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게 어저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 5시 반에 침대에 들어가 잠시 잠을 자고
7시 반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간단히 타월과 위생도구를 챙겨 길을 나섰다. 동네 어귀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 입구에서 내려 다시 캄캄하고 우중충한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매표 창구도 없고 떡하니 벤딩 머쉰만 있었다,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없어 어떻게 표를 끊지 하고
가만히 보니 탭 카드를 스와이프 하게 되어 있어서 탭 카드 계좌에 돈이 얼마 남았나 보니
19불이 넘게 남았다. 그리고 시니어라 반값도 더 싸게 탈 수 있었다.
일단 한국처럼 탭 카드를 대니 문이 열렸다. 되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바로 지하로 또 내려가니
방금 지하철이 오고 있었다. 타고 보니 다행히도 중앙역이 종점이었다. 내리니 지상 3층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올라가 앰트랙 윈도에 가서 물어보니 게이트 7B로 나가라고 한다. 아직도
1시간이 남은 시간 이렇게 저렇게 보내다 15분 전 개찰을 하여 역무원에게 물어보고 확인 후
2층으로 올라가 아무 데고 앉아도 된다고 해 뒷자리에 홀로 앉았다. 중앙역에서 놀란 것은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정거장마다 들리다 보니 완행열차는 거의 1시간 반이 되어서 중간역에 도착했다. 중간역에서
내가 가는 목적지까지 기차가 취소되어 기차 회사에서 마련한 차터 버스를 타고 나는 다시
긴 시간을 교통체증과 더불어 지루한 2시간도 넘는 여정 서울서 대전 넘어 대구 가는 길목
중간 정도 거리가 되는 거리를 가야만 했다. 눈부신 다운타운의 고층 건물들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시와는 또 다른 정경의 시골 같은 깨끗하고 정결한 도시가 인상 깊었다. 채 10분도
안 되어 피터가 도착했다. 그의 현대 서브를 타고 길을 나섰다.
중간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조그마한 베트남 사람이 운영하는 일식집을 들렸다. 피터가 구운
생선과 회를 시켰다. 오늘까지 다 후렌치 토스트, 칠면조 크루아상 샌드위치, 햄버거만 먹다
보니 아이고야 속이 니글 거리는 느낌에 더도 들도 말고 김치가 생각났다. 그렇다고 내가 만드는
바게트 빵 샌드위치나 샐러드 같은 맛도 나지 않고 이 동네는 한국 식당도 없고 멕시코 사람들이
만들어 파는 음식도 없고 덩치가 산만한 백인들 위주의 음식이다 보니 우리가 감당이 안 되는
대식가의 음식이라 반도 못 먹고 말았다. 양을 보면 먹방하는 사람이 아닌 한 소식하는 나에게는
끔찍한 양이었다.
저녁은 우리 둘 다 먹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십 년도 넘어 만난 우리 두 사람은 적포도주를 한병도
아닌 자그마치 3병을 필름이 서로 다 끊길 때까지 마셨다. 그동안 우리가 못다 한 이야기 슬펏거나
고생스러웠던 이야기 그리고 젊은 날 만나 피터도 만 62세요 나도 이제는 칠순을 넘어 곧 칠십하나가
되도록 무정하게 간 세월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피터도 나도 존경하고 사랑했던 어른이 전립선암으로 2년 전 83세에 돌아가시고 우리에게
남겨준 그리움 그리고 늦게 가정을 이루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고 만족하며 사는 피터
그대로만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했다. 젊은 날 우리 서로 만나 지금까지 가슴 깊이 서로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살아온 지나온 세월 우리 서로 남은 인생에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했다. 거의 십칠팔 년을
앞만 바라보고 살아온 나의 인생길이었다. 내 어른들 다 보내드리고 그 모든 슬픔과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앞만 바라보고 일에만 열중했던 시간 그 종착역이 가까워 오는 은퇴라는 어휘의 언저리다.
고난이 있었기에 돈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되고 근면하게 열심히 살아야 은퇴 후
고생하지 않고 백만장자는 아니어도 남에게 짐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인생의 지기의
가치를 깨닫게 되고 그 지기와 함께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며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긴 긴 세월 못다 한 이야기
영혼 깊이 서로 담아 놓았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던 간밤 포도주 3병과
우리 둘 다 필름이 끊긴 시간이었다.
인생에서 어떻게 참된 우정과 참된 사랑을 돈으로 물질로 살수 있겠는가 싶다. 가슴으로
영적으로 서로 다 교감이 가능할 때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며 서로가 지켜야 할
매너와 에티켓이 있고 서로가 한 발짝 물러서는 양보와 배려가 있어야 가능한 인간의 참된
우정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몇 년 만의 외출인지 모른다. 피터도 나도 늙어가니
없던 병도 생겨 우리 둘 다 좁은 공간에 대한 압박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젊어서 정글
도 혼자 오르고 하던 나는 고공 공포증이 늙어 생겨 영화나 사진으로 높은 절벽이나 건물만
보아도 오금이 저리다. 내가 한국과 같은 고층 아파트에 살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일 직행 완행열차로 돌아가는 집이다. 바리바리 올리브부터 비싼 포도주를 다섯 병씩이나
싸주고 싶어 하는 피터 포도주는 간밤 우리가 필름이 끊기도록 마신 것으로 충분하니 그러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려서 그러기로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26일에 주파하고 온 피터의
부인이 오빠 하고 우리 부부 셋이 함께 가자고 한다 하여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러자
했다. 그러고 나니 한국에서 인연들로부터 가을을 알리는 만발한 코스모스부터 단풍 든
모습부터 남도에서 가득 사진으로 담아 보내왔다. 귀한 인연 긴 긴 세월을 함께하는 분이시다.
한국에 피붙이 가족 하나 없으니 가족처럼 생각하고 살라고 하시는 귀한 분이다.
목요일 2주간의 휴가를 맞추고 나는 직장으로 다시 원대 복귀하게 된다. 이 가을은 20년도
넘어 그리운 친구 그리고 동생 그리고 인생 여정의 동행 피터와의 해후로 그도 나도 충분하다.
동네사는 백인 여성으로 정구치는 파트너와 정구를 치러나간 피터 에어컨 켜주고 문 잠가주고
외출중이다.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 집에 가자고 하는 데 난 그것보다 나물넣고 초고추장 조금에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싶은 심정이다. 김치도 안 먹고사는 피터다 설렁탕도 맹탕으로 먹는 사람
그나 내나 매운 음식은 감당이 안되는 사람들이다. 내년 이맘때 나는 모국에 있지 않을까 싶다.
피터가 2시간을 정구를 치고 막 돌아왔다. 그런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자그마치 167불이나
하는 크리스쳔 디올 향수를 사들고 돌아와 손에 건네주어 패주고 싶었다. 왜 그렇게 뭘 못주고
못사주어서서 난리인지 그 마음 알고도 남지만 매일 돈 쓰지말라고 잔소리를 하는 내말을
어기고 기어이 방문 해주어 고맙다고 그 비싼 남성용 향수를 사왔다. 내가 그런 것을 좋아
하는 것을 아는 사람 일을 저질렀다.
'붓꽃 독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아와서 자다 말고 (1) | 2023.10.19 |
---|---|
모든 추억을 뒤로하고 (2) | 2023.10.19 |
기차표를 예약하고 (1) | 2023.10.19 |
가을 휴가 나흘째 (2) | 2023.10.08 |
10월의 첫날에 (2) | 2023.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