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화창한 봄날에

붓꽃 에스프리 2023. 4. 8. 05:46

이 아침도 화창한 봄날이다. 어느덧 4월도 첫 주가 지나가고 있다. 그저께는 일 년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치석제거와 검진하러 치과를 다녀왔다. 그리고 어저께는 아빠 헨리가 돌아가신지

5년 만에 아빠의 큰 딸인 누님의 친구가 한국 제주도에서 몇 년 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아빠

돌아가시기 전에 왔을 때 만난 일이 있어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누님이 사는 근처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셋이서 함께 점심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서비스가 엉망인 식당으로 웨이트리스가 불러야 오고를 몇 번 반복하는 동안 제주도에서 오신 분의

표정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 있는 모습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엉망인 서비스를 생각하면 팁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번은 다시 안 가리라 생각하고 발길을 둘렸다. 내가 행복하지 않고 만족하지 못하고

싫으면 안 가면 그만 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번은 내가 점심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한사코 제주도 공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이 반대를 하셔서 누님이 그냥 두라고 하여 포기하고 말았다. 메뉴는 누님이 샤부샤부 2인분을

주문하자고 제안을 하셨다. 난 솔직히 음식 같지 않아 별로인 것이 샤부샤부다. 하여 갈비를 하나

시켰다. 대화의 주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빠를 추억하는 이야기가 전부였었다.

무슨 절차가 그리도 많은지 샤부샤부란 것 이후 국물에 우동국수 끝으로 밥을 넣고 비벼 죽을 만들어주고

물론 소식을 하는 나는 이 모두가 너무나도 많은 양이라 감당도 안 되었고 이것저것을 뒤섞어 먹는 음식은

꼭 배탈이 나고 아파 결국에는 집에 돌아와 약을 복용하고 저녁을 굶고서야 속이 편해졌었다. 내가 속 편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주 제한되어 있어 먹는 것만큼은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 이 아침도 호밀빵과 레러스

상추 후라이드 에그와 우유 한 잔이 전부였다. 이러면 속이 편하다.

누님 말씀으로는 아빠 인생 말년 10여 년 나와 함께 사신 시간이 가장 당신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가장 마음이 잘 맞던 사람이고 늘 항상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얻은 아들이 당신이 낳은 자식 2남 4녀 보다 더 잘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우리가 못해드린 것을 얻은 아들이 효도를 다 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다. 나 또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숙소까지 모셔다드리고 발길을 돌렸다.

한국과 미국의 시간 차이에 대하여 잘 모르셔서 아무 때고 안부전화를 하시던 분이 거제도 건너 칠천도

작은 섬에 사시는 형님이 소식이 없으셔서 무척이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옛 전화번호를 찾아 집 전화로

전화를 하니 다행히도 형수님이 받으셨다. 무슨 변고가 생겼는 줄 알았다고 말씀드리고 왜 전화를

안 받으시냐고 하니 이제는 더욱더 늙어가니 그렇다고 하시기에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부산에서 교직생활을 하시다가 2006년 은퇴를 하시면서 펜팔을 찾으셔서 우리의 인연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어 지금도 한 권 책 분량의 주고받던 이메일을 엮어 고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형님에게는

내 나이의 동생이 있었고 서울대를 나와 삼성에 근무하고 있다 사고로 잃고 말았다. 하여 정 많은 분이

그 동생을 잊지 못하시고 먼 이역에 사는 나에게 정을 쏟으셨었다.

그렇게 하여 나는 기억도 안 나는 해에 어렵게 고학을 하던 시절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지리도 모르는

한국을 한글은 읽고 쓰고 한국말을 할 수 있기에 서울 강남 버스 터미널에서 통영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통영서 내려 다시 거제도 섬 시내 고현이란 곳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갔었다. 그 버스 정류장에서 억센

부산 사투리를 하시는 형님은 먼 이역에서 온 나를 기다리고 계셨었다. 그때의 반가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온 동네를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를 시키셨던 기억도 생생하고 그때 인사드렸던 이웃 할아버지는 이미

몇 해 전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칠천도를 내려갔을 때 작고 하신 후였었다. 그때만 해도 정정하시던 때라

작은 배를 타고 100미터도 거리가 안되는 선착장에 나가 배를 타고 가을 바다 한가운데서 같이 갈치

낚시도 했었다.

낚은 갈치로 반찬을 만들어 상에 올렸던 기억들 하며 올드 팝을 잘 부르시는 형님은 노래를 이 동생에게

달 밝은 밤바다 한가운데 배를 타고 나가 들려주시곤 했었다. 그리고 오토바이로 늘 출퇴근을 하시던 분이라

섬 구경시켜준다고 뒤에 태워 오토바이로 섬을 돌던 추억들 그런 형님이 이제는 8순을 넘기셔서 전과 달리

기억력도 쇠퇴하고 그러신가 보다. 내년에는 은퇴하고 찾아가 뵈올 것이다.

 

칠천도 형님 형수님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잘 계신 것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놓였다. 다음은 몇 달 소식을

못 드린 안양에 계신 형님께 전화를 드렸다. 형님은 열 살 때 평양에서 부모님과 피난을 나오셔서

제주도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맞추시고 서울로 올라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신 분이다. 피난시절

제주도에서 어린 여동생은 생을 마감하게 되었고 이남에 형님 한 분 그리고 북한에 제일 큰 형님과

누님을 두고 계신 이산가족이다.

2남 1녀를 낳아 잘 양육하신 분으로 자녀들은 모두 명문대를 나와 큰 아들네는 해외에 거주하고 작은 아들은

연대 상대를 나와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지금은 국제은행에 근무하며 강남에 살다 파리에

파견 나가 근무하고 있다. 제일 큰 자녀인 딸은 외국 대사관에 오랜 시간 장기근무를 하고 있다. 딸의 아들

손자들도 장성해 군 복무 맞추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형님 또한 배우자를 58세에 암으로 잃으시고 그 당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었던 자녀들을 손수 홀 아버지가

되어 양육을 하셨다. 지고지순한 순정파 사랑을 하신 분이라 팔순을 넘기시고 만 83세가 되신 지금까지도

25년간을 홀로 사시고 계시다. 그럼에도 자녀들은 잘 자랐고 공부도 다 잘해 자기 분야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형님 또한 인생에서 정말 외로우실 때 펜팔을 찾으셔서 천리안 하이텔 있던 당시 글방에서 만나 지금까지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친동생이 없으셔서 특별히 이산가족인 형님은 나를 친동생처럼 늘 생각하시고

지금까지 20년도 넘는 세월을 함께 하고 계시다. 내년에는 지금 하시는 관리직도 내려놓으시고 본가가 있는

양수리로 도루 이사를 가신다고 하신다. 하여 내년 은퇴하고 10월에 한국을 나오라고 하셔서 그러마 말씀

드리고 통화를 맞추었다. 한국으로 형님을 처음 뵈오러 갈 때 그때는 양수리에 사셨다가 출퇴근 거리가 멀어

본가는 전세를 주고 안양에다 대신 전셋집을 얻어 지금 까지 거주하고 계시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조부로

하여금 국가 공로자 가족이시다.

 

인생길에서 오고 가는 수없는 인연들 그 인연을 아름답게 이어가는 데는 그만한 서로 간에 깊은 관심과

변함없는 정과 인격적인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도 사랑도 서로가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줄줄도 알아야 하고 받을 줄도 알아야 서로 간에 우정도 형제애도 사랑도 가능한 일이다. 인간관계에서

일방적이란 것은 절대로 그리고 결코 없다.

이점에 대하여서는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님의 자제분으로 재미교포이셨다 한국으로 영국 귀국하신

마종기 시인의 명시 <우화의 강> 만큼 잘 표현한 글이 없다고 생각한다. 마종기 시인의 명시 <우화의 강>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참된 우정과 사랑은 어떻게 관계 설정이 되어야 하는지를 명약 관대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유안진 님의 <지란지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우화의 강

                                        - 마종기 -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맑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 하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오늘은 출근하는 날 4일 쉬었으니 열심히 사흘 또 근무하고 하루 쉬고 하루 근무하고 사흘 쉬고 그러다

월말 26일부터 5월 10일까지 15일간 올해 2차 휴가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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