모가 어려서 부터 애들을 우리와 함께 길렀었다.

하여 써니 이모는 아이에게 엄마 같은 존재다.


아이는 뒤뜰에서 터어키를 굽고 있었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뒷산에 해가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빠와 집에 도착하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이모가 아빠 헨리를 차에서 모시고 집으로 들어가고 있는 동안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집 앞 쉼터에 해가 넘어 가고 있고 땅거미가 내려오고 있었다.





집 구조가 대문이 옆에 있어 돌아간다



가뭄이 심해 잔디밭에 물을 못주게 시에서 당

강력하게 단속을 하여 잔디가 죽어 일부는 다시 씨를 뿌렸다.




뒤란 위 산에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 강아지 미피 오랜만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햄, 고구마, 버섯, 잡채, 김치, 스트링 빈 볶음

조출한 테이블 그러더니 나중에 옥수수 요리 감자 요리가 등장

모두 우리 서양 음식을 아이가 요리를 했다.



스트링빈 볶음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모른다.

식당을 운영하는 아이의 이모가 만들었다.



아이는 터어키를 자르고 한국에서 온 아이들과 사는 아가씨는

사진 찍기 바쁘다.



10년전 그 어느날에 내님이 산책하던 그길을 캔버스에 옮겼다.....



월남에서 온 깐 마늘

직장에서 딸 노릇을 하는

앤의 나라에서 온 것이다.




어저께 사온 무청이 벌써 말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