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순수한 영혼의 사색과 사랑 그 영원한 삶의 에스프리

붓꽃 독백

오늘은 왜 이럴까

붓꽃 에스프리 2023. 11. 11. 04:32

 

 
지난 한주를 맞추고 브렛 부인의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을 받아들고 돌아온 후 하루 쉬고 그저께
 
하루 근무를 하고 어저께 퇴근길에 한국식 재료 마켓을 들렸다. 어느 유튜브가 보여준 인천 청과물
 
도매상에 쌓인 싱싱한 전국 곳곳에서 온 김장 배추들, 무가 매끄럽고 길고 잘생긴 총각무, 고들빼기,
 
대파, 무들을 보고 만난 한국이 아닌 서양 수억만리 이역의 마켓에서 만난 지독히 못생긴 볼품없는
 
배추 가끔은 한국 못지않은 좋은 배추도 오는 데 이번은 유달리 형편없었다.

그중에서 중간 정도 크기 배추 두 폭을 사들고 돌아왔다. 오자마자 은퇴하면서 식당도 접으면서 준

스테인리스 다라에 소금물 만들어 두 포기를 잘라 절이기 시작했다. 한 포기는 나를 위해 다른

한 포기는 직장에 백인 동료 브렛 부부를 위해서였다. 해가 짧아져 요즘은 오후 1시 2시나 되어야

부엌에 햇살이  들어온다.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는 동안 유튜브에서 <한국인의 밥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왜일까 <한국인의 밥상> 하나하나 볼 때마다 절로 목울대가 뜨거워져 울컥하게 되고 흐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내 어린 시절의 한국 그리고 그 시절 그때의 부모님들 생각에 그리움이

해일처럼 밀려와 내 스스로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감정이 복받치고 또 아니 온종일 복받쳐왔다. 이제

내 나이 칠순을 넘어가고 있는 길목에서 지나간 세월들이 하염없이 그리웠다.

온종일 영어만 하다 퇴근하면 겨우 유튜브에서 만나는 한국과 한국어 그리고 한국의 정서들 내 스스로가

혼란스럽다. 온종일 미국 문화 속에서 영어만 하고 미국인의 일상을 살다 퇴근하면 잠시 만나는 한국

문화와 그 에스프리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누구일까.

일제 강점기에 강원도에서 경상도에서 500명에 속해 이주한 북간도 그곳 황무지 찬물에는 죽어도

못 들어간다는 한족들과는 달리 이역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던 1944년도에 북간도로 갔던 경상도 분들

누군가의 아들이요 아버지요 형제였던 분들의 이야기를 만났다. 풀과 나무만 무성했던 곳을 옥토로

일 구워 벼를 심고 한국 풍습을 지키고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한국말을 하는 조선족들의 삶을 <한국인의

밥상>을 통해 보면서 절로 눈물이 쏟아지고 쏟아졌다.

그들의 색다른 추어탕 등 하나같이 우리 어려서 그 시절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 있는 북간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경상도 강원도 출신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공감하며 온종일 웃고 흐느꼈던 어저께

하루였었다. 요즘의 젊은 세대들이 우리 세대들과 우리 부모들 세대의 모진 삶을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먼 이역에 떨어져 언어도 물도 산도 설은 곳에서 나 역시 산전수전 세상의 모든 모진 삶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홀로서기를 하며 일하며 공부하며 학업을 맞추고도 만학을 하던 지난날들을 어찌

필설로 다 하랴 싶다.

 
 
 
전국 방방곡곡 보부상들의 이야기를 <한국인의 밥상>에서 만나며 그 아득한 세월이 가슴 깊이

스쳐지나 갔다. 박물 장사라고 하여 큰 광주리 같은 곳에 각종 물건을 담아 갖고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팔던 누군가의 엄마 그 엄마로부터 구리무 하나 사고 참빛으로 머리를 빗어 비녀인가를 꽂았던

우리 어머니들 아득히 그립다. 이제는 너무 오랫동안 반세기도 넘게 한국과 단절되어 살다 보니

머릿속으로는 그림이 그려져도 그 사물의 이름을 한국어로 기억을 할 수가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서산에 사는 어느 보부상을 하던 노인 배가 고프고 먹을 것이 없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배고픔을 잊어야

했었다는 이야기 바로 이것이 초근목피를 먹고살던 이야기 이지 무엇이겠는가. 정작 자신은 소를 평생

팔고 사는 장사를 하면서도 소고기 한 점 제대로 먹어본 일이 없다는 슬픈 우리 부모님들이나 우리 윗

형님과 우리 세대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저려왔다. 아니 너무 아파 절로 목울대가 뜨거워져 오다 못해

울컥 울컥하고 말았던 어저께 휴무 첫날이요 오늘 온종일이었다.

밤이 깊어 제넷으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이제는 직장에서 총책임자 자리도 물러나고 장거리 운전도

그리고 작은 교통사고만 보아도 무섭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근무 가능한 날까지 하다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했다. 젊어서야 대륙횡단을 홀로 두 번이나 했던 나도 이제는 장거리 운전이 싫고 힘겹게

느껴져 지난 10월 기차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왔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늙고 있다고 말을 했다.

 
 
배추를 절이고 소금기 세척하고 물을 빼느라 두고 있다 보니 피로감이 밀려와 결국 하룻밤을 넘기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싱싱한 무 썰어 넣고 막김치로 버무려 큰 병 하나 작은 병 하나 만들어 익으라고

밖에 두었다. 작은 병 하나는 백인 직장 동료 브렛 부부에게 마음의 선물로 주려고 한다.

풍성한 가을이면 만나던 홍시 감과 가을걷이가 끝나면 우리들 어머니들이 만들었던 고사 시루떡들

하며 가마솥에 맛나게 끓여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던 순댓국들 하며 모두가 하나같이 우리 세대들의

그리운 추억들이다. <한국인의 밥상>만큼 우리 같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정서를 깊이 전해주는 방송 프로는 없는 것 같다고 개인적 시각으로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의 밥상>을 시청하다 보면 마음이 절로 평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니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환경에서는 재료도 구할 수도 없고 만들어

먹을 수도 없는 수없는 한국 각지방의 향토음식들을 눈요기하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며 또한 위로가

되는 해외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즐겨 시청하는 프로가 아닐까 싶다.

세계 각 나라의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프로나 이렇게 한국의 식문화를 소개하는 프로를 시청하다 보면

어느 하나 경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작은 국토 대한민국 안에서도 각 지역마다 각지방마다 그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식재료가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서 음식문화는 발전되었다는 놀라운 인간의 지혜와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놀라울 뿐이다.

가령 제주도 지방은 벼농사를 지을 땅도 없고 산출이 불가능해 오로지 메밀이나 조 같은 작물만 경작이

가능했다고 한다. 하여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달리 메밀을 이용한 음식과 돼지고기 음식이 발달하게 되었고

모든 미역국에는 생선이 들어가게 된 연유다. 이용 가능한 재료가 그것밖에 없고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육지 서울 경기도 처럼 쌀이나 보리 같은 농산물이나 기타 채소나 산나물 같은 것이나 육류 음식을

이용할 수 없는 지역적인 한계로 그 지역에 맞는 생존법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나는 늙어가며 <한국인의 밥상>이나 여기 서양의 음식문화 프로를 시청하다 보면 인간의 생존력과

그 지혜에 경탄을 금할 길이 없을 때가 너무나도 많다.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같은 데서는 그 사막

한가운데서 불을 피워 남작 빵을 불이 있는 모래에 파묻어 익혀 그 흙모래를 털어내어서 먹고 생존하는

유목민들 강원도에서는 산비탈에 먹고 살길이 없어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경상도 산골에서도 농지가

부족하니 메밀 심고 먹을 것이 없어 보릿고개 시절에 산나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그 피눈물 나는

가난했던 전후의 한국인들의 삶 그날이 없는 오늘날 한국의 번영은 결코 없다.

일제의 수탈과 식민지 36년에서 해방되니 그길로 남북이 분단되어 아직도 휴전 중인 대한민국의 현주소

오늘의 MZ 세대들이 부모님들과 조부모님들이 겪어야 했던 그 모진 가난과 배고팠던 시절의 피눈물

어린 삶을 가늠이나 할 수 있을지 싶다. 우리 국민학교 다닐 때는 미국에서 원조해 준 강냉이 가루로 죽을

쑤어 점심때면 양철로 만든 버킷에 담아다 한 주걱씩 각반에서 나누어 주곤 했었다.

그런가 하면 원조물자 우유가루를 학교에서 배급 주면 집으로 갖고 와서 쪄서 과자로 만들어 먹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그 가난했던 전후의 보릿고개 시절 그리고 새마을 운동 광복절 노래 등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자판기를 두드리는 이 순간도 눈시울이 뜨겁고 울컥하게 된다. 새벽이면 새벽밥을

해주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오늘 같은 날은 눈물 나도록 그립다.

 

요즘 나는 불어권에 들어가 온라인을 접촉하기에 불어 광고가 유튜브에 뜬다. 구글도 이제 유튜브

광고를 조건으로 우리 같은 구독자들에게 광고 없는 프리미엄 매달 거의 13불 하는 것을 사용하던지
 
아니면 광고를 막지 말고 허용하는 조건으로 전과는 달리 유튜브를 강제적으로 시청하게 하고 있다.
 
광고를 막는 경우 유튜브를 더는 이용 못하게 막고 있다. 세상 모던 것이 이제는 돈 돈 돈으로
 
연결 짓고 있다.

누가 유튜브를 매달 13불씩 내고 볼까 싶은 심정이다. 넷플릭스나 디즈니나 아마존의 프라임이나

훌루 같은 OTT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유튜브만은 광고를 허락하고 유튜브를 이용하는 지난 2주다.

그 광고를 불어로 내보내 듣기 연습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자막이 있어도 광고도 빠르고 그 어려운

불어 발음을 알아듣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고야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저 코 맹맹히

소리를 해야 되는 불어란 괴물 반복해서 듣다 보니 조금씩 귀에 익고 들린다.

라틴어 계열에서 불어나 포르투갈어나 슬라브어 러시아만큼 발음이 어려운 것이 있을까 싶다.

그다음은 중국어 사성 이 또한 장난이 아니게 어렵다고 생각된다. 스페인어는 듣고 읽는 대로 하면

되는 언어이니 위에 언어들 보다 배우기 싶다. 요즘은 마음이 갈 때마다 외국어를 열공중이다. 특히

불어 발음 공부 내가 사용하는 일상 언어 영어가 아니다 보니 정말 어렵다. 그래도 배우고 싶어

유튜브를 통해 독학 중이다.

가장 배우고 싶은 언어 불어와 스페인어다. 요즘은 학부에서 잠시 배웠던 일어를 써보기도 하고

일본 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한자를 공부를 하고 있기도 하다. 늙어 기억력이 쇠퇴해 젊은 날처럼은

언어 습득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여행 중에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내 의사 표현을 기본 정도로

할 수 있는 만큼은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독학하고 있다.

언어는 무조건 실수를 해도 반복해 입으로 떠들어야 습득이 가능한 일이다. 백날 문법을 잘하고

머리로 알아도 입으로 떠들지 않는 한은 외국어 습득은 경험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이고야

나는 이제 오후 3시가 되었나 하고 보니 이제 겨우 정오가 지난 40분 목요일이다. 안경점으로부터

2주 전 검안한 안경이 도착했다며 찾으러 오라고 전화 연락이 와서 잠시 운전을 하고 타운을 나갔다

와야 하겠다.

 
 
 
안경을 찾아 갖고 돌아오는 길에 마켓을 들려 메밀가루 하나, 깐녹두 하나, 통보리 하나, 섞은 콩 하나,
 
생식용 풀무원 1불 50 전 하는 풀무원 두부 중에 생식 두부가 1불에 세일을 해서 2개, 김치찌개에 넣을
 
썬 돼지고기 하나, 녹두전에 사용할 간 돼지고기 하나 사갖고 돌아왔다. 외출하고 돌아와 샤워를 다시
 
한번 더 하고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속이 부대끼어 불편했었다. 이제 밤 10시가

넘어서야 속이 편안해진 느낌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 <한국인의 밥상>을 시청하다 보면 각지방 각 지역마다 사투리가 다 달라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특정한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어휘들 가령 무젓=양념게장 서해남부 지방에서

사용하는 어휘다. 제주도 말은 더 못 알아듣는 어휘가 많았다. 특별한 억양과 어투들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그 지역에서만 사용 되는 억양과 사투리들 하나같이 소박하고 정겨웠다.

<한국인의 밥상> [628회} 2023. 11. 02 목요일 방영된 [남도 김치, 빛고을 光州에서 꽃 피다]를 시청하다

보면 광주에 있는 김치 연구소에 의하면 전국에서 수집된 김치 유산균만도 3만 5천 개라고 한다.

이 유산균은 섭씨로 영하 70도가 넘는 냉동 냉장고에 보관되고 있었다. 김치의 맛이 각각 3만 5천 개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3만 5천 개의 각기 다른 김치 맛 그 방대함에 놀라웠다. <한국인의 밥상>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지역마다

각기 다른 음식들 수백수천 가지가 되지 않을 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대체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바다 음식 중에 들어가는 문어, 꼴뚜기, 낙지, 전어 맛은 어떤 맛인지 참 궁금했다.

어느 지역이 되었든 먹을 음식도 재료도 식량도 부족한 가난한 전후 시절에 살다 보니 자식들은 많고

양을 늘려야 하기에 국을 끓여도 물을 더 붓고 채소 건더기 더 넣고 멀걱게 해야 되었고 짜게 만들어

조금씩 먹게 하던지 해야 하였었다고 <한국인의 밥상>에 출현한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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